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2)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2화(302/505)
302화 이게 당뇨보다 더? [3]
국경선을 떠올린 것은 아무래도 잘못이었던 것 같다.
머리카락을 꽂고 있는 건데 자꾸만 지도를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사실 미용 시술이나 수술을 내가 잘할 거 같진 않았다.
기계적인 수술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예술과 맞닿아 있는 영역이잖아?
-넌…… 옷을 그렇게밖에 못 입냐?
-생긴 것만 보면 나쁘지 않은데……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
헌데 나는 그런 것과는 전생에서부터 딱히 관련이 없었더랬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잘하겠어?
친구들 중에 돈 생기면 옷도 다 잘 입게 된다던 놈들도 있었지만, 인턴, 레지던트가 지나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면서 자신이 틀렸다는 걸 빠르게 납득하곤 할 정도였다.
그러니 뭐…….
“정말…… 신기하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경도 관심이 생기는가?”
“네? 아…… 네. 사실 그렇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완전히 기계적인 수술이란 얘기다.
내가 봐도 이거…….
모양이…….
이쁘지는 않다.
‘그래도 꽤 해 봤는데 이렇네.’
연습이 돼야 사실 정상일 텐데…….
어떻게 봐도 없다가 있는 게 다다.
심지어 심은 당장은 머리카락도 아니고 다른 털이다 보니까 하나만 꽂아도 딱히 보기가 좋진 않다.
하지만 반응은 내 예상과 달리 폭발적이었다.
“저게 그러면 저대로 계속 남는다는 건가?”
“아, 네. 전하. 옆방으로 가시면 벌써 시술받은 지 열흘 정도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모발이식은 입원까지 할 만한 수술이 아니다.
사실 수술도 아니고 시술로 분류된다, 21세기에는.
마취도 그냥 수면마취 정도로 하고…….
가격이야 어지간한 수술만큼 혹은 수술보다 비쌀 텐데…….
하여간에 여기는 19세기이지 않나?
여러모로 다르다.
“그래? 한번 봐도 되겠나?”
“네, 전하.”
일단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술을 받고 있다.
임상시험 수준에 불과하다는 말을 해 줬음에도 그러고 있다.
아마 시세로 따지면 21세기의 대충 한 5배 정도 되는 돈을 낸 셈인데…….
해 줄 수 있는 건 21세기에서 해 주는 것의 반의반도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뭐라도 받는단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입원을 시켜 주고 있다.
딱 그 목적 하나였는데 공교롭게도 국왕 폐하께서 수술에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교보재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문이 잠겼는데?”
“열겠습니다.”
나는 시술을 하면서도 귀는 열고 있었다.
아까는 엄청 긴장을 했었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고, 국왕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그런가 손도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쾅쾅.
“누, 누군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중에 머리 심는다고 주변에 알리고 들어온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출장 간다고, 어디 놀러 간다고, 요양한다고 하고 온 거다.
그런데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시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좋아하겠나?
대번에 욕설이 날아오지 않은 것만 해도 나름대로 저 사람들의 인성이 대단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납셨네.”
“?”
아, 뒤에 ‘?’는 내 상상이다.
상상이지만 아마 안에 있는 환자들 모두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야 티브이 틀면 거의 매일 대통령 얼굴이 나오지만…….
19세기 런던에서는 어지간히 지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국왕 폐하 얼굴을 직접 알현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국왕께서 여는 연회나 파티 중에 규모가 커다란 것이라면 한 번쯤 초청되어서 가 보기야 하겠지만…….
거기서도 주요 인사가 아니면 진짜 스쳐 지나가듯 보거나 인사할 때나 보지 가까이서 보기는 어려울 거다.
명예혁명 이후 국왕의 힘을 상당 부분 내려놨다고 해도…….
영국 왕실의 위엄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그랬다.
“저, 정말입니까?”
“그렇네.”
“이럴 수가…….”
인터넷에서 대통령 사칭하는 놈들 많이 봤을 거다.
그럼 밑에 악플만 쫙 달리는 것도 봤을 거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라 해도 익명 게시판에서 악플 몇 개 단다고 잡혀갈 일은 없을 거란 믿음 덕분일 거다.
뭐가 되었건 21세기 대한민국은 자유 진영에 속하는 국가이니까.
하지만 19세기 영국은 좀 다르다.
국왕을 사칭한다는 생각부터 하기가 많이 어려울 거다.
그거 반역죄거든.
덜커덕.
당연하게도 곧 문이 열리고,
“저, 전하!”
“누워 있게나.”
안에 있던 환자들은 뜬금없이 국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사실 대부분의 영국 신사들은 밖에 다닐 때 모자를 쓰는 시대다.
안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보통 그러면 술에 취해서 고주망태가 되었거나 신사가 아닌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안에 들어가면 모자는 벗지만 파티에서는 보통 가발을 쓰기 때문에, 맨머리를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다.
아마 남들 앞에서 맨머리 보이는 것도 처음일 수도 있을 텐데 그게 국왕 앞이니까 진짜 당황스럽긴 할 거다.
‘불쌍한 사람들…….’
조금 미안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또 내 덕에 국왕 폐하를 만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일 수 있지 않을까?
‘내 덕이구만.’
후후.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속도가 더 늘었다.
게다가 사실 우리 공작님은 사타구니 털까지 영끌해도 숱이 많지 않다 보니 시술 또한 금세 끝났다.
“잘된 거 같은데.”
리스턴은 머리칼이 된 털을 보며 말했다.
전에는 자꾸 만지려고 해서 질색했는데, 이제는 나름 조심하는 게 보였다.
