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2화(292/505)
292화 다시 런던 [2]
“그래서…… 이게 뭐라고?”
“인삼입니다.”
“진생……?”
“인삼.”
아니…… 영어 발음도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잖아?
다시 태어났을 때…… 그때가 내 두뇌 구조가 말을 배우는 데 적합한 시기, 즉 링구얼(Lingual) 시기가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유창해지긴 어려웠을 거라고.
근데 왜 이걸 발음을 못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대를 바라보았더니, 상대, 곧 내가 청나라까지 찍고 돌아오는 근 1년간 편안하게 런던에만 계셨던 원장님이 민망한지 멋쩍게 웃었다.
“인삼…… 어렵구만. 근데 이게 뭔데.”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내 앞에 섰던 조선 밀무역 상인이 떠오른다.
박가라고 했던가……?
이름은 말을 안 해 줘서 모른다.
사실 밀무역하는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조선계 영국인에게 이름을 탁탁 말해 주길 바란다는 거부터가 이상한 일이긴 하다.
-이걸 통으로 쪄서 말린다고요?
-그래요. 영길리국이 얼마나 먼지 아십니까? 생으로는 절대 못 가요. 그리고…….
아무튼, 당시 대화를 상기해 보면 대강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영길리국 사람들은 빨간 걸 참 좋아합니다.”
어째 빨간 거 좋아한다고 하니까 공산당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
그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가 런던에도 한 10년 있었으니까 이것도 억울해할 만한 일은 아닐 거다.
이미 공산주의 사상을 대강 완성했을 때일 거 같긴 하지만…… 아마 런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면서 더더욱 강한 공산주의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그 외에도 홍차를 좋아하지 않나?
녹차보다 맛이 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멀쩡히 잘 먹던 녹차도 홍차로 먹는 놈들이니만큼 그냥 인삼이나 수삼보다는 수삼을 쪄서 말린 홍삼을 좋아할 거 같았다.
“그, 그렇군요. 하긴…… 이놈이 이게 말려서 먹다 보면 맛도 좋죠.”
“근데 양은 얼마나 확보할 수 있죠?”
“제가 가지고 있는 밭에서는 기껏해야 배 하나 채우는 양입니다.”
“배라…… 저거 말하는 거죠?”
판옥선도 아니고 그냥 나룻배보다 조금 더 큰 배가 광저우 항구 근처에 매어져 있었다.
조선에서는 밀무역을 엄정하게 다스리고 있고, 그 탓에 대부분의 밀무역은 항구가 아닌 바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뭐 어쩌겠나.
영국의 실력자이자 예비 기사인 나 김태평이 입항을 허가했는데!
“아, 네.”
“저거 우리 배로 치면 화물칸 5분지 1도 못 채울 겁니다. 더 가져와 봐요. 이건…… 내가 봤을 때 부르는 게 값이야.”
비단옷 화려하게 입고 있길래 거물인 줄 알았는데 그냥 짜바리였던 건지, 아니면 조선의 인삼 생산량이 적은 건지 모르겠다.
뭐…… 내부에서 소비되는 인삼도 적지 않을 것이고 청나라에 갖다 바치는 인삼도 적지 않을 테니 이만하면 괜찮은 거 같기도 한데…….
‘됐지, 뭐.’
어차피 청나라에서 나는 비단이나 도자기 등도 가져가면 돈 복사가 되기는 매한가지일 거다.
굳이 홍삼을 가져가려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사실.
제발…… 이상한 거 먹지 말고 그나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걸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게다가 내가 또 삼 전문가지.’
절친했던 이비인후과 친구가 모시던 교수님이 갑자기 삼에 꽂히는 바람에 그거 우린 물로 코 세척도 해 보고 그랬었거든?
그게 딱히 효과가 더 있진 않은 듯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아무튼, 듣기엔 황당해도 뭐가 되었건 간에 국내 제일이라 할 수 있는 병원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나름 배경 이론에 대한 발표는 제대로 했더랬다.
그에 따르면 삼의 주요 성분인 사포닌은 항당뇨, 항고지혈, 항암 효과가 있다.
