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8화(308/505)
308화 이건 그런 이유로 할 만한 게 아닌데요…… [2]
포경수술을 뭘 위해서 한다고?
이 사람들이 미쳤나?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을 잊게 되는 법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는 걸 19세기 와서 실감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턴 걸렸다.
“아, 포경.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
리스턴은 이름에 스턴이 들어가서 그러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날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게 말이야. 성병도 예방할 수 있다던데?”
“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이가 어지간히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말이긴 한데…….
이 비슷한 말이 이번에도 통할 거 같다.
충격은 또 다른 충격으로 잊힌다.
성병이라니?
“뭔 소리예요?”
“하하. 나도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했는데…… 논문이 나왔네. 아주 신빙성이 있는 논문이야.”
“논문……이요?”
“그래. 우리도 우리가 일궈 낸 업적들, 그거 다 논문으로 내고 있지 않나.”
“그야 그렇긴 하죠.”
황당한 내용과는 별개로 서유럽이 확실히 선진국이긴 하다.
19세기에 벌써 논문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 말은 곧 학술 모임이 있다는 뜻이지 않겠나?
예나 지금이나 학술 모임이라는 게 딱히 돈이 되지 않는 일인데 유지가 되고 있다는 건, 후원이 있다는 소리였다.
각 회원들이 내는 회비도 있긴 한데 역시나 주된 재원은 귀족들이나 사업가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이야 지식 자체도 좀 어설프고 그 지식마저 관념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삽질의 연속이지만, 그거 중에 쓸모 있는 게 튀어나와서 인류가 진보하게 된 거 아니겠나?
“닥터 조나단이라고 있네. 아주 젊은 친구인데…… 요새는 자네 영향인지 10대, 20대 할 거 없이 위대한 과학자들이 생겨나고 있네.”
“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리스턴의 입은 쉬지 않았다.
나도 꽤나 인싸가 되긴 했지만 인종적인 이유로 또 체력적인 이유로 리스턴만큼 모임에 활발하게 나가고 있진 않은데…….
그래서 그런가 리스턴이 나보다 훨씬 최신 정세에 밟은 느낌이다.
뭐 꼭 밝아야 하나 싶기는 하다.
어차피 진짜 중요한 얘기는 제이미 경이 오는 병원 회의 때 다 듣거든.
그 외에 도는 소문들은 대개 가십거리다.
하지만 10대, 20대 학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건 뭐 나쁜 일은 아닌 거 같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관념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아무튼, 그 친구가 유태인과 유태인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 성병 유병률을 조사했네.”
“아…… 그건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일 거 같은데요?”
“응? 자네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나?”
“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유태인.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인데, 실제로는 거의 히브리 민족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히틀러나 독일인들이 이 유태인을 혐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그게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태인을 미워하는 것 같다.
흑사병이 한창 돌 때는 유태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도 같이 돌아서 그때 유태인들이 엄청 맞아 죽었다더라고.
일제 강점기 관동 대지진 때 벌어졌던 조선인 학살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이런 말 하면 좀 미안한데, 유태인 중에 밉상이 있긴 하지…….’
조선인은 정말 억울했다.
그냥 나라에 힘이 없어서 집어삼켜진 것이니, 약자 혐오에 당한 거 아니겠나?
물론 유태인들도 나라가 없어서 생기는 설움이긴 했을 텐데…….
종교 자체가 자기들만 하나님의 자손이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선지자 중 하나일 뿐이니 그걸 믿는 이방인들은 천국에 못 갈 거다’라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사람들도 있더라.
오죽하면 우리 훌륭하신 셰익스피어마저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이자 최악의 빌런인 샤일록을 유태인으로 설정했겠나.
셰익스피어가 16, 17세기를 풍미했던 대작가라는 걸 감안하면 유럽의 유태인 혐오는 상당히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뭐…… 그런 선민의식을 괜히 갖는 건 아니긴 하지.’
유교 보이에 속하는 내가 볼 때는 19세기 일반적인 유럽인들의 생활보다는 유태인의 생활이 더 안전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율법에 지배를 받거든.
그리고 그 율법이라는 게 진짜 빡세서, 어지간한 의지로는 지키기가 어려울 정도다.
근데 이 유태인들은 이 종교로 묶여 있는 데다가 실제 그 종교의 지배를 아주 강하게 받다 보니 의지가 강해진 건지 아니면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대개 잘 지키는 것 같다.
일부일처제 및 혼전 순결과 같은 부분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까 당연히 성병 유병률이 낮긴 할 거야.’
진짜…….
당연한 얘기다.
성병이라는 게 성병에 걸린 사람과 성적인 접촉을 해야 걸리는 거 아닌가.
그러니 평생 한 사람하고만 한다면 성병 걸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더니만! 글쎄 유태인들이 훨씬 성병 유병률이 적다더구만!”
“아…… 그래요?”
근데 그 와중에 적다는 걸 보니까 걸린 놈들이 있긴 한 모양이다.
율법을 어겼다 이 말인데, 그래서 놀랐더니 리스턴이 오해를 했는지 껄껄 웃었다.
“그래! 이게 왜 그렇겠나!”
“율법이…….”
“그래! 율법! 그놈들 율법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나.”
“네?”
