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1화(291/505)
291화 다시 런던 [1]
안에 들어온 조선인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듣자니 일반 양민은 아닌 듯하고, 상인들인 듯했다.
그중에서도 뭐…….
뭔가 허락을 받고 하는 놈들이라기보다는 밀무역을 하는 놈들인 듯했는데, 나름 차림새가 그럴듯했다.
‘하긴…… 정식 상행이 그렇게 잦았을 거 같진…… 않아.’
대항해시대 게임 같진 않았을 거 아닌가.
그거야 뭐 한양 입항해서 왕 만나서 계약하면 바로 인삼도 사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 되나!
흥선대원군이 쇄국을 선언하기 전부터도 이미 사실상 쇄국을 하고 있던 것이 조선이니 내가 이렇게 청나라 땅에서 마주하게 된 이들이 밀매상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터였다.
“그럼 김태평 대감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하여간, 나는 내 앞에 있는 조선인 셋을 돌아보았다.
우측에 앉은 하나는 정말 밑바닥에서 험한 일부터 해서 올라온 사람 같아 보였다.
눈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그냥 인상 전반에 걸쳐 그가 살아왔을 험악한 세월이 엿보였다.
연신 리스턴 쪽을 흘겨보는 것이…….
몸집이 작은데도 이만한 용기를 지니게 되려면 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하나 싶었다.
정작 그렇게 곁눈질을 당하고 있는 리스턴은 딱히 감흥은 없어 보이긴 했다.
-다들 한주먹거리지만…… 자네는 주의하게나. 뭐, 내가 같이 있으니 별일이야 있겠냐마는서도…….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딱 이렇게 진단 내린 지 오래였다.
까불면 한 방씩 때려서 죽이겠다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말이었다.
아무튼, 좌측에 앉은 사람은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보부상과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봇짐은 지지 않고 있었지만, 아무튼.
“아…… 뭐 좋을 대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근데 제가 나이가 어려서.”
“하하…… 호걸은 나이가 아니라 성취를 따지는 법이죠.”
가장 인상적인 건 중앙에 앉아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늙은이였다.
비록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노화가 늦은 편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21세기 얘기 아닌가.
그냥 얼굴만 보면 60은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30대라 했다.
그런 얼굴에 그럴듯한 갓에 비단옷까지 입고 있으니 대감은 이쪽이 대감 같았다.
물론 진짜 잘나가는 한양 양반이 여기 와서 이러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보니, 그냥 밀매가 돈이 꽤 되는갑다 할 뿐이었다.
“저는 오랜만에 조선 사람을 보니 좋긴 한데…… 왜 저를 보자고 청을 하셨죠?”
그러한 속내를 감추고 일단 질문부터 던졌다.
확실히…….
김태평 발음 제대로 하는 사람을, 우리 부모님과 조지프를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다 보니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애국지사가 될 만큼 조선 뽕이 들어차진 않았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미 머릿속에서 조선은 망국으로 정해져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 뭘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저희도 다 봤습니다.”
“저희만이 아니라 여기 광저우에 있는 사람들은 다 봤을 겁니다.”
“으음.”
나는 저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대는 걸 보다가 다시 물었다.
“뭘요?”
“이양선이 청나라 군함을…… 말 그대로 박살 내 버리던데요.”
“아…… 그랬죠, 확실히.”
증기선으로 이루어진 함대도 아닌 전열함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나도 좀 놀라긴 했다.
뭐 역사상 대영제국이 가장 강했던 시기인데다가 해전으로 싸울 작정이었다 보니 당연히 다 박살 낼 거 같긴 했지만.
그걸 알면서 봤는데도 놀랄 만큼이나 대단한 위력이었다.
“이게 혹 조선으로 향할 일은 없겠습니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쾅쾅 울리던 대포 소리가 선했다.
전투 인원들은 아마 청력 좀 손해 봤을 거다.
나야 전투에 직접 나서는 배가 아니라 지휘선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조금이나마 있긴 했지만…….
그런데도 귀가 울릴 지경이었다.
그러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나.
“아, 아뇨.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그게 참말입니까?”
하여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조선 얘기를 꺼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런 위력을 봤는데 겁이 나지 않겠나?
막말로 조선 수군이 강했던 건 16, 17세기 초의 일이니까.
그마저도 동아시아끼리의 일이지, 대항해를 하던 유럽 수군과 비교하면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젠 이순신 장군이 없지…….’
뭔가 이순신 장군이 있으면 전술로 어떻게 해 보실 거 같지만…….
19세기 조선의 상황은 언수 과외로 대학 간 나도 암울하다고 알고 있을 정도로 좋지 못하다.
“네, 참말입니다. 정말 그럴 계획은 없어요.”
“그럼, 그 배는 뭐였습니까?”
“그 배?”
그에 더해 아편 전쟁 때 쳐들어갔던 영국 군함이 조선으로 쳐들어갔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아니, 애초에 영국은 직접 쳐들어간 적은 없지 않나?
병인양요는 프랑스였고, 신미양요는 미국이었으니까.
물론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게 된 배경에는 러일 전쟁을 부추긴 영국이 있기야 하겠지만…….
원래 세계사의 어두운 일은 죄 영국이…….
“네, 그 배…… 배 한 척이 와서 시비를 건 적이 있습니다.”
“외국 배가 다 영국 배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1832년은 좀 이른 거 같았다.
내가 알기로 병인양요는 1866년, 신미양요는 그보다도 더 후의 일이니까.
“영길리국 배가 맞습니다. 지금 계시는 이 배에 걸려 있던 국기가 거기도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요? 뭔 배지?”
허나 국기까지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영국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놈의 홍차 새끼들…….