물론…… 각각의 병을 타깃해서 만든 약에 비하면 훨씬 효과가 약할뿐더러 애초에 삼마다 들어 있는 용량도 고르지 못하고, 그 용량이라는 것도 적다.
예컨대 지극히 의사 시선에서 보면 먹어서 나쁠 건 없는 건강식품 수준이라는 건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
없다, 정말로!
19세기 런던의 약은…….
이런 걸 약이라고 해야 할지 독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 구해 봐요. 어떻게 해서든.”
“아, 알겠습니다…… 근데 대금은…….”
“대금? 안 줬나?”
“네.”
“아아. 줘야지, 인삼 가져오면.”
“아…… 네.”
어떻게 밀매상이 조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내내 광저우에 있었냐고?
사실 광저우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전투가 한 차례 더 있긴 했는데…… 오히려 첫 번째 전투가 더 나았다 싶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더랬다.
이때도 청나라 측 지휘관이 크게 다치긴 했을지언정 살아남긴 했는데, 그것도 당연히 나랑 리스턴이 살려 줬다.
어떻게?
“형님!”
“맡겨 두게!”
리스턴 드릴로 두개골 열어서…….
“형님!”
“으음!”
리스턴 석션으로 피를 뽑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여기 와서 시행한 주요 수술 두 개가 하나는 심장에서 피 뽑기, 하나는 머리에서 피 뽑기가 되었다, 이 말이었다.
-청 다이너스티에서 티에평시인이라는 주술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문일세.
-자네 덕에 황제가 오줌까지 지렸다는구만.
-그래서 그런가…… 우리가 원래 요구하려던 것보다 뭘 더 받았네.
홍콩 이양은 원래 영국이 원하고 있던 건데, 정말 숨 쉬듯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거기에 더해 청의 모든 항구에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심지어 상해에서는 영국의 허가가 없이는 다른 나라 상선이 드나들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영길리국, 영국은 청의 남부 해안과 동해안 전반에 걸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광저우, 홍콩, 상해를 잠시 왔다 갔다 했는데…….
그동안 우리 영국 해군들은 당연하다는 듯 매독에 걸려 왔다.
“평, 바쁜데 자꾸 어딜 그렇게 나돌아 다니나.”
“미안합니다, 형님. 인삼 때문에.”
“아…… 그거. 그거 효과도 효관데 비싸게 팔 수 있을 거 같다고 했지?”
“네. 그리고 그 품목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는다고 했고요.”
“좋군.”
나랑 리스턴만 소속된 것이 아니라 제이미 경까지 낀 상행이지 않나.
맨날 말로는 ‘나라를 위해, 국왕을 위해, 대영제국을 위해’라고 떠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이익을 제쳐 두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 영국인들은.
그렇다 보니 감히 군함을 상선으로 쓴다는 발칙한 발상까지 했었는데…….
다행히 일이 더 부드럽게 풀렸다.
암허스트호가 아직 청에 있었던 덕이다.
“그…… 부르셨습니까?”
그 배의 선장 리스가 내 부름에 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리스턴의 부름이다.
우리는 마침 매독 걸린 병사들에게 비소 화합물을 먹이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막말로 어떤 놈들은 매독 걸릴 만큼이나 신나게 밖에서 노는데 누구는 그 덕에 쉬지도 못하고 항구에만 매여 있지 않나.
“어, 왔소?”
“이쪽은?”
“아, 저는 귀츨라프 목사입니다. 배의 선의 겸 통역사를 맡고 있습니다. 두 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와…… 중국어 잘하나 보네. 맞소?”
“네네.”
“잘됐군. 지금부터 박가라는 조선인 상인과 협조하시오.”
리스턴의 말에 선장 리스의 얼굴이 참으로 볼 만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어두워졌다고만 하기도 뭐하고…….
하여간, 아까보다 훨씬 안 좋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뭔 말을 하진 못했다.
왜?
무서울 테니까.
