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3화(303/505)
303화 윌리엄 4세 [1]
수명이라…….
나는 진중한 얼굴이 되어 윌리엄 4세를 바라보았다.
동생인 아돌푸스 공작보다는 확실히 머리숱은 많지만 완전히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65년생이라고 했지?’
1965년이 아니라 1765년이다.
왕 출생 연도를 어찌 아느냐고?
누누이 말하지만 이제 나는 단순히 런던에서 활약 좀 하는 동양인 의사가 아니라 런던 유지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엄청 높거나 돈이 많거나 갱단 핵심 간부 정도는 된다고.
사실 전생에서는 대체 왜 사람들이 ‘인맥, 인맥’ 하는지 몰랐는데 한번 인맥 쌓아 보니까 알겠다.
오고 가는 대화의 내용부터가 좀 다르달까?
아무튼, 우리 왕께서는 벌써 67세? 정도가 되었다 이 말인데…….
‘나이가 엄청 많은 편인데…… 그렇다고 딱히 건강 관리를 한 거 같진 않단 말이지.’
67세.
21세기에서 67세면 과장 좀 보태서 청춘이다, 청춘.
특히 대개의 세월을 대학병원에서 보낸 내가 볼 때 60대는 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관리 잘한 분은 60대인데 운동 안 한 30, 40대 의사들보다 훨씬 체력도 좋다니까?
물론 아프게 되면 아무래도 의학에 있어서는 나이가 진짜 깡패이니만큼 훨씬 빠르게 소진이 되겠지만…….
허나 19세기에서 60대?
일단 보기가 힘들다.
대부분 돌아가셨으니까.
귀족이나 왕들은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 봐야 평균 50을 넘기기가 어렵다.
‘뭐…… 건강 관리를 했다고 해도 문제지.’
관리라는 것도 다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21세기에서 하는 관리조차 나중에 보면 좀 이상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19세기의 관리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것들이 많다.
실제로 와인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친구들…….
진지하게 와인은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다.
이 당시 와인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 납을 넣기도 하는데도 그렇다.
물론 알코올 해독 능력에 따라 하루 한 잔 정도는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미친놈들이 물 대신 술을 먹잖아.’
술을 물처럼 먹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진짜로 물처럼 먹는다.
일반 서민들 중에서 넉넉한 사람들은 맥주를 매일 2리터 이상 먹거든?
귀족들은 그걸 더 독한 와인으로 치환해서 먹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왕이다?
그중에서도 평생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내 눈앞에 서 계신 윌리엄 4세시다?
파티를 열었다 하면 와인은 기본에 웃음 가스에 요새는 에테르에 아편에 암암리에 돈다는 코카인까지 쓰고 있을 테니…….
‘지금 당장 뒈질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이 튀어 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설령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했다간 일단 나부터 당장 뒈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무리 내가 뭐…… 어? 대영제국을 위해 이 한 몸 불태웠다고 한들 왕을 모욕했는데 뭔 소용이 있겠나.
“수명이라는 게 그렇게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뭘 해야 하나?”
게다가 나는 점쟁이처럼 주절주절 입으로만 털 필요는 없다.
의사잖아.
19세기다 보니 제대로 된 검진이 불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전에 비하면 꽤나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우선 소변 좀 받아 오시겠어요? 여기, 좀 도와줘.”
“네! 교수님.”
우선 당뇨 검사다.
예전 같았으면 ‘대체 왜 소변을 보라고 하냐’, ‘이게 뭐냐’라고 했겠지만…….
다행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런던 상류층 사이에서 우리 병원에서 시행하는 소변 검사는 상당히 유명해진 지 오래였다.
윌리엄 4세께서도 모르고 계시는 건 아닌지 별말 없이 소변을 받아 왔다.
우리 숙달된 직원은 그걸 와인 잔 형태의 납 유리잔에 옮겨 닮고는 센터 내 정직원으로 있는 소믈리에 과장에게로 전달해 주었다.
아무리 내가 직급상 훨씬 윗사람이고, 사실상 소믈리에게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해 준 존재라 해도 일이 일이니만큼 엑스트라 일을 시킬 때는 미안하네 어쩌네 해야 했었지만…….
“여, 영광입니다…….”
이건 그냥 소변이 아니라 왕의 소변이지 않나.
19세기에야 그런 풍습이 사라지긴 했지만, 18세기까지만 해도 결핵 걸렸잖아?
왕한테 기도 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믿던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다.
미개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일반 서민들에게 왕권이란 신이 부여한 신성한 어떤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보면 될 터였다.
그만큼 왕에게 잘 보이면 좋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고 단데 안 달다고 하진 말고.’
‘네, 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믈리에 과장에게 속삭였다.
만약 여기서 달다는 판정이 나오면 큰일이다.
오래 못 살 테니까.
암만 인슐린 치료가 나왔다고 한들, 혈액 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는 치료가 정확하면 얼마나 정확하겠나.
게다가 나는 내분비내과 의사가 아닌 외과 의사 출신이다.
당뇨 그까이꺼 그냥 대애충 혈당만 내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완전 기본적인 질환 아닙니까! 할 수도 있겠는데…….
환자는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겠지만, 만약 의사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공부 좀 해야 한다.
이게 만만한 병이면 대한민국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뇨로 고통받겠냐.
“음…… 씁쓸하군요…….”
그 순간 우리의 소믈리에가 테이스팅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말만 저렇게 하는 건 아닌 게 확실한 것이, 인상 쓰는 게 찐텐이다.
“좋군요.”
“다행이군. 당뇨는 아니라는 게지?”
