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3화(293/505)
293화 홍삼 [1]
만약 홍삼이 조선의 특산물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내가 런던의 실력자요, 또 많은 실력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 둔 상황이라고 해도…….
제2의 아편 전쟁이 터질 게 분명했다.
영길리가 영길리 할 거다, 이 말이다.
아니, 아니지.
‘아쉽게도 지금 조선의 국력이라면…….’
임진왜란 때만 해도 초반에 쓸리긴 했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뒤집어엎지 않았나.
뭐 막상 지금도 전쟁 터지면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모를 기인이사들이 나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영제국의 힘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아편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힘으로 밀면 밀릴 것이고, 전국 각지의 산이 인삼 재배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안하다…… 중국.’
이미 퍽카에게도 말을 해 둔 참이었다.
밀무역상 주제에 나름대로 애국자였던 데다가 영국을 비롯한 이양선에 대한 경계심이 워낙에 대단했던 놈이다 보니 리스 선장도 감쪽같이 속였다.
통역사를 자청할 정도로 대단한 어학 능력자인 목사를 관광 핑계 삼아서 나와 리스턴이 데려간 덕도 있긴 할 거다.
퍽카가 영어를 하면 뭐 얼마나 하겠나.
디스, 댓, 머니 정도가 다지 뭐.
그렇다 보니 리스는 여기까지 오면서도 내내 자기가 대체 뭘 사서 오는 건지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한 상황이었다.
“청의 특산물입니다.”
“오…… 이게? 왜 우리는 못 봤지?”
“정말 좋은 물건이다 보니 놈들이 지들끼리만 꿍쳐 놓고 먹어서 그럽니다. 아마 물어보면 어떤 놈을 막론하고 조선에서 나는 거라고 거짓말을 할 겁니다.”
“아하…… 과연 음흉한 놈들이로고…….”
그래서 청을 팔았다.
조금 미안하기는 한데, 뭐 어쩌겠나.
이미 뭐…… 박살 났잖아.
거기에 홍삼 하나 더한다고 뭐가 되겠어?
게다가 애초에 물량도 달려서 홍차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거다.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이…… 이 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의 효능을 밝힌 건 조선의 의사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산지는 청이에요.”
“아하…… 그렇구만. 아무튼, 그래서. 이 히옹시암의 효능이 뭔가?”
“네, 이 홍삼으로 말할 거 같으면 중풍, 당뇨 그리고 암에 좋습니다.”
오히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건 지금이다.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분명 사포닌에는 저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약 대신에 쓸 수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다.
그냥 먹어서 나쁠 거는 없다 정도다.
심지어 너무 장복하는 경우 피를 묽게 해서 수술이나 부상 시에 출혈 위험이 팍 올라가 버린다.
수술 전에 복용하는 약물 있어요? 라고 했을 때 홍삼을 반드시 말을 해 줘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뭐 환자가 그런 거 생각하기 전에 어차피 의사들이 다 묻긴 한다.
실제로 홍삼 먹은 환자들에게서 출혈 경향이 심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 그렇다.
“아니…… 거의 비소나 수은에 필적한단 말인가?”
“그렇게 세 보이지 않는데……? 이 안에 뭐 수은이나 비소가 들었나?”
“붉은 기가 감도는 것을 보아하니 수은 아니겠나?”
“수은이라…… 그럼 수은의 독기를 제거한 약인가?”
“하긴, 내가 청나라 황제들이 연단이라고 해서 수은으로 만든 약을 즐겨 먹는다고도 들었네.”
“오…… 그렇습니까? 과연 영명하신 공작 각하이십니다.”
“내가 그래서 요새 수은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 보고 있다네, 하하.”
하여간, 홍삼의 효능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만 다들 아주 난리가 났다.
만병통치약…….
이게 허상이라는 건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이잖아?
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는, 특히 런던에서는 결코 그렇지가 못하다.
이미 증기기관이 굴러간 지도 꽤 되었고, 세계 지도를 거의 실제와 흡사하게 그릴 수 있는 시대이면서 동시에 조금만 지나면 비행기도 뜰 시대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은 중세에 갇혀 있어서 그렇다.
오죽하면 화학의 아버지인 보일과 물리학의 아버지인 뉴턴 또한 연금술에 심취했겠나.
이게 빈말이 아닌 게 둘 다 수은 가지고 이 짓 저 짓 다 해 보는 바람에 머리카락에서 수은이 일반 인구의 10배 이상 나왔다더라고…….
‘근데 그걸 왜…….’
역시 자기 고환을 스스로 자른 자의 위명은 대단하다.
아무리 어?
19세기가 아직 야만과 과학이 뒤섞인 시대라고는 해도 연금술이 사기라는 건 보편적인 상식이 되어 가고 있는 시기인데…… 명색이 공작이라는 사람이 수은 가지고 이것저것 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내 귀한 고객이요 환자다 보니 황당함이 더했다.
개복치도 아니고…….
기껏 살려 두면 비소 벽지 바르고, 기껏 살려 두면 코카인 빨고, 기껏 살려 두면 수은 먹고…….
“아아,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야?”
“하긴 식물이라지 않나.”
“자, 이게 온전한 인삼을 말린 겁니다. 색이 어떻습니까?”
“거무죽죽하군그래.”
“원래는 거의 살색입니다.”
“흰색이라고?”
아, 그래.
살색이 이게 인종차별적인 말이었지.
그걸 셀프로 시전해서 당하는 사람, 그것이 나다.
“아니, 우리 동양인들의 색이죠.”
“아…… 노란색.”
“네네. 아무튼, 형태도 보십쇼.”
“형태……?”
“이게 머리고, 몸통, 팔, 다리.”
