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5화(305/505)
305화 심폐소생술 [1]
“닥터 매튜!”
쓰러진 사람이 의사인 모양이다.
투덜거릴 때부터 그럴 거 같긴 했는데…….
꽤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윌리엄 4세께서 내 어깨에 얹으려 했던 칼을 회수하곤 우선 그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상대가 누구건 간에 죽을 거 같은 순간이 왔다면 하려던 일을 멈추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다.
아닌 척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기사가 무척 되고 싶었긴 했던 모양이다.
순간 누군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짜증부터 솟구쳤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수, 숨을 안 쉬어!”
“이런…….”
“주여…….”
하지만 나는 의사다.
그것도 스스로 아주 훌륭하다고 여기는 의사.
그렇다 보니 짜증도 잠시, 어느새 나는 몸을 일으켜 쓰러진 사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리스턴도 함께이긴 했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 것일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왜?
심폐소생술의 명확한 개념이 잡힌 건 20세기에 들어서 생긴 일이거든.
외과 중에서도 험악하다는 외상 외과를 했던 나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안다.
“폐하…….”
“죽은 건가.”
“네.”
“닥터 매튜…… 두통의 권위자였거늘.”
왕께서는 벌써 다가가 있었다.
옆에 있던 의사 중 하나가 매튜의 코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저어 대고 있었고.
아닌 게 아니라 매튜는 고통에 가득 찬 표정을 마지막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마…….
현시점에서는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거다.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라 했더니만.’
매튜와 두통 그리고 얼굴까지 매칭해서 보니 이 새끼 한번 본 적 있는 놈이다.
머리 아프다는 사람만 있으면 전기의자 앉히려고 안달 난 그놈이다.
설마 왕께서도 그 의자에 앉아 본 적이 있는 걸까?
지금까지는 사고가 안 났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 자리에 죽었다면 21세기쯤 되어서는 윌리엄 4세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죽음을 맞이한 왕이라고 도배되었을 거다.
스스로 고환 자르는 것도 슬프고 우스운 일인데 스스로 전기의자에 앉는 일은…….
“우리의 친구 닥터 매튜는…….”
지금 고인이 되어 가고 있는 매튜는 빈말로도 좋은 의사는 아니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옆에 있는 놈들도 아마 비슷한 놈들일 거다.
그러고 보니 닥터 토마스도…….
아, 까먹었을 텐데, 이놈은 중력 가속도기인지 원심 분리기인지 모를 곳에 사람 넣고 돌려서 강제 기절을 시키는 방법으로 두통을 치료하던…….
무려 리스턴조차 몇 번이나 기절시켰던 그놈이다.
“잠시만!”
오히려 이런 놈들이기에 지금 매튜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의사인지 윌리엄 4세에게 한 번 더 각인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놈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이런 놈들이 주변에 있으면 4년 아니라 한 달 안에 사망할 수도 있어.’
물론 역사 속 윌리엄 4세는 충분히 살다 가시긴 했다.
하지만 나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편 전쟁이 벌써 시작되지 않았나.
전쟁도 왔다 갔다 하는데 사람 수명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현명한 것 아닐까?
“응?”
“이놈!”
“주술사 놈이!”
“살인자!”
윌리엄 4세는 그저 놀라기만 했지만, 그 외에 다른 의사들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밥그릇 싸움에 더해 진짜 한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딱 나 욕하고 죽었다 보니 주술사니 뭐니 하는 말에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아니, 뭐…….
이건 저놈들이 볼 때 그럴 거라는 얘기다.
나 스스로 진짜 내게 어떤 숨겨진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건 의학자로서 할 만한 생각은 아니잖아.
“폐하. 제게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닥터 매튜를 살려 보이겠나이다.”
“응? 살릴 수 있나?”
“100%는 아닙니다만…… 노력해 볼 수는 있습니다.”
“폐하! 이 자는 주술사이지 의사가 아닙니다!”
내 말에 윌리엄 4세가 입술을 달싹거리는 순간, 의사 하나가 끼어들었다.
토마스 또한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아무래도 나와 같은 병원 소속인 데다가 최근 원장님이 대놓고 날 밀어주고 있으니 말을 아끼긴 해야 할 터였다.
“닥쳐라, 이놈! 어딜 감히 폐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끼어드느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쩌면 그냥 리스턴이 무서워서일 수도 있다.
나보다 한 20초 먼저 무릎을 꿇은 덕에 이미 기사가 된 그는 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것처럼 위엄 있는 목소리로 상대를 꾸짖었다.
그냥 목소리를 크게만 낸 게 아니라 내공이라도 섞었는지 상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사실 그 사람뿐 아니라 경비대까지 포함해서 간만에 열리는 기사 서임식을 구경 왔던 귀족들 그리고 위엄 넘치는 윌리엄 4세까지 한 발짝씩 리스턴에게서 멀어졌다.
“폐하. 제가 주술사라는 것은 낭설입니다. 비록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시술을 하긴 하지만 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 치료입니다. 무지렁이의 말에 현혹되지 마소서.”
“음. 하지만 이자는 죄인도 아닌데 시신을 함부로…….”
“시간이 없나이다.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진짜로 죽게 됩니다!”
“그, 그런가?”
“네, 폐하!”
내 말에 주변에서 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딱히 날 음해하려는 세력 쪽에서 흘러나온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편 쪽이다.
‘영혼이 떠나기 전에 붙들려는 생각인가?’
‘과연 피영시인이로구만.’
‘왜 자꾸 주술사가 아니라는 거지?’
근데 주술사란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 상황이긴 하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빨리 해야 한다고 하면 19세기인들의 눈에는 좀 그렇게 보이지 않겠나?
어찌된 게 내가 의학에 기반한 처치를 하면 할수록 오해가 쌓이는 느낌인데…….
