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화(30/505)
30화 웃음 가스 파티 [3]
그 오래되고 별 볼 일 없는 기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길쭉한 고무 뭉치로 대가리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그래, 이 사람은 화학자이지 않나.
의사가 아니란 얘기였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되었다.
이 말을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됐다는 거 아닐까?
그걸 만들어 놓고, 아무도 마취제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역시 여기는…… 내가 있던 지구가 아닐 거야.’
그렇지 않겠나.
내가 살던 지구의 사람들은 이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너무 관심 두지 말게. 웃음 가스 그거…… 너무 빠지면 사람이 좀 망가져. 그냥 파티 때나 쓰라고. 어차피 설비 없이 만드는 건 어렵기도 한데…….”
내가 충격에 빠져 있는 동안, 화학자는 나름의 개소리를 해 댔다.
아니지.
아냐.
개소리라고 하면 좀 억울하긴 할 거 같았다.
확실히 그 가스에 빠지면, 그러니까 중독이 되면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거든.
‘장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겠지.’
마취제라는 게 원래 그런 루머가 있지 않나?
명백히 따져 보면 사실 아주 루머도 아니긴 했다.
옛날에 나온 것들은 어느 정도 머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으니까.
이 가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래 쓰던 것보단 후질 게 뻔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제가 어제 해 봤는데요.”
“아니긴 뭐가 아닌가. 어제 해 봤으면 더더욱 그렇지. 이거 아주 빠진 모양인데……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그러면 큰일이야. 아니, 젊은 것도 아니지. 자네 몇 살인가?”
동양인을 어리게 보는 풍습은 비단 21세기에 국한된 얘기가 아닌지, 이 양반도 나이 드립을 쳤다.
물론 이게 유리할 때도 있긴 했다.
천재 소리 듣기엔 딱 좋았다.
솔직히 내가 봐도 조지프나 앨프리드에 비하면 나는 그냥 애 같은 몰골이거든.
“15살입니다.”
“뭐? 정말?”
“네.”
“아니, 먹을 만큼 먹은 친구가 왜 이렇게 어려 보이지?”
“그건 뭐…… 타고난 거고. 하여간 그게 아니라니까요? 일단 아산화질소를 알기는 잘 아시는 건 맞아요?”
“알긴 아네.”
이대로 그냥 두었다간 헛소리만 하다가 끝날 게 뻔했다.
해서 나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내 얼굴이 간절해 보였는지 화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봐야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지만, 하여간 아까보다는 나았다.
“그게 언제 나온 겁니까?”
“그…… 언제지? 1700년대에 나왔던 거 같은데.”
“네?”
“왜. 오래된 기체라고 하지 않았나. 별거 없네. 그냥 그거 좀 빨면 기분이 좋아지고…… 하는 게 다야. 파티용으로 쓰이니 나름 제조 능력이 있으면 돈이 되기는 하는데, 이제는 뭐 다들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나는 1700년대라는 말에 잠시 넋을 잃었다.
오래되었고는 해도…… 나는 그냥 한 몇 년 된 줄 알았지…….
어? 수십 년 이상 됐을 줄은 몰랐다고.
그 정도나 지났으면 누구 하나는 파티에서만 쓸 게 아니라, 마취제로 사용할 시도 정도는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거…… 그러면 따로 구하는 게 어렵지는 않겠습니까?”
“빨 생각이 가득하구만. 그런 이유로는 못 구해다 주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닌가. 나도 처음 경험했을 때는 간절하긴 했네. 근데 또 참다 보면 참을 만하지.”
“하.”
이 새끼.
확 고무로 후릴까.
아니, 고무는 또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어.
콘돔을 만들라니까 몽둥이를 만들고 있네.
능력 있는 놈은 맞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어제 해 보니까, 아픈 걸 모르더라고요?”
“아픈 것만 모르나. 이것저것 다 모르지. 해로운 기체야. 그거 빨면서 일할 생각 하면 안 되네. 진짜 딱 파티용이야.”
