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7화(317/505)
317화 이런 절단술은 하고 싶지 않았어 [3]
“아니, 아니. 누구 조질 필요는…… 아니, 조지는 건가?”
“헷갈리면 이렇게 묻지. 칼이 필요한 일이야?”
“음…… 아뇨. 그 정도는 아니죠.”
“그럼 평화롭기만 하군.”
처음엔 물이 위험하다는 상식을 가진 놈들에게 심지어 수술 후에 물을 먹으라는 걸 어떻게 납득을 시켜야 하나 싶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리스턴 형님의 말을 듣고 보니 별일 아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칼도 필요하지 않은 일인데 아무것도 아니지.
‘뭐…… 정 너무 개기는 새끼 있으면 칼을 쓸까?’
생각해 보니까 지금부터 물을 먹어야 하는 놈들은 자칫하면 제일 중요한 걸 잘라야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잖아?
설령 팔다리 조금 잘린다고 해도 나중에 물 대신 술 먹다가 다른 거 잘린 놈 보고 나면 감사하다고 할 거다.
그래…….
“휴,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래, 뭔지는 모르겠는데. 자네는 좀 미리부터 걱정하는 경향이 있어. 그래서, 뭔가.”
“뭐냐면…… 이제부터 저한테 수술받는 사람들은 수술 후에 술 대신 물을 먹일 생각입니다.”
“뭐라고? 아니…… 왜? 왜 그런 고문을 하려고 하나.”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어.
요새 너무 상식인이 되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사람도 어엿한 19세기 의사였어.
그렇다 보니 술 대신 물을 먹으라는 말조차…….
설득이 어렵다.
물론 처음보단 나을 거다.
그때는 진짜 지옥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어떻게 지금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아마 회귀 시켜 줘도 다시 못할 거 같어.
“아니, 형님. 저는 물만 먹잖아요.”
“술도 먹잖아?”
“그거야 밥 먹을 때만 먹죠. 아니면 맥주 정도?”
“그래, 그래서 자네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걸세. 조지프를 보면 모르겠나? 과연 양조장이 집 아들답게 건장하지.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
“하하. 그럼 이렇게 하세. 그냥 아무 술이나 먹이진 말고, 와인이나 브랜디로. 특히 브랜디는 명약 아닌가.”
음…….
어째 대화를 이어 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뭔가 막막해지고 있다.
브랜디는 또 뭐지.
애초에 내가 주당이 아니다 보니 이게 뭔 술인지도 잘 모르겠다.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와인 비슷한 거 같긴 하다.
이 사람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맥주보다는 와인을 확실히 높게 쳐주고 있으니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와인은 고급술이었는데 여기서도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을 허세라고 욕했었다.
내 취향에는 그저 생맥주가 최고였거든.
“브랜디요?”
“그래. 브랜디. 와인을 농축한 거라고 보면 된다네. 아, 마침 내 연구실에 하나 들어왔는데, 먹어 볼 텐가?”
“근무 중인데……?”
“브랜디잖아. 브랜디!”
“아.”
수술을 딱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면 상대가 리스턴이건 뭐건 간에 말렸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먹는 거다.
진짜다.
힘에 밀려서가 아냐.
“읍.”
“이거 좋은 술인데, 읍이 뭔가.”
“생각보다 너무 센데요?”
“와인을 농축한 거라니까? 당연히 좀 세지.”
“알코올이 많은 거잖아요.”
“그래, 그게 뭐.”
“아.”
하씨.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알코올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의 혈중 농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게 사실 독이다 보니 몸에 좋지 않다.
지나친 음주는 간암을 비롯한 술이 통과하는 모든 부위, 즉 구강, 식도, 위, 소장, 대장, 항문의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심지어 알코올성 치매도 있고…….
‘시벌.’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하냐.
말이 안 되지.
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리스턴 박사님은 계속해서 브랜디의 효능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다.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었고, 당연하게도 모두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걸 다 푸는 건 좀 의미가 없을 거 같고…….
