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4화(294/505)
294화 홍삼 [2]
잠시 나가서 석탄 연소 반대 시위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불현듯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땐 매연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때문에 해결 방안을 찾아봤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원래 인간이란 존재가 고집이 꽤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국인들의 특성일까?
모르겠는데…….
놀랍게도 13세기에 이미 영국의 위대한 왕 에드워드 1세란 분이 런던 석탄 연소 금지법을 만들었었다.
발각되면 막 화로도 부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까 사형까지 했더라고.
‘그래도 태웠지.’
석탄 연료가 주는 시늉이라도 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니, 석탄 때우면 죽이는데도 말을 안 듣고 태웠더라고.
근데 동양인 의사가 시위한다고 듣겠어?
물론 뭐…….
심장에서 피 뽑는다고 하면 몇 명은 듣겠지만, 그 전에 암살 시도부터 할 거 같다.
게다가 지금 스모그가 문제인가?
‘문제지. 문제긴 한데.’
그래, 아마 내가 인간으로서 부여된 수명을 다 살아 내지 못하게 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대기 오염 때문일 거 같다.
서울에서 겪던 미세 먼지…….
그것도 물론 심각하긴 했었지만 이곳 런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아니다.
‘주제를 알자, 주제를.’
허나 차근차근해야지, 이것저것 하려고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사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만 해도 뭐 한두 개는 아니지 않나?
납도 있고, 결핵에 정신질환에…….
고혈압은 이제 걸음마 떼고 있는 상황인데, 이 새끼들 만병통치약이랍시고 먹는 파울러 용액인지 나발인지의 주요 성분이 비소다.
설마 모두가 그 약을 쓰겠냐고?
그건 아닌데, 또 다른 메인 약품의 주요 성분은 아편이다.
이걸 일단 홍삼으로 대체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네, 뭐…… 독기론은 틀린 이론이죠.”
“하하! 역시!”
“역시 평신이야.”
언젠가는 뭐 한 발이 아니라 도약도 해야겠지만,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나는 런던의 실력자들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다.
“그보다 홍삼 보급에 대해 힘 좀 써 주십시오. 모두 한배를 탄 몸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지.”
“뭐, 비소나 수은 약보다는 일단 맛도 좋구만.”
“아,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날 수 있습니다. 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단 홍삼만의 얘기인 것도 아니지 않나.
정말 흔하디흔한 약으로 쓰이는 아세트아미노펜, 그러니까 타이레놀조차 일정 용량을 넘기면 독이 되지 않던가.
사실 건강 기능 식품에 든 성분들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치료 용량과 독성 용량이라는 약리학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게…….
“아, 알고 있네. 수은이나 비소도 그렇지 않나?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처방하면 약이지만, 독살에도 흔히 쓰이지. 특히 비소는, 하하.”
“아…… 네.”
정확히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뭐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삼으로 누군가를 독살하려면 아마 홍삼 성분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배 터져 죽게 하는 게 빠를 거 같으니 넘어가도 될 거 같다.
“가격 책정이나 유통은 걱정 말게. 일단 콘돔처럼 상류층에게 한번 판촉을 하고 나면…… 불티나게 팔릴걸세.”
“효과를 보려면 좀 오래 걸릴 텐데요. 조선의 보양 개념은…….”
“하하, 무슨 걱정인가! 조선의 약재라고 하면 다들 환장할 텐데.”
“그럴까요?”
“당연하지. 자네는 자네 가치를 아직도 잘 모르는구만. 게다가 음, 이 오묘한 맛이라니. 정말 건강해지는 느낌이구만그래.”
하필 자신감을 내비쳐 보이는 사람이 스스로 고환 자른 사나이 제이미라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뭐, 뭔가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런던에서 제이미 경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다.
게다가 이 사람만 나설 것이 아니라 장사에 빠삭한 사람이 앨프리드 아버지도 있고 콜린 아버지도 있으니 다 맡겨도 될 터였다.
이걸로 대체 얼마나 그 망할 놈의 쓰레기 약들이 근절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앞에서 약이랍시고 먹은 비소나 수은 또는 아편 중독으로 사망하는 환자만큼은 없어졌으면 좋겠단 소망을 품어 본다.
“저기.”
그렇게 다시 한번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뿌듯한 얼굴로 회의실에서 나와 앉아 있으려니 리스턴이 다가왔다.
평소 그답지 않게 조금은 쭈뼛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쓰럽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호랑이나 사자가 쑥스러워한다고 한다고 해 봐야 같은 호랑이, 사자나 알아보지 나 같은 초식 동물 입장에서는 그냥 무서울 뿐이었다.
물론 청나라까지 다녀오면서 더더욱 끈끈해지긴 한 상황이다 보니 나 또한 별일 없이 대꾸를 할 수 있었다.
“네, 형님. 왜요?”
“여기서는 좀 그런데.”
리스턴은 당연하다는 듯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블런델이나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찌나 처량한 표정인지 이 양반이 뭔가 사달이 나긴 했구나 싶었다.
그 흉악스러운 얼굴이 조금이나마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면, 진짜 큰일 아니겠나?
물론 이것도 어지간히 친한 사람들이나 파악이 가능한 표정이었다 보니 제자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의 방 같은 곳에 끌려가서 줘 터지는 거 아닌가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리스턴과 친하게 지낸 지 오래된 블런델만큼은 달라서, 그가 주도적으로 제자들을 치웠다.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이었다.
