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9화(299/505)
299화 런던의 탈모 [3]
“음.”
“으음…….”
나와 리스턴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우리 눈앞에 놓인 환자 5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 빈민이 넘쳐나고 있는 건 비단 런던만의 얘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노버에서도 이렇게…….
‘그런 거치고는 피부가 좋지 않나?’
‘아.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끌려온 거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리스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해서 물어보니 과연 빈민이 아니고 그냥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었다.
예전의 내 기준이 아니라 지금 내 기준에서 저 정도 평을 받았으니, 아마 하노버에서는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일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돈 내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란 얘기고, 거기에 더해 치료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겠단 사람들이란 얘기가 되었다.
‘잘됐군.’
‘으음.’
‘왜그러나?’
‘형님과는 좀 치료가 너무 달라질 거라서요.’
‘응?’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섯 환자를 면밀히 살폈다.
이미 전달받은 사안이 있었기 때문에, 다섯 환자는 모조리 병실에 발가벗고 누워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 양반들은 게르만족들이라 그런가. 털이 일반적인 영국인들보다도 더 많았다.
그거야 잘된 일인데…….
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건 진짜 딴 데 털을 죄 끌어와도 머리가 없다가 있다는 느낌 정도만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리스턴은 본인은 심각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탈모라 하는 것도 미안한 수준이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다.
대강 뒤통수 째서 좀 심으면 될 거 같잖아.
‘응? 이라뇨. 상황이 너무 다르잖아요.’
예컨대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치료를 한다 해도 리스턴에 대한 연습이 될 수 없다, 이 말이었다.
해서 그런 내용을 말했더니 리스턴이 수줍게 자기 배를 보여 주었다.
배라기보단 좀 많이 아랫배였다.
‘나도 여긴 남들 못지않게 풍성하다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풍성한 정도를 넘어서 무성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사람이 몸 안에 정글을 품고 있다니…….
게르만족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하긴, 이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무림인…….
‘뭔 생각을 또 그렇게 하나.’
‘아, 아니. 아니.’
하지만 무성하건 말건 이걸 째서 머리통에 심는 건 아예 다른 얘기였다.
‘아까 말했잖아요. 다른 데서 잘 자라는 작물을 황무지에 심으면 어찌 되겠어요.’
‘가만 보고 있자니 내 것도 좀 모자라지 않나 싶어서.’
‘아니, 아닙니다. 괜찮아요. 형님은 달라요. 이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로구만…… 헌데 그럼 연습이 안 되긴 하겠군그래.’
‘뭐…… 괜찮을 겁니다. 할 만한 사람 많이 있으니까요. 다만 결과를 제대로 보려면 한두 달은 걸릴 텐데, 그거 참을 수는 있어요?’
다행히 의학적인 머리가 상당히 좋은 리스턴은 내 말을 바로 납득했다.
머리로는 그랬다.
‘참기 어렵지.’
심장은 아닌 듯했다.
리스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잠시 자기 앞머리께를 쓱 훑고 나서였는데, 나 같아도 한숨이 나올 거 같긴 했다.
여기 누워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낫긴 하지만, 방금 훑을 때 보니까 저대로 그냥 홀랑 까지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머리카락이 얇더라고.
‘참고로 주먹도 참기 어려운 상태일세.’
‘아, 아아.’
‘자꾸 보지 말게. 자네 아니었으면 죽였어.’
‘알겠습니다.’
현악기 찡낑찡낑하는 것 같은 광경에 잠시 정신을 놓았다가 영영 놓을 뻔했다.
아무튼, 제자들과 함께 환자 점검을 다시 한번 한 후 나는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말이 간단하다는 것이지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19세기 그 어떤 뛰어난 의료진들이라 해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잔뜩 뒤섞여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말문이 잠시 턱 막혔다.
너무 감개무량해서 그랬다.
그 감동의 첫 타자는 다름 아닌 업턴에서부터 내 친구이자 제자로 들어온 소독의 마왕 조지프였다.
