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0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09화(309/505)
309화 이건 그런 이유로 할 만한 게 아닌데요…… [3]
“됐네.”
“그래. 평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런 것이지.”
빈말로도 인상이 좋다는 말은 할 수 없는 사나이 리스턴과 그 덕에 가끔 인상이 좋다는 오해를 받는 블런델은 현시점 런던 최고의 명의라 할 수 있는 김태평을 집에 보낸 후에도 회의를 이어 나갔다.
말이 회의지 사실상 작당이나 다름없었다.
“포경수술…… 이거 우리가 하면 훨씬 잘할 수 있을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한 일이지.”
블런델의 말에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잘할 수 있어서 그랬다.
애초에 소독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다고 할 만한 병원이 여기 말고 더 있나?
암만 미아즈마니 뭐니 떠들어 대면 뭐 하나.
여전히 다른 놈들은 제 좋을 대로 취사 선택해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일례로 군 야전 병원은 거의 뭐…….
미아즈마 천국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이번 청과의 전쟁이 워낙에 일방적이었다 보니 김태평, 리스턴 선에서 다 해결이 되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사망자가 대폭 늘어났을 것이 뻔했다.
“그럼 포경수술의 효과에 일단 성욕 억제랑 성병 예방이 있는 거지?”
“그렇지. 수술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런 효과가 있다니…… 거참…… 이 좋은 걸 유대인 놈들만 하고 있었다 이거지?”
“괜히 그 새끼들이 욕 먹는 게 아니라니까?”
“하긴…… 그런 심보니 흑사병 때 우물에 독을 풀었겠지.”
리스턴은 의사가 할 만한 소리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말도 함부로 해 댔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블런델과 제자들뿐이었으니.
아니, 아마 광장에서 했다고 해도 별일은 없었을 터였다.
실제로 유태인들은 엄청 미움받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런 주제에 유태인들의 할례인 남성 포경을 들고나온다는 게 좀 이율배반적인 일로 여겨졌지만, 19세기는 원래 혼돈의 시기이지 않은가.
“그래? 피영시인이?”
“허투루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흠…… 그 정도인가?”
“예끼 이 사람! 대머리도 치료하는 사람일세!”
“아…… 그럼 뭐…… 진짜겠구만그래?”
그렇다 보니 대포경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형님 이게 다 뭡니까……?”
나는 오랜만에 센터가 아닌 본원에 출근한 참이었다.
별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원장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그랬다.
엄청 바쁜 와중에 이렇게 여유가 나게 된 것은 다 우리 제자들 덕이라 할 수 있다.
콜린, 앨프리드, 조지프…….
거기에 더해 최근에 합류한 똘똘이 존 스노까지.
녀석들이 당뇨 치료를 어느 정도 담당해 주고 있는 데다가, 탈모 치료 후 후처리까지도 담당해 주고 있는 덕이라 할 수 있다.
“아, 이거.”
함께 온 리스턴은 내 말에 곧장 답하는 대신 허허 웃었다.
옆에 있던 원장님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뭔 놈의 환자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 않나.
우리 센터야 당뇨로 돈을 꽤나 잘 벌고 있긴 하지만, 암만 귀족 대상 영업이라고 한들 치료할 수 있는 대상의 제한이 있다 보니 진짜 큰돈이 되진 않았다.
한창 마취제 나오고 팔다리 신들린 듯이 잘라 대던 때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좀 줄었다고 들었다.
역시 수술이 짱이다 이건데, 최근 들어 소독의 개념이 그래도 번지면서 절단술이 필요한 경우는 많이 줄었거든?
만약 이 환자들이 다 수술 대상자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환자들이 딱히 아파 보이는 사람이 없는데?’
위화감이 확 몰려오고 있었다.
단지 안 아파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아, 그리고 왜 다 남자지……?’
그래.
성별이 치우쳐져도 너무 치우쳐져 있다.
해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아닌 원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포경수술 대상자들이네. 덕분에…… 요로결석 수술 대신 저것만 하게 되었어.”
