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0)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0화(290/505)
290화 전쟁 [3]
이 환호성…….
심낭압전이 물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이고…….
실제로 응급 상황에서 이로 인한 사망이 적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21세기 대학 병원에서 이거 하나 고쳤다고 환호성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대학 병원이 국내 제일이라는 태화 의료원이고, 치료한 당사자가 거기 교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후후. 기분이 아주 좋은데…….’
나조차도 이런 건 처음이다, 이 말이다.
“피영시인!”
“병신!”
물론 그 환호성이라는 게 이 모양이라는 건 좀 별로긴 하다.
아니, 애초에 병신은 아니라고…….
평신을 발음을 못 해서 저러는 건데…….
‘하긴 아무리 봐도 이 상황에서 맞는 말은 병신이긴 하지.’
병의 신.
아닌가?
병을 고치는 신인가?
아무튼, 청나라 지휘관이란 작자는 꽤 높은 사람인 듯했다.
변발 특성상 그 어떤 사람도 딱히 높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긴 한데…….
하여간, 사방에서 이 사람 하나 살렸다고 난리가 나는 걸 보니 상당한 유력자였던 모양이다.
“이거…… 대단하군요. 아까 쓰러졌을 땐 꼼짝 없이 죽었다 싶었는데…… 이게 시발입니까?”
그런 모습을 흐뭇해하는 사람 대부분은 청나라 사람들이었지만, 감히 내게 와서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조지 엘리엇뿐이었다.
진짜 높으신 분들은 런던 또는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현장 지휘관 중에서는 그가 제일 높았다.
그런 사람이 시발이라고 하면…….
뭐 어쩌겠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지.
“네, 이게 시발이죠.”
어떻게 보면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감탄사로서도 쓰이긴 하잖아.
어?
심낭압전을 초음파도 뭣도 없이 그냥 고쳤으면 시발 맞긴 하지.
“허어…… 심장 사혈이라니…… 이러니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갈 수밖에 없지.”
조지 엘리엇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청나라 지휘관 몸에서 나온 검은 피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까는 붉은 피였으나 밖으로 나온 탓에 산화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시기 사람들이 그런 걸 어찌 생각하겠나.
히포크라테스 이래 죽은 피를 빼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근데 정말 방법이 없나? 저 친구는?”
엘리엇은 말을 이어 나가다가 말고, 방안 한편을 턱으로 가리켰다.
턱 끝으로 시선을 가져가 보니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영국 해군이다.
일방적인……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는 있었다.
딱 한 명이긴 한데,
배가 고속 기동하면서 옆으로 틀었는지 뭔지 하여간 난간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냥 그 정도면 두개골 사혈 정도로 치료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망자는 그와 동시에 목이 부러져 버렸다.
“네, 목이 다쳐서.”
“목에서 피를 뽑으면 되지 않겠나?”
“뼈가 부러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도 방법이 없죠.”
“아하…….”
납득하는 뉘앙스로 미루어 보건대 부러진 것만 아니면 목에서 피를 뽑아서 어떻게든 살렸을 거라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이전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올바른’ 의료 지식을 알리기 위해 애를 썼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몬테소리 같은 게 괜히 나왔겠냐고.
나쁜 쪽으로 오해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쪽으로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나를 세계 최고의 의사로 오해하고 있다, 이 말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도움이 좀 되겠습니까?”
“되겠지. 딱 봐도 방 안의 분위기가 확연히 부드러워지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
“팔다리 자르고 할 때만 해도 귀신 보듯 보던 놈들인데, 지금은 보게. 자네들을 신처럼 추앙하고 있어.”
“그런 거 같긴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랑 리스턴이랑 신들린 듯 칼춤 추고 있을 땐 좀 그렇긴 했더랬다.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긴 할 거 같다.
나도 처음 봤을 땐 이게 수술인지 사형인지 헷갈렸잖아.
아마 청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사형의 또 다른 방식…….
내가 잘은 몰라도, 중국에서 있었던 사형 방식들이 상당히 다양하고 잔인했던 거 같은데, 그걸 감안하고 보면 이것 또한 그렇게 보였을 거다.
“근데…… 정말 청나라 말은 할 줄 모르나?”
“아, 네. 이건 마치 대령님께 독일어 할 줄 아냐, 프랑스어 할 줄 아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둘 다 조금 할 줄 아네만.”
“조선과 청의 사이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보다 더 안 좋습니다.”
“허어.”
내 말에 엘리엇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했다.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모자랄 사이인데 그것보다 더한 사이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근데…….
진짜 그 정도 아닐까?
명나라야 막판에 나라 망할 때까지 조선을 도와줬으니 그간 당했던 거 퉁친다고 해도, 청나라는…….
어?
이놈들이 데려간 볼모만 해도 몇이야.
오죽하면 화냥년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이놈들 때문에 생겼겠냐고.
개인적으로는 화냥년이라는 말을 붙인 건 조선에 남아 있던 사람들 잘못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무튼.
“그래, 그럼 통역을 불러야겠군.”
“그렇군요. 그럼 저는 어디로?”
“여기 있어도 된다네.”
“나름 비밀 얘기가 오가지 않겠습니까?”
얘기를 하는 사이, 정신을 차린 청나라 지휘관을 군 소속 의료진들이 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얘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도 따라왔다.
내가 가니까 리스턴과 제자들도 왔고.
“괜찮네. 그 정도야 뭐, 들어도 되지. 애초에 자네는 이 작전의 참여자 아닌가.”
“아…….”