진짜 미친놈들이긴 하다.
하다 하다 이젠 은둔의 나라 조선까지 갔다니…….
“암허스트호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영길리국어를 좀 합니다.”
“오…… 어떻게요?”
“아편 사고팔 때 들었지요.”
“아…….”
어쩐지…….
너무 의복이 화려하다 했다.
나르코였다.
가만, 가만있자…….
이거 이렇게 되면…….
-영길리국의 나르코 대부 김태평, 청을 넘어 조선까지 넘보다.
교과서에 이렇게 나오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럼 안 되는데?
“암허스트면…….”
그때 가만히 있던 리스턴이 나섰다.
너무 자연스럽게 끼어들길래 극한직업 형사처럼 조선말을 알아듣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냥 암허스트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거 인도에서 출항한 상선 아닌가?”
“네? 그래요?”
“그래. 우리 한창 훈련할 때 기억나는가? 런던만은 못했어도…… 인도에서도 시간 좀 보냈잖아.”
“기억이…… 나죠, 당연히.”
흔들리는 뱃전 안에서 칼 휘두르던 기억은 다시 한번 생을 반복하게 된다 한들 잊히지 않을 거 같다.
심지어 나중엔 시신에다가 휘둘렀다.
날씨가 런던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 보니 시신도 잘 썩어서 진짜 고역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포르말린을 들고 왔겠지만…….
그런 일을 예상하고 포르말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때 출항하던 걸 본 거 같은데.”
“우리가 연습을 그래도 꽤 했는데…….”
“그러니 우리보다 먼저 조선에 갔겠지. 조선이 여기보다 멀다며.”
“근데 상선이 그렇게 빨라요?”
“원래는 아니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느렸을걸. 뭐가 되었건 전쟁을 오래 하려고 화포니 뭐니 엄청 들고 왔으니까.”
“아, 하긴.”
선장님이나 병사들이 배에 뭐가 달린 것처럼 느리다고 하는 걸 들었다.
그게 그냥 이렇게 말하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배 위에서 만성 알코올 섭취와 뱃일에 지쳐 빨개진 눈을 한 선원에게 들으면 귀신 소리하는 것처럼 들리다 보니 그냥 개무시하긴 했었는데…….
“아무튼, 맞을걸세. 발음이 조금 다르긴 한데…… 뭐 나도 이번 기회에 내가 알던 조선어 발음이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건 넘어가야지.”
“그놈들이 조선에 가서 뭘 했을까요?”
“글쎄…… 일개 상선이 뭘 했겠나 싶지만…….”
리스턴조차 ‘상선이면 거래만 하지 않았겠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이 상선이지 해적이나 기타 원주민 약탈을 위해 무장한 인원들이 상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선원들 자체가 언제고 전투 요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군대에 비견될 만큼은 결코 아니겠지만…….
제국주의 열강 군대가 아닌 냉병기로 무장한 군대라면 같은 수로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다.
“물어보게. 뭔 짓을 했는지.”
“아, 네.”
아무튼, 리스턴 덕에 뭔 상선 하나가 조선에서 어정거렸다는 걸 알았다.
이 새끼들이 이상한 짓을 했거나 하면…….
예전 같았으면 ‘뭐, 어쩌겠어’ 하고 넘어갔겠지만, 동인도 회사가 운영하는 상선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 개뿔도 없는데 뭐 하러 가냐고, 청이나 뜯어먹으라고 하는 말 정도야 할 수 있을 거 같다.
원래도 런던 유지였는데 이번 원정에 낑겨 오면서 말발이 당분간은 상당할 거 같거든.
청나라 사람들이 나를 주술사 비슷하게 오인한 덕에 말이야.
“아…… 별짓은 안 하고 거래하자고 했던 거 같습니다. 이게 성사가 되면 저희 일이 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급히 왔는데 전쟁을 보게 된 거고요.”
“아…… 그래서 걱정이 된 것이로군요.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쪽은 우리랑 별개로 움직인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청나라 뜯어먹는 것만 해도 바쁠 테니까요.”
“아, 하긴…….”
“그보다.”
암허스트 해결할 수 있고, 당분간 조선 안 쳐들어갈 거 같고, 혹 이상한 소리 해도 당분간은 컷 할 수 있고…….
그럼 뭘 해야 하나?
뭘 하긴.
“어차피 밀매할 거면 뭔가 들고 온 거 없습니까?”
“네? 아…… 있죠. 인삼이 예로부터 비싸게 팔립니다. 이걸 팔아다가…… 재미 좀 봤는데 이젠 아편은 못 살 거 같군요, 분위기를 보니.”
“대신 인삼은 계속 파시죠.”
“어…… 인삼을요? 영길리국에?”
“네.”
“이 사람들은 약재를 별로…….”
“그야 뭐. 걱정할 거 없습니다.”
인삼의 효능으로 말할 거 같으면…… 안에 든 사포닌의 성분 때문에 자양 강장의 효과가 있다.
그게 뭐 진짜 기대하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영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약들인 비소나 아편, 대마에 비하면 훨씬 좋다.
그리고 나는 그걸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런던에서 꽤 유명한 의사니까.
“그럼 제가 인삼을 더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돈 벌 수 있다니까 나라 걱정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눈이 빛났다.
몸도 날래져서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는 그를, 나는 잠시 붙잡았다.
“잠시.”
“네?”
“조선은 요새 어떻습니까?”
안다고 해서 뭘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거 같지만…….
아무튼, 물어보긴 해야 할 거 같아서 물었다.
“아…… 김조순 대감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개판입니다. 안동 김씨 천하입니다.”
“아.”
김조순은 그럼 다른 김씨인가?
물어보면 좀 무식해 보일 거 같아서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