“어…… 포경수술이요? 그걸 저렇게 줄을 서서……? 아, 설마.”
“자네가 확인해 주지 않았나? 성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면서! 실제로 그런 거 같다네, 이거. 대박이야.”
“그…… 음.”
성병 예방이라.
그게 되겠나?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될 수도 있긴 하다.
회상하기 끔찍하지만 리스턴의 쭈글쭈글한 끝과 블런델의 매끈한 끝을 미루어 보면…….
아무래도 평소 염증의 정도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나?
21세기야 늘 깨끗이 씻을 수 있는 환경인 데 반해 여긴…….
청결하곤 거리가 머니까 그건 될 거다.
‘그럼…… 뭐…… 이게 소독이랑 마취만 제대로 되면 큰 문제는 없을 거 같긴 한데.’
물론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포경수술은 아니고 보형물 삽입인가를 했던 것 같긴 한데…….
하여간 농양이 거기에 차서 반쯤 잘랐더랬다.
집도의는 어떻게 됐냐고?
주차장에서 살해됐다.
수술 잘되면 환자에게 고가의 양주도 선물 받곤 하는 게 비뇨기과인 만큼 안 되는 경우엔 목숨이 위협받는 과라는 걸 그때 확인했다.
‘19세기라면 그런 일은 없을 거 같고…… 어쩌면 공중보건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성욕 억제는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인구 소멸했지.
다들 포경수술을…….
어……?
‘너튜브에서 봤는데? 우리나라 연애율…… 나락 간다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도 못 하지 않았나?
모쏠 수준은 아니었지만 인싸 녀석들 기준으로 보면 거의 안 한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출산율만 봐도 우리 나락인데……?’
이게 진짜……?
“평, 뭔 생각 하고 있나?”
뭐 의사라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지 않나.
다른 과 일이면 아예 알 수가 없다.
포경수술 같은 건 진짜로 모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 분야에 너무 열심을 낸 탓이라고 해 두자.
“아니, 뭐. 잘되고 있는 거 같아서요.”
“그렇지? 하하. 말 바꾸면 큰일이네. 벌써 귀족들도 많이 받았어.”
“아…… 그래요?”
“당연하지. 성병에 누구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계층 아니겠나.”
“아…… 하긴.”
우리 대영제국 귀족분들.
겉으로는 뭐 세상 경건한 척 다 하면서 뒤로는 별짓 다 하는 놈들이지 않나.
아니…….
전에 잠깐 런던 사교계 뒷소문 들었다가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리저리 바람피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바람피우는 대상이…….
‘뭐…… 라이언 긱스는 장모님이랑도 바람피웠으니까.’
영국 놈들이 원래 그렇긴 한가 보다.
아무튼, 그런 놈들이니만큼 성병이 만연할 수밖에 없긴 한데…….
그걸 수술 한 방에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면 혹하지.
유태인이 밉지만, 그들의 성병 유병률이 낮은 건 또 팩트니까.
‘그래…… 나쁠 건 없지.’
성욕 부분마저 자신이 없어진 마당인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게다가 이 기회에 본원 의사들도 소독 개념에 익숙해지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게 되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먼저 본원에서 큰돈 벌면 나한테도 부스러기가 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건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보아 온 사람들이라면 다 인정할 텐데 진짜 나 한 몸 잘되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 오직 의학의 진보를 위해서 이러는 거다.
“문제는 우리 병원만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세.”
“다른 곳도…… 하긴 그 수술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그래. 마취제도 특허 낼 수 없던 물건이고 말이야.”
“그렇긴 하죠.”
마취제에 특허를 낸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지만 안 될 일이다.
존재한 지 한참이니까.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다 쓰고 있다.
절단술이 유행이던 시점에는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 봐야 절단술은 리스턴이 세계 최고니까.
하지만…….
포경은 이거 뭐 가위로 툭 하고 자르는 건 아니겠나?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나도 책 몇 번 보거나 남들 하는 거 보면 바로 할 수 있을 거다.