오.
아프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네?
근데…… 마취제로 쓸 생각은 못 했구나.
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제가 의대생이다 보니 파티 말고 다른 게 떠오르던데요.”
“어떤 거 말인가.”
“마취…… 마취제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취제……? 음…… 흐으음…….”
내 말에 화학자는 턱을 짚은 채 고민에 빠졌다.
이게 그렇게 고민에 빠질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급한 것은 나지 저 친구가 아니었기에 일단 기다렸다.
생각보다 더 기다리게 되어서 짜증이 났는데 그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더 짜증 나게 만드는 얘기였다.
“그 의견을…… 낸 사람이 있긴 하지.”
“오, 그래요?”
“험프리 데이비라고. 사실 나도 아는 교수님이야. 그분한테 배웠지. 꽤 우수한 화학자셔.”
“심지어 아는 사람이에요? 그럼 소개 좀 시켜 줘요.”
“죽었어. 작년에.”
“아.”
죽었구나.
천재는 왜 이렇게 단명할까.
나도 설마 이 시대에 태어났다는 죄로 단명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야 할 텐데.
“그럼 그걸 뭐 논문으로 낸 게 있을까요?”
“냈지. 1800년인가.”
“네? 그렇게 오래전에요?”
“어. 30년이나 됐네, 그러고 보니까. 하여간…… 그런 얘기를 하시긴 했는데 딱히 뭐 관심 없었네.”
“음…… 의사들 중에 실험해 본 사람은 없을까요?”
살짝 김새는 느낌이 들었다.
1800년에 심지어 논문까지 나왔다면, 이 시대의 의사들이 사용을 안 했을 것 같진 않아서 그랬다.
실험 정신 오지는 사람들이지 않나?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만 봐도 리스턴 칼이라는 걸 만들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혹…… 몽둥이로 후려 까는 거 정도의 통증은 조절이 돼도, 수술에 쓸 만큼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
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니, 화학자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거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논문은 없네. 모르겠어.”
“음…… 그럼 제가 한번 실험을 해 보고 싶은데요.”
머릿속으로 실험을 떠올렸다.
동물 실험부터 해야 할 터였다.
훅 마시게 해서 간단한 수술 및 조작을 해 보고, 진짜 되는 것 같으면 수술이 필요한 사람 중에 지원자를 받아서 또 해 보고.
뭐 이런 식이면 되지 않을까?
21세기라면 IRB(의학연구 윤리심의위원회) 심사도 받아야 하고 뭐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절차가 있을 것 같진 않으니 훨씬 더 빠르게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실험이라…… 흠. 정말 본인이 빨 생각인 건 아니지?”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요? 수술할 때 마취 가스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말 되겠나. 마취가 그렇게 쉬우면…… 다들 했지. 그거 하다가 사기꾼 소리를 들을 수도 있네.”
괜히 사기 운운하는 건 아닐 터였다.
작년인가?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사람 하나를 아주 반쯤 죽여 놨다는데, 그놈이 사기꾼이었다고 했다.
무슨 최면을 통해서 마취를 한다는 둥 개소리를 한 모양인데…….
반쯤 죽인 게 아니라 죽였어도 될 거 같았다.
“그냥 실험을 해 보는 건데요, 뭐. 이걸로 뭔가 커다란 보상을 얻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흠…… 그래, 뭐. 그런 생각이면…… 가만있어 보게.”
“아니, 여기 있어요?”
“연구가 쉬운 일인 줄 아나?”
화학자는 볼멘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검정 고무 더미를 가리켰다.
확실히…… 지향하는 지점이 콘돔에 있다면, 지금 내놓는 물건이 저래서는 갈 길이 너무너무 멀 것 같았다.
저런 걸로 뭐 되겠냐고.
일단 저걸로 덮는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인다네.”
“네네. 이해합니다.”
“귀한 걸 주는 거야. 알겠나?”
