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7화(297/505)
297화 런던의 탈모 [1]
리스턴의 말을 곱씹어 보는 사이, 경찰이 나서서 질서를 정리해 주었다.
19세기 런던의 질서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달랐다.
잘 살고 힘 있는 사람의 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질서’였다.
그 때문에 애초에 일도 없고 해서 일찍 와 있던 빈민가 사람들은 저 뒤로 밀리고야 말았다.
“이게 좀…… 그렇지 않아요?”
“뭐가 그래. 원래 세상이 이렇지.”
“아니, 이게 딱히 좋은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까요? 나 해 본 적이 없어.”
“뭐…… 잘못되어도 우리 책임은 없지 않겠나?”
“네?”
“지들이 알아서 선 건데?”
“아.”
뭐…….
질서만 다르겠나.
의사들의 마음가짐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동의서 같은 게 존재하지 않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시대이지 않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잠시 반발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나 만고불변의 진리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란 말을 떠올리고 나자 다시 편해졌다.
뭐…….
알아서 하겠다는 사람들이잖아.
게다가 진짜 위험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일반 인구를 부르지도 않았을 거다.
죄수들 있잖아, 흉악한 놈들.
‘이건…… 죽고 사는 병도 아니고, 그냥 좀 뭐라고 해야 하나?’
불편하다고 하기도 뭐하고…….
음…….
“평. 이거 정말 심각한 걸세.”
“아, 네.”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한 병이라고 하자.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우리는 다행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심각한 질환을 비록 연습이라고 해도 치료 시도를 해 주는 거니…… 돈을 받을까요?”
“잘 사는 사람들이지 않나. 빈민들이라면 또 몰라도…… 이 친구들은 공짜로 하겠다고 하면 아마 모욕적으로 느낄 거야.”
“그럴 테죠.”
“그럴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권을 돈 받고 파는 결론이었다.
약간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기도 한데…….
이 시기 런던 부자들에게는 어쩐지 돈을 받아도 될 거 같긴 했다.
내가 공산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이 시기 여기 부자들은 대부분 진짜 자기가 일해서 번 돈이 거의 없다니까?
폭리를 취해서 세금 내고 어쩌고 하는 게 어찌 보면 의적이다, 의적.
그래, 내가 홍길동이고 로빈후드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결론을 경찰을 통해 이제 막 따로 앞에 서게 된 이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내 친구가 여기서 당뇨 치료를 받는데, 그러고 나서 많이 좋아졌거든. 실력 하나는 최고야.”
“당뇨? 그 정도가 아니라…… 코 성형 받은 친구는 없나? 실력 운운할 게 아니라네.”
“오죽하면 의학적인 업적에 대해서 윌리엄 국왕께서 손수 기사 작위를 내릴 고민을 하고 계시겠나.”
예상대로 딱히 반발은 없었다.
“아니, 그럼 저희는 그냥 가요?”
“우리도 절박합니다!”
빈민층에게서는 반발이 좀 있었다.
중산층에서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더 이상 공짜도 아니고, 돈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듣자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좋지 못한 얼굴로 우리 쪽을 힐끔거리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딱히 걱정할 건 없는 일이었다.
상대 갱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민이 대체 우리에게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요리사 아저씨 선에서 컷이다.
용케 뚫어?
우리 병원 직원 중 절반이 은퇴했거나 은퇴할 예정인 갱단이다.
그것도 뚫어?
‘뚫으면서 레벨이라도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게임이면 주인공들이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부유해지고 강해지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가난해지고 다쳐서 약해진다.
그 상태에서 리스턴을…….
대체 어찌 이긴단 말인가.
“뭔 생각을 하나. 그거 그렇게 보는 거…… 실례일세.”
“아, 아아.”
“뭐 감히 자네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네, 네네.”
딴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환자 앞이었다.
미리 안내 사항이 나갔기 때문에 완전 대머리는 아니었다.
정수리부터 해서 옆에도 남아 있는 것이 꽤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오히려 리스턴보다도 상황이 나았는데…….
그렇다 보니 나로서는 상당히 도전할 만한 사람이었다.
“이쪽에 있는 머리를 이용해서 여기에 심을 겁니다.”
“아…… 그렇군.”
“되게 아픈 수술이기 때문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금식도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 당장은 안 됩니다. 날짜 잡으시죠.”
“아…… 그러지. 어디서……?”
“저기요.”
“그래, 그래.”
보통 수술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잡히는 건 결코 아니지 않겠나?
이전 같았으면 수술을 잡는 게 아니라 환자부터 잡아야 했다.
자꾸 도망가니까.
물론 마취 수단이 생기고 나서는 그때보단 훨씬 수월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다리 자릅시다 하는데 그럽시다! 하는 놈이 어디 있겠나.
없는 건 아니라는 게 놀랍지만, 하여간…….
“오늘은 안 되는 거요?”
“그렇게 당장 하면 안 됩니다. 일단 제가 오늘 좀 힘든데…… 힘든 상태에서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건 곤란한 일이지.”
지금처럼 막 잡히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니, 잡히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지금 해 달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심지어 케이스감도 안 되는 사람도 그러고 있다.
“공작 각하…….”
대미언 경이 왜 왔나 했다.
이 사람은…… 탈모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거든.
게다가 대영제국의 귀족들이나 의원들은 회의나 기타 중요한 자리에 나설 때면 늘 가발을 쓰는 편이었다.
밖에서는 모자를 쓰고, 안에 들어가면 가발을 쓰고.