“젖먹이가 열이 나서 힘들어할 때도 브랜디가 도움이 된다네. 근데 애가 브랜디를 직접 먹기는 어렵지 않겠나.”
“그건…… 그렇죠.”
애는 브랜디를 비롯한 모든 술을 먹으면 안 되지만, 그 문제는 차차 다루기로 했다.
무엇보다 리스턴 얼굴이 너무 진중해서 지금 막 말을 막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근데 이게 참 신기하지. 엄마가 브랜디를 먹고 젖을 물리면 아이에게 브랜디의 약 성분이 넘어가서 새근새근 잠을 자게 된다네.”
“아…….”
알코올은 참 여기저기 잘 뚫고 들어가는 물질이지 않나.
당연히 수유할 때는 금기다.
임신 시에도 금기고.
아이의 머리와 몸을 망가뜨릴 수 있어서인데…….
심지어 새근새근 자게 될 정도로 많이 먹인다면, 하.
“그, 형님.”
어쩔 수 없다.
이렇게까지 만연한 상식이라면 뒤집어 깨는데 보통 입 터는 걸로는 될 턱이 없어.
상당히 오랫동안 숨겨 놓았던 보검을 뽑아야겠다.
생각해 보면 그간 너무 평탄하긴 했다.
거의 상식으로 해결했잖아?
중간중간 사람한테 똥 먹여서 자기 건강을 지키고 싶다는 발상을 하긴 했지만…… 그거야 뭐 내가 소변 먹이기로 잘못된 힌트를 주었으니 그렇다 치고 넘어가는 게 맞을 것 같다.
“응?”
“조선에서는 말입니다…….”
“오, 조선.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조선 발음하는 게 좀 좋아졌네요?”
“홍삼 들여오는 놈에게 좀 배웠지. 겸사겸사 책도 얻어다가 보고 있고. 조선의 의학서를 얻고 싶은데 그건 어렵더군.”
아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 마, 제발.
이런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대학 병원에서 훈련을 받아서는 아니다.
누구라도 19세기에 오면 이렇게 된다.
놀랄 일투성이인데 자꾸 놀라면 심장이 못 버텨.
“아무튼, 조선에서는……”
게다가 지금은 놀라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말 지어내기.
이건 좀 순화해서 하는 말이고, 바른대로 말하면 거짓말을 해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나는 이제 거짓말의 달인이다 보니 잠시 말을 줄이는 순간 할 말이 벌써 막 떠오르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물을 많이 마십니다.”
“그래? 물을…… 상놈들이나 먹는 거 아니겠나? 양반들은 술을 먹을 거 같은데.”
근데 이게 이제 쉽지가 않다.
이놈의 리스턴이 이제 무려 반상의 구분을 할 줄 알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영국 촌놈이다.
영국인들…….
아니, 앵글로·색슨족들…….
다른 나라 문화에 무지한 거야 이놈들의 유구한 전통이지 않나.
리스턴은 좀 다른 모양이지만, 남들 다 그러고 있는데 혼자만 튀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법이다.
“물론 술을 먹긴 하죠. 하지만 양반들이 훨씬 윗줄로 치는 게 있습니다.”
“뭔가?”
“바로 차죠.”
“차. 허. 홍차?”
“우리는 주로 녹차를 먹습니다. 아마 같은 찻잎일 거예요. 근데 신선하게 우려먹는 거죠.”
“술 대신 차만 먹는다고? 근데 그건 너무 비싸…… 하, 역시 조선이구만. 부유한가 보지. 아무리 양반들이라 해도 술 대신 차를 마신다니.”
“어디 가서 말하진 마시고요. 아시잖습니까. 조선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하, 알고 있네. 내 알고 있지.”
자, 녹차로 썰을 풀었다, 일단.
리스턴의 얼굴을 보아하니 확실히 넘어온 거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영국에 와서 다행이다.
프랑스 놈들은 홍차 문화가 여기보다 훨씬 덜 발달했을뿐더러 자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다 보니 아마 이딴 소리 하는 순간 레볼루숑 당했을 수도 있다.
진짜로…….
기요틴 마주하게 되었을 거다.
