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3화(313/505)
313화 뭔 술을 이렇게…… [1]
“으악! 이건 뭐야!”
리스턴이 그렇게 무서운가.
뭐 이따위 생각은 할 필요가 없긴 하다.
마음의 준비 하나 없이 마주치게 된 리스턴이야 뭐…….
거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와도 같은 느낌을 주곤 하니까.
“저, 저!”
근데 왜 손가락 끝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을까.
리스턴이었다면야 저 손가락을 붙잡아 부러뜨렸을 테지만.
나는 그와는 달리 상당한 인격자이지 않나.
자연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
확실히 흉측하긴 하다.
철 컵을 두른 탓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달린 것처럼 보이는데 그 위로는 맞는 바지가 없어 치마를 입었으니까.
다행인 건, 아직 미니스커트 같은 것이 등장할 시대가 아니라는 거다.
아마 그랬으면 철 컵 때문에 치마가 치켜올라가 더욱 흉측했을 거란 얘기다.
“이거, 미안합니다. 의사입니다.”
“거, 거짓말하지…… 아, 설마. 피영시인?”
상대는 내 말에 더더욱 법석을 피우다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내 얼굴을 알아봐서는 아닐 거다.
너튜브는커녕 티브이도 없는 시절인데 무슨 수로 알아봐.
아니, 신문에도 그 흔한 사진 하나 안 실리는 시대다.
카메라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인데, 실제 사용할 만큼 진보된 카메라는 거의 없어서 그런 거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나나 리스턴을 마주하고 못 알아보는 영국인은 없었더랬다.
당연하다.
의사라고 소개하는 동양인은 오직 하나 김태평뿐일 테니.
“그래요, 맞습니다.”
“그…… 저 뭐 어디 끌려가는 건 아니죠?”
덩치도 산만 한 사람이 벌벌 떨고 있다.
이것이 내 힘이다.
‘나 어쩌면 제법 강할지도?’가 아니라…….
“어디가 그렇게 아픈 겁니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진료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이렇게까지 아파한다면 어떻게든 해결은 해 줘야 한다.
결코 나도 여기가 많이 아픈 상황…….
그러니까 동병상련이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그…… 포경수술…… 할례를 받았습니다.”
“어디서요?”
“여기죠!”
“아, 누구한테?”
“모르겠습니다. 누구더라.”
“수술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받았어요?”
“간단한 수술이라길래…….”
“아.”
후후.
19세기가 이렇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이 아마도 이 시기에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수술 동의서 개념을 만들긴 해야겠어.’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누가 수술하는지도 모르고 받는 게 말이 되나?
수술이란 모름지기 반영구적인 변형을 가져오는 시술을 뜻하는데…….
이게 아무리 간단하고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어느 정도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어휴.”
내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환자는 바지를 내렸다.
팬티를 비롯한 ‘속옷’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니만큼 바지만 내려도 바로 수술 부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고.”
이제 뭐 거의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리스턴이 수술 부위를 보자마자 ‘아이고’를 연발했다.
그럴 만했다.
“감염이 발생했군요. 이거 혹시 뭐 만졌습니까? 손으로?”
수술 후 감염.
항생제가 있는 시절에도 무서운 합병증인데…….
지금은 항생제가 없지 않나.
게다가 부위가 이게.
어?
아프네요? 하고 잘라도 되는 부위가 아니다.
아마 자른 사람 목도 뎅겅 잘리지 않을까?
‘아니…… 근데 우리 책임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못돼 먹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지금 슬쩍 본 이 사람의 손…….
진짜 더럽다.
저걸로 한 번이라도 쪼물딱거렸다면 그냥 끝장이다.
“아, 아뇨! 절대 만지지 말래서 안 만졌어요!”
“근데 거즈는 어디 갔어요?”
“이게 왜…… 아, 여깄네요. 저 건든 적도 없습니다!”
“아. 떨어져 있네?”
바지 벗을 때 같이 벗겨진 모양이다.
부위에서 나는 냄새도 냄새지만 거즈와 바지에서 나는 냄새도 장난이 아니다.
안 씻기도 했는데 반드시 그래서만 나는 냄새도 아니다.
이건 염증 때문에 나는 냄새다.
그것도 농이 잡힌 그런 냄새…….
“만진 적이 없다고요?”
“네! 정말…… 하늘에 맹세코!”
“그래. 그런 거 같긴 한데?”
리스턴은 의외로 눈치가 좋은 편이다.
본인이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아닌데 상대방이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는 뭔가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특히 이게 거짓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늘 자기 앞에 선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을 테니 어찌 보면 이런 능력이 키워지게 된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거 같긴 하다.
“흠…… 아니, 근데…….”
손으로 안 만졌다, 이 말이다.
거즈에 문제가 있었을까?
그건 아닌 거 같다.
언제인가부터 병원 소독과 관련한 것은 죄 조지프가 맡고 있지 않나.
-어디가 더럽지?
매일 이러고 다니는 놈이 있는데 문제가 생길까?
물론 아무리 집착을 한다 해도 조지프는 일개 개인일 뿐이고 또 절차나 이런 것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긴 하겠다만…….
‘거즈에 문제가 있었으면 이 사람만 오진 않았을 거야.’
기구로 인한 감염은 대개 대량 감염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비록 내가 감염 관리실에 있던 사람은 아니지만 관리를 받던 입장이긴 해서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게 있기에 가능한 가정이다.