“그런가? 그럼 일단 해 보게.”
“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무래도 윌리엄 4세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리스턴뿐 아니라 내게서도 반보 정도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면 대강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왕에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된 나라니.
그것도 어중이떠중이 왕도 아니고 대영제국의 왕인데.
“후…….”
하여간, 나는 드디어 환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맥을 짚어 보니 심장은 멎었다.
대강 계산해 봐도 대략 1분 이상은 멎은 상황이다.
혹 질식인가 싶어서 입을 벌려 안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또 손가락을 집어넣어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다.
‘입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모양이야.’
‘아…… 그런가?’
‘적어도 저놈은 그런가 보네.’
‘응?’
‘아까 저 친구 쓰러지기 전에 피영시인 욕하다 눈 마주치던 걸 내가 봤네.’
‘허어…….’
자꾸 이상한 대화가 들리는데, 무시하기로 했다.
가까이서 본 매튜는 배가 불뚝 나와 있는 데다가 나이도 꽤나 있어 보여서 그랬다.
심근경색이라면…….
그냥 심폐소생술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뭐……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률은 떨어진다.
인간 김태평이야 저들 속에 뒤섞여 잡담도 나눌 수 있고 어찌 보면 내 정적이라 할 수 있던 놈의 죽음에 기뻐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의사 김태평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훈련받았으니까.
“아니…….”
“옷을 벗겨?”
“폐, 폐하! 멈춰야 합니다!”
해서 나는 서둘러 옷부터 벗겼다.
몇몇 의사들이, 전에 갱에게 살해 위협을 들었던 놈까지 나서서 나를 말리려 했지만 실제로 가까이 오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갱보다 몇 배는 무서운 리스턴이 내 옆에 있는 데다가, 왕 또한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
“응?”
“지금 나 하는 거 잘 보고 있다가, 그대로 해 주시면 됩니다.”
“어…… 알았네.”
나는 그 사실을 다행이라 여기면서 동시에 옷을 벗겨 알몸이 드러난 닥터 매튜의 가슴을 꾹꾹 눌러 대기 시작했다.
나름 시대에 비해서는 체격이 좋은 편이지만, 그래 봐야 19세기 사람이었다.
꽉.
꽉.
그에 비해 나는 나름 헬스도 했고, 무엇보다 체중을 실어 누르는 방법에 도통한 인간이지 않은가.
외상외과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도 더 자주 흉부 압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에 그랬다.
심지어 나는 심장 옆으로 째서 손 넣고 직접 쥐어짠 적도 있을 정도다.
“어…… 평?”
“네!”
“뼈 부러지겠는데?”
“그럴 정도로 눌러야 됩니다!”
“통증으로 깨우는 건가……?”
“자,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았네. 역시 약하구만.”
그렇다고 해서 얘기하면서 누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리스턴이라면 좀 다르긴 하겠지만…….
심장 뛰는 걸 누르는 것만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로 흉부 압박이지 않나.
하다 보면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부러뜨린다는 생각으로 눌러야 그나마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되었다.
‘선배 중의 하나가 이렇게 살려 놓고 갈비뼈 부러뜨렸다는 이유로 고소당했지.’
거참…….
그런 거 생각하면 19세기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여긴 사람 죽어도 고소당할 일이 적으니까.
“저, 저…….”
“지금 우득 소리가…….”
“미친놈이…….”
“동양에는 부관참시라는 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놈이 설마…….”
비난이 잇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놈들 저주가 두렵지 않으냐?”
“결과를 보란 말이다. 지금까지 닥터 피영시인이 살린 사람이 몇인데!”
저쪽이나 이쪽이나 하는 말이 비슷하긴 한데…….
저쪽이야 일개 의사들이고 이쪽은 공작도 있지 않나.
“형님.”
“어, 알았네.”
무엇보다 내가 슬슬 지쳐서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하자,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뭔가 제대로 된 처치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점차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꽉.
리스턴은 눈썰미 좋은 사람답게 내가 하던 딱 그대로 꾹꾹 눌러 대고 있었다.
오히려 힘이 넘치는 사람이 좀 아껴서 누르는 것이다 보니 훨씬 일관된 깊이로, 일정한 속도로 누르고 있었다.
“좋아요, 형님.”
“음. 근데 이거 왜 하는 건가?”
심지어 그렇게 누르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더 친해지면 무림에 대해 운을 띄워 봐야 할 거 같다.
그게 아니면 판타지 속 오러를 익힌 기사일 수도 있다.
아무튼.
“심장이 펌프지 않습니까? 혈관이라는 수도로 피를 공급하는.”
“아, 그렇지.”
“지금 멈춘 심장을 대신해서 형님이 쥐어짜 주고 있는 겁니다.”
“아…… 아하. 그래서 계속 누르는 게 아니로구만?”
“네. 피가 다시 들어와서 심장을 채울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근데 그럼 이걸 계속해야 하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보통 젊은 사람 같으면 30분 정도까지도 누르긴 한다.
하지만 닥터 매튜는 내가 잘은 몰라도 50대다.
21세기 50대도 아니고 19세기 50대면 이미 한 발은 관짝에 걸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 10분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애초에 내 체력이 그 이상 버틸 수도 없을 거 같고.
아무리 리스턴이 괴물이라 해도 이걸 몇 분씩 꾸준히…….
‘꾸준히 하네?’
무슨 CPR 기계 같다.
“형님, 잠시만.”
“응?”
그렇게 5분 넘게 꾹꾹 눌렀으니 확인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해서 맥을 짚었고, 나는 빙그레 웃을 수 있었다.
“심장이 다시 뛰는군요.”
“허…….”
그런 나를 보는 윌리엄 4세의 표정 속엔 단지 감탄만 들어 있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