“어려운 수술이 아니다 보니…… 환자들을 이리저리 뺏기고 있어. 성병 예방이야 각계각층에 모두 매력적인 일이니까.”
“뭐…… 그래도 환자가 진짜 많은데요?”
“하하. 난 원장이지 않나. 이까짓 것에 만족해선 안 되지. 그래서 연구를 더 하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충 맞장구를 쳐 주고 있으려니 어느새 식당이었다.
요새 한창 핫하다는 식당이긴 한데 별로 기대가 되진 않았다.
막말로 엄마가 해 주는 김치전에 맨밥 먹는 게 런던 시내 어디를 가서 먹는 거보다 훨씬 맛있거든.
그래서 내내 심드렁했는데 연구라는 단어가 내 심금을 울렸다.
“연구……요?”
21세기 의학에 있어 연구는 사실상 필수다.
특히 교수 직함 달고 있는 사람에게 연구는 안 하면 안 되는 무엇이다.
하지만 19세기 분들은 제발 그런 거 안 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막말로 이번 포경수술 사태도 웬 미친놈이 유태인과 일반인 사이의 성병 유병률에 대한 ‘연구’를 해서 벌어진 거 아닌가.
원장님이야 위그노 출신이고 부정할 수 없는 엘리트지만 이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올 신박한 아이디어 또한 문제가 있을 게 뻔하다.
“그래, 연구! 하하. 이 포경이라는 게 단순히 성욕과 성병 예방에만 효과가 있을 거 같진 않단 말이지.”
“네에……?”
이거 두 개만 해도 대박 아닌가?
막말로 포경수술이라고 해 봐야 귀두 덮고 있는 포피 자르는 게 전부잖아.
고작 그거 했는데 저런 효과가…….
‘없겠군…….’
갑자기 회의적이게 되는데, 이제 와서 말을 돌릴 수는 없을 거 같다.
원장님뿐만 아니라 리스턴을 포함한 모두가 다 눈알이 돌아가 있어…….
“지금 동런던 병원에 저명한 소아과 의사 나다니엘을 필두로 해서 연구를 진행 중인 게 있거든. 아까 환자들 봤지?”
“봤죠.”
그 많던 사람들이 죄다 포경수술 대기자였다니.
진짜 깜짝 놀랐다.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아마도.
“다 어른뿐이야. 유태인들은 생후 7일인가 8일 만에 한다는데…… 아쉬운 일이지.”
“아쉬워요?”
애들 대상으로 하면 아무래도 더 어렵지 않겠나?
일단 더 섬세해야 하잖아?
마취도 못 할 거 같은데?
아직 애들 대상으로는 안정성이…….
‘아니, 아니지.’
아프다고 말 안 하니까 통증을 못 느낄 거라고 주장할 놈들이다, 이놈들.
“신생아는 통증을 못 느낀다네. 잘 알지 아나.”
이것 봐.
이게 런던 지식인라는 사람의 주장이다.
“그때 바로 해 버리면 깔끔하지. 약도 안 써도 되고. 자네도 알다시피 드문드문 마취제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단 말일세.”
“그…… 그래요. 그렇다고 해도…….”
“하하, 들어 보게. 나다니엘이 명의라니까. 자네도 아마…… 그래, 전에 리스턴이랑 같이 저기 뭐야…… 수도원! 거기 가 봤지.”
“아…… 수용소요?”
“수도원이지. 거기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인데.”
“아무튼, 거기가 왜요?”
나는 진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원장님을 바라보았다.
사고의 흐름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랬다.
포경이랑 수용소가 뭔 상관이지.
“거기 가면 간질 환자들이 꽤나 있다네. 귀신 들렸다는 말이 있지만 귀신이라…… 믿기 어려운 일 아니겠나?”
“그건 그렇죠.”
용케 옳게 된 말이 나온다 싶었지만…….
“그걸 포경수술이 예방할 수 있을 거란 연구가 진행 중이네.”
“네?”
역시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