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0화(300/505)
300화 이게 당뇨보다 더? [1]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김치도 먹었지, 그래서.’
전생엔 딱히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이었는데…….
영국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그냥 평범한 한국인이었던 걸까.
이상하게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다.
어머님이 담그시는 김치가 내가 알고 있던 김치랑 미묘하게 달라서 아마 더더욱 그럴 거다.
내가 담가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해 봤겠냐?
병원 생활만 하다가 트럭 치여 죽었는데?
‘아무튼, 수술 전 검사 덕에 이분도 안정적이지.’
5번째 환자가 당뇨가 있었잖아.
그분 어제 영국식 오이 샌드위치 먹었다.
심지어 빵도 호밀빵으로…….
“하나도 단맛이 느껴지지 않네요. 좋습니다.”
“좋아.”
그랬더니만 우리 소믈리에 기기가 판정하길, 단맛이 사라졌단다.
물론 당뇨라는 것이 한번 당이 조절된다고 해서 낫는 것도 아니고, 사실 소변에 당이 밀려 나올 정도면 당뇨가 상당히 심한 상태라는 얘기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이 사람에 대한 당뇨 치료는 옮겨 심은 털이 머리카락이 되는 기간 동안에만 잘하면 된다.
감염을 피하면 된다, 이 말이다.
“세 번째 환자는 성병이 있다던데, 약은 안 써도 되나?”
“사실 쓰는 게 안전하기는 할 텐데…… 비소 성분이다 보니 그게 혹시 탈모에 악영향을 줄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그…… 비소가 탈모를 일으킨단 말인가?”
그렇게 다섯 번째 환자를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와서 셋째 환자를 논했다.
사실 어지간하면 비소 화합물을 써 왔기 때문에 할 만한 말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비소의 아주 흔한 합병증 중에 탈모가 있었던 거 같다.
런던은 나 덕에 비소 유행이 금세 지나갔지만…….
사실 여전히 옷과 벽지로만 안 쓰고 있을 뿐이지, 먹긴 하거든?
상식적으로 옷과 벽지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면 먹는 건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도 그렇게 나오는 놈들이니…….
런던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뭐 여전히 비소 벽지도 쓰고 있다고 들었다.
그걸 쓰면 집에서 쥐도 없어지고 해충도 사라진다나 뭐라나…….
‘상식적으로 쥐도 못 살고, 해충도 못 사는 집이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상식적’이라는 말을 19세기에서는 쓰지 말아야지 하는데, 자꾸만 쓰게 되는 게 한이다.
아무튼, 여전히 인기리에 사용 중인 비소 덕에 비소로 인한 합병증에 대한 연구도 얼마간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 쪽보다는 비소 화합물을 만들어 낸 연구소 쪽이 메인이었는데, 실려 온 시신들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 탈모가 아주 심했다.
“그러지 않겠어요?”
어렴풋이 배웠던 내용도 생각이 나고, 거기에 더해 경험도 쌓였으니 당당히 말을 해 줄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리스턴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이 될 줄은 몰랐는데…….
“왜 그래요?”
“아니, 매독에 걸리면 어쩌나 싶어서.”
“안 걸릴 생각부터 해야죠.”
“생각해 보게, 평. 난 사실 지금도 인기가 아주 나쁜 편은 아닐세.”
약간 배알이 꼴리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거친 남자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21세기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강인해 보이는 남자는 인기가 있었는데 19세기야 말 다 했지.
게다가 리스턴은 마냥 거친 남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은 세계 최고의 명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돈?
욕심 좀 버리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벌었다.
물론 런던 사교계 나가서 이리저리 놀고 하려면 여전히 멀었겠지만, 나랑 함께하고 있다면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머리까지 더 풍성해져 보게나. 얼마나 인기가 많겠나. 헌데 그 때문에 머리가 빠지게 된다면…….”
“콘돔을 쓰세요.”
“일회용이잖나…….”
“여러 개를 사서 들고 다녀요…….”
“아.”
그런데 머리까지 많아지면 뭐 더 인기가 많아지긴 할 거다.
인기가 많아지는 것과 매독 유병률이 올라가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 싶긴 한데…….
“그리고 높으신 집안의 사람과 결혼을 원하면 몸가짐을 좀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네, 내가 그러길 원한다는 걸 어찌 알았나?”
아무튼, 나는 리스턴을 좋아하고 또 이 사람이 없으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한 조언을 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리스턴만큼이나 투명한 인간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삶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법이지요’라고 하면 좀 혼날 거 같아서, 좋게 풀긴 했다.
“그래야 앞으로 런던의 의학을 더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렇네. 그건 맞지.”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하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는 저걸 핑계 삼을 거 같다.
“교수님. 준비됐습니다.”
“어, 가지.”
잡담도 즐겁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떠들기만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콜린의 신호에 맞춰 수술방으로 향하니, 조지프가 말 그대로 박박 닦아 둔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앨프리드가 가스통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탈모인 소독은 즐거운 일이더라.’
가까이 다가가니 조지프는 싱글거리며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환자 생각이야 어땠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조지프가 화끈하게 즐긴 것은 자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 머리가 저렇게 붉어질 수가 없을 테니까.
석탄산이라 해도 저 정도로 붉게 되려면 진짜…….
“마취…… 마취를 왜 안 해 준겁니까…….”
이제 보니 환자 눈망울에 눈물도 그득했다.
머리가 훌러덩 벗겨질 만큼 나이 든 사람이 울고 있다, 이 말이다.
이렇게까지 박박 닦을 거면 마취를 해 줄 걸 그랬나 싶지만…….
