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5화(295/505)
295화 리스턴의 탈모 [1]
탈모.
이상하게 탈모라고 하면 군대 훈련소 가서 탈모하십쇼 했던 게 생각난다.
20살, 21살 때 군대 간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최소 연령 31살을 자랑하는 군의관 후보생들은 아무래도 탈모란 말을 들으면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 지금도 그때도 풍성했지만 내 친구는 아니었다 보니 그때마다 한숨을 푹…….
“왜 한숨을 쉬나.”
“아니, 아닙니다.”
리스턴이 모자 벗을 때마다 ‘탈모하세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죽는 건 죽는 거고, 어떻게 죽게 될는지가 관건일 거 같다.
아무튼, 나는 한반도가 새겨져 버린 리스턴의 이마…… 아니, 원래는 앞머리였을 곳을 보면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쓸데없는 말을 해도 집중해야 하는 것이 리스턴인데 지금 하는 말은 진중한 말이다 보니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표정도 단정히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들어 보게나. 자네가 보기에 의학적으로 그럴싸한 게 있다면 좋겠군.”
‘일리가 있었으면 머리통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렸겠습니까’라는 말부터 일단 참아야 하지 않았나.
오락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시대다 보니 상대를 놀리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게 리스턴이다 보니 그럴 수조차 없었다.
“내가 시도한 순서랑은 딱 맞지 않지만…… 시대순으로 얘기하겠네.”
아무튼, 리스턴발 탈모의 장엄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 알지? 피라미드 있고.”
“아…… 네. 꼭 한 번쯤 가 보고 싶습니다.”
“자네도 그랬나? 언제 휴가 얻으면 같이 가세. 아무튼, 신들의 문명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렇죠.”
21세기에도 이집트 피라미드 하면 외계 문명설이 도는데 19세기는 어떻겠나.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19세기 영국의 힘으로도 짓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이 시대는 숨 쉬듯 인종 차별을 하는 시대인데, 지금의 이집트인도 아니고 수천 년 전의 이집트인들이 그런 걸 지었다고 믿고 싶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고대 문명에 대한 환상이 오히려 더 진하게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거길 보니 하마, 악어, 수고양이, 아이벡스의 지방을 섞어서 머리에 바르는 방법이 있다더군. 실제로 파라오들이 그 방법을 썼다고 했어.”
“그걸…… 해 보셨어요?”
“그렇지. 돈이 아주 많이 들었네.”
“그렇, 그렇군요.”
아닌 게 아니라 나나 리스턴은 사실상 갑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런던에서 갑부로 분류될 정도면 그냥 어딜 가도 갑부지 않겠나?
쓸데없는 일에 돈을 좀 써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하마, 악어의 지방을 사들이는 데 썼을 줄은 몰랐다.
“별 소용은 없어서…… 히포크라테스의 방법을 썼네.”
“아, 위대한 의사죠.”
“그렇지.”
확실히 대단한 분이지만 지금도 대단하다고 맹신하기엔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
일단 망할 놈의 사체액설과 사혈의 아버지이지 않나.
내가 많이 타파했을 거 같겠지만…….
놀랍게도!
내가 하는 대부분의 수술 또한 사혈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다들 믿고 있다.
머리 열면 머리에서 사혈, 심낭압전 치료하면 심장에서 사혈…….
축농증 수술하면 코에서 사혈!
“그분이 남긴 저서를 보면 아편과 호스래디시와 비트의 뿌리를 섞은 연고를 바르는 것이 있는데…….”
“효과는 없었군요.”
“그래, 안타깝게도.”
나는 리스턴의 반도 머리를 나도 모르게 힐끔거렸다.
순간 뒈지는 줄 알았지만, 머리털이 빠지니까 성질머리도 좀 빠졌는지는 몰라도 의외로 조용히 넘어갔다.
하긴 성경에도 나오지 않나.
삼손이라고 머리 자르니까 힘 빠지는 사람.
서양인 중에 힘이 너무 센 사람은 그런 특성이 있는지 누가 아나.
“율리우스 시저의 방법도 사용했네. 흠.”
“뭔 방법인데요?”
“당나귀의 성기를 잘라 태워서 내 오줌과 섞어서 발랐네.”
“네?”
“소용은 없었어…….”
“그…… 네.”
이야기는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당나귀 성기에서 어떻게 더 심해질 수 있겠나 싶겠지만…….
의학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쪽에서 전해 내려오던 방법도 찾아봤네.”
“네? 거기는…….”
“알고 있네. 이교도들이지.”
얼마나 절박했으면 오스만 제국을…….
뭐, 1차 세계 대전 때는 몇몇 국가와 같은 편먹기도 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뭐라 할 만한 일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좀 그랬다…….
“무슬림들 사이에서 탈모는 신의 저주라더군.”
“아…… 그래요?”
“그래. 그래서 불알을 자르는 사람들도 있었다더군.”
“아.”
역시 이슬람…….
무서운 종교…….
다분히 편견에 휩싸인 생각이겠지만, 스스로 고환을 자르는 치료를 고안했다는 거부터가 범상치 않지 않나?
물론 19세기 영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충격적인 발언에 놀라서 스턴에 걸려 있는 동안에도 리스턴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듣는 사람 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망설여야 할 거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오히려 더 또박또박했다.
“그러고 보니까 불현듯 생각이 난 건데…… 실제로 예방이 되는 거 같단 말일세. 실은 이에 대해 제일 묻고 싶었네. 어떤가? 일리가 있는 방법인가?”
이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어서 그랬나 보다 싶었다.
