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1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19화(319/505)
319화 물 좀 먹어라 [2]
“휴.”
다행히 지금 당장 절단해야 할 정도가 된 놈들은 없었다.
애초에 누가 집도를 했든 꽤 신경을 썼던 거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깡패는…….
그 사람의 신체적 우월함과는 별개로 사회 규범과 법을 지키지 않기에 무서운 거 아니겠나.
제아무리 19세기 영국이라 해도 아무 데서나 사람 쑤시면 벌을 받기 마련이지만, 깡패란 그 벌을 받더라도 쑤시겠다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다, 이 말이다.
‘경찰…… 사실 경찰이 더 무섭지.’
나는 마지막으로 경관 하나의 중요 부위를 확인하면서 이전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시기 경찰은 깡패보다 더하다는 생각인데 진짜 그렇다.
깡패도 그렇지만 경찰도 돈을 왜 내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분위기와 상대를 봐 가면서 한다는 것 정도가 있을 거 같은데…….
‘아니지? 우리한테는 못 하잖아.’
깡패들도 분위기와 상대를 봐 가면서 하긴 하니까, 제복을 입었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게 합리적일 거 같다.
“그럼 이제 갈까.”
“근데 이분들은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아니…… 우리 병원 와서 자르지 그랬냐, 진짜.”
리스턴의 말에 방금 내가 치료해 줬던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리 갱단과 경찰들이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일치단결하는 건 좀 이상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 자른 모양이 다 같은데.”
“포경에서 흔적을 찾았다고?”
“저 정도 되는 의사라면 가능하죠.”
“음.”
리스턴의 얼굴에 어쩐지 주술을 의심하는 기색이 있다.
억울하지만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보니 뭐라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티에피영을 건드려선 안 된다네.
리스턴뿐 아니라 사방에서 이런 얘기가 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것들이 왜 이러나 싶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기사 서임 받을 때의 일은 좀 타이밍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공교롭긴 했다.
하필 내 욕하던 놈이 욕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고 거의 바로 ‘윽’ 하고 쓰러졌잖아.
게다가 그걸 살린 게 나다.
후자는 뭐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이 시기에 나 말고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이 나온 게 20세기 중반이지.’
21세기에서야 심폐소생술이라는 게 예비군 훈련 가도 가르쳐 주는, 뭔가 좀 별거 아닌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을 텐데…….
외상 외과 일을 하다 보면 심폐소생술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우게 마련이다.
워낙 바쁘다 보니 역사야 휘릭 넘어가지만, 인공호흡에 비해 흉부 압박 시행은 진짜…… 최근에서야 시도되었다.
호흡이야 여러 신화에서도 생명을 창조할 때 숨을 불어넣었다는 묘사가 있고 또 백설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에서도 키스를 했다는 게 어찌 보면 인공호흡의 묘사였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인지했지만…….
심장은 그게 뭐 하는 건지 알게 된 것도 상당히 최근이잖아?
“왜 한날한시에 이걸 받았죠?”
그러니 심장을 외부에서 눌러서 펌프질을 대신한다는 발상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거의 악마나 신의 발상과도 같을 거다.
그래, 이게 다 내 업보다 이 말이다.
“그…… 여기서 받으면 정력이 좋아질 거라고 해서요.”
하…….
이놈의 정력.
진짜 화가 난다.
“나나 리스턴 형님한테 받으면 그게 안 되고?”
아니, 이 포인트에서 화가 난 게 아닌데 말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네.
“아니,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튼, 내가 역정 내는 모습이 보기 드문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위에서 얘기한 이유 때문에도 상대는 바짝 쫄았다.
무섭긴 할 거다.
살을 날리는 사람이니까.
우연인데, 나랑 좀 안 좋게 엮였던 사람들의 최후가 다들 그랬거든.
이번에 그 종지부를 찍은 느낌이고.
“거기 어디야.”
“네? 죽이시려고요?”
“아니, 왜 죽여. 수술만 못 하게 해야지.”