기실 모발이식이라는 게 상당히 빡센 수술이지 않나.
위험하진 않겠지만 시간이 문제다.
알다시피 아직까지도 우리가 쓰는 마취제에 대한 신뢰도가 아주 높지 못하기 때문에 마취 시간은 최소화해야 했다.
게다가…….
“미안합니다. 근데 사정이 있어요. 일단 이마 선을 어디에 만들지도 얘기를 해 봐야 하고요.”
“아…….”
“혹시 어디쯤이었는지 기억납니까?”
“음.”
나는 거울을 들이밀면서 물었고, 환자는 고민에 빠졌다.
상태를 보면 아마 원래 이마 라인이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이 그리 최근 일은 아닐 거 같긴 했다.
“여기……?”
“너무 낮은데요.”
“아니, 내가 원래…….”
“눈썹 바로 위지 않습니까. 사람 이마가 그렇게 좁으면 이상해요. 게다가 그렇게 되면 면적이 모자라서 위가 빕니다. 수도승처럼요.”
“아. 그럼 여기……?”
“그래요. 거기로 하죠.”
사실 환자가 방금 짚은 라인도 너무 아래긴 했다.
근데 표정을 보아하니 거기도 아니라고 하면 화를 많이 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마취하고서 심을 건데 이 사람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그랬다.
무엇보다 우리 영국, 프랑스 친구들은 상당한 원죄가 있는 친구들 아닌가?
나름대로 지위가 있는 친구들이니만큼 부디 이 일은 교훈 삼아서 라인이라는 게 함부로 그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을 품고 살게 되면 좋을 거 같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이번 일로 말미암아 나중에 식민지로 삼았던 국가들 독립시켜 줄 때 국경선에 좀 더 신경 쓸 수도 있는 일이다.
“아까 말해 주었던 것보다 너무 높지 않나?”
“어쩔 수가 없어요. 여기 털을 죄 옮겨 심는다고 해도 거긴 무립니다.”
“그럼 무리라고 하지…….”
“어차피 위에 머리털 생긴 걸 보면 좋아할걸요.”
“그런가……? 근데 이게…… 이 털이 여기 생긴다고 막상 생각하니까 약간 거부감이 생기긴 하는데…….”
“나중에 변할 겁니다.”
“겁니다? 왜 자신이 없어졌나.”
“얼마나 나중에 변할지는 모르겠거든요.”
증명된 이론이긴 하다.
용기 있는 프론티어들에 의해 어디 털이건 간에 옮겨 심으면 머리카락이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걸리는지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냥 배우는 사람이었지 실제 업에 뛰어들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이란 코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열심을 내긴 어려운 법이거든.
“이런…….”
“어차피 모자 쓸 텐데요.”
“모자 쓰면 생착률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아, 맞네.”
“아…….”
“아무튼, 없는 것보단 낫죠. 자, 설명해 드렸죠?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 알겠네.”
하여간, 우리는 사타구니 털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골 위쪽,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편평한 쪽의 털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보다 밑으로 가더라도, 게르만족이라 그런가 털이 상당히 수북했지만…….
이쪽은 잘못 건드렸다가 염증이라도 생기면 진짜 칼 맞을 거 같았다.
실제로 환자에게 양주를 선물받거나 칼침을 선물받거나 하는 의사가 비뇨기과 의사거든.
진짜 자신 있는 거 아니면 저긴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여기까지 하면 원하던 이마 라인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동질감 때문인지 눈에 띄게 개선된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리스턴이 성가셨지만, 말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여기 자를 수도 있어요.”
“그건 확실히 안 될 일이지.”
머리털보다 중요한 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음.”
“으음.”
그렇게 채취한 털을 나는 21세기 기법을 이용해 환자의 머리에 심어 주었다.
하다 보니까 이쪽 털의 장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탈모라는 게 딱 한 부위에만 생기는 건 아니지 않나.
모든 머리카락이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그렇다 보니 뒤통수에 있는 털도 좀 연약했다.
헌데 이건…….
“되게 쉬운데?”
“그러니까요.”
이거 이러다가 두개골도 뚫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푹푹 들어간다.
나야 말만 그렇고 그렇게 넣을 수도 없었지만, 리스턴은 실제로 걱정이 되는지 아까부터 눈에 띄게 손에서 힘을 빼고 있다.
“흠…… 생착률이 생각보다 높을 거 같기도 합니다.”
“그건 좋은 일인데…….”
아니, 힘이 빠진 거 같기도 하다.
어쩐지 환자 머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좀 아련해졌거든.
당연한 일이긴 했다.
괜히 이게 모질이 다르겠나.
머리에 있으면 영 어색할 만한 털이니까 다른 데 있는 거다.
그게 머리에 가 있으니…….
‘이거 공작님이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이번 수술에 있어서만큼은 공감 능력이 리스턴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나조차 슬금슬금 걱정이 될 만한 비주얼이었다.
문제는 이게 비단 첫 번째 환자만의 얘기가 아니었단 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마지막 다섯 번째까지도 다 비주얼이 좀 그랬다.
다행히 마취 사고도 없었고 당장 채취한 부위나 박아 넣은 부위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환자는 전혀 없긴 한데…….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어디에 있나!”
특히 공작님이 지나치게 밝은 얼굴로 뛰어왔을 땐 가슴 한편이 턱 막히는 기분까지 들었다.
“오, 오오. 주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이게 진짜 되는군…… 이럴 수가…….”
우리 공작님은 너무 좋아했다.
없다가 있으니까 느낌이 아예 다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