“혹시 이런 환자가 더 있어요?”
“네? 아…… 가끔? 근데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하루에 한 열 명?”
“열 명……? 우리 병원이 수술하는 환자가 몇인데요?”
“한 백 명? 근데 이제 더 하려고 합니다.”
“아니…… 10%나 된다고?”
“그 정도면 엄청 적은 건데요? 다른 병원은 두 배도 넘습니다.”
다른 병원은 내 알 바 아니다.
뭐 수술 기구 관리부터 해서 개판으로 했겠지.
근데 우리 병원에서 10%는 너무 높다.
배나 팔다리 절단도 요새 5% 이하로 뚝 떨어졌는데…….
고추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잘랐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그건 별 상관이 없을 거 같았다.
소변이 닿으면 감염이 되지 않겠나 싶을 수도 있는데, 놀랍게도 소변은 균이 없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건데 균이 있으면 이상하잖아?
대변도 그렇게 따지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소화기관은 입부터 항문까지 바깥과 소통하는 일종의 열린 공간이다.
대장균을 비롯한 여러 균들이 서식하는…… 아주 지저분한 공간이다, 이 말이다.
‘소변과 대변을 비교하는 건 여러모로 실례지.’
그렇다면 대체 왜 수술 후 감염 발생률이 다른 수술에 비해 무려 두 배나 될까?
심지어 우리 병원의 소독 프로토콜은 나날이 까다로워지고 있단 말이다.
몇몇 의료진들이 조지프를 정신질환자로 몰아 강제 입원시키려 했단 말을 들었을 때조차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그 새끼들 너무하네’가 아니라 ‘그래, 요새 조지프가 좀 너무했지’였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나저나…….”
나는 내 입으로 직접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상당히 민망하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꽤나 우수한 의사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도 제일 좋다는 병원 외상센터에 있었지.
이전의 외상센터가 아니다.
백강혁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실제로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웹소설은 물론이거니와 드라마까지 글로벌 대히트를 친 이후이니 당연히 비인기과 신세는 넘어서지 않았겠나?
뭐…… 꿈을 보고 따라온 이들이 현실에 부딪히긴 했지만.
“왜 이렇게 술 냄새가 나지?”
그때 진짜 대단했다.
원작 소설 작가는 인기에 힘입어 청와대는 물론이거니와 백악관에도 초청받아 다녀왔다.
김정은도 그 작가 팬이 되어서 몰래 방한 시도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술 먹었어요?”
“네? 아니, 뭐…… 조금?”
“조금?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까?”
“네? 그냥 맥주 마신 건데요? 와인도 아니고.”
“응?”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남다른 주의 집중력을 발휘해 응급실이라는 아주 중요한 공간에서 술 냄새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진원지가 의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당당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심지어 뭔가 우리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보게, 평.”
급기야 리스턴도 끼어들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잉.”
“맥주를 먹었다지 않나. 그렇게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아닌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아니…… 어떻게 의사가 근무 시간에…….”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자네는 그럼 안 마신다고?”
“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진짜 포경수술이 만병통치약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 내 인생에 이제 이거보다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다.
“나도 마시고 여기 있는 사람 다 먹네. 애초에 사람이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는단 말일세.”
“수분은 물로 먹어야죠!”
“물은 위험하지 않나.”
“응?”
물이 위험하다니?
이건 또 뭔 소리야.
라고 치부하기엔…….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해서 물을 마시기 전에 여러 가지 처치를 하고 있다.
일단 나는 템스강에서 떠온 물은 마시기는커녕 그걸로 손도 닦지 않는다.
무조건…… 상류에서 떠온 물을 쓰고 있다.
가격이 좀 나가긴 하지만 그게 훨씬 나으니까.
물론 그것도 그냥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육안으로나 냄새로나 안전해 보이는 물에도 기생충이나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 물질이 제법 들어 있거든.
“생각해 보게. 템스강 물 먹은 사람들은 다 죽었어.”
“아니…….”
“비단 하루 이틀 된 얘기도 아닐세. 자네 아버지가 얘기해 주지 않던가? 생수는 빈민들의 전유물일세. 모름지기 제대로 된 시민이라면 맥주를 물 대신 마셔야지.”
“아니…….”
끓여 먹으면 된다.
정 불안하면 증류수로 먹어도 되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런던에서 땔감 즉 석탄을 구하는 건 엄청 쉬운 일이거든.
“아, 아버지가 조선 사람이지. 거기 물은 괜찮았나 보지? 그래도 이상하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여기서 물을 먹었다면…….”
“이 녀석 매독에 이미 걸린 거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수상하네. 아무랑도 안 하지? 의사라 양심을 지키는 건가?”
“업턴에서도 물만 먹긴 했던 거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저희 집이 와인 양조장이라 와인을 물 대신 줬거든요.”
“아주 호화로운 생활이었구만…… 귀족들의 생활이야.”
“여의치 않으면 맥주로 했죠, 당연히. 와인을 일 년 내내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하는 동안, 대화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름이 어찌나 거센지 나로서도 지금 당장은 교정할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한 가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환자분. 환자분도 술을 드셨어요?”
“아, 네. 맥주요.”
그러고 보니 이 인간 코끝이 빨갛다.
‘이래서…… 약도 없이 버티고 있었군그래.’
술을…… 먹었다.
그것도 된통.
‘시발…… 염증의 원인이 여기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