“네? 저희 뭔가 잘못된 겁니까?”
“소독도 제대로 안 되고…… 심지어 컵도 안 씌워 놨잖아. 술 안 먹으면 아프다며. 느낌 안 오냐?”
“네? 이 정도면 사실 아픈 것도 아닌데.”
“아휴.”
19세기 분들의 통증 민감도는 21세기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감이 있다.
이 양반들은 진짜 죽을 것같이 아파야 ‘아 좀 아프구나, 내가’ 하는 느낌이다.
새삼스럽게 차이를 느끼게 된 참에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다가와 속삭였다.
‘죽이기 좀 그러면 팔이나 자를까?’
‘네? 아니, 왜 그래요.’
‘아니야?’
‘그럴 거까지는 없잖아요…… 그냥 못 하게 하면 되지.’
‘못 하게 한다고 안 할 거 같나?’
‘아.’
처음엔 이 양반이 요새 팔다리 덜 잘라서 뭔가 쌓였나 싶었는데 듣고 보니 이게 또 그럴싸하다.
망할.
맞다.
못 하게 한다고 안 할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도살자 해리 새끼는 도망쳐 놓고 공작님 불알도 깠잖아.
따지고 보면 우리 해부 실습실 담당이 된 요리사 아저씨도 자꾸 사람 죽는데 계속 요리를 했던 무신경한 인간이다.
“가둬 두죠.”
“어디……에?”
“뭐 여기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공간이야 많잖아요.”
“평생 가둘 거면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나?”
“차근차근 가르치면 좀 나아지겠죠.”
“하하.”
리스턴은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웃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일단 내 말에 따라 잠시 가둬 두고 기회 봐서 벨 것 같다.
근데 뭐 몰래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리스턴 형님만은 아니잖아.
나도 다 방법이 있다, 이 말이다.
어차피 지금 계획 중인 것도 있고…….
거기에 가져다 두는 게 여기서 남들 고추나 자르고 하는 거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자, 그럼 가자.”
“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계획과 생각을 품고서 거리로 향했다.
깡패와 경찰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야야, 눈 마주치지 마.”
“검성…….”
“그 옆에는 피영신…….”
“야, 인마 너 죽고 싶어서 그래? 어딜 그렇게 빤히 봐!”
한 어깨와 한 인상 하는 놈들 사이에서조차 단연 눈에 띄는 게 나랑 리스턴이라니.
약간 서글퍼지면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누군가가 나를 두려워한다는 게…….
후후.
전생에서는 그러지 못했단 말이지.
교수라도 돼서 오래 지냈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신체적인 조건으로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상태였고.
사실 그런 건 지금도 비슷한데, 인생이 진짜 알 수 없는 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여깁니다.”
“여보세요, 문 좀 열어 주시죠.”
쨍그랑.
이렇게까지 두려워하길 바랐던 건 아니다.
아니, 말만 꺼냈는데 창문 깨고 도망가는 건 뭐냐고.
“이럴 줄 알았지.”
“역시 피영시인께서 나서면 무서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렇게 되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건 나뿐이었던 거 같다.
우리 현명하신 경찰 그리고 갱단 여러분들께서는 미리부터 문가가 아니라 창문 근처에 서 계셨다.
어떻게 됐냐고?
“으아! 살려 줘! 살려 주십쇼!”
바로 잡혔지.
그리고 막 살려 달라고 하면서 몸을 비틀고 있다.
“이봐요. 죽이러 온 거 아냐.”
“으윽. 윽.”
“아니, 이런 미친.”
비튼다고 그냥 놔줄 만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러다 보니 복압이 지나치게 올라갔나 어쨌나 제풀에 지쳐 기절해 버렸다.
하필이면 이번에도 타이밍이 지랄 같았다.
왜 내가 말을 붙이자마자 기절하고 난리냐고.
“아니, 평. 칼로 죽일 필요가 없단 얘기였나?”