“네네,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갚게. 내 보아하니 사장님이 그래도 박한 사람은 아니니…… 자네 몫도 있을 거거든.”
“네.”
말이 참 많았다.
불만도 많은 것 같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일단은 물건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어제 본 것처럼 막 커다란 가스통은 아니었다.
작은 통이었다.
“이거 양이 얼마나 될까요?”
“양? 글쎄. 뭐 혼자 쓸 거면 며칠은 쓰지.”
“며칠이라는 게…….”
“난 스트레스 받으면 하루에 한두 번은 빤다네.”
“아니, 며칠이라는 게 정확히 며칠입니까.”
“사람 빡빡하구만. 한 열 번은 될 거야.”
과학자라는 놈이 며칠이라는 말이나 쓰고, 한두 번이라는 말이나 쓰다니.
확실히 19세기는 아직 먼 시대였다.
뭔가 될 듯 말 듯 하기는 한데 중간에 멈춘 시대라고 할까?
“그거…… 웃음 가스야?”
“너 어제 엄청 신났구나. 하긴 콜린을 막 패더라.”
아무튼, 그렇게 가스통을 들고 나왔더니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질세라 나를 놀려 댔다.
‘이놈들아…… 의학의 위대한 진보가 바로 오늘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좀 사짜처럼 보이는 말이지 않나.
해서 참았다.
어차피 실험을 해 보면 되지 않겠나?
나름 화학자에게 논문도 얻어 왔다.
1800년에 험프리 데이비 교수가 쓴 논문.
워낙 오래된 논문이다 보니 바스러질 듯한 모양새인 데다가 안에 담긴 얘기가 귀한 것일 것 같아서, 나는 정말 신줏단지 모시듯 해서 들고 있었다.
“마차 천천히 몰아 주세요.”
“네네. 가스 빨아야 되니까.”
“하하하.”
애새끼들은 그런 날을 보며 더더욱 열을 내서 놀렸다.
두고 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논문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나는 달리는 마차 안에서 논문을 읽어 내려갔다.
대개는 사실 쓸데없는 내용들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딱 원하던 내용도 있었다.
‘나름 실험을…… 사람을 상대로 하긴 했잖아? 무통증, 망상, 마취, 호흡 정지로 이어진다…… 흠. 4단계 호흡 정지는 이거 어떻게 밝힌…… 와…… 사람이 죽었어?’
확실히 화끈한 시대였다.
실험 도중에 사람이 죽다니.
그런데도 멀쩡히 교수로 일을 할 수 있었다니.
잠시 경악에 빠진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 내 돈 내놔!”
“꺼져!”
그때 마침 소매치기 하나가 도망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더 뒤에는 시커먼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람이 실험하다 보면 사람 하나 죽일 수도 있지.’
여기는 19세기잖아?
아포칼립스라고.
드르륵.
그 사이, 마차는 다시 의과 대학 앞에 멈춰 섰다.
나는 후 하고 심호흡을 한 채, 논문을 내 자리에 두고 가스통만 들고서 로버트 리스턴 박사에게로 찾아갔다.
“후…… 들어오게.”
그는 방금 살인 아니, 수술을 끝냈는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튄 붉은 선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뭐지, 그건?”
질문을 해 왔다.
그럼 답을 해야만 했다.
“웃음 가스입니다.”
“어제 좋았나 보구만. 하지만 자중하게. 자네는 의학 발전에 지대한 책임이 있어. 그만한 재능을 웃음 가스 따위에 팔아먹지 말게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어제 본의 아니게 콜린을 때리지 않았습니까?”
“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오늘 학교도 못 왔네.”
“아.”
그 정도로 팼구나.
그리고, 그렇게 팼는데도 몰랐구나.
갑자기 희망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건 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하나 확실한 건 제가 때릴 때 콜린이 아파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웃음 가스는 원래 그렇네.”
“그럼 이거, 수술할 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