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화(31/505)
31화 웃음 가스 파티 [4]
“수술?”
리스턴 박사님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이 무슨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영 이상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그것도 어색한 곳을 응시하면서였다.
“네, 수술이요.”
이건 좋은 사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겠나.
내가 저렇게 생겼다면 평생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을 거다.
알아서 발발 길 텐데 뭐하러?
허나 로버트 박사님은 지금 이 순간 분명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잠깐…… 음. 그거…… 위험한 가스만 아니면…… 아니지, 위험할 거 같진 않은데…….”
거기에 더해, 마치 내 존재를 잊은 것처럼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야 혼잣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긴 하겠지만…….
여긴 19세기 영국이지 않나.
마초라는 말도 이곳 문화를 설명하는 데는 좀 부족함이 있었다.
아니, 진짜로 죽을 것 같은 짓을 그놈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는 시대라니까?
그중에서도 거의 뭐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인데, 약해 보이는 혼잣말을 이어 나가고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빨아 본 것만 벌써 너덧 번은 되는데. 흠…… 으음…… 웃음 가스를 이용해서 수술이라…… 으음…….”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슬슬 좀 지겨워지려는 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려니 교수님이 내 어깨를 잡았다.
“아, 아야. 아파요.”
“이거 실험은 혹시 해 봤나?”
“네? 아뇨. 그럴 거 같다는…… 아야. 너무 아픈데요.”
“아아. 그래.”
와.
무슨 사람 손이 갈고리도 아니고 이렇게 아프냐.
나는 로버트 박사님이 놔준 뒤에도 잠시 어깨를 주무르고 나서야 신음이 아닌 말을 할 수 있었다.
100% 멍은 들었다.
하여간 더 시간을 지체하면 다른 곳에도 멍이 들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입을 놀렸다.
“이거 생각나자마자 교수님한테 온 겁니다.”
“그래? 흐음. 실험을 해 봐야겠는데.”
“아, 네.”
실험이라.
그래, 역시 교수랑 얘기하길 잘했다.
연구비가 있을 테니까 실험용 쥐를 사 와서…… 이거 마시게 해서 뭐라도 해야겠지?
용량을 계산하려면 체중계도 있어야 하고 부피도 재야 하고, 무엇보다 이 가스가 들어가는 양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와…… 어림잡아도 돈이 이거…… 한두 푼으로 될 일이 아닌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것 같았다.
“자네가 해 보겠나?”
“네?”
원래 의사라는 족속들이 그렇지 않나?
개원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돈만 생각하면 머리가 툭 멈추기 마련이었다.
나야 애초에 그런 게 싫어서 대학 병원에 남았으니 더더욱 그런 편이었다.
지금도 잠깐 돈 생각한 것만으로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참에 ‘자네가 해 보겠나’라는 말이 나왔다.
“저야 시켜 주시면 감사하지만.”
“오. 그렇게 해 주겠나?”
돈 계산하는 것보다야 실험하는 게 낫지.
아무렴…… 쥐 가지고 뭘 해 본 건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명색이 외과 의사다 보니 손은 섬세한 편이다.
아마 지금도 허벅지 동맥 끊었다가 잇는 것 정도는 루빼(수술용 확대경) 없이도 될 거라 확신했다.
이 몸이 여러 가지로 튼튼해서 마음에 드는데, 그중에서도 눈이 좋거든.
“좋아. 의학은 자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을걸세.”
“네, 희생이요?”
희생이라니.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실험하느라 시간 내는 게 희생이라면, 로버트 당신 너무 관대한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시대가 아니고…….’
일단 로버트 박사는 21세기에 있었어도 뭔가 착취할 것 같은 사람 아닌가?
아직 한 번도 착취당해 본 적은 없지만 인상이 그냥 좀 그랬다.
덩치도 그렇고.
우선 블런델 박사님 같은 동료들도 다 털리고 있지 않나?
그러니 이 인간이 말하는 희생은 진짜로 희생일 터였다.
‘미친놈이 설마 내 다리 자르려고……?’
말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엔, 이 시대는 끔찍한 야만의 시대였다.
로마 시대에도 이러진 않았을 거 같은데…… 19세기는 어찌 된 일인지 그랬다.
“아니, 잠시만요!”
“왜 그러나.”
공포가 온몸을 잠식했다.
이대로 뒈질 수는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문고리를 쥐고 있는, 아무래도 칼을 가지러 가는 게 뻔해 보이는 로버트 박사님을 잡았다.
박사님은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눈을 마주했다.
‘잘못하면 여기서 죽는다…….’
호랑이를 본 적은 없지만 이 눈만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나운 인상이었다.
“무, 무슨 희생인지.”
“아…… 자원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무슨 자원이냐고.
실험하는 거면 내가 얼마든지 하지.
이 시기의 그 누구보다 임상 시험은 잘할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대상이 나라면…….
그건 안 될 일이지.
정말 안 될 일이야.
‘백번 양보해서, 한쪽 다리 정도는 없이 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자를 때 살 수 있을까?
살 수 없을 터였다.
나는 그렇게 강한 인간이 아니라고…….
내 백혈구와 항체는 저 인간의 칼을 견딜 수 없을 게 뻔했다.
“무슨…… 자원을…….”
“하하하! 다리라도 자르겠다고 할 줄 알았나!”
내 눈에 얽힌 공포를 읽어 냈는지, 교수님은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그 웃음을 보다 보니 살짝 안심이 되었다.
하긴, 내가 좀 심했지?
사람 다리를 막 자를 리가 있나?