아니, 이러다 애써 심은 거 빠진다고 했더니 오히려 리스턴이 나보다 더 조심했다.
환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21세기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가 아직까지도 중세 때의 관념이 이어지고 있는 시대다 보니 진짜 말을 안 들어도 더럽게 안 듣거든?
죽이고 싶을 만큼 안 들을 때도 있는데…….
이번만큼은 여기가 21세기인가? 싶을 만큼 다들 조심하고 있다.
“응, 잘된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절개법으로 채취한 털을 모낭째로 뽑는 건 콜린이 하고 있다.
이 친구가 굉장히 꼼꼼한데다가 손도 좋지 않나.
심지어 젊어서 그런가 리스턴보다 눈도 좋아서 이런 일에 아주 제격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모발이식 전문으로 키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탈모가 당사자들은 절박한 질환이라는 건 안다.
아마 나 또한 나이가 더 들면서 파이기 시작하면 절박해지겠지.
하지만…….
19세기는 의사들이 미용에 전념해도 좋을 만큼 다른 의료 인프라가 잘되어 있질 못하다.
‘너무 아깝지.’
돈이야 이대로 가면 더 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라고 날 19세기로 보낸 걸까?
아닐 거 같다.
그러다 혹시 벼락이라도 맞고 진짜 중세로 가면 어째.
여기서 농담조로 주술사니 뭐니 하는 게 중세에서 동양인이면 진짜 그렇게 몰려서 바로 타 죽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안 된다, 안 돼…….
“으…….”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인류 최초의 마취과 전문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의사로 거듭나고 있는 앨프리드가 딱 좋은 타이밍에 가스 밸브를 잠근 덕에 공작님께서 금세 깨어났다.
“괜찮으십니까?”
“아…… 머리는?”
으레 묻는 말을 던지자, 다른 환자들 같으면 안 할 만한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되게 놀랐다.
의사가 괜찮냐고 하면 보통은 자기 몸 상태부터 점검하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이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머리 안부부터 물어 왔다.
이런 거 보면 또 사이드로라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의사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직업이기도 한데, 어쩌면 이 수술이야말로…….
“잘됐습니다. 아, 절대 만지면 안 됩니다.”
“아.”
내 말에 공작님의 손이 바로 차려 자세를 취했다.
다른 수술 같으면 만지지 말라고 해도 막 만지고 난리가 났을 거다.
감염이니 뭐니 우리가 떠들어 봐야 알아듣질 못하기에 그랬다.
눈으로 미아즈마라는 게, 그러니까 병원균이라는 게 있다는 걸 보여 줬음에도 그렇다.
생각보다 인간은 직접 관찰한 현상보다도 더 강력하게 관념의 지배를 받는다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뭐…….
돌이켜 보면 전생에 보던 어른들 또한 ‘이대로 살다 죽을래’라는 말을 많이 하긴 하지 않았나.
세상이야 자꾸 변하지만 사람은 익숙하고 편한, 무엇보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 속에 살길 원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환생하고도 거의 20년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하게 된다.
“오…….”
“어떠십니까?”
이때가 제일 두근두근하다.
거울로 머리를 보여 줄 때.
혹 마음에 안 들면 어쩐단 말인가.
차라리 민 게 낫다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아…… 주여…….”
하지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우리 공작 전하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머리로 가져가다가 내 눈빛 한 번에 흠칫 놀라서 내려놓는 모습 또한 너무나 익숙하다, 이제는.
“어떻습니까?”
“고, 고맙네…… 어찌 이럴 수가…… 이렇게 되다니. 20년은 젊어진 거 같군그래.”
실제로 좀 젊어 보이긴 한다.
털이다 보니 색도 좀 진하고 해서 그런가…….
“동생아. 보기 좋구나.”
“아, 형님!”
“이거 이젠 나랑 몇십 년 차이가 나 보이는구만그래.”
“다시 제가 젊어 보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대화는 국왕 폐하께서 다시 돌아오자마자 형제들에게로 옮겨 갔다.
다들 입이 근질근질한 상황이었지만 감히 국왕 폐하와 공작 전하가 떠드는 데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더니만, 국왕 쪽이 나를 먼저 바라보았다.
“잠시 따로 얘기할 수 있겠나?”
나는 나도 모르게, 아마도 상당히 불경하게 느껴졌을 거 같은데, 국왕 폐하의 머리칼 쪽을 눈여겨보았다.
‘아무리 봐도 가발 같진 않은데……?’
내 눈썰미가 뛰어나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이 시대 가발 만드는 기술이 너무 조악해서 그렇다.
만약 한눈에 못 알아보겠다?
그럼 시력 검사해야 한다.
안경을 껴야 하면 끼는 게 좋다, 이 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백내장이 있다고 한다?
수술을 권유한다?
참수하고 도망치면 된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 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국왕 페하…… 윌리엄 4세와 단둘이 방 안에 있었다.
뭐 말이 단둘이지 경호원 격으로 붙은 병사 둘은 있었다.
다만 병사들은 표정 변화도 없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라기보다는 인테리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자네에 대해 도는 소문은 다 들었네, 피영시인.”
“영광입니다, 폐하.”
“주술사니 뭐니 하던데…….”
“저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소문은…….”
“하지만 용한 것은 필경 사실일 테지?”
“어…….”
이 양반이 설마 미래 같은 걸 점쳐 달라는 건가 싶다.
그런 거면 완전 나가리다.
“자네가 보기에 나는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 거 같나.”
“아.”
다행이다.
미래는 미래인데 수명이다.
이것도 뭐 정확한 예측은 불가하지만…….
적어도 지금 예정되어 있는 것보다 조금은 더 살게 해 드릴 수는 있을 거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