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0화(320/505)
320화 물 좀 먹어라 [3]
“왜 그래.”
“아닙니다!”
“살려 주십쇼!”
휴.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심폐소생술이라는 게 말이 심폐소생술이지, 사실상 죽은 사람이 돌아온 거 아닌가.
리스턴 형님에게 주워들은 것인데, 아무래도 지금 유럽은 아무리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종교의 영향이 어마어마하지 않나.
죽어 가는 사람을 고치는 것은 뭐…… 어느 정도 사람의 영역이라고 보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정말이지 신의 영역이라고 했다.
‘사실 그렇지.’
아무리 21세기 의사들이라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게 늘 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실제로 우리 교수님 중 한 분도 수술 끝나면 늘 짧게나마 기도를 드렸더랬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으니 나머지는 신에게 맡기자고.
나는 종교는 없었어도 굳이 따지자면 유신론자였기 때문에 늘 같이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건 의학적인 기전에 의한 소생인데…… 그걸 일반인들이 이해하리라 바라는 건 아직 욕심이야.’
현시점에서 나를 제외하면 제일 현대 의학에 가까운 의사가 아무래도 리스턴일 텐데 이 사람도 심폐소생술에 대해서는 좀…… 어? 껄끄러워하는 면이 있지 않나.
설명을 하면 마치 알아듣는 척을 하곤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뭘 살려. 이 사람 살렸는데.”
“으…… 나 지금 어디.”
“어디긴.”
“힉!”
하여간, 금방 죽었다 살아서 그런가?
아니면 젊어서 그런가는 모르겠는데 거의 즉시 정신을 차렸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정신을 잃으려 하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리스턴이 시기적절하게 뺨을 후려쳐 준 덕에 그러한 일은 없었다.
대신 얼굴이 엄청 부어 버리긴 했지만…….
이 양반이 확실히 사람 때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세기도 꽤나 적절한 것으로 보였다.
“네가 이 사람들 포피 잘랐지?”
“아…… 히끅.”
“잘랐어, 안 잘랐어.”
“잘랐습니다…….”
“좋아. 현행범.”
“으아. 살려 주십쇼!”
그렇게 심문을 해 보니 모든 정황이 확실해져서 일단 잡아 처넣기로 했다.
리스턴은 이미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되는 일은 없을 거다.
이제 내 말도 잘 듣는 놈들이 꽤 있거든.
“이놈도 넣고.”
“여기도 넣고.”
“뭐가 이렇게 많냐, 불법으로 하는 놈들이.”
아무튼, 우리는 우선적으로 돌팔이들부터 잡아들였다.
뭐…….
이 시기에 외과 의사와 의사가 아닌 사람을 굳이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한데…….
그래도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거, 알 만한 양반이…….”
“죄송합니다.”
“술 대신 물 먹이자는 제 말 못 들었습니까?”
“들었습니다…….”
“근데 왜 집에 그냥 보내.”
“제가 이제부터는 명심하고 물만 먹이겠습니다.”
이쪽은 말로 해도 알아듣는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 집 알아. 병원도 알고. 알아듣고 있지?”
“네, 네!”
알아들을 수밖에 없다.
못 알아들으면 리스턴이 찾아갈 테니까.
망태 할아버지가 차라리 나을 거다.
그 사람은 포대 자루에 붙잡아 가거나 때리기나 할 테지만 우리 리스턴 형님에게 걸리면 진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아마 리스턴 본인도 모를 거다.
적당히 할 때야 결과를 예상하고 패겠지만 두어 대 패기 시작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죽을 수도 있다, 진짜로.
“근데 왜 물을 먹어야 하는 겁니까?”
그 와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놈들도 있긴 했다.
사실 이게 낫다.
그냥 벌벌 떨면서 무지성으로 술 대신 물 먹이겠다고 하는 놈들보다는.
적어도 뭔가 더 배우고 이해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니까.
‘다행이야, 내가 와서.’
그리고 나는 이제 눈높이 교육에 천재가 되어 가고 있다.
약간의 거짓말이 뒤섞여 있긴 한데…….
그게 중요하겠나?
제대로 이해시켜서 더 이상한 짓을 안 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자, 술을 먹으면 어찌 됩니까.”
“시원하죠. 안전하고.”
“그렇죠.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거뿐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상대 의사의 말에 뒤에 있던 리스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분 동의한다는 뜻일 터였다.
아직 알코올의 해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시대다 보니 의사가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21세기 의사들 중에서도 알코올 남용 문제가 있는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이미 숱한 경험으로 인해 알코올이 나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놈들도 그러는데 모르면 어쩔 수가 없지.
“그 외에 더 많이 먹으면 얼굴이 붉어지죠.”
“아…… 그런 사람도 있죠.”
“뭘 그런 사람도 있어. 깔때기 물어 볼래요?”
“아, 아닙니다. 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
좋게 좋게 말을 하려고 하는데 삐딱하게 나와서 잠깐 정리를 해 주었다.
애초에 분위기가 아주 편안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내 명성 또한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녀석은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놈뿐 아니라 이 병원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보다 부쩍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말을 이었다.
“얼굴이 왜 붉어질까.”
“어…….”
“으음?”
침묵은 잠시뿐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다들 의문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어하면 안 된다.
원래 사람이란 보이는 것만 보게 되기에 그랬다.
그중에서도 인지 너머에 있는 건 눈뜬장님처럼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아직까지 밝혀진 것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더더욱 인지의 영역이 좁았다.