게다가 저렇게 웃고 다시 자르겠다고 할 정도로 또라이는 아닌 것 같았다.
해서 애써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교수님이 웃음을 뚝 멈추고 말했다.
“이를 뽑을 걸세. 하하. 이는 많지 않나. 하나쯤 없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아.”
와…….
이 미친놈이…….
지금 사람 생니 뽑겠다고 하는 거지?
의사 맞냐?
‘괜히 있는 조직이 어딨냐…….’
너 교회 다니는 사람 아니냐?
의사 아니더라도…… 응? 하나님이 괜히 만든 조직이 있을 리가 없냐고 생각해야 마땅한 시대 아니냐고.
식전 기도 같은 건 대체 누구한테 드리는 거냐.
설마 악마 숭배자냐?
“하하, 긴장하지 말게.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다면 아프지 않을 거야. 아니라면 아프겠지만.”
통증을 얘기하기 전에…….
남의 이 뽑겠다고 하면서 처웃지 말라고…….
이런 말을 이 인간 면전에 대고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그렇게까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 병원 교수 앞에서도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했는데…….
‘그렇다고 이가 뽑힐 수는 없어…… 돌아라, 머리머리!’
그렇다고 침묵하고 있다가 웃음 가스 마시고 이까지 뽑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나는 어쩐지 신나 보이는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굴리고 또 굴리다 보니, 이 사람들에게 나는 조선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아니, 난 조선 사람이 맞았다.
‘유교. 유교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후후후후.
그래, 이거.
이거야!
“교수님.”
“응?”
“제가 조선 사람 아닙니까.”
“그렇지. 그거야 알고 있네.”
나는 걸음을 빨리해서 옆으로 향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했다.
이 인간은 진짜 크니까.
“저희 조선에서는 효를 아주 중요시 합니다.”
“우리도 그렇다네.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그…… 저희가 중시하는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예를 다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개념입니다.”
“그게 뭔 소리인가?”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걸음도 멈췄다.
나라도 그럴 터였다.
이제 막 의학의 위대한 진보를,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딜 참인데 자꾸 토를 달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 걸음, 내가 떼게 한 거 아닌가.
나는 자격이 있었다.
적어도 생니 안 뽑힐 자격은 있다고.
“아…… 그러니까, 부모에게 받은 건 다 소중히 해야 한다?”
“네.”
“그럼 머리카락은 왜 잘랐나?”
“네?”
하 씨.
어렵게 설명을 했더니 의외로 너무 잘 알아들어서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털기 시작한 입이지 않나.
조선 사람을 나 말고 알고 지낼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털기로 했다.
“머리는 다시 자라지만, 이는 다시 안 자라지 않습니까. 이건 그야말로 제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고 볼 수 있죠.”
“비과학적이로구만.”
“하지만 저희의 믿음은 이러합니다. 비성경적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으음…… 흐음. 뭐…… 그렇다면 알겠네. 자네 아이디어로 인한 영광을 굳이 마다하겠다면 나도 더 권하진 않겠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응? 아니, 아닐세. 아이디어가 좋아. 게다가 자원할 사람은 쌔고 쌨네.”
쌨어요?
그럴 리가 있나…….
생니를 뽑는 건데.
드르륵.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강의실이었다.
블런델이 수업 중이었는데, 강의 중에 문이 열렸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누…… 아.”
하지만 로버트 리스턴은 아주 훌륭한 분노조절장애 억제제 아닌가.
블런델은 놀라운 속도로 분노를 가라앉히곤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여기 평이 아이디어를 하나 냈네.”
허나 날 볼 때는 좀 오묘한 얼굴이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했는데 여러모로 귀찮긴 하지 않았나?
지금 보니 방금도 병실에 다녀왔는지 손이 벌겠다.
화가 안 나면 좀 이상한 일일 터였다.
물론 수술하기 전도 아니고, 환자 진료하기 전에는 비누만 써도 되게끔 지침을 변경할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일단 모두가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박히기 전까지는 딱 보기만 해도 티가 나는 이 방법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웃음 가스. 다들 알지?”
“그렇지. 알고 있네. 그것도 모르겠나.”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말을 이었다.
“이거 마시면 통증이 없어지는데…… 그걸 수술 시에 사용하면 어떻겠냐는 얘기일세.”
“하하하하! 말이 되나! 그게 나온 지가 벌써 몇 년이나 됐는데…… 그게 되면 벌써 썼지!”
“그래서 써 본 적이 있나?”
“없네.”
“실험은?”
“없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말게. 무서워.”
블런델이 그 말에 껄껄 웃다가 바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세로 강의실을 제압한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해 보자 이거지. 이걸 마시고 이를 뽑으면 되지 않겠나?”
말이 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세상에 실험을…… 다짜고짜 사람한테 하는 실험이 어딨냐…….
그것도 이를 뽑아?
미친놈들아.
“아하. 이를?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렇지. 이는 아프니까. 뽑는다고 별문제가 생기지도 않고.”
“그렇지, 그렇지.”
내 생각과는 별개로, 두 저명한 의과 대학 교수는 이 뽑기에 대한 토의를 이어 나갔다.
“자, 그래서 말인데. 자원할 사람 있나? 의학의 진보에 기여할 기회일세!”
아니, 토의가 아니라…….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미친 짓거리?
“저요!”
“저요!”
물론 이걸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 모양이었다.
다들 손을 드는데, 그중에는 내 절친 조지프도, 친애하는 선배 앨프리드도 있었다.
‘하지 마…… 미친놈들아…… 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