“여기…… 이렇게 소독을 꼼꼼하게 해.”
“털도 밉니까?”
“응? 털을 뽑아서 심어야 되는데 그걸 밀면 안 되지.”
“하지만 소독이…….”
“그래서 내가 널 지명한 거 아니냐. 설령 털이 길다고 해도 소독이 완전하게 되도록 싹싹 해 보라고.”
“아…… 아아.”
조지프는 하늘에 소독 귀신이라도 보이는 건지 뭔지 어딘지 딱 짚기 어려운 허공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얼굴도 살짝 상기되어 있었는데…….
보기엔 저래 뵐지 몰라도, 적어도 소독을 맡기는 데 있어서는 절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조지프! 그 새끼는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한다니까요!
어찌나 소독에 진심인지 아무나 소독을 해 대는 바람에 이런 청원이 심심치 않게 들어올 정도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없었으면 뭐 소독에 미치는 일도 없었겠지만?
혹 스스로 소독 개념을 잡았을 경우, 높은 확률로 생을 정신병원에서 마무리했을 거다.
이 시기 정신병원이란 사실상 무기징역 받은 감옥이랑 같고, 멀쩡한 사람이라고 해도 쥐와 구더기 그리고 치료받지 않고 방치된 정신 질환자와 평생을 함께하다 보면 미치기 때문이었다.
“아, 여기 정수리부터 이마까지도 해 줘.”
“아.”
내심 기분 좋은 채로 두고 싶었지만 소독할 부분이 더 있지 않나.
머리통에 심어야 하는데 여기는 그대로 두면 어찌 되겠나.
감염이라도 생기면…….
상상하기도 싫은 모양새가 되고 말 터였다.
팔다리야 감염돼서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해도 리스턴이 칼질 한번 휘두르면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머리는 자르면 그 즉시 사형이지 않나.
아, 우리가 사형당한다는 뜻은 아니다.
까짓거 치료하다가 실수 좀 한 거 가지고 의사들 죽이면 어? 누가 이런 숭고한 일을 하겠나.
“저기.”
“응?”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환자에게 더 가까이 갔던 조지프가 상당히 곤란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어디가 이마지?’
‘아.’
이 시기 의학적인 질문은 100% 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랬다.
정답은 아는데 그 정답을 말하면 마녀로 몰릴까 봐 곤란할 상황은 있을지 몰라도, 무조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너무 교만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전혀 모르겠다, 나도.
‘대강 그냥 네가 생각하는 선을 그어. 어차피 소독은 더 넓게 해야 하잖아.’
‘아…… 그래. 그럴게요.’
해서 대강 말했다.
이마 라인이라는 게 이렇게 정할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오죽하면 이마 라인 성형술이라는 게 있겠어.
하지만 적어도 영국인들이 뭐라 할 건 아닌 거 같긴 하다.
이 친구들은 국경선도 아무렇게 대강 긋는 친구들이잖아?
두 가지 사안의 경중을 따져 보면 아무래도 이마 라인이 훨씬 중요도가 떨어질 거다.
“자, 수술은…… 전신마취하에 이루어질 겁니다. 처음엔 좀 보기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몇 달 지나면 좋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그럼 저부터 해 주십쇼.”
“으음. 어차피 식사 여부 때문에라도 내일 시행할 겁니다.”
“아…….”
“그전에 수술 전 검사도 해야 하니까 마음 급하시더라도 참아 주시죠.”
“수술 전 검사……? 그런 것도 있나?”
“있죠. 여기가 괜히 런던 최고…… 그러니까 세계 최고 병원이겠습니까.”
“하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라인도 대강 정하기로 했겠다, 수술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이대로 집에 갔을 테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나름 수술 전 검사라는 게 생겨서 그랬다.
-대체 이걸 왜 하는 건가…….
-자네의 악랄함을 채우기 위해 이러지는 말게.