나는 국왕 폐하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속으론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나이다’라는 말을 애써 삼키면서였다.
사실 소변에서 단맛이 느껴진다는 건 혈당이 상당히 높다는 걸 의미하기에 그랬다.
그 말은 곧 혈당이 어지간히 높아도 소변에서 단맛이 느껴지진 않을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걸 생각해서 미리 인슐린을 맞추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인슐린이 개발된 이래 인슐린으로 독살을 시도하거나 시도에 그치지 않고 성공까지 한 사례가 상당히 많거든.
생판 모르는 나쁜 놈들이 이걸 그렇게 악용하는 것까지는 내가 막기 어렵겠지만 내가 내 손으로 하필 국왕을 시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음은…… 일단 여기 앉아 보시죠.”
“그러지.”
그다음엔 혈압을 재 보았다.
결과는 130에 80.
높기는 한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
진짜 높으면 뭔가 해 볼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가령 이뇨제 같은 거.’
이뇨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뇨 작용이 있는 식품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나.
커피.
그걸 진짜 진하게 타서 카페인 덩어리를 먹이면…….
탈수가 일어날 테니 혈압도 좀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나중에 실제로 실험도 하긴 할 텐데 그걸 왕에게 했다가는 아무래도 곤란해질 거 같다.
“좋군요.”
“그런가? 명색이 왕인데 너무 낮은 거 아닌가?”
“아니…… 아닙니다. 높을수록 좋다는 말은 낭설입니다.”
“그런가? 다들 다르게 말을 하던데.”
“폐하. 혈압을 정식으로 재기 시작한 것이 저 아닙니까. 제 말이 가장 신빙성이 있을 겁니다.”
“으음. 그래, 뭐…… 아무튼, 좋다니까, 좋군.”
나는 당뇨와 고혈압 검사를 한 후에도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보았다.
19세기에 검사할 것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질환이 아닌 내재 역량 검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내재 역량이 무엇인고 하면,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냥 신체 능력 보는 거다.
“앉았다 일어났다 해 보시고요.”
“헉헉.”
그러자면 필수적으로 운동을 시켜야만 한다.
19세기 왕이 언제 운동 비슷한 것을 해 봤겠나.
기껏해야 사냥이나 나가는 것이 다인데, 그마저도 말 타고 돌아다니는 게 다다.
물론 내가 해 보니까 승마도 만만한 것이 아니긴 한데…….
그것도 나이 들면서 점차 줄이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나는 왕께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직관하게 되었다.
‘나쁘진 않네. 하긴…… 타고난 면이 있겠지.’
다 시켜 보니까 나이에 비해, 시대에 비해, 관리에 비해 대단히 건강한 편이었다.
사실 왕까지 해 먹으려면 핏줄이 그래야 하긴 할 거 같다.
백날천날 픽픽 쓰러지고 하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겠어.
조선처럼 유교 사상이 있는 곳도 아닌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그런가? 그럼 얼마나 살 수 있겠나?”
하여간 검사가 끝나자, 땀에 젖은 국왕이 다시금 물었다.
뭐라고 답을 해 줘야 할까…….
아무리 입으로 먹고사는 나라고 해도, 왕이 수명을 묻고 있다 보니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
‘솔직히 한 5년 정도가 안전하지.’
60 넘긴 노인도 드물지만 70 넘긴 노인은 진짜 드물지 않던가.
제이미 경이나 대미언 경이 그렇긴 한데…….
간당간당하다, 이제.
더 살았으면 좋겠단 내 바람과는 별개로 그들의 수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는 말이다.
“자네도 몇 번 본 적이 있을 텐데, 빅토리아 공주 말일세.”
“아, 네.”
곤란해서 입을 잠시 다물었더니 국왕께서 입을 열었다.
이 양반이 일반적인 왕하고는 좀 다른 성품이라 다행이다.
해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어서 항해왕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좀 호탕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녀석이 이제 겨우 14세란 말이지…….”
“아,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하. 자네, 곧 작위도 받을 사람이 정계에 그리 어두워서야 쓰나.”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저는 그저 사람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을 뿐입니다.”
“소문대로구만. 좋아. 그래, 더 말해도 되겠어.”
윌리엄 4세는 내 겸손에 껄껄 웃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받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막 아부가 떨어지는데 그게 또 신명 나게 떨어지는 걸 보면 가끔 스스로에게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우리 조카가 18세가 되기 전에 내가 죽게 되면 6년간 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 공녀와 그녀의 내연남 존 콘로이가 섭정을 하게 될 거야. 대영제국의 앞날이 흔들릴 거란 말일세.”
“아…….”
이런 법이 있었구나.
섭정이라니.
빅토리아 여왕이라고 하면 유럽의 할머니나 대영제국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만 생각이 나서 그런가 섭정 같은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아니지…….
잠깐만.
‘섭정을 한 적이 없을 거야.’
내가 그래도…… 먼나라 이웃나라 애독자였단 말이지.
게다가 딱히 유튜브 말고 다른 취미 생활을 영위할 만큼 좋은 삶의 질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교수를 꿈꾸게 되는 순간 그렇게 되기 마련인데…….
그렇게 쌓은 잡지식의 편린 중 하나가 머리를 강타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전왕…… 그러니까 이 윌리엄 4세가 아마 빅토리아 여왕이 18세가 되고 얼마 안 돼서 죽었을 거야.’
그래, 기억이 난다!
돌아와서 처음으로 도움이 되는 역사적 사실이 떠오르는데 그게 하필 우리 왕과 연관이 있다!
그럼 나는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아주 잘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난 자신이 있었다.
역시 19세기로 하필 내가 돌아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