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2)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2화(312/505)
312화 시범 [2]
사람 홀딱 벗겨서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건 무슨 심보일까.
혼자 이러고 있어도…….
아니, 혼자 이러고 있게 되면 그날이 아마도 내가 다시 죽는 날일 테니 예외로 하자.
아무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다 보니 그리 기분이 좋지 못했다.
“하하. 기도하겠네.”
그렇다고 해서 국왕 폐하가 기도 운운하는데 인상 구기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해서 웃었다.
“보기 좋군그래.”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총리가 껄껄 웃었다.
국왕과 총리가 한자리에 모여 웃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작도 있고, 백작도 있다.
“자네 덕에 살았는데 또 이런 모습까지 보게 되는군그래.”
장티푸스 걸려 죽을 뻔했던 사람이다 보니 굳이 찾아와 감사 인사까지 건네고 있다.
지금 그 요리사가 이 건물 해부학 실습실에서 멀쩡히 살아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유…… 아닙니다.”
좋진 않을 것 같아서, 황급히 화답해 주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거의 대부분이 내게 다가와 덕담 한마디씩은 해 주었다.
아무래도 다들 지체 높은 사람들이다 보니 예의범절이 몸에 밴 모양이었다.
정말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여기 오지 않을 거 같긴 하지만…….
“교수님.”
“아잇.”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누군가 내 머리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앨프리드였다.
맨날 보는 얼굴인데 오늘따라 어쩐지 무섭다.
“제가 가스통은 제대로 돌려 드릴 테니 아플 걱정은 하지 마세요.”
빙글빙글 웃으면서 가스 밸브에 손을 대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저도 보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저 밑에서 머리통 하나가 불쑥 돋아났다.
고개를 숙여 보니 콜린이다.
이 녀석도 왜인지 모르게 웃고 있다.
‘이것이…… 업보인가?’
그래, 이 둘에게는 내가…….
진짜 못 할 짓 여러 번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목숨도 살려 주고, 형도 고쳐 주고, 지식도 아낌없이 알려 주고 다 한 거 같은데…….
‘아니, 이것은 배은망덕이군.’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닌 거 같아.
아니, 이 새끼들은 머리도 노란데 왜 이러는거야?
“평.”
그때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리스턴.
진짜…….
수술대 위에서는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1위인 이 사람을 결국, 여기서 보게 되었다.
“너무 걱정 말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데요.”
“하하. 보지 않았나. 나 엄청 잘한다네.”
다른 사람들은 포경 수술 시에 보통 가위를 쓴다고 들었다.
아니, 나도 만약 이 광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면 가위를 쓸 것 같다.
‘아까 폐하께서…… 부탁한다고 했지.’
주치의라고 해 봐야 나와 내 팀만 남기고 다 잘라 버렸으니 수술을 하게 되면 내가 하게 될 거다.
그래, 국왕 폐하의 포피를 잘라 낸다고 하면 역시나 가위를 써야 한다.
그리 넓지 않은 범위의 그리 질기지 않은 부위를 싹둑 잘라 내는 데에는 역시나 가위가 최고니까.
‘리스턴은…….’
하지만 괜히 검성이 아니다.
리스턴은 칼로 벤다.
칼이라고 해 봐야 이전에 들고 다니던 것에 비하면…….
“아니, 형님. 그 칼은 왜.”
“아, 이건 호신용이야.”
“누가 형님을 건드린다고…… 식겁했네.”
“이걸로 할 걸세.”
“그것도 좀 커 보이는데요……?”
“걱정 마. 귀신같이 잘라 주겠네.”
그래, 리스턴칼에 비하면 작은 칼이다.
절대적으로도 작은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긴 한데…….
아무튼, 리스턴이 매끈하게 잘 관리된 그 칼을 꺼내 들자 끼리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독도 잘해 줄게.”
조지프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굴은 안 보이는데, 이 녀석도 어쩐지 웃고 있는 거 같다.
뭐…….
꼭 내가 환자가 아니라도 소독할 때만 되면 웃는 녀석이니 이상하게만 볼 건 아니다.
“어우.”
머리가 아프다.
깨질 듯한 두통인데…….
마치 술 진탕 먹고 난 다음 날에나 겪을 법한 두통이다.
“아.”
보통 사람 같으면 이 통증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체내에 남아 있을 마취약 때문에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아…….”
바로 내 소중한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컵뿐이었다.
종이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철 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무줄 경화시키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한 덕에 고정은 꽤나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 역시. 자네는 좀 굴려야 진가를 발취하는군그래.
원래도 컵을 썼냐고?
아니다.
이 미친놈들은 그냥 젖은 거즈로 감싸 둔 채로 방치했다.
최근 런던 거리에서 비명이 너무 들려오길래 이게 뭔 일인가 했더니만 수술받은 사람들이 걷다가 허벅지나 다른 곳에 부딪혀서였다.
이거야 뭐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보니 바로 얘기했고, 대장장이들과 우리 화학자 아저씨가 가동하고 있는 공장의 도움을 받아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는 사람들은 모두 이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게요. 이러니까 굴리고 싶어지지.
어쩐지 원장과 리스턴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어 준 거 같긴 한데…….
막상 내 일이 아닐 땐 전혀 기억나지 않던 방법이 내 일이 되자마자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보니 딱히 할 말이 없긴 하다.
어쩌면 저놈들 방법이 맞는 걸 수도 있겠다.
휴…….
“읏?”
한숨을 내쉬는 순간…….
내 폐에 있던 마취 가스가 이산화탄소와 함께 빠져나가서 이런 걸까.
통증이…….
통증이 엄습한다.