솔직히 나도 누가 누가 대머리인지 알아보기 어렵단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니, 아무래도 눈썰미가 떨어지는 일반인들이야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허나 눈앞에 계신 이분은…….
“저, 전하. 이, 인사드립니다. 리스턴입니다.”
“전하. 김태평입니다!”
제이미나 대미언 경과 같은 공작이긴 한데, 같은 공작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분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머리를 들이민 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심지어 대미언 경의 시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서 있는 이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정말이지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아돌푸스 프레더릭…….’
현 케임브리지 공작 전하.
전 아돌푸스 왕자 전하.
괜히 왕자 운운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전전 국왕이신 조지 3세의 아드님이시다.
동시에 연재 국왕이신 윌리엄 4세의 동생이시고.
한국인인 나로서는 어째서 조지 3세의 아들이 조지 4세가 아니고 윌리엄 4세가 되는 것인지 당최 이해가 안 가지만…….
뭐 어쩌겠나.
지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말 보탤 일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어?
“하하, 고개를 들게. 몰래 온 것이니 그렇게들 호들갑을 떨면 내가 더 곤란하다네.”
이만한 인물이 여기 온 것만 해도 희한한 일이지만…….
더더욱 대단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양반 명색이 하노버 왕국의 부왕이시다.
독일 땅에 있는 하노버 왕국을 형님인 윌리엄 4세를 대신해 대리 통치하는 분이다, 이 말인데…….
여길 왔다.
“그래, 고개를 들게. 따지고 보면 자네들도 이렇게까지 굽실거릴 만한 신분이…… 더는 아니지 않나.”
여러모로 놀란 우리가 무릎을 꿇자, 인자하신 아돌푸스 전하와 대미언 경이 각기 나와 리스턴을 한 명씩 맡아 손수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사이 아돌푸스 경은 조금은 부끄러운 듯 속삭였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내 사실 이 머리 치료를 위해 서른 살부터 골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그, 그러시군요.”
“하지만 세상 뛰어나다는 의사들을 다 만나 봐도…… 정직한 이는 방법이 없다 하고 욕심 많은 이는 사기를 치더군. 그러던 차에 런던에 리스턴과 피영시인이라는 명의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
“아…….”
“단지 소문만이면 모를 일이네만…… 하노버 근방에 있는 가우스란 수학자와 요제프란 의사까지 자네 얘기를 하니 너무 궁금하지 뭔가. 해서 혹 머리 얘기를 하면 알려 달라 대미언에게 일러두었지.”
아…… 요제프…….
그 새끼가 그래도 가서 내 뒷담화를 늘어놓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늘어놓긴 하되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말을 했든지.
아무튼, 암만 대미언 경에게 일러두었다 해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범선 타면 아무리 빨라도 며칠은 걸릴 테니까.
“증기선을 타고 왔네. 폭이 좁은 곳은 갤리선을 탔지. 아직도 노 젓는 곳이 빠른 곳이 있더군.”
“이번 왕복 항해에 전하께서 소비하신 금액이 적지 않네. 아무쪼록 결과가 좋으면 좋겠군그래.”
해답을 들었다.
아니…….
청나라랑 전쟁할 때도 범선 보내던 놈들이 대영제국 해군인데 탈모 하나 치료하겠답시고 증기선에 갤리선을 써?
뭐…… 타임 어택을 해야만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면 내가 또 이해를 해 보겠다.
예컨대 암같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다든지, 아니면 김태평이 보물 고블린이라 잠깐 여기 있다가 딴 데로 간다든지 하는 놈이면 이해를 해 보겠다, 이 말이다.
하지만…… 탈모이지 않나.
‘평.’
‘네?’
‘그만큼 절박할 수도 있다네.’
‘아.’
내 눈빛이 나도 모르게 또 불손해졌던 걸까.
리스턴이 부리나케 귓속말을 해 왔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지만, 권력에는 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가.
지금 눈앞에 둔 사람은 공작인데 보통 공작도 아닌, 뭔가 더 위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해서 뭐라 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반성해야 할 참이었다.
‘그치만…….’
내가 곤란해하는 이유도 정당한 이유이긴 했다.
‘이 사람…… 뽑아 심을 머리가…… 없다…… 일단 면적이 너무 넓어.’
두피 절제술과 절개술 모두를 다 쓴다고 해도…….
그러니까 얼굴이 조금 딸려 올라가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무리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흉해질 공산도 있다.
‘어쩌지……?’
그렇다고 못 한다고 할까?
증기선 운용하고 갤리선에 쓸 노예 또는 선원들 쓰고 했으면 대체 돈이 얼마일까.
아니, 그보다 국왕이 자리를 비웠다.
탈모 때문에.
대역이라도 세워 놨을까?
어차피 자리 안 지킨다고 반란 일으키고 할 시대는 아니긴 하다.
나폴레옹도 없는 데다가, 프랑스는 내부 혁명 탓에 지들 앞가림하는데 바쁘고 독일이야…… 애초에 갈기갈기 찢겨 있으니까?
‘그렇다고…… 별일 아닌 건 아니지.’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좀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럴 거 같긴 하다.
배 타고 여기까지 오는데 기대가 되지, 안 되겠어?
게다가 사람이란 자기 합리화의 동물이다 보니, 자신이 뭔가 저질러 버리면 그게 잘한 일이라고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영국 공작이라는 분들이 대부분 이러는 걸까?’
하아.
나는 겉으로 뿜어져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해 보겠습니다.”
앗, 시발.
생각만 해야 했는데 밖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