아무튼, 고민이 시작되었다.
왜?
일리가…….
없지 않거든.
‘이런 망할…….’
그때 피부과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지 않나.
실제로 고환을 자르면 탈모 진행은 멈추긴 할 거다.
아니, 그에 그치지 않고 더 날 수도 있다.
왜냐면 빠지고 있다고 해도 그보다 느리고 적게 나고 있긴 하거든.
그러다가 빠지는 것이 딱 멈추고 나면 전보다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리가 있나?”
그렇다고 자르라고 할 수 있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스턴의 고환을?
제이미 경이 한 짓도 황당하긴 하지만…….
그 사람은 그래도 애도 낳았고, 살기도 많이 살았잖아.
하지만 리스턴은 아직 앞길이 창창한 젊은 사람이다.
안 그래도 좀 겉늙어 보이는 편이었는데 머리까지 없다 보니 쉰 넘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전생의 나랑 별로 차이도 안 난다.
그런 사람의 고환을……?
“일리가 있냐고. 얼굴을 보아하니 있는 거 같은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리스턴이 불길한 말을 해서 돌아보니 표정이 너무 절박했다.
이 사람…….
진짜 자르는 게 일리가 있다고 하면 자를 거 같다.
“일단 내 생각부터 말해 주겠네.”
“그…… 네.”
19세기 의사의 ‘생각’을 듣는 건 언제나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양반이 뭔 소리를 하든 간에 일단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내가 생각을 해 보니까, 전에 그 친구 말이야. 고환 없는 놈.”
“아…… 그 사람이요.”
“그 친구 머리가 꽤나 풍성하지 않았나?”
“그…….”
그랬을 거 같긴 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탈모의 원인이 남성 호르몬인데, 그걸 아예 날려 버렸으니까.
“그리고 제이미 경을 보게. 그 양반…… 다른 건 몰라도 머리는 풍성해졌네.”
“그…….”
이것도 맞는 말이다.
일부러라도 신경 써서 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우연이 아니겠어요?”
그래도 ‘자릅시다!’라고 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말했더니만, 리스턴이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내가 해리에게 당한 사람들 하나하나 다 찾아가 봤네. 죽고 없어진 사람도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더군.”
“아.”
역시 생각보다 19세기 사람들은 강하다.
소독도 안 하고, 그 더러운 칼로 고환을 잘랐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니.
그것도 1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생존한 사람이 있다는 건 퍽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리스턴은 딱히 그러한 사실에 감명받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 사람들…… 그 후로 머리가 풍성해졌다고 하네. 이거 어쩌면 애먼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겠어.”
“누구…… 해리요?”
“그래. 원래 위대한 진보는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는 법 아닌가? 확실히 전립선 비대를 치료함에 있어서는 자네의 방법이 더 안전하고 우월할는지 몰라도, 탈모를 예방하거나 치료까지 할 수 있다고 하면…… 해리는 그렇게 가면 안 되었어.”
“아니…….”
그 해리를 도살자라고 부르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쳐 죽여야 하는 놈이라고 하던 분 맞으십니까?
탈모가 이렇게 무섭다.
사람이 휙휙 변해.
‘아니, 아니야. 정신을 차려야지.’
이 꼴을 보는 건 물론 재밌는 일이긴 하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고, 연극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깔깔 웃어 줄 용의도 있다.
하지만 리스턴은 누가 뭐래도 내 스승이었고, 이제는 친구가 된 사람 아니던가?
“제이미 경을 보세요. 머리는 그럴지 몰라도, 수염도 빠지고…… 근육도 약해지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뭐 알 바인가? 내 가설인데, 수염이 머리로 가는 거 아닌가 싶은데.”
“아니…….”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더니, 과연 효과가 있었다.
‘아니…… 이 사람 전에 나랑 같이 있었잖아?’
머리카락 빠지면서 기억도 같이 빠진 걸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리스턴과는 달리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그 사람 고자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건 감수할 수 있습니까?”
“응?”
“기억 안 나요? 그래서 제이미 경이 해리를 죽인 거잖아요.”
“아.”
리스턴이 이렇게 멍청한 얼굴이 된 건 난생처음 본다.
확실히 머리에 정신이 팔려서 그 생각을 못 했나 보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중요한 것을 생각지 못할 수 있나 싶지만…….
나야 탈모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다 보니 함부로 말하긴 어려울 거 같다.
비단 리스턴뿐만 아니라, 전생에 꽤 친했던 친구도 탈모 앞에서는 작아지는 걸 확인했거든.
“그렇군……. 여자 만나자고 하는 짓인데, 이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
리스턴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인지 아니면 그 녀석이랑 대화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이렇게 두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내과적인 치료는 불가한 게 현실이긴 하다.
21세기 사람들은 이런저런 드문 부작용을 예로 들면서 안 먹으려고 들지만, 사실 기적의 약이 나오지 않았나?
그게 있었다면 리스턴도 벌써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방법이 없나?
“형님.”
“응?”
“제가 머리를 좀 봐도 될까요?”
“뭐, 이런 대머리를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날 케이스로 삼으려고?”
“아니, 아니……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응?”
있긴 하다.
모발 이식.
번거롭고, 비싸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옵션이다.
어떻게 보면 탈모인들의 희망이기도 하고.
내가 심은 사람 봤는데, 전이랑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더라고.
‘외과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게 다행이 된 셈인가…….’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전문의 따고 나간 선배들 다 망하길래 모발이식 좀 배워 놨었는데,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나는 예수님이라도 영접한 얼굴이 된 리스턴을 뒤로하고 그의 뒤통수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