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5화(315/505)
315화 이런 절단술은 하고 싶지 않았어 [1]
말이 씨가 된다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입을 툭 하고 때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시발…….’
누구라도 병원 앞에 줄지어 선 환자들을 보면, 자책이 되었건 남 탓이 되었건 하고 싶어질 테니까.
게다가 그 환자들이 하나같이, 정말이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타구니 쪽을 부여잡고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이거 야단났군.”
태연하기로 치면 검술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리스턴조차 이렇게 말을 할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물어내라고 할까?”
그에 비해 원장님은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제멜과 토마스같이 이 병원에서 오래 굴러먹은…….
그러니까 전형적인 19세기 의사들은 그에 동조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쓱 훑어봤는데 저 환자들 중에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은 사람들은 반의반도 채 안 됩니다.”
“아니…… 그럼 자기 수술받은 병원에 가지 왜?”
“티에피영이 여기서 수술을 받았다는 거 이미 소문이 파다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재수술도 우리가 제일 잘하겠거니 하는 거죠.”
“아…… 이건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인데.”
다른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들이 태반이라는 말에 원장님은 잠시 웃다가 이내 표정을 구겼다.
뭐가 되었건 간에 재수술은…….
하기 싫은 수술이라서 그랬다.
이게 비단 19세기 때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21세기에서도 재수술은 첫 번째 수술에 비해 늘 훨씬 어렵기 마련이었다.
특히 내가 했던 수술을 다시 하는 것보다 남이 했던 수술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그랬다.
아무리 같은 수술이고 같은 술식을 썼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 그랬다.
“뭐 어쩌겠습니까, 정 안 되는 케이스면 잘라야지.”
“어제 못 봤나? 잘린 사람 눈 못 봤냐고.”
그에 비해 리스턴은 ‘어쩔 수 없지’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소중한 부위라고 해도…….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썩기 시작한 마당에야 자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제 그 사람 눈…….’
하지만, 잘리는 사람 입장도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 하는 법이다.
내 평생에 그 광경을 직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19세기에 와서 그런가 별의별 경험을 다 한다.
보통 사람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참 좋은 일 아닌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상하게 여기서 하는 경험은 대개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닌 게 문제다.
특히 어제가 그랬다.
-너, 너! 내가…… 내가 죽어서도 쫓아간다!
다행이라고 해도 된다면, 자른 사람이 나도 리스턴도 아니라는 거다.
우리도 처음 보는 우리 병원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그거 자르고 나서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로만 들어도 무서운데 얼굴 표정이랑 목소리랑 같이 들으면 진짜…….
세상 그 어떤 호러 영화도 어제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을 거다.
“눈이 뭐?”
“아…… 자네야 뭐. 그럴 수 있지.”
“뭔 뜻이야?”
“자네는 누가 와도 괜찮을 거라 이 말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병원은 아닐 수도 있단 말이지.”
원장님이 말하는 것을 잘 보고 있자니 딱히 다른 사람들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아직 나도 포경수술의 대상자만 되었지 집도를 하고 있진 않았고, 리스턴이야 상당히 잘라 댄 마당이지만 말마따나 누가 와서 리스턴을 찌르겠나.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사실 우리 둘을 제외하면 병원에 압도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둘쯤 불미스러운 사고에 휘말린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 시발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19세기 사람 같잖아.
‘그러고 보니 원장님도 외과에 일가견이 있으신데 이 악물고 이 수술은 안 하더라니…….’
소름이 돋네.
원장…….
설마 여기까지 계산한 걸까?
그랬다면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괜히 리스턴과 맞먹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보다는 어쩐지 병원 얘기할 때만 움찔하셨다.
설마하니 건물이 어찌 되겠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기에 상당히 흔한 범죄가 방화라는 걸 생각해 보면 괜한 걱정은 아니다.
‘병원이 불에 탄다…….’
안 될 말이다.
왜?
나도 이제 이 병원에 지분이 있단 말이야.
내 거야!
“어쩌죠?”
“어쩌겠어. 일단…… 최대한 열심히 보고…… 다른 병원에서 한 사람들이면 다른 병원 탓을 좀 해야겠지.”
“아…… 근데 그거 좀 도의적으로 그렇지 않나요?”
“도의? 그럼 그냥 멀쩡히 앉아서 병원 태워?”
“그건 안 되죠.”
“그래서 말인데. 이제 자네도 나서 주게.”
“저요? 이 꼴로요?”
포경수술은 누누이 말하지만 그렇게 커다랗거나 위험한 수술은 아니다.
막말로 그랬으면 여기저기서 포경수술을 해 댈 수 있었겠어?
유럽인들이야 유태인들만 하는 줄 알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프리카나 남태평양만 가도 성인식 명목으로 맨날 하는 게 포경인데 그때마다 이 사태가 벌어졌다면 멸종했거나 포경을 안 하게 되었을 거다.
조심만 하면 되는 수술이다, 이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건 결코 아니었다.
“왜?”
“아니, 저 아직 다 안 나았어요.”
뭐가 되었건 생살을 째는 거다.
항생제가 없는 시절이다 보니 나는 정말이지 각별한 주의를 하고 있다.
매일매일 소독도 하고, 드레싱도 한다.
혹시 몰라서 직접 하지 않고 조지프에게 맡기고 있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나도 고민이 많았지만, 역시 결벽을 넘어 강박에 가까운 녀석에게 맡기고 나니 안심이다.
