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8화(298/505)
298화 런던의 탈모 [2]
‘?’
리스턴이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떡 먹듯이 그에게 말을 해 놓은 것이 있었더랬다.
-형님. 빨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기회가 아예 없어요.
실제로 뒤통수에라도 머리카락이 있어야 뭔가 할 수 있다, 이건.
그것조차 없는 민대머리가 되어 버리면 어렵다.
또 덮어야 할 면적이 너무 넓어도 어렵다.
사실상 이것도 ‘이식’이지 않나.
장기 이식에 비하면 상당히.
수월한 이식이라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데, 이식은 이식이기에 대부분의 특징을 공유한다고 보면 되었다.
‘자네, 미쳤나? 상대는…… 실험 같은 거 해서 될 사람이 아닐세!’
내가 할 수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건 당연하게도 리스턴만은 아니었다.
“으하하하하!”
“저, 전하! 감축드립니다!”
저 멀리 하노버에서 오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지 않았겠나.
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왔는데 혹 아무 소용이 없다면 대체…….
아마 거울을 볼 때마다 느낌은 왔을 거다.
이제 와서 이거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게 상당히 양심 없는 짓일 거라는 느낌.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아니…… 영국 놈이니까, 그중에서도 왕족이니까 양심이 없을 수도……?’
제국주의 열강의 핵심축이잖아.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운영하면서, 거기에서 헐값에 독점으로 물건 떼다가 또 독점으로 그걸로 만든 물건 비싸게 팔아먹는 놈들이다.
그나마 같은 백인에게는 좀 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유하냐?
그것도 아니다.
“자네 너무 뻔히 바라보는 거 아닌가?”
하여간, 우리 공작님이 너무 기뻐서 정신이 잠시 나간 사이에 리스턴이 나를 붙잡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사실 맨날 무섭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진심 모드’라고 하면 되려나……?
아무튼, 나는 나도 모르게 벌벌 떨다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의사가 환자 보는 게 뭐 잘못이라고.”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뻔뻔한 말을 지껄이고 말았는데…….
바로 이런 점이 리스턴이 나를 리스펙트하는 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리스턴은 ‘하아’ 하고 한숨만 쉬고 말았다.
권력에 약한 그로서는 이런 내가 이해가 안 갈 거다.
하지만…….
‘대통령도 의사 앞에서는 공손해지기 마련이지.’
룰렛 수준으로 사람 살리는 의사라면야 당연히 벌벌 떨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의사라면 어디서건 당당한 게 맞다.
막말로 왕족 동생 머리 좀 못 고쳤다고 날 어쩌기야 하겠나?
이때다 싶어서 음해하고 싶은 놈들이 날뛰긴 하겠지만, 제이미 경만 있어도 그런 놈들 다 없는 셈 칠 수 있을 거다.
그에 비해…….
-이럴 수가.
풍성하게 만들어 봐라.
나 아마 하노버 갔다 올걸?
그것도 귀빈 자격으로.
그것만 있나?
돈과 권력이 마구 쏟아져 들어올 거다.
그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마지막 말이 좀 너무 억지로 낑겨 넣은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당신이 순수하지 못한 탓이다.
나는 정말로 돈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그걸 통해 살릴 생명!
그것만 관심이 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걸 어쩔 건가. 자네가 환자 고르는 이유가 있지 않나!”
“있긴 하죠.”
“그리고 그 기준에…… 안타깝게도 우리 공작님은 전혀 부합하지 못하네!”
탈모인끼리는 정말 금방 친해지는 걸까.
리스턴은 언제 봤다고 우리 공작님 운운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공작님의 머리카락 결손 부위는 너무 넓었고, 그에 반해 남은 부위는 너무 좁았다.
뒤에서 절개해서 뽑아 와 심는 시술을 한다고 해 봐야…….
말 그대로 간에 기별도 안 갈 수준이다, 이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머리카락만 털은 아니지 않나.
이 생각을 내가 최초로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21세기 현대 의학에서도 탈모는 상당히 고치기 어려운 질병으로 남아 있었고, 또 외모에 있어서 상당히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질병이기도 하지 않나.
무엇보다 예방이 어려운 병이다 보니 후속 치료에 대한 연구가 아주 많이 되어 있었다.
-다른 부위의 털을 뽑아 심게 되면 그 부위의 털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기 때문에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기조가 지배적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을 뽑아 심는 경우에 시간이 지나도 거기 털처럼 구불구불해서 미관상 상당히 곤란할 지경에 이를 거라는 것이 주류 의학계의 의견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나는 머리를 닦지 않고 감아 보고 싶다는 환자가 있었다.
그 용기 있는 환자는 어디 털이든 상관없으니 심어 달라고 요청했고, 의사 또한 용기백배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강행했다.
처음엔…… 확실히 구불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치 머리털처럼 변해 가기 시작했다.
-설령 다른 부위의 털을 이식한다 해도, 근육이 그러한 것처럼 이식한 부위의 특성을 따라가게 된다.
그 후로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었다.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한 어떤 위인 덕에 그 후로는 난 모발 이식 못 한다는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물론 동양인들보다는 아무래도 서양인들에게 유리한 이론이었다.
아무래도 털이 더 많지 않나.
그리고 내가 볼 때…….
우리 공작 전하의 관상이 딱 털보다.
일단 수염도 어마어마하게 풍성한데, 보통 저러면 가슴부터 겨드랑이, 사타구니, 심지어 발등부터 발가락 위에도 털이 부숭부숭 나기 마련이다.