그렇게 여전히 회의실 옆 휴게실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여기가 되자 리스턴이 슥 다가와 다시 입을 열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이 얘기 어디 가서 하면 자네는 죽어.”
그제야 나는 떠올렸다.
리스턴의 공포를…….
서슴없이 팔다리 자르는 자의 공포를…….
“어어. 정신 차리게. 지금 죽이겠다는 게 아니지 않나.”
“아, 네.”
잠깐이지만 환생하기 직전에 봤던 무언가를 본 거 같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그 무언가가 정확히 뭐였는지 파악할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아마 그랬다간 죽었겠지?
어쩐지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는 느낌인데, 이게 느낌만은 아닐 거 같다.
‘과연 무림 고수…….’
세상에 살기만으로 사람 심장을 멈춰 버리다니.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여전히 살기는 띤 채였다.
“내가 아주 커다란 고민이 있네. 어디 가서 말 못 할 고민이야.”
그러면서 고민 얘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나로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나는 리스턴에 대해서 꽤나 잘 아는 편이다 보니 이 양반이 할 만한 고민에 대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했다.
‘일단 무력으로 해결될 만한 고민은 아니야.’
상대가 어디 왕이나 수상이 아니고서야…….
리스턴의 힘이 안 통할 사람이 있겠나?
심지어 광저우에서 항저우와 소주로 놀러 갔을 때조차 전혀 위험한 상황이 없었을 지경이었다.
습격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엘리엇 경의 말마따나 청나라 민중들의 반발심이 대단한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실제로 전투를 본 사람이 아니면 딱히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을뿐더러 나름 충의지사들도 남아 있다 보니 몇 번인가 습격이 있긴 했는데…….
‘그렇다면 뭘까. 역시 사랑……이겠지?’
상대가 칼 든 사내라면 고민거리가 아니란 얘기였다.
아, 하긴 할 거다.
어떻게 죽일까 하고.
하지만 상대가 여자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물론 나름 위엄 있는 얼굴이긴 하지만…… 19세기라고 해서 무조건 우락부락한 얼굴이 인기는 아니라서 그렇다.
오히려 귀족이거나 부유한 사람들일수록 약간은 병적으로 이쁘장한 남자를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다.
오죽하면 결핵 걸려서 창백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겠어.
‘아니, 어쩌면 발기부전인가? 그건 나로서도 방법이 없는데.’
너무 강해 보이는 사람이 도리어 약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자네 눈동자가 상당히 불손한 방향으로 튀는데.”
“네? 아뇨, 그럴 리가요.”
내공이 깊어지면 속마음도 읽나 보다.
나는 뜨끔한 마음에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리스턴은 그런 내 말을 들으면서도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내 체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자를 벗으면서였는데, 그제야 알았다.
이 양반이 요새 실내에서도 모자를 자꾸 쓴다는 사실을.
내가 둔감해서만은 아니었다.
‘약간 변명 같긴 하지만…….’
우선 실내에서 모자를 쓴다는 게 실례되는 일이긴 하지만, 감히 리스턴에게 ‘이건 무례한 일일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방금 회의실에 있던 양반들 다 높으신 분들인데도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영국은 좀 자유로워서 그런 거 아닌가 싶겠지만 19세기 영국 꼰대는 대한민국 꼰대는 댈 것도 아니다.
내가 조선을 가 본 건 아니라 함부로 말하긴 그런데, 아마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을 거다.
‘무엇보다 지금 쓰고 있는 모자가 수술 모자라…….’
위생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병원 내에서는 모자 쓰는 게 거의 원칙이 되지 않았나.
해서 나도 우리 리스턴 형님이 조지프 영향을 세게 받아서 이렇게 되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회적 방패를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던 앞머리가 이제는 존재하지조차 못하게 되었다.
사실 나도 바닷바람 맞다 보니 잠시 이거 이러다가 뚜껑 날아가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가 10대의 젊음으로 이겨 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조선…….”
“응?”
“아니, 아닙니다.”
리스턴은 머리에 한반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조선을 말했는데, 다행히 리스턴은 아직 세계 지도와 자기 머리를 연관 지을 만큼의 피해 의식은 없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살해당할 뻔했다, 이 말인데…….
“일단…… 좀 보게.”
“만지기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되겠어요?”
“그럼 뾰족한 방도라도 있나? 자랑은 아니네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네.”
“으음.”
탈모에 대해 자신 있을 수 있는 의사가 있을까?
있다면 보통은 사기꾼일 터였다.
한때 X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피부과 선생님 영상을 기억하는가?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솔직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춘기 전에 고환을 자르거나 아니면 머리를 자르거나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탈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21세기 현대 의학에서조차 그 둘뿐인 것이 맞다.
“뭘 해 봤죠?”
하지만 잊힌 옛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어떤 개꿀잼 헛짓을 했을까?’
속으론 전혀 딴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이것도 문진의 일환이다 보니 물어는 봐야 했다.
예전 같으면 개짓거리 하지 말라고 했을 리스턴이지만, 그 또한 차츰 현대 의학에 의해 현며들고 있는 상황이니 않나.
그렇다 보니 문진에 대한 이해도도 예전보단 훨씬 나아져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말은 해야겠지?”
“그럼요.”
“어디 가서 말하면 죽어.”
“네네. 물론입죠.”
“그래…….”
한숨과 함께 이어진 리스턴의 말은…….
정말이지 어디 가서 말하면 반드시 죽을 거 같은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