“시발…….”
진짜 아프다.
21세기 지식인에 해당하는 내 입에서 욕설이 여과 없이 튀어나오는 거 보면 알겠지만 NRS 점수로 계산할 때 이 통증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런 욕까지 하나.”
고개를 돌려 보니 리스턴이 있었다.
그는 사람 살갗을 잘라 낸 주제에 웃고 있었다.
그것도 술을 마시면서.
“아프다고요!”
“하하…… 자네 맨날 팔다리 자르고 하면서 이까짓 거 가지고 아프다고 하면 쓰나.”
“약…… 약을 내놔요.”
“약? 아…… 설마. 이참에 또?”
“아니, 그거 말고!”
아편 말고, 모르핀도 말고.
뭐…… 진통제로 치면 어마어마하게 강한 진통제지만 그걸 쓰기엔 정말 이까짓 통증인 게 맞다.
“그럼 뭐.”
“그…… 껍질 우린 거.”
“아…… 그거. 뭐…… 주기는 하는데, 그거 딱히 효과는 별로인 거 알고는 있지?”
“환자들은 좋아하던데?”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는데, 그래도 뭐…… 아무튼, 자네는 귀빈이니 줘야지. 이봐.”
리스턴의 명에 의해 내 숙련된 제자들이 헐레벌떡 달려 나가서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을 들고 왔다.
이거 깨끗한 거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조지프가 웃는 거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오히려 너무 박박 닦고, 끓이고, 우린 거라 효과가 떨어질까 하는 걱정만 들었다.
‘이걸 성분식을 밝혀 빨리 만들어야 되는데…….’
우리 미친 화학자 놈들은 코카 잎에서 코카인은 잘도 추출하면서 버드나무 껍질에서 아스피린은 왜 못 만드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으.”
이해는 안 가지만 지금 이 섬찟한 통증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나.
일단 되는 대로 들이켰다.
먹다 보니 이게 완전 천연이라 오히려 불순물도 있을 것이고 또 용량도 불명이다 보니 위험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으아.”
“아니, 이걸 한 번에 다 먹네.”
지금 당장 너무 아파서 어쩔 수가 없다.
진짜로…….
너무 아파.
“너무 아파요.”
“뭐…… 아프긴 하겠지. 살짝만 쳐도 아픈데 잘랐으니까.”
“근데 약을 안 주려고 했어요?”
“블런델은 그냥 참더라고.”
“아.”
“그뿐인가? 대부분 그냥 참어.”
“허.”
그냥 참는다니…….
내가 너무 나약한가 싶다.
하긴, 아무래도 19세기 분들이랑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긴 하다.
나는 진통제가 그득 쌓인 21세기에서 왔잖아?
게다가 그중에서도 의사들은 진짜 통증 있으면 안 참고 꼬박꼬박 약을 먹는 편이다.
굳이 참을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진통제도 내성이 있네 어쩌네 하는데, 아니다.
오히려 아플 때 제때 컨트롤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아플 수 있다는 이론도 있을 정도다.
“후.”
“좀 낫긴 한가?”
“좀 나은가 싶긴 한데. 그래도 쿡쿡 쑤시네요.”
“뭐…… 어쩌겠나. 자네가 엄살이 심한데.”
“아니, 근데…… 이걸 진짜 안 아파한다고요?”
“응. 딱히?”
“이상한데…….”
한 사발을 먹었다, 한 사발을.
근데 아직도 아프다.
당연하다.
상처를 입힌 상태잖아.
그것도 우리 몸에서 제일 예민한 부위 중 하나에.
그걸 뭐 제대로 된 약도 아니고 뭔가 우린 물이나 먹고 좋아지겠나?
“하아…….”
“진짜 약이라도 줘?”
“아, 아뇨.”
그렇다고 마약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걸 그냥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된 게 오늘부터거든?
딱 수술받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생각이 나서 만든 거라 그런데…….
그 말은 곧 어제까지는 컵도 없이 견디고 있단 소리가 된다.
“으으…….”
아무리 19세기 사람들이 강인하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무슨 날 때부터 신경이 둔감한 것도 아닐 텐데 어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응?”
“아, 응급실인가?”
“이 야밤에요?”
아, 원래 응급실이라고 하면 야밤에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런던 밤거리는 안전하지가 못하다.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라 폭력에 노출이 될 수 있다.
아니, 폭력도 어느 정도 빛이 있는 시간에나 있고 밤에는 깜깜하다.
요즘처럼 슬슬 스모그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그걸 뚫고 왔다는 건 엄청 아프다는 건데, 보통 엄청 아프면 죽는 시절이다 보니 이 신음의 주인공이 당최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기 시작했다.
“아픈가 보지. 그나저나 자네는 이게 뭔가. 남들은 입원도 안 하고 집에 가는데. 근데 왜 일어나나.”
“어차피 아파서 당장 잠도 안 올 거 같아서요. 구경이나 가죠.”
“그꼴로……?”
“아.”
하마터면 바지 대신 컵만 차고 갈 뻔했다.
문제는 이 위에 입을 바지가 마땅하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치마를 입다니.”
“어쩌겠어요. 형이 가려요.”
“자네 뭐 취향이 좀 그쪽은 아니겠지?”
“설령 그렇다 해도 성욕이 가라앉은 상태니 걱정 마시죠.”
“아, 하긴. 그렇지, 참. 그래, 가세.”
그렇게 어영부영 가려서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한 곳엔 술을 잔뜩 마셨나 얼굴이 붉어진 사내 하나가 있었는데, 고추를 부여잡고 있었다.
“너무, 너무 아파요!”
대강 봐도 야단난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