“고추 털을 뽑아 심자고? 자네 미쳤나?”
“아뇨. 놀랍게도 완전히 제정신입니다.”
“상대는 공작이야, 공작. 고추 털이라니…… 세상에. 그랬다간…….”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걸 하겠다고 할 거 같나?”
“할걸요. 머리카락이 생긴다고 하면요. 형님은 안 할 거예요?”
“으음…….”
리스턴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머리털이 생긴다고 하면 감수할 만하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같은 탈모인으로서, 공작 전하께서도 아마 그럴 거 같다는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하겠군. 헌데…… 그걸 처음부터 말 안 해 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상당히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본인도 환자다 보니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는 과연 리스턴이라는 표정을 짓고서 말을 해 주었다.
“일단…… 생착률 차이가 좀 날 거예요.”
“생착률……?”
“네. 설마 머리카락 심으면 다 그대로 자랄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죠?”
“그런 게 아닌가?”
“그랬으면 시신으로 연습하지.”
“아…… 하긴, 그렇군. 하긴…….”
“응?”
의학 설명해 주고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사람이 표정이 안 좋아지나 싶어서 잠시 기다렸다.
말도 안 되는 답이 나올 가능성이 물론 제일 높지만 상대가 리스턴이지 않나.
게다가 이번 같은 경우엔 환자이기도 하다.
천재 의사가 환자이기도 하다?
당연히 상당히 퀄리티 높은 추론이 나올 거란 기대가 있었다.
“황무지에 뭔가 심게 되면…… 그게 잘 자랄 리가 없긴 하지.”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퀄리티 높은 답까지 기대했던 건 아니긴 한데…….
아무튼, 리스턴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추 털이니 겨드랑이 털이니…… 다 원래 이 땅에서 자라던 작물이 아니지 않나. 기후가 다르고 날씨가 다르니 아무래도 더 못 자라긴 할 거 같군.”
“그…… 완벽합니다.”
이 정도 설명은 강남 모발이식 센터 실장도 못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다는 말이 리스턴 무서워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감탄해서 나오는 말이란 뜻이었다.
“더군다나 겨드랑이 같은 경우에는 이거 절개가 어려울 거 같은데. 맞나?”
“맞죠. 아무래도.”
여기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이건…….
더더욱 대단하다.
소독만을 얘기하는 건 아닐 거 아닌가.
“형태나 피부의 형태가…… 흐음. 그럼 결국엔 정말 제일 적합한 곳은 사타구니가 될 텐데…… 여기 상처 감염은 괜찮나?”
“최대한 주의해야죠. 다행히 공작님은 입원해서 볼 수 있으니까요. 딱히 원치 않는 사람 만날 일도 없을 거고요. 만나 봐야 다 아랫사람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벗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하.”
리스턴의 얼굴에 어둠이 깃들었다.
공작님을 벗겨 둬야 한다는 게…….
당연히 마음에 들진 않을 거 아닌가.
나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리스턴의 반응을 보니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공작님도 무조건 콜이다, 이건.’
설령 좀 힘든 일이 되기는 하겠지만서도…….
“음.”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공작님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말씀드렸다.
공작님은 짧게 탄식했다.
어렵지만 치료는 가능하다고 할 때 아마 이런저런 방법을 나름대로 떠올리긴 했을 거다.
하지만 이걸 바로 떠올리진 못했을 거다.
그랬으면 의사해야지.
그것도 아주 우수한 의사를.
“으음.”
두 번 같겠지만 실은 한 열댓 번째 탄식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슬슬 지겨워졌지만, 리스턴은 여전히 십분 공감한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완력에서 그에게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인성만큼은 그래선 안 될 거 같아서 나도 최대한 리스턴을 흉내 내고 있었다.
“으음……. 그래, 그렇다 이건가…….”
대영제국의 공작, 하노버의 국왕, 대영제국 국왕의 친동생인 그는 스무 번 정도 탄식을 내뱉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선은 여전히 아랫도리를 보고 있었는데, 뭐…….
나로서는 처음 얘기 꺼낼 때부터 할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감흥은 없었다.
“저, 전하…… 닥터 평. 정녕 이 방법뿐인가?”
대미안 경이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흔들리는 공작님의 동공 속에서 혹시 이런 말 꺼내다가 치료 못 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읽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이 방법뿐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상태를 봐야 가능합니다. 혹 털이 적다면…….”
“많네. 나도 이 털이 머리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저, 전하. 체통을…….”
“체통은 무슨! 상대는 의사이지 않나. 피영시인은 대단한 의사니 부끄러워할 거 없다고 한 건 바로 자네일세. 이제 와 내게 걱정해야 할 거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피영시인은.”
“그래. 그럼 여기서 벗으면 되나?”
우리 공작님은 벌써부터 훌렁훌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작님이다 보니 벗을 옷이 좀 많다는 점이었다.
“그…… 여기서는 좀 그렇고. 더 안쪽으로 가시죠.”
“아, 그래.”
뭐, 결국 다 보기는 보게 되었더랬다.
“많군요. 이 정도면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자연스럽게 덮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
“문제는…….”
“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오락가락하는 공작님도 보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공작님이더라도 어떻게 함부로 바로 수술을 속행하겠나.
이것이야말로 연습이 좀 필요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거라면 걱정 말게.”
“네?”
“하노버에서 데려온 사람들이 있네. 나랑 흡사해, 상황이.”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연습 충분히 하라고 환자를 무려 다섯 명이나 보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