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6화(316/505)
316화 이런 절단술은 하고 싶지 않았어 [2]
“술보다 물이 더 안전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요.”
의회에서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
말이 서한이지 의원 하나가 실제로 왔다.
내가 뎅겅뎅겅 남들의 소중한 부위를 한 20개쯤 절단 내고 난 후의 일이었다.
하루 만에 왔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최선을 다해 절단을 최대한 미루거나 방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한 5일 만에 왔다.
20개쯤 자른 것도 대개 주초에 이루어진 일이고, 적어도 포경수술 후엔 술 먹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번지고 또 포경수술 잘못했다가 고추가 잘릴 수 있다는 소문이 번진 덕에 어제오늘은 거의 자를 일이 없었다.
“음.”
당뇨 치료야 이제 내가 전담해서 보는 사람은 진짜 중요한 사람들뿐이고,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뭔가 헷갈리는 경우만 가고 있는 상황이 된 지 오래였다.
이것마저도 우리 존 스노와 콜린과 같은 재능 있는 부하들이 나름 당뇨에 능숙해지면서부터는 확 품이 줄어서 오전에도 시간이 남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뭐…….
말이 남는 것이지, 머릿속은 늘 우리 대영제국의 미래와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남들이 볼 때는 ‘김태평 그 친구 이제 시간 좀 있던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모양새이긴 할 거다.
하지만 그건 다 틀린 소리다.
지금도 머릿속이 바빠 뒤질 지경이거든.
‘술 대신 물을 먹으라는 말이 이렇게 씩씩대고 달려올 만한 일인가……?’
술이 물론 긍정적인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하다.
뭐 하루 한 잔의 레드와인은 건강에 좋다거나 하는 말들이 있잖아?
하지만 그것도 무작정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사람마다 알코올 분해 효소 정도가 다 다르거든.
어떤 사람한테는 좋을 수도 있는 양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단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만성적으로 먹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술보다 물이 안전하지, 그럼 위험하단 말입니까?”
“허어…… 정말 티에피영 경 맞소?”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상대가 의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일단 납작 엎드렸을 거다.
너무 강약약강 아니냐고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런던은 그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고개를 뻣뻣이 세울 수 있었다.
말마따나 나는 이제 일개 의사가 아니라 ‘경’이니까.
비록 작위 중에서는 제일 낮은 남작, 그것도 세습이 안 되는 작위를 받았지만…….
뭐가 되었건 대영제국의 당당한 귀족이 되었다, 이 말이다.
“맞습니다. 그러니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맞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목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와는 반대로 의원 쪽이 오히려 좀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단순한 남작도 아니었으니까.
최근 런던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스스로 고환을 자른 자’ 제이미 공작의 친우이자 ‘신에게 거역한 사나이’ 아돌푸스 공작의 뚜껑을 마련해 준 사람이자…… 윌리엄 4세의 유일무이한 주치의 팀을 이끄는 팀장이 바로 나다.
물론 이에 더해서, 나 자신에 대해 떠도는 무수히 많은 소문들 또한 상대로 하여금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술이 물보다 우월한 것은 로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상식이지 않습니까!”
“갈렌의 비교 해부학을 예로 들고 싶군요.”
“뭐라고요?”
“동물로 해부를 하고 ‘인체도 이럴 것이다’라고 상상해서 그린 것이 갈렌의 해부학 아닙니까. 실제 해부랑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오류를 짚자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우리 닥터 체슬던이 그린 그림을 보면 우선 허벅지 뼈부터가 인간은 곧고 갈렌이 보고 그렸던 그림은 휘어 있단 말입니다. 옛 지식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들어야 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는 우리 인류사의 빛나는…….”
“그게 지금 대영제국의 의원이 하실 말씀입니까! 애국심이 부족하신 거 아닙니까! 설마 그리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이 되길 바라시는 겁니까!”
“아, 아니! 그럴 리가요!”
조선계 영국인의 애국심 발언에 손을 황급히 내젓는 앵글로·색슨족 의원의 모습이라니.
아마 이 모습을 화가가 봤다면 금세 그림으로 그렸을 거다.
그림 수준과 무관하게 아시아에서 아주 비싸게 팔려 나갔을 거 같기도 하고.
진짜 나 아니면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그림이기에 그렇다.
“들어 보십쇼. 대영제국은 인류사에 있어 전에 없는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동의합니까?”
“그…… 그렇긴 하죠.”
“생각해 보십시오. 괴혈병…… 그놈의 병이 마구잡이로 선원과 로열 네이비를 잡아치우고 있을 때…… 오직 우리 대영제국만이 유연한 사고로 라임주스를 도입해 병을 예방하지 않았습니까?”
“마, 맞습니다.”
비타민 C 같은 말은 아껴 두는 게 좋다.
아직 비타민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괴혈병이 왜 생기는지도, 라임주스가 그걸 왜 예방하는지도 모르면서 경험적으로 쓰고 있다, 이말이다.
라임이라는 게 보통 애들이 먹는…….
그러니까 21세기로 치면 노X골드나 텐X 같은 어린이 영양제 이미지인데 강한 뱃사람들이 이걸 최초로 먹게 했다는 것만 봐도 사실 대영제국이 괜히 대영제국이 아니란 생각이 들긴 한다.
실험 정신이 미쳤어, 진짜.
그러니까 초기엔 황산도 먹였겠지.
원래 시행착오가 있어야 발전이 있는 법이다.
의학의 경우엔 그 시행착오마다 사람의 시신을 쌓아 올려야 하는 게 문제긴 한데…….
