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화(3/505)
3화 19세기 [3]
“아으.”
아쉽게도 난 기절하지 못했다.
분명 까무러칠 것 같은 느낌은 들었는데, 10년 넘게 외과 의사로 살아온 내 세월의 무게가 정신을 딱 잡아 주어서 그랬다.
덕분에?
아니, 그것 때문에 나는 그 후속 조치들까지 죄다 봐야 했다.
“얼마나 걸렸지?”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물어보기 전부터 알 만하다는 얼굴로 조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조수 또한 자부심 어린,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절단에 32초. 봉합에는 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군.”
그래.
그건 인정이다.
진짜 사람 다리 자르는 데 32초라니.
내 동기였던 정형외과 애들 불러다가 보여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니들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어렵게 어렵게 하던 절단 수술을, 여기 이분은 인마 30초 만에 한다.
‘마취도 소독도 안 하고…… 심지어 맨손으로 말이지.’
시벌.
자꾸 욕이 나오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심지어 인종차별을 눈앞에서 대놓고 당해도 참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 않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 대학병원에서 워낙 윗분들한테 당해서 그랬다.
내가 진짜 교수 한번 돼 보겠다고 별짓 다 하긴 했다.
‘맨손이라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았나.
맨손으로 수술이라니.
무술이나 하라고, 맨손으로는!
“아, 근데 환자는 살았나?”
물론 놀라는 건 아직 너무 이른 듯했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해 놓고 이제야 환자가 살았는지를 확인하다니.
19세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새꺄, 너는 그래도 의사라는 놈이…….
수술 중에 환자가 살아 있는지는 확인하고 있었어야지.
“어…… 아, 네. 살아 있습니다. 지금은요.”
“그럼 정말 성공적이군그래.”
리스턴 박사는 조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방금 다리 자른 칼을 툭 하고 가방에 집어 던졌다.
이번에 새로 묻은 핏자국이나 지방으로 인한 기름 자국 등은 역시나 닦지도 않았다.
저것도 또 연륜의 증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망할 놈.
“자, 런던 시민 여러분!”
리스턴은 후하하 웃으며 소리쳤다.
덩치도 큰 데다가 아까 봤듯 타고난 용력이 장난이 아닌 사람이라 그런가, 광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느낌이었다.
“방금 보셨듯이, 제 수술 솜씨야말로 이 런던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다리나 팔, 턱 등을 잘라 내야 하는 병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제가 30초 만에 잘라 드립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외에 다른 사람은 1분이 아니라 5분도 걸려요! 저에겐 30초. 딱 30초만 고통을 참으면 됩니다!”
듣다 보니까 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애초에 마취란 게 없는 시대이지 않나.
‘설마 마취가 있는데 저 지랄을 하진 않겠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제대로 된 마취라는 게 시행된 건 얼마 안 된 일 같았다.
의사인 주제에 왜 모르냐고 하면 당당히 할 말이 있었다.
의학의 역사.
그래, 좋은 주제지.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해야 할 공부가 산적한 의대에서 이런 건 그냥 패스 오어 페일(Pass or fail)로 넘어가는 과목이고, 당연히 족보만 보면 되었다.
‘마취가 없을 때 5분 동안 자르느냐, 30초 안에 자르느냐라……. 확실히 다르긴 할 것 같아.’
근데 보니까 환자가 살 것 같지는 않았다.
“으…….”
이제 겨우 깨서 신음을 흘리고 있긴 한데…….
일단 수술 전에 술도 잔뜩 마셨고.
마취도 없이 칼로 잘랐고.
소독도 안 했고.
피가 많이 났는데 수혈 따위는 없고.
‘죽음의 이유를 열거하는 데도 이렇게 한참 걸릴 줄이야.’
너무 끔찍해서 입을 헤 벌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등을 쾅 하고 쳤다.
돌아보니 아저씨였다.
“이거이거, 업턴 촌놈이 오늘 충격이 너무 큰 것 같은데. 그렇게 무서워?”
무섭지.
사람을 눈앞에서 토막 내고 죽인 느낌인데 안 무서우면 그게 사람입니까.
하지만 아저씨가 말하는 뉘앙스는 그저 이 광경을 말하는 것이었고, 내가 그런 거 하나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바보는 아니었다.
“아뇨?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또 이 정도 광경은 사실 내게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현대 외과 수술이 발전하면서 초정밀 수술로 대체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외상 수술이나 정형외과적 수술, 아니면 개복 수술은 진짜 끔찍했다.
느낌은 좀 달라도…….
하여간 익숙하다, 이 말씀!
“넌 어떠냐? 조지프. 너도 여전히 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아저씨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과 함께 조지프를 돌아보았다.
조지프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저도 저렇게 되고 싶어요. 아버지.”
그러곤 아까 전에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던 말을 해 댔다.
저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거야 뭐, 내가 옆에서 고쳐 주면 될 일이었다.
언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어…… 아저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는데, 아저씨가 앞으로 뚜벅뚜벅 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밑에 막 피가 튀어 있는데 그냥 걸어 나갔다.
그러더니 리스턴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 박사님?”
험악한 얼굴에 피까지 튀어서 박사라기보다는 두목이라는 말이 훨씬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인지라, 막상 말을 걸어 놓고도 눈이 마주치니까 아저씨가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하하. 겁내지 마십시오. 저 의사예요, 의사.”
리스턴으로서는 익숙한 반응인지 껄껄 웃었다.
그러곤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여전히 피는 안 닦은 채로 물었다.
“근데 무슨 일입니까?”