머릿속으로 세계 최악의 전쟁, 아편 전쟁의 주동자 김태평이라는 헤드라인이 지나간다.
세상에 무역에서 이겨 보겠답시고 세계 최강의 대국이 마약을 팔아먹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얘긴데 그게 실제로 벌어진 역사다.
역시 소설은 현실을 따라갈 수가 없어…….
“네, 그럼 여기 있겠습니다.”
“그래. 다행히 청과는 무역한 지 오래돼서 훌륭한 통역사가 꽤나 된다네.”
하지만 뭐 어쩌겠어.
내가 만들어 판 것도 아니고…….
어차피 벌어질 일에 내가 끼어들게 된 거다.
이 일로 작위를 받게 되면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확 넓어질 테니, 앞으로 보다 많은 끔찍한 ‘역사’를 바꾸는 데 큰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으음…….”
하여간, 불려온 통역사는 지휘관과 바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변발한 강직한 충의지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여러 날카로운 도구들과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시전해야 떠듬떠듬 말을 해 주던데…….
오늘의 패장은 그리 강직한 사람은 못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피영시인이군요.”
“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어로 쏼라쏼라 떠들던 통역사가 나를 보면서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싶었다.
나머지도 그런지 다들 얼굴에 물음표 하나씩을 띄우고 그만 바라보았다.
“마음을 꺾어 버렸군요.”
“제가요?”
“네.”
“어떻게요?”
“하하…… 이렇게 심계가 깊으신 분이 대영제국에 계시다니 대영제국의 앞날이 창창합니다.”
통역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다가 껄껄 웃었다.
드라마 볼 때도 이런 답답한 상황을 진짜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다행히 리스턴도 이런 상황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나와 합세해서 노려보았다.
그의 노려봄은 마치 무림 고수의 살기와도 같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통역사는 잠시 심장 근처를 부여잡았다가 부리나케 말을 이어 나갔다.
“병사들의 팔다리를 잘라다가…… 그 힘을 이용해 자신을 살려 냈다고 하는군요.”
“아…… 그런…….”
“정말인가? 그게 시발인가?”
황당해서 말을 못 잇고 있었는데, 엘리엇이 시발의 새로운 개념을 들고 왔다.
진짜 계급 조금만 더 낮았으면 뒤통수 바로 후렸을 텐데…….
“아, 아뇨. 오해입니다. 제가 진짜 주술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의사입니다.”
“아아.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알겠네.”
“아니, 대외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하하, 아무튼, 중요한 것은 자네 덕에 청나라 지휘관이 완전히 굴복했다는 걸세. 이 사람, 자네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무역하던 사람들 말로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사람이라고 하던데.”
“네? 그래요?”
그런 사람이 지금 이렇게 멍한 얼굴로…….
심지어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턱까지 달달 떨고 있다, 이 말인가.
“그래. 원래는…… 여기 잡아 두고 따로 사람을 보내 협상을 하려 했는데, 이 정도면 그냥 이 사람을 직접 보내도 되겠어.”
“중요한 사람 같은데 그냥 보내요? 포로 아닌가요?”
“하하, 이 친구…… 오늘 전투를 보고 나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언제 어디서 누구랑 붙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걸세. 아마 싱가포르에서 보고받을 분들도 깜짝 놀랄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약하지 않나.”
“하긴…… 그렇긴 합니다.”
화포를 육지에 좀 더 배치한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암만 봐도 배가 작고 후져서 큰 화포를 설치 못 한 거 같긴 하거든.
육지에서 쐈으면 좀 나았겠지?
하지만 임칙서가 아직 등장하지 못했거나 등장했어도 얼마 활약을 못 한 상황이다 보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했다.
그 와중에 대체 뭔 명분으로 실제 전쟁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건 모르는 게 나은 거 같다.
암만 봐도 우리 영국 친구들, 정당한 방법을 사용했을 거 같진 않으니까.
“그래, 이대로 황실에 가서 보고를 하겠지. 어차피 청나라를 우리가 다 먹진 못할걸세. 지금 인도만 해도 프랑스와 같은 되지도 못한 것들의 불만이 많은데…… 여기까지 먹었다간 전쟁이 날 수도 있어.”
그 전쟁, 이미 하고 있습니다만…….
이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나를 예외로 삼고 있어서 그렇지, 이 시기 백인들은 다른 인종이나 다른 대륙의 국가들을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지 않으니까.
괜히 얘기 꺼냈다가 인종 차별에 푹 찔릴 거다, 그 말이다.
그러다 달래듯이 명예 백인 운운하겠지?
“아무튼, 오늘은 푹 쉬게. 정말 수고 많았어. 뭐…… 청나라 계집이라도 품어 볼 텐가?”
“아, 아뇨.”
강압적인 관계도 싫거니와 딱히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제가요, 나름 눈이 높거든요.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조선 사람들을 좀 보고 싶습니다.”
“조선 여자?”
“아니…… 그냥 사람이요. 고향 얘기나 들어 보게요.”
“아, 아아. 그래. 안 그래도 아까 조선 사람 몇 명이 누가 불러서 찾아왔다고 하긴 하던데. 무장이 있을지 모르니 그거 확인하고…… 보내 주겠네.”
“네.”
“근데 위험……하진 않겠군. 닥터 리스턴, 같이 있을 거죠?”
“그래야지. 우리 소중한 주술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 않나.”
“그래, 그럼 바로 보내겠네.”
아무튼, 나는 조선 사람을 만나 보게 되었다.
19세기 와서 우리 엄마 아빠 빼고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싱숭생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