“아니, 아니. 이봐! 정신 차려!”
매뉴얼에 따라 어깨를 두들겼는데, 그럼에도 반응이 없다.
기절한 게 아니라 진짜로…….
‘아니, 저 진짜 주술 씁니까?’
맥박을 짚어 보니 안 느껴진다.
뭐…….
혈압계로 재는 게 아니라 맨손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진짜 심장이 멈췄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근데 원래 지침 자체가 아예 반응이 없는 경우라면 맥박 짚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흉부 압박하도록 변경되었다.
“옷부터 벗겨!”
“와…… 이거 그렇게 비싼 옷도 아닙니다!”
그러니 어쩌겠어.
일단 살려야지.
헌데 반응이 이상하다.
“아니, 시발. 몸뚱어리 노출시키라고!”
“이게 부관참시인가?”
경찰이나 갱단만이 아니라 리스턴도 그렇다.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조선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제 부관참시까지 알고 있다.
‘참 대단…… 아니, 아니지.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사람 죽는다!
심폐소생술이라는 게 쓰러지고 1분 이내에 시행하면 90% 이상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몇 분만 지나도 그 확률이 뚝뚝 떨어지거든.
생각해 보면 이놈 이거 아주 끔찍한 도살자이긴 하니까 죽어도 싸긴 하지만…….
아니, 그래도 살리긴 해야지.
죽일 때 죽이더라도?
“전에 해 봤잖아요!”
“아, 그거구나.”
“그래요, 그거라니까!”
“조선 주술?”
“아니!”
“아무튼, 알았네. 흡!”
리스턴이 상대의 옷을 양쪽에서 붙잡고 훅 당기자 아무리 싸구려 옷이라 해도 옷은 옷인데 뭔 종이처럼 쭉 찢어졌다.
“에구머니.”
“아이고.”
“이렇게까지 하나, 보통.”
그걸 본 다른 놈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시작했다.
이 꼴을 보고 있자니, 언제 날 잡고 심폐소생술 강의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잖아.
사람 살리자고 하는 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 리스턴 없이 나 혼자면 누군가 도와야 한다.
지금?
지금은 아니다.
꾹꾹.
진짜 리스턴은…… 사람이 아니다.
흉부 압박이라는 게 진짜 이게 쉽지가 않은 일이거든?
그냥 상상만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도 해 봤어서 하는 소리다.
나뿐만 아니라 진짜 체격이 건장한 친구들도 이거 한 바퀴 돌리면 땀 뻘뻘 흘리고 뻗어 버린다.
헌데…….
“얼마나 더 할까?”
리스턴 봐라, 이거.
꾸득뚜득.
대충 누르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뭔 기계처럼 5cm 을 딱딱 지켜서 누르고 있다.
갈비뼈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냥 보이기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가능한 걸 보니…….
아휴.
“한 30번만 더요.”
“좋아. 이게 사람마다 다르구만?”
“아…… 그렇죠. 살아날 때까지 하는 거니까요.”
“아하…….”
“뭔가 영험하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이것도 뭐 의학적인 거겠지.”
“아니, ‘거겠지’가 아니라니까요? 전에 말해 줬잖아.”
“응? 그런가?”
속 터진다.
하지만 그래도 누르는 건 제대로 누르고 있으니 참아야겠지?
사실 그거 아니라 리스턴이 상대라는 것 하나만 해도 참아야 된다.
“어, 이제 멈춰 봐요.”
“어.”
“흠.”
“어떤가?”
게다가 지금은 입씨름이나 할 때가 아니긴 하다.
사람 하나가 죽었다 살아나고 있잖아?
뭐…….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타이밍 맞춰서 한다고 늘 살아나는 건 아니긴 하다.
만약 그게 되면 영생하지.
하지만 이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흠.”
“왜.”
“살았네요.”
“와…… 이게 진짜였구나.”
살아났다.
살아나긴 했는데…….
“힉.”
“헉.”
다들 눈을 너무 피하니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