이미 김태평-리스턴 사혈 듀오의 명성은 이 근방을 울리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그…… 저희가 받은 명령은…….”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죄지은 사람처럼 뭔가 말을 했는데, 별 의미는 없는 말이었다.
“아 린제이 경 말인가?”
“아, 네. 맞습니다.”
사실 암허스트호를 보낸 사람은 휴 해밀턴 린제이 자작이라, 우리 선에서 뭘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뒤에 있는 사람은 제이미 공작 각하이다.
심지어 나는 공주님께 해부 호감작까지 쌓은 몸이고…….
동시에 이번 원정에 참가하여 본의 아니게 두 차례에 걸친 인상적인 사혈까지 시행한 덕에 공까지 엄청 쌓아 돌아가면 작위가 예정되어 있는 몸이다.
꿀릴 게 없다는 거다.
사실 이미 얘기가 윗선에서는 되기도 했고.
“곧 따로 동인도 회사에서도 연락이 올걸세. 암허스트호는 군사 목적으로 징발되었어. 자, 이것 보게나.”
리스턴은 인장이 찍힌 문서를 보여 주었다.
홍삼 얘기에 홍차를 떠올린 제이미가 부리나케 보내 준 문서였다.
“아…… 군사 목적인데 왜…… 조선인 상인과…….”
“그러게 왜 조선에 갔나.”
“네?”
“아니, 아닐세. 아무튼, 그들과 협력해서 조선 땅의 인삼이란 인삼은 다 사 오게.”
“통상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닥터 리스턴.”
“퍽카.”
“네?”
이번에는 나도 리스턴을 돌아보았다.
아니, 왜 잘 말하다가 욕을 하고 그래?
“퍽카가 해상 밀무역의 달인이야.”
아…….
하여간, 이 새끼들 사람 이름 가지고 묘하게 욕처럼 만드는 재주가 아주 비상한 놈들이다.
뭐, 어차피 나는 박씨가 아니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안 있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 험악하다는 뱃사람 중에서도 대장인 선장 리스조차 리스턴을 보자마자 숨 쉬기도 곤란한지 연신 쩔쩔매고 있다.
“아…… 근데 그들이 인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을 테니 총이니 뭐니 좀 지원을 해 주게.”
“그렇게 하면 조선과 통상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서 징발이……?”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자네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되는 거야.”
“그…….”
너무 일방적인 말에 잠시 화가 났던지 선장은 숙이고 있던 얼굴을 쳐들었다.
그러곤 심장, 머리에서 피 뽑는 자인 나와 그냥 무섭게 생긴 리스턴을 마주했다.
“알겠습니다.”
거의 동시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답을 했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려는 걸 내가 붙잡았다.
선장은 아니고, 목사님을 잡았다.
“저기, 목사님?”
“아, 네.”
“어차피 조선어는 하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네, 근데 그 퍽카가 청나라어를 하지 않겠습니까?”
“영어도 더듬더듬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럼 저는……?”
나는 리스턴을 돌아보았다.
리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여전히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의 제자들과 군의관들을 보면서였다.
“관광이나 좀 시켜 주시죠.”
“관광……이요? 우리는 침략군입니다. 아직 안정된 상황도 아니고…….”
“안전을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군사들이 같이 갑니까?”
“몇 명 가긴 하는데, 여기 리스턴 형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
동인도에서 왔으면 우리를 모를 수가 없었다.
거기서도 배 띄워서 시신 자르고 했거든.
한 번은 너무 빨리 썩는 시신에 화가 난 리스턴이 배까지 한 번에 자르고야 말았는데…….
원피스에 나오는 미호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무튼, 우리는 목사님 덕에 나름 관광도 잘했고, 리스 선장과 퍽카 덕에 홍삼을 가득 채워 런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한 얘기를 전달받은 원장님은 감복한 얼굴이 되었다.
“과연…… 대단하군그래. 책으로 내도 되겠어.”
“그렇죠?”
“근데 대관절 이게 뭔데 그 난리를 친 건가. 점점 궁금해지는걸?”
그러곤 내가 늘어놓은 홍삼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이미 탐욕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