“그 할례 때문에 성욕도 좀 낮아 보이잖아. 확실히…… 파티나 이럴 때도 몸 빼고 말이야.”
“그…….”
성욕은 아니고 율법 때문인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리스턴이 너무 급하게 말을 잇고 있어서 나는 입을 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니, 지금은 아예 없었다.
“아무튼, 이번에 보니까 할례가 성병도 예방하는 모양이지 않나!”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가능하지! 자네 안 했지?”
“안…… 했죠.”
유대교가 아니니까 안 했다.
당연하다.
그거…….
마취도 못 했던 시절인데 그걸 왜 하냐.
심지어 소독도 안 하고 자를 거 같으니…….
모르긴 몰라도 포경수술하다가 죽는 사람도 꽤나 있었을 거 같다.
“아니, 형. 형 뭐 하는 거예요.”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네, 이 미친 사람이.
이 시발…….
막무가내로 바지를 내렸다.
아, 내 건 아니고 자기 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다.
“보게. 나는 안 했거든? 여기 이렇게 막…… 쭈글쭈글하지?”
“안 보고 있거든요?”
“보게.”
“아니, 시발. 싫다고!”
“보게!”
“으아.”
눈을 감았는데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리스턴이 두 손가락으로 내 눈을 쫙 벌리자 보기 싫은 것도 눈에 담게 되었다.
망할…….
“자, 쭈글쭈글하지?”
“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빨리 이 상황을 넘기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피할 수 없는 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나?
어떻게 해도 이걸 즐길 수는 없을 거 같지만.
“블런델! 우리 평이가 들을 준비가 되었네!”
“아, 그래!”
해서 눈을 뜨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들어왔다.
문을 잠가 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리스턴…….
당당하다, 이건가?
하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거 같다.
그에 비해 블런델은 조금 더 부끄러워해야 할 거 같은데…….
“자 보게.”
바로 내린다.
진짜 미친놈들 같다.
“차이를 보게나. 여긴 뭔가 끼어들 데가 없어 보이지?”
“하…….”
보라니까 보는데…….
정말 너무 싫다.
그래서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입만 뻐끔대고 있으려니까 리스턴과 블런델이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다른 제자들도 다 들어와서 우리 셋만 있는 것도 아닌데 바지도 안 올리고 있다.
듣다 보니 왜 그러는지 알 거 같긴 했다.
“내가 의학계의 프론티어 아닌가.”
블런델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혈액형도 모르면서 십시일반식 수혈도 했었고…….
러스트 벨의 원형도 이 사람이 만들기도 했고…….
말만 들으면 되게 멋진 말이기도 하다.
의학계의 프론티어.
덜렁거리면서는 무슨 말을 해도 멋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는 게 문제긴 한데.
“그래, 이 친구가 프론티어지.”
“그 소식 듣자마자 바로 받았네.”
“아, 걱정 말게. 내가 해 준 거야. 어떻게 하는지 대강 구경했다가, 마취랑 소독까지 싹 다 제대로 해서 해 줬지.”
“진짜 안 아프더군. 오히려 하고 나서 며칠간이 고통이었어.”
둘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지 진중한 얼굴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 거 같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두고 보고 있기가 좀 흉악해서 그렇지…….
어찌 되었건 미쳐 버린 실험 정신으로, 이번에는 제자가 아닌 자기 몸에 실험을 한 느낌이지 않나?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실험을 통한 토의라는 얘기가 된다.
“신기한 건…… 확실히 성욕이 줄었다는 거야.”
“그래, 블런델이 뭐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지 않나?”
“줄었다고요?”
“그래. 확실히 줄었네.”
“이 친구가 앞으로 거기에 쓸 에너지를 올바른 것에 쓴다고 생각해 보게. 앞으로가 기대가 되지 않나?”
“음.”
줄었다고?
성욕이?
나 빼고 나머지는 다들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논문이 나왔는데, 그 논문이 하필 통계적 결과로 보이는 것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싸해 보이지 않겠나.
나야 논문을 볼 때 비판적으로 보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고 또 무엇보다 성욕의 메커니즘 또한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제대로 된 팩트가 보이는 상황이지만, 배경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와 같이 사고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잘못된 일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다.
여태 보아 온 것만 해도 알 수 있는 게, 이 사람들이 나보다 결코 멍청하지 않잖아?
진짜 그냥 시대의 한계 때문이다.
‘성욕이 준 건 일단 아파서지. 고추 아픈데 성욕이 들끓으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겠나……?’
그건 아니지.
‘게다가…… 세상엔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지.’
위약 효과라고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하다.
실제 병이 나아 버리기도 하지 않나.
그게 성적인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는 연구도 있다.
특히 반영구적인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 버렸다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 땐 뇌가 자동적으로 내가 저지른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어 있는 법이거든.
안타깝지만 우리 블런델은 지금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거 같다.
‘근데…… 이걸 어떻게 교정한다……?’
교정이 되기는 할까?
안 될 거 같다.
-뭐 인마? 소용이 없다고?
나는 새꺄 포피도 잘랐는데!
이 지랄 하면서 싸움 벌어질 게 뻔하다.
게다가…….
‘정관 자르는 것도 아니고 포피 좀 자르는 건데…….’
이게 큰 문제가 될까?
자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잘랐다는 거잖아.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싸하네요.”
내가 19세기 런던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른 채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