처음엔 다들 질색팔색했더랬다.
하지만 같은 절단술을 하더라도 내 수술 전 검사를 통해 뭔가 교정하고 나면 훨씬 결과가 나아진다는 것을 리스턴이 몸으로 체득한 이후로는 당연한 절차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의학적인 납득도 납득이지만 안 하면 리스턴이 몸으로 설득을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어.
“여기 앉아 보시죠.”
“음. 이건……?”
“혈압을 재는 겁니다.”
“혈압……?”
일단 첫 번째로는 혈압을 잰다.
사실 이건 큰 의미가 없긴 하다.
우선 혈압계의 신뢰도가 아무래도 떨어지다 보니 혈압 자체가 정확한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높게 나온다고 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약이 없어서 그렇다.
-진생을 먹이면 되지 않나?
진생, 즉 홍삼이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수술 전에는 먹이면 안 된다.
피가 묽어져서 출혈량이 많아지니까.
뭐 모발이식 하면서 출혈 걱정하는 건 좀 오버긴 한데, 그래도 조심하는 게 맞다.
‘혈압은 완전 내 연구용이고.’
나중에라도 약을 쓰건 뭘 하게 되건 통계로 쓰기 위해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또 환자들이란 의사가 직접 뭔가 하면 좋아하기 마련이다 보니 라포 형성에도 유리했다.
“자, 이제 여기 소변보세요.”
물론 진짜 중요한 건 두 번째 검사였다.
“소변……?”
“네, 저희 검사 기기로 당뇨가 있는지, 다른 질병이 있진 않은지 볼 겁니다.”
“아, 아아. 여기가 그러고 보니 당뇨 치료로 유명했죠.”
“네. 당뇨가 있으면 탈모가 시작될 수 있거든요. 또 머리를 심었을 때 그 생착률도 당뇨가 있으면 떨어집니다.”
“허어…… 이거야 원. 정말 몹쓸…… 몹쓸 병이로구만요. 여기서 보면 됩니까?”
“아, 아뇨. 이미 발가벗고 계시니까 상관없을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저기서.”
“아, 네네.”
나는 그렇게 다섯 개의 소변 검체를 받아서 우리 병원 검사 기기에게 건네주었다.
“음.”
아무래도 내일 수술 예정인 환자가 많다 보니 기기는 이미 좀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벌써 한 20개 정도는 검사를 한 모양이니 그럴 만도 했다.
21세기 기기에 비해 19세기 기기는 내구성 같은 것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왜.”
“아니, 아닙니다.”
물론 기계는 가질 수 없는 열정이 있다 보니 검사를 강행할 수 있었다.
“세 번째분은…… 당뇨가 좀 있군요.”
“그렇군. 어느 정도?”
“심하진 않습니다.”
“그럼 인슐린까진 필요 없을 거 같고…… 식이 제한으로 짧게 막아야겠다.”
“네네.”
“또 이상 소견은?”
“다섯 번째 분은…… 감염이 있는 듯합니다.”
“매독?”
“매독 느낌은…… 아닙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
게다가 대화도 가능하다.
그냥 인공지능이라고 보면 된다.
돈이 좀 많이 들긴 하지만, 그건 뭐 엘리트로서 얼마든지 지출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하면 감수할 만했다.
‘매독인지 아닌지 맛만 보고 알면 그게 사람이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 기기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다섯 번째 환자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조지프 보라고 친 건데, 아마 소독할 때 좀 더 아플 게 분명했다.
원래도 미친 사람처럼 박박 닦는 놈인데 성병 있다고 하면 얼마나 닦겠나.
그렇다고 안쓰럽거나 하진 않았다.
혹 머리통에 옮아 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좋아. 다 잘되어 가고 있구만.’
하여간, 우리 병원은 이제 세계 최초로 탈모 치료를 시도할 참이었다.
그 말은 곧 미래를 바꿀 거라는 얘기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