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0화(310/505)
310화 이건 그런 이유로 할 만한 게 아닌데요…… [4]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 뭔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이 멋져서 기억해 두고 있었거든?
19세기 와서 체득하는 느낌이 든다.
20세기 말부터 이어지는 현대 의학의 놀라운 업적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점부터 해서 불과 150년 후부터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건데…….
“으음…… 간질이라?”
“그래. 아무래도 이게 덮고 있다 보니 염증이 잘 생기잖아. 그게 머리 쪽으로 옮겨 가서 간질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말이지.”
“아하…… 이론적인 근거가 충분하군요.”
“그렇지. 나다니엘, 그 친구가 어디 허투루 움직일 놈인가.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병원으로 꼬시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아쉽지.”
또 스턴에 걸려 버렸다.
이럴 때마다 너무 나약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드는데…….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강해진 거다.
아마 기절하지 않았을까?
이런 대화를 듣다 보면 필경 그랬을 거다.
삼국지 보다 보면 뭐 설전에 눌려서 피 토하고 하는 장면 나오잖아?
옛날에는 다 새빨간 거짓말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을 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다.
‘주화입마 온다, 진짜로…….’
근거가 충분하다니.
미친놈들.
“그 외에 여러 의사들이 지금 연구를 진행 중이야.”
“어떤……?”
“실제로 나다니엘이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문이 번지고 있거든. 사실…… 병이라는 게 다 같은 원인으로 발생하는 거 아니겠나? 외상 아니고서야 뭐.”
“그건 그렇죠. 균형이 깨지는 것일 테니까요.”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는 사이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논리를 펴면서인데…….
21세기 현대 의학에서는 이미 논파된 지 오래된 일이다.
물론 뭐 아주 사소하게 들어가다 보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런 수준의 논의가 아니다.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무언가 하나의 원인을 찾아서 교정만 하면 다 나을 수 있을 거란 맹목적인 믿음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탈장, 불면증, 천식, 소화불량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야.”
“흐음…… 근거는?”
“아무래도 아까보다는 약하지. 그냥 해 보는 거지. 사실 안 해 보면 모르는 거 아니겠나?”
“하긴…… 그것도 맞긴 하죠. 어차피 뭐 살 조금 자르는 수술인데 손해가 클 거 같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에 비해 지금 비뇨기과는 아주 난리야.”
“그…… 그 망나니 놈들이요?”
누가 누구에게 망나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리스턴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상대가 비뇨기과라면 또 납득이 가긴 간다.
내시경도 없이 요로결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 온 놈들이지 않나.
말이 수술이지 사실상 살해다, 살해.
“발기부전, 방광염, 신장결석, 매독 같은 것들 말이야. 이런 거 다 치료 가능하다고 하고 있어.”
“아…… 근데 이건 근거가 있어 보이는데요?”
“당연하지. 포피를 제거하면 아무래도 이…… 발기도 더 수월해지지 않겠나?”
“하긴…… 그렇군요. 돌도 포피가 없으면 뭔가 덜 쌓일 거 같고요.”
“그래, 같은 이유로 매독도 줄겠지. 우리도 그래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거…… 어쩌면…….”
“그래, 의학은…… 아니, 인류는 거대한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걸세.”
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 하나 해결하고 나면 다른 데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튀어나오는 느낌인데…….
진짜 열받는 게 지들끼리는 근거가 있네 어쩌네 하는 거다.
‘내가…… 성욕까지는 그래.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했어.’
이 시기에 한해서는 어쩌면 수술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런 이유로 수술을 하게 되는 건 너무 좀 그렇다.
발기부전이라니…….
그건 21세기에서조차 비아그라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잖아?
심지어 비아그라가 가능한 시점이 지나 말라 버리게 되면 백약이 무효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발기부전을 해결하는 수술과 성욕을 떨어뜨리는 수술이 같은 수술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야 정상 아닌가?’
내가 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나 보다.
신이 나서 떠들던 둘이 나를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원장님은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리스턴이 무서워서 덜덜 떨었을 텐데.
이젠 아니다.
둘 다 나를 아주 존중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평, 왜 그러나?”
“뭔가…… 의견이 다른가? 그럴 건덕지가 없어 보이는데.”
역시나 내 의견을 묻는다.
다를 리가 없다고 미리 믿고 있는 게 좀 짜증 나긴 한데…….
그래도 묻는 게 어디냐.
이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논거를 마련해 둔 참이었다.
“일단 이 포경수술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계시는 거죠?”
“그렇지.”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렇네. 이번에도…… 유태인 놈들의 음흉함을 깨닫게 되었네. 이 좋은 걸 지들끼리만…….”
원장님의 말에 리스턴은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에 유태인만 욕할 수 있으면 다들 못 해서 안달인 거 같다.
오히려 그 때문에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괜찮다.
“포경수술이란 결국, 원래 달려 있던 살을 잘라 내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래.”
“근데 이 포피라는 것도 결국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아 주신 건데…… 그걸 괜히 달아 주셨을까요? 주님의 창조가 불완전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들려서요.”
“어허.”
“으음.”
과학의 시대지만, 종교의 지배를 받는 시대기도 하거든.
헛소문일 수도 있는데, 신은 죽었다고 공공연히 떠들던 니체도 나중에는 회개했다고 하더라고.