물론 그걸로 다는 아니다.
거기에 더해 최대한 접촉이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철 컵도 잊지 않고 대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태다, 이 말이지만, 꼴이 말이 아니란 말도 된다.
“음…… 뭐, 오히려 그러고 하면 위엄도 살고 좋지 않겠나?”
“위엄이 이러고 산다고요?”
“그래, 이제 바지도 맞춰서 입었잖아. 처음엔 좀 흉하긴 했지. 스코틀랜드 놈도 아니고…….”
“그때보단 낫긴 한데…….”
철 컵 때문에 너무 불뚝 나와 있다.
이러고 다니기가 좀 그래서 쉴까 했지만,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런던 사교계의 VIP다 보니 또 얼굴 비춰야 할 때가 있어서 바지를 맞추긴 했는데…….
이 시기 재단사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실력이 썩 좋진 않은 거 같다.
내가 봐도 좀 너무 이상하다.
미친놈이 무슨 판타지라도 있는지 철 컵 부위를 너무 도드라지게 만들어 놨어.
“아냐, 나은 정도가 아니야. 아주 남자답고 좋아.”
“이게요?”
“그래. 자네 소문에 좋은 거 하나 더 보태질 거야. 무엇보다 자네가 수술을 하면 불만이 확 줄 거야. 그렇지 않겠나?”
“그게 뭐…….”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실제로 대가라는 사람에게 수술이나 진료를 받으면 설령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대개 만족하게 되기 마련이거든.
어차피 이것보다 더 잘하진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들고…….
다들 최선을 다했을 거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랬다.
게다가 현시점 런던에서 나 정도면 그냥 대가도 아니고 유일무이한 존재다.
자아가 비대해져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그래.
‘병원에 빚이 많긴 하지.’
다 내 실력으로 했다고 하고 싶지만, 어디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던가?
막말로 리스턴 형님 아니었으면 업턴에서 술이나 빚고 있을 거다.
원장님 아니었으면 지금도 그냥 어디 제자나 조수 노릇 하고 있을 거고.
특히나 미개한 수준의 인종 차별이 만연한 영국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공산이 큰데…….
‘이 양반도 한번 크게 박해를 받았던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위그노 출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남의 아픔에 민감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자기가 아파 봤다고 꼭 남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리라는 법은 없지 않나?
오히려 반대로 더 악랄하게 구는 놈들도 많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우리 교수님이 그랬다.
로열 날아오고 해서 진짜 우여곡절 끝에 되신 분인데 갑질을 시발 어찌나 하던지…….
그에 비하면 우리 원장님 정도면 인격자다.
상대 실력에 비례하는 인격을 지니신 분이시지만, 내 실력이 최고다 보니 나에게 한정하면 최고의 인격자다, 이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르죠.”
“그래. 그래도 살릴 수 있는 거면 살리고.”
“당연하죠. 팔다리보다 어찌 보면 더 소중한 거니까요.”
“그래, 그래. 그렇게 대해 주면 저 사람들도 느끼는 바가 있겠지.”
뭐 이러한 연고로 인해 수술방에 들어서게 되었다.
“안 돼…… 안 돼…….”
딱 들어오자마자 괜히 왔나 싶어지긴 했다.
절차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초진은 내가 안 보고 우리 똘똘이 스X프 존 스노가 보고 있다.
이게 진짜 재능이라는 게 있다는 걸 확연히 느끼는 게…….
이 녀석은 사실 미아즈마니 뭐니 하는 실험을 직관한 것도 아닌데, 그냥 듣기만 해도 머릿속으로 이해가 가는 모양이다.
이런 말 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좀 미안해지는데, 솔직히 말해서 21세기식 위생 관념이나 멸균 개념을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존 스노다.
그래서일까?
안에 끌려 들어온 환자는 이미 아랫도리를 벗고 있었다.
셔츠 또한 풀어 헤치고 있었기 때문에 배도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노출된 아랫배에는 엑스 표가 쳐져 있었다.
‘잘라야 된다 이건데…….’
혹 내가 보면 의견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봤는데, 아니다.
이건 잘라야 된다.
“으아, 안 돼!”
사람이 절박해지면 원래 눈치가 빨라지지 않던가.
내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달았는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조지프도 거한이거든.
“으아!”
게다가 앨프리드가 바로 곁에 있었다.
끼리릭.
“이미 동의하셨잖아.”
어디 장기라도 떼러 온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가스를 틀어 버렸다.
아무리 사람이 흥분해도 가스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이다 보니 그대로 뻗었다.
나는 축 늘어진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린 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때?”
“안 돼.”
“그래…….”
다들 절단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사실 죽음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 절단술에는 익숙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익숙해져도 안 되고.
다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말이다.
“닦아, 일단.”
“어, 어.”
조지프는 열심히 닦았다.
말도 없이.
“기구는?”
“여기 있습니다.”
콜린도 대답을 끝으로 기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절반은 남길 수 있겠다…….’
나는 그사이 절제 범위를 계산했다.
동시에 기도도 했다.
‘주여, 이 영혼에 안식이 있기를.’
없을 거 같아서 기도하는 거다.
어쩌겠냐…….
기도라도 해야지.
아, 나는 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아, 술 대신 물 먹었으면 안 자를 텐데!”
있는 힘껏 외쳤다.
이 일을 계기로 부디 무분별한 술 소비가 좀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뎅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