프랑스 사람들 앞에서 프랑스 와인을 모욕하는 거만큼 위험한 일은 없거든.
“아무튼…… 조선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런 말도 있죠.”
“어떤 말?”
“‘물 맑은 땅에서 사람들이 오래 산다’라는 말이요.”
이런 말 없을 거다.
혹시 누가 했을 수도 있긴 한데 내가 그걸 우연히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냥 ‘쌩구라’라는 건데, 뭐 알 게 뭐란 말인가.
“허…… 공자께서 하셨나.”
“아, 아뇨. 공자는 어떻게 알았어요.”
“공자, 맹자. 다 알지.”
“근데 둘 다 중국 사람입니다.”
“그래? 아니…… 이 새끼가 사기를 쳤나?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은 내가 못 참는 편이라.”
“사기는 아닐 텐데, 조선 사람은 아니에요. 딱히 그랬으면 할 만큼 욕심나는 사람도 아니고.”
“그, 그래. 그렇구만.”
이제 공자, 맹자도 아는구나.
좀 더 지나면 태종대세문단세도 할 거 같다.
그때쯤 되면 리스턴과 헤어져야 하나 싶다.
지금까지 거짓말 친 거 다 걸리면 죽지 않겠어?
‘아니…… 아니야.’
리스턴은 무서운 것에 비례해서 정말 유능한 인재다.
일단 같이 다니면 런던이고 파리고 항주고 소주고 다 안전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냥 마음에 위안만 되는 부적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적을 때려 부숴 주는 수호신이다.
심지어 이 사람 하나만 설득하면 다른 의사들은 저절로 설득이 되는 마법도 부려 준다.
손과 완력이 좋아서 수술 하나 가르치면 나보다 잘하는 것도 장점이고.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영원히 데리고 다녀야 한다, 이 말이다.
‘머리…… 머리 심어 주면서 하나 다짐을 받아야겠다.’
나는 리스턴의 머리를 몰래 훔쳐보았다.
이제 해결이 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뭔지 모자도 잘 안 쓰고 다닌다.
애초에 수술모라는 게 수술 부위에 머리카락 들어가지 말라고 쓰는 것이다 보니 딱히 쓸 필요가 없기도 하다.
확률이 내 반의반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아무튼, 원래 같으면 벌써 해결해 줘야 했는데…….
누가 어메이징 19세기 런던 아니랄까 봐 자꾸 사건이 터져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다행히 내 실력이 좋아지면 자기 머리 모양도 더 이뻐질 거란 믿음이 있다 보니 아직까지는 화를 낸 적은 없다.
뭐…… 나 바쁜 걸 모르는 바도 아니고.
“뭐 하나?”
“아니, 아닙니다. 아무튼, 물 좋은 고장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는 말이죠.”
“속담인가.”
“그…… 네, 속담이에요. 근데 배운 사람들끼리만 아는 속담입니다.”
“해학이 담긴 말이라고 들었는데…….”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자네는 정직한 사람이니까. 하하하. 설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야 있겠나.”
이쯤 되면 내가 조선인과 대화를 하는 건지 아니면 영국인과 대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물을 먹이자 이 말이지?”
“네.”
“쉽진 않겠는데.”
이해를 해 줘서 다행이다.
칼을 드는 건 안 다행이고.
“이건 왜요?”
“생각해 보게. 말을 잘 듣겠나?”
“잘 안 듣긴 하겠죠.”
“파리 때의 일을 생각해 보게. 그때 물 먹이려고 얼마나 고생했나.”
“아…… 맞네. 그때 그 새끼들.”
살려 주겠다는데 굳이 죽겠다고 지랄하는 걸 간신히 살린 기억이다.
리스턴조차 주먹으로 잘 안 돼서 칼을 들어야 했다.
뭐 진심으로 때리면 물 먹기 전에 죽으니까 그러긴 했는데 아무튼.
“그래. 이게 필요할 거야. 뭐, 물 대신 술 먹는 놈은 없게 할 테니까 걱정 말게.”
“네, 형.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