“자, 혈관의 존재는 이제 다들 아시죠?”
“알죠.”
“압니다!”
“그래, 그 혈관에 뭐가 다니죠?”
“피!”
그나마 아주 중세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때 떨어졌으면 진짜 죽었을 거야.
하지만 이젠 적어도 의사들이 해부학은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아주 제대로 된 해부학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어? 혈관도 알고 심장도 알고 너무 뿌듯하고 대견하고 그렇다.
“네, 피는 무슨 색이죠?”
“붉은…… 오?”
“네, 얼굴이 붉어지는 건 피 때문입니다.”
“그럼 더 먹으면 피가 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이 왜 붉어지겠어.”
“음.”
대견해하고 있는데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런가 표정이 좀 굳은 모양이다.
내가 그냥 그런 사람이라면 안 그렇겠지만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애들이 좀 얼었다.
‘아…… 내가 상상했던 교수가 된 내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막 질문도 자유롭게 하고 답변도 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뭔 말만 하면 이러니까 좀 그렇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내 즐거운 교습 시간이 아니라 행동 교정에 있다 보니 일단 말을 이어 나갔다.
마침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울릴 만큼 조용해진 마당이다 보니 설명하기엔 더 수월했다.
“혈관이 확장이 되니까 붉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아…… 그렇게 됩니까?”
“전기를 통해야 그게 되는 거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쇼. 이거 말고 얼굴이 붉어질 만한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음…….”
“으음…….”
보통 사람이 음 음 하고 있으면 할 말이 없어서일 텐데…….
이 새끼들 얼굴을 잘 보고 있으려니 그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무서워서 못 하는 느낌이 든다.
아니, 이건 느낌이 아니다.
19세기에 그래도 오래 있었다 보니 확신이 든다.
“할 말이 있나?”
“음.”
해서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없다.
무서워서 그럴 거다.
왜 무서워할까?
내 의견에 반하는 말을 하고 싶어서일 거다.
동의하고 있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 턱이 없지.
“형님. 형님 생각은 어때요.”
해서 찬찬히 살펴보니 리스턴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술 먹으면 안 된다는 걸 그냥 경험적으로만 보여 줬지, 이론적으로 설명을 해 준 적은 없는 거 같다.
이번이 처음이다, 이 말이다.
“그…… 이런 이론이 있네.”
다행히 이제 리스턴은 자신이 아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믿는 의학적인 상식이 나랑 다른 것이 느껴지면 좀 조심스러워진다.
이번에도 그런 게 보인다.
“와인이 붉잖아?”
“네. 그런데요?”
“그걸 먹으면 바로 혈액으로 흡수가 된다는 이론이야. 실제로…… 얼굴이 붉어지잖나. 피가 많아져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맥주도…… 많이 먹으면 붉어지는 건 매한가지잖아요?”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그런가! 당연하지! 다 같은 술인데!”
“같은 술……?”
“같은 술이죠. 아, 그래. 이참에 실험을 해 보죠. 거기 아무나 와인하고 맥주 있으면 좀 들고 와 봐.”
나는 충분히 잘 설명을 한 거 같은데, 미친놈들이 이해를 못 하니까 어쩌나.
그냥 보여 줘야지.
“그리고 너, 너 나와.”
“아.”
“네.”
해서 일단 이 병원 의사 둘 불러다 앉히고 와인과 맥주를 들고 왔다.
둘 다 양이 꽤 되기 때문에 이놈들이 아무리 술이 세다고 한들 얼굴이 붉어지는 건 정해져 있을 터였다.
“마셔.”
“네.”
“네.”
둘은 근무 시간에 이게 웬 개꿀이냐 하는 얼굴로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연회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사실 일상적인 음주는 거의 반주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술이란 건 원래 억지로 먹게 되면 더더욱 취하고 힘든 법이었다.
둘도 그랬다.
“으.”
“으아.”
“먹어.”
근데 신기하게 아직 안 붉다.
나도 이렇게까지 먹이고 싶진 않았는데…….
뭐 어쩌겠어.
원래 실험이란 게 이렇다.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다? 그럼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면 된다.
“으.”
“으아.”
“좋아.”
그렇게 꽤 먹이고 나니까 역시나 둘 다 얼굴이 빨개졌다.
중간쯤엔 혹시 이 새끼들 이거 진짜 안 빨개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허…….”
“진짜 그렇네?”
그걸 보고 놀라는 걸 보니 내가 정말로 19세기에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수군거리는 걸 듣고 있자니 더더욱 그렇다.
“맥주 먹으면 바로 소변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러게나 말이야. 색도 딱 그런데…….”
“맥주도 그럼 피가 되나?”
“야, 지금 티에피영이 혈관이 늘어난다고 하는 거 못 들었냐?”
“상식적으로 그건 좀 이상하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무섭잖아.”
이러고 있다.
다행인 것은 다 이런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확실히…… 흐음…….”
“하긴 닥터 티에피영이 괜한 소리를 할 리는 없지.”
동공이 마구잡이로 떨리고 있는 걸 보면 진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무서워하는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말이라도 저렇게 이해하는 것처럼 해 주니 고마웠다.
거기에 더해 이번 기회에 19세기에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상식도 알았으니 수확이 대단했다.
그걸 이용해 다른 병원에서도 교육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필요한 것은 피험자 둘과 술뿐이니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