“오, 고추도 있네! 아주 큰데?”
보통은 그걸 다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그 전에 다 늙은 노인네가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지체 높은 사람 다 있는 데서 고추 고추 하는 게 정상인가?
‘아, 혹시……?’
노망났나?
그럴 만한 요인이야 많아도 너무 많은 상황이긴 했다.
나이도 많고, 당뇨도 있고, 애초에 자기 고환 자른 걸로 미루어 볼 때 약간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느낌이기도 하고…….
“네네. 사람 형태죠. 그러니 사람에게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하면서 동시에 자괴감이 든다.
이게 쇼 닥(Show doctor)의 마음일까?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에 무릎을 꿇은 전문가의 마음일까?
아니, 아니다.
‘비소나 수은보다는 홍삼을 먹는 게 백 번, 천 번 낫지.’
게다가 이거 다 조선에서 사 오는 것이지, 결국, 애국하는 길 아닐까?
약간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에서 마약왕이 하던 말과 비슷한 거 같아 소름이 돋긴 하지만…….
여기 오는 동안 여러 번 생각을 해 봤음에도 역시나 잘못된 건 아니란 생각만 든다.
“아하…….”
“일리가 있어.”
내 말에 격한 공감을 나타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19세기 명의 리스턴과 역시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블런델 그리고 내 제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복잡했다.
“확실히…… 사람 형태의 식물이라면 어떤 기운이라도 품고 있겠군그래.”
“이게 당뇨에도 좋다니…… 그럼 소 췌장 간 물은 안 맞아도 되나?”
“아, 아뇨. 어디까지나 보조제입니다. 예방은 될 수도 있죠.”
“아…… 그럼 나는……?”
“맞아야죠. 큰일 납니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하는 수 없지. 헌데 이걸 그럼 누구에게, 얼마에 팔지?”
“이만한 양을 아마 많아야 1년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들여올 수 있을 겁니다.”
“허어…… 그것밖에?”
“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삼은 대량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지만 19세기 조선에서는 아무래도 무리다.
쌀 재배해서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뭔 놈의 인삼이란 말인가.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맹꽁이 서당 보면 많이 배고팠던 거 같더라고.
학생들이 분명 양반일 텐데 그렇게 잘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우리의 박가 아저씨가 해 준 말이었다.
지금 이렇게 가져오는 것도 상당히 무리하는 거라고도 했다.
“그…… 청 총책이 누구라고?”
“박가요.”
“퍽카? 상놈인가?”
“네, 상놈이죠.”
양반은 아닐 거다.
일단 얼굴에서 먹물 냄새가 아예 안 나.
조선 시대 양반한테 먹물 냄새가 안 날 수가 있나?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렇군…… 믿을 수는 있고?”
“우선은 조선 사람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거래에서 놈이 손해 볼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어차피 원 아편 전쟁과는 달리 모든 청 항구에 대한 권리를 우리 영길리국이 가져오지 않았나.
그 말은 밀무역이고 나발이고 간에 원래 쓰던 루트는 다 막혔다는 얘기가 된다.
영국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인데, 밀무역상한테 주겠어?
아무리 영길리라 해도 그건 무리다.
“그래, 조선인은 믿을 수 있지. 동양인 중에서 가장 백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지 않나.”
“하하, 그렇죠. 우리 피영시인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끼. 피영시인은 백인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백인일세. 피영시인 덕에 우리 대영제국이 얼마나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지 아는가?”
이런 말이나 하는 놈들이 잘도 허가를 내주겠다.
진짜 제국주의 열강 그 자체이지 않나?
조선 사람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는데 실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봐도 뭐…….
“이번에 그 지긋지긋한 독기론도 타파해 주었지요.”
괜히 이럴 때 말 보태 봐야 욕이나 볼 뿐이었다.
해서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사실 영국의 공작과 의희 의원들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제아무리 내게 작위 수여가 예정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야말로 내 권력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주제넘게 나서서 미움받을 필요야 없지 않겠나?
아무튼, 지금 대화의 공을 넘겨받은 건 내가 전에 머리 열어서 살려 주었던 의원이다.
이름 여러 번 들었었는데 볼 때마다 머리통 열었던 것만 생각이 나서 까먹었다.
“아, 아! 그거! 그래, 그 덕에 반대파들 목소리가 아주 쑥 들어갔지.”
“정말…… 해묵은 놈들 아닙니까. 세상에 산업 단지를 런던 밖으로 옮기자고 하다니! 고작 이 검댕이 무섭다고!”
해서 이름이 뭐더라 하고 있으려니 대화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었다.
‘산업 단지를 런던 밖으로 옮겨?’
이거 아주 훌륭한 주장이지 않나?
그런데 그걸 타파한 게…… 내 덕이라고?
이 사람들이 또 뭔 터무니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건가 싶었다.
진짜 조금만 지위가 낮았으면 뒤집어엎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사람들인 게 한이다.
“냄새는 아무리 이상해도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 피영시인이 새로운 미아즈마론으로 타파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공기 중에 무슨 놈의 미아즈마가 있겠나?”
“그 덕에 냄새나는 공기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런 물이나 바닥에 있는 미아즈마가 위험하다는 것을 적어도 상식 있는 지식인들은 알게 되었지요.”
“하하하. 그 덕분에 런던의 산업이 온전히 굴러가게 되었지 뭔가. 아니, 아니지. 그동안 냄새난다고 반대했던 지역에도 모조리 공장들이 들어설 수 있게 되었어!”
“하하하하! 참으로 영국의 홍복입니다, 홍복!”
아…….
독기론 없앤 것이 이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니…….
그레이트 스모그…… 지금 오고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