물론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리스턴이 친절한 미소를 짓기 전에 아저씨의 행색부터 살폈다는 걸.
어찌나 눈알이 휙휙 도는지, 지금 뭐 경련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아저씨가 업턴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거기서 최고 부자이지 않나.
보통 일할 때 빼지 않는 편이다 보니 땀 냄새가 조금 날 수는 있어도, 옷 소재 자체는 고급이었다.
의사들이면…….
21세기 기준의 생각이긴 하지만, 하여간 꽤 사는 편일 테니 몰라보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 저기 쟤가 제 아들이고. 옆에는 제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요.”
“아……?”
“그, 조선 사람입니다. 청나라 옆에. 나름 하나님 믿는 사람이에요.”
“아하.”
리스턴 박사는 내 얼굴에서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가, 이어지는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부자가 하는 말이기도 하고, 하여간에 같은 하나님의 자식이라 생각을 하고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저씨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둘 다 외과 의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외과 의사를요?”
“돈은 상관없어요. 어차피 둘 다 제가 후원하면 되니까.”
“아……”
“할 수 있으면 교수님 후원도 제가 하고요.”
“하, 하하하하. 이거, 여기 서서 얘기할 게 아니라. 가면서 얘기하실까요?”
“환자는…….”
“조수가 볼 겁니다. 하하하.”
후원 얘기가 나오자 리스턴 박사의 눈이 다시금 번뜩였다.
‘돈이 없나……?’
이상했다.
런던 최고의 의사라지 않았나?
지금이 19세기 초중반이니…… 바야흐로 런던이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해도 좋지 않겠나.
물론 이 거무죽죽한 하늘과 길거리, 그리고 돌아다니는 거지인지 아니면 그냥 행인인지 모를 사람들을 보면 최고인가 싶긴 하지만.
하여간 그런 곳의 의사라면 돈이 많을 텐데 왜 저러나 싶은 채로 따라 걸었다.
“여기가 제가 있는 의과 대학입니다.”
“오…… 저도 들어 봤습니다. 명문이라죠?”
“우리 런던에 있는 학교니 그렇죠. 게다가 저도 있고요.”
“하하, 어련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한번 뭐 구경이라도 해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외부인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학교는 꽤 웅장한 건물이었다.
석조 건물에 이리저리 자라난 덩굴하며, 분위기만으로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단 느낌을 팍팍 주었다.
거기에 더해 경비도 있었다.
아저씨라는 느낌보단, 건드렸다간 X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경비였다.
굳이 따지자면 헌병 같다고 해야 할까.
‘나도 서울대 나왔는데.’
대한민국 대학은 피크닉 장소로도 쓰이지 않나.
그에 비하면 이곳은 엄숙 그 자체였다.
“괜찮습니다. 들어가죠.”
허나 리스턴 박사가 껄껄 웃자, 주변에 서 있던 경비원이 슥 하고 비켜 주었다.
“여기가 강의실이고요.”
강의실도 보여 주었다.
그냥 그랬다.
여름에 덥겠네.
겨울에는 춥겠네.
뭐 이런 느낌만 든다고 할까.
“읍.”
그러다 리스턴의 발걸음이 더 안쪽 깊숙한 곳으로 향하자, 그리고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가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 냄새인가 싶었다.
의과 대학이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병원과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니까.
‘아니, 아닌데? 그래도 이런 약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약 냄새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아저씨는 이미 토하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조지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태연해 보이는 건 오직 리스턴뿐이었다.
“오, 여기 이 친구는…… 이름이 뭐라고?”
아니, 나도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리스턴은 날 보며 이름을 물었고, 답했다.
“전 태평입니다. 그냥 평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피영?”
“네, 뭐.”
“그래. 자네는 좀 괜찮은 것 같지만, 그래도 들어가기 전에 이걸로 코를 막게.”
목화솜을 주길래 일단 코를 막았다.
안 그래도 뭐라도 있으면 막아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아저씨와 조지프도 뭐에 홀린 사람처럼 서둘러 코를 막았다.
해롭고 위험한 냄새란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끼이익-
리스턴은 그렇게 우리가 다 코를 막은 걸 확인하곤 곧장 앞에 있던 나무문을 열었다.
“웁.”
열자마자 일단 아저씨는 줄행랑을 쳤다.
다 큰 성인 정도가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었을 나이의 남자가 도망치는 꼴이라니.
누구라도 볼썽사나운 일이라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런 게 처음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흔히 있는 일인 듯했다.
당연했다.
“조지프. 넌 괜찮냐?”
“눈 감았어.”
“어…… 잘했다.”
문 너머에는 해부실이 있었다.
해부실.
그래, 이거 나도 학생 때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포르말린 냄새 때문이었다.
눈도 따갑고 좀 그렇잖아?
‘포르말린 마려워지네…….’
미안하다, 포르말린.
억울하게 욕먹었구나?
그래, 네가 있어서 우리가 부패하지 않은 시신을 해부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거야…….
“자, 여기가 런던 최고의 해부실입니다.”
일단 파리가…….
파리가 너무 많이 날아다녔다.
당연히 알을 여기저기 까서 구더기도 있었다.
조수인지 학생인지 모를 사람들이 빗자루로 슥슥 쓸어 담는데도 구더기가 뒤섞여 있을 지경이었다.
‘저 꼴을 보면서…… 최고라는 말이 나오냐?’
다른 데도 설마 이럴까?
아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곳보다 훨씬 위생적이죠!”
오케이.
이번에야말로 기절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