“이번에 하나 더 해 보죠. 물이 술보다 안전합니다. 이 개념을 도입시키자, 이 말입니다.”
지금은 그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다.
왜?
내가 있으니까.
21세기 현대 의학을 숨긴 나 닥터 김태평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큰 반향을 일으킬 겁니다. 당장 맨물은 빈민들만 먹는단 말입니다. 그리고…… 템스강 물을 그냥 먹으면 그 안에 든 미아즈마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걸 밝힌 게 바로 티에피영 경이지 않습니까?”
쉬운 일은 아니긴 하다.
너무 많은 곳이 망가져 있다 보니 하나 건들면 또 다른 곳이 흔들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수인성 전염병의 개념을 그나마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던 내 노력이 이딴 식으로 돌아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그냥 먹으면 안 좋죠. 끓여서 그 증기를 모아 먹으면 됩니다.”
“허어…… 그 짓을 어떻게 물 먹을 때마다 매번 합니까.”
“콜레라 예방하려면 물 끓여 먹어야 한다는 지침…… 우리가 돌렸을 텐데요?”
“하하. 돌리셨죠. 하지만 저흰 와인이나 맥주를 먹습니다. 굳이 물을 먹어야 한다면 섞어서 먹죠. 아시지 않습니까? 와인은 소독도 된다는 걸.”
“아.”
와인이 염소(Cl)인 줄 아나 보다.
와인 넣으면 물이 깨끗해진다고 하는 걸 보면…….
하지만 실제로 콜레라가 돌 때 대개 빈민들이 죽어 나가는 게 사실이긴 했다.
전에는 그냥 못사는 사람들이 원래 못 먹고 하니까 잘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확실히 물 대신 와인을 먹었다면 콜레라에 안 걸리긴 했겠어.’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아무래도 술이 물보다 안전하고 우월하다는 인식이 번질 거 같긴 하다.
이걸 내가 지금 당장 고칠 수 있을까?
‘욕심인 거 같기도 하고…….’
처음 여기 떨어졌을 때는 선지자가 십계명 읊듯 떠들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선지자가 아니라 마녀 취급받아 뒈진다는 걸 깨닫게 된 지 오래다.
아니, 선지자 취급을 일각에서 받는다 해도 사람들의 인식을, 그에 기반한 행동을 바꾸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21세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기 위해서 제일 올바른 방법은 좋지 않은 걸 먹지 않고, 운동하는 건데…….
뭘 먹어서 건강해지려는 보약 개념과 수액…… 이거 좀처럼 안 없어지잖아?
“그럼 수술 후에라도 물을 먹도록 하죠. 이번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냥 포경수술이 위험한 거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제가 단언하죠. 수술 후에 술을 먹느냐 아니면 물을 먹느냐 이게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겁니다.”
“그렇습니까? 흐음…….”
“정 불안하면 실험을 해 봐도 좋고요.”
앗.
내가 좀 초조했나.
나도 모르게 실험 얘기를 꺼내 버렸다.
이 시기 실험이라고 하면 동물 실험이 아니라 인체 실험을 뜻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좀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딱히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런던에 와서 이런저런 짓을 벌인 게 이제 겨우 2년 좀 넘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나.
“실험이요?”
그리고 의원들치고 실험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뭐…….
암만 상류층이라고 해 봐야 이 시기는 참 재밌는 게 없는 시기거든.
막 승승장구하고 그런 사람이야 좀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최근 런던 승승장구의 대명사라 해도 좋을 나조차 밤에 혼자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너튜브나 넷X릭스가 그리울 정도다.
게임?
그런 건 바라지도 못하지…….
당직 설 때 모바일로 보던 웹소설이나 웹툰도 그립고…….
‘그러니 뭐 실험 정도면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겠지.’
원장님이 차마 실험 구경 좌석을 돈 받고 팔 생각은 하지 못해서 망정이지, 아마 그랬으면 그것도 우리 병원의 큰 수입원이 되었을 거다.
근데 그건 안 하는 게 맞다.
실험을 하는데 돈도 벌리는 그림이 되면 좋지만, 아무래도 시대 특성상 돈을 벌려고 억지 실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거든.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의원은 공짜로 실험 직관을 하게 된 마당이다 보니 자신이 원래는 항의하러 온 상황이란 것도 잊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여러모로 미친 시대다.
근데 그래서 나도 미쳐야 한다.
“일단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은 사람들 중 입원해서 물 먹길 원하는 사람들은 물을 먹이죠. 아닌 사람들은…… 굳이 술 먹으라 하지 않아도 술을 먹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죠. 아무래도? 근데 이 와중에 수술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 앞으로 예약된 수술은 거의 취소된 적이 없습니다.”
“아…… 역시…… 티에피영 경이로군요. 그럼 언제부터……?”
“당장 오늘부터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참관인은 제가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내심 초반에는 그래도 상대가 의원인데 좀 너무 세게 나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험 얘기를 꺼내자마자 분위기가 급격하게 좋아졌다.
대영제국 의원인데 좀 너무 사람이 팔랑거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되긴 한데…….
뭐 이래저래 잘나가는 걸 보면 다른 나라 의원 나리들은 더 못한 놈들일 것이 뻔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역사대로만 흘러가도 아직 전성기가 100년은 넘게 남았잖아?
내가 여기 와서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일단 물 먹일 준비부터 해야겠고만.’
그보단 간만에 멸균 물 제작 어벤X스를 소집하는 게 더 급한 상황이지 않나?
한 명만 부르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온다는 장점이 있으니 사실 그리 급한 게 아니긴 했다.
“형님!”
“어, 뭐 누구 조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