왜냐면…….
신을 안 믿고 죽었다가 영생토록 지옥에서 고통받는다고 하면, 너무 수지타산이 안 맞는 베팅이잖아?
물론 살아가는 동안 신을 믿어서 지켜야 하는 계율이 있으니 이게 손해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안 지키면 그만이다.
실제로 그러고 있는 놈들이 태반이고.
진짜 신이 주신 계율을 잘 따르는 놈들이었으면 제국주의에 입각한 식민지 경영을 하겠어?
막말로 얼마 전에 있었던 아편 전쟁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비도덕적인 전쟁도 드물 거다.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가 임의로 막 자르고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그렇게 제멋대로 믿는 놈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정면에서 부정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지옥 가면 어째.
벌 받으면 어쩌냐고.
“어엇.”
“그…….”
역시 이번에도 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포경수술이야말로 신이 주신 만병통치약이라도 된 것처럼 떠들던 둘이 합죽이가 되었잖아?
후후.
해서 웃고 있는데…….
리스턴이 갑자기 따라 웃기 시작했다.
미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근데 말이야. 유태인들이 포경을 딱히 건강 때문에 하던 게 아니지 않나?”
“아, 맞아! 그네들 말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하던데?”
“그…….”
유태인의 율법을 들고 와서 웃은 거다.
‘미친놈들인가?’
유대교…….
진짜 개미워하는 사람들 아닌가?
애초에 유태인들이 자기들만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하고 막 그러니까 미워하잖아.
그렇다 보니 그들의 종교, 특히 율법은 지독히 무시되기 일쑤였다.
헌데 지들 불리해지니까 좋을 대로 들고 와?
“그…… 유대교 신자들 아니잖아요.”
“아니지!”
“무슨 망발을?”
“근데 왜 그들의 율법을…….”
“그중 하나 정도는 맞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래. 주님께서 포피를 만들어 두고 이를 제거하라고 명을 내리심으로써…… 그래, 자기를 따르지 않는 자들과 분류하려고 한 거지.”
“아니…….”
그럼 지금까지 죽어 나간 숱한 유럽의 영웅들은 하나님을 안 따르고 죽었다는 겁니까?
이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논리로 붙으면 솔직히 이길 수밖에 없다.
내가 비록 신학에 대해 빠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갔다.’
미친놈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없다.
절대 무리다.
‘문제는 원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하는 건데…….’
세상에 이런 이유로 포경수술을 했던 때가 있다고?
그것도 19세기에?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도 한참 지났는데?
바다에는 슬슬 증기선이 범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있었을 거야, 아마.’
나는 지나치게 상식에 기대 생각하던 것을 간신히 멈추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수록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여기 와서 실감하고 있지 않나.
이른바 광기의 역사다, 이 말인데…….
따지고 보면 지금의 이 불합리해 보이는 유태인 혐오가 강화되고 강화되어 벌어진 것이 나치의 만행이잖아?
그게 별 관심 없을 때 들었을 땐 그냥 그런 일도 있었는갑다 했는데…….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보고 공부해 보니까 그럴 게 아니더라고.
진짜 미친놈들의 역사다, 그건.
‘유태인 말살 정책보다는 포피 말살이 백번 천번 낫지. 암, 아무렴. 그렇고말고.’
휴우.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그렇군. 이게 결국, 주님이 주신 힌트였던 거야.”
“네, 원장님. 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세.”
“네?”
“방금 말했던 질환들…… 이거 다 포경수술로 치유하거나 예방할 수 있단 얘기지 않나. 이거보다 확실한 근거가 대체 어딨어!”
“아…… 그렇네요! 이런 망할. 우리 병원이 한발 늦어 버렸군요! 이걸 어떻게 한담?”
귀도 닫을 수 있으면 더 편안해질 거 같은데 그건 무리였다.
청각이란 사람이 죽어 갈 때조차 제일 오래도록 보존되는 감각이라잖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 죽을 때 뇌파 검사를 해서 증명된 사실이다.
의지로 닫을 수 없는 게 귀다, 이 말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어떤……?”
그래도 괜찮다.
19세기 와서 제일 많은 배운 게 체념하는 법이거든.
모든 걸 다 고치려고 들면 단 하나도 못 고친다, 진짜로.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하나만 집중해서 패야 고칠 수 있다.
해서 들려도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둘이 또다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뭐야, 왜 그래요.”
싸늘하다.
불길함이 온몸을 덮쳐 온다.
“내가 가장 총애하는 평.”
“원장님. 이러지 마세요.”
“이미 포경수술이 대세가 되지 않았나. 이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고, 우리가 이제 와서 이런저런 효능을 떠들어 봐야 환자가 더 올 거 같지도 않아.”
“이미 많이 보고 있잖아요!”
눈이 아까보다 더 돌아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뒤에 거대한 벽…… 아니, 리스턴이 등장해서 그렇다.
“실력을 어필해야 해.”
“제, 제가 자르겠습니다!”
“아니, 자네는 바쁘잖아.”
“그럼 어떻게……?”
“환자가 되어 주게.”
“응?”
“듣자니 똥물 마시는 것도, 소변 줄도 아이디어만 내고 다 피해 갔다던데…… 이번에야말로 자네가 솔선수범해 주면 안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