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1화(321/505)
321화 충치 [1]
술 대신 물 먹이기 프로젝트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경찰에 갱단을 동원한 것만으로 돌팔이 놈들 잡아들이는 건 일사천리지 않았겠나?
예나 지금이나 불법 저지르는 놈들에게는 법보다는 아무래도 주먹이 더 무서운 법이다.
“다신 안 그럴 테니까 집에 좀 보내 주십쇼!”
“뭔 개소리야, 진짜 감방 가고 싶어?”
“아, 아닙니다.”
경찰이 저래도 되나 싶긴 하다.
아마 21세기 같았으면 당신 시민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냐고 그러겠지?
남의 살 멋대로 자르다가 더 자르게도 만들고, 심지어 크게 아프거나 죽게 만든 놈들인 주제에도 할 말 못 할 말 다 따박따박 모아서 할 거라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인권 의식이 강해져서 생긴 일이다.
사실 천부 인권의 개념은 정말이지 필요한 것이긴 하다.
나름대로 인권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19세기서조차 가난한 사람들이나 힘없는 사람들은 사실상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 주지 않지 않나.
세계사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인권 운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저런 놈들은 사실 두들겨 패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세상엔, 아쉽지만 사람 같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죄책감 하나 없이 심지어 처벌이 약한 경우엔 또 같은 짓 혹은 더한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뭐 여기 갇혀 있는 놈들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있긴 할 거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라도 가서 이상한 짓 할 거다.
또 갇히거나 두들겨 맞을 수도 있는데 설마 하겠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엄연히 사형시키겠다고 해도 반복하는 게 이 시기 사람들이다.
실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이해가 간다.
‘그래, 뭐…… 안 때리는 게 어디냐.’
그런 면에서 나는 굉장히 온건한 대우를 해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적어도 두들겨 패고 있진 않잖아?
그냥 가둬 둔 거다.
물론 이대로 그냥 둘 생각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을 하나 불렀다.
그냥 아무 사람은 아니고 원장님이다.
사업 얘기하는 데 있어서 이 사람만큼 열려 있는 사람도 없어서 그렇다.
“전에 산 그 부지에 이제 요양원을 짓겠다 이거지?”
“네. 좀 시설 좋게 만들어서요.”
“흠…… 시설 좋은 요양원이라…….”
“우선 부자들부터 받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야 그렇긴 한데…… 결핵이 그런다고 좋아질까?”
“좋아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요양원에 보내는 거 아니었어요?”
“하하.”
내 말에 원장님은 껄껄 웃었다.
호탕한 웃음은 아니고 뭔가 좀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웃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고 기분 나빠했을 텐데, 이젠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자신만의 이유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 요양원이지…… 귀족들은 그냥 자기 별장에서 쉬게 하지 않나. 수용소라고 봐야지. 일종의 벌이라고 생각하니까.”
“원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신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건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일단은 결핵 환자들만 대상으로 하려고 하는데요.”
“그거야 뭐……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있는 치료 아닌가.”
“뭐…….”
전통이 있는 치료라고 다 효과가 있었으면 지금 이렇게 죽어 나갈 이유도 없지 않겠나.
하지만, 결핵에 있어서만큼은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저기에 이제 사혈도 더해서 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치료가 되기는커녕 더 죽긴 했다.
실제로 돈깨나 있는 사람들일수록 환경은 되게 좋은 곳에 있지만, 그 좋은 경치 보면서 피를 빼 왔기 때문에 결핵에 대해서도 요양이 딱히 의미가 있나 싶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실제로 결핵 환자들에게 요양은 꽤 의미가 있다.
‘제갈량도 유비만 아니었으면 훨씬 오래 살았을 거란 추정이 있지.’
신산 제갈량.
일본 모 게임사에서 만든 게임에서 늘 지력 100을 달고 나오시는 그분은 꽤 유명한 결핵 환자다.
별명이 와룡이신데, 그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 결핵에 걸렸다 보니 힘들어서 자주 누워서 붙은 것일 거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아무튼, 힘들어서 싫다는데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군에 합류하고 보니 이게 웬걸? 싹 다 무력만 센 사람들이다 보니 독박 군사를 하게 되지 않았나.
그 와중에 고생해서 천하삼분지계를 이루었더니 관우 죽고, 마초 죽고, 황충 죽고, 장비 죽고, 유비가 죽어 나가는 등 거의 동시에 게임을 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근데 우리 황제는 유선.
과로사한 거다, 사실.
“그럴 수 있죠. 대신 사혈은 안 됩니다.”
“흐음. 또 자네만 아는 사혈을 하려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닌가. 사람이 언제까지 음흉할 거야. 나한테는 털어놔도 되잖아.”
“제가 하는 건 사혈이 아니라니까요?”
“하하.”
이번에도 비웃음이 뒤섞인 웃음이다.
진짜 음해일 뿐인데, 안타깝게도 이분을 비롯한 19세기 분들에게는 나름 근거가 있다.
어떤 근거인고 하면, 심낭 압전 치료는 심장 사혈, 뇌출혈 치료는 뇌 사혈, 축농증 수술은 코 사혈 등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다.
옛날엔 그저 의심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확신이다.
별의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데 이 정도는 뭐 도는 게 당연하다.
미친놈들이 기사 서임 당시 있었던 심폐소생술 해 준 사람이 지금 좀 아프긴 하거든?
뭐 후속 조치가 가능하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심장 기능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그때 벌써 뇌에 이상이 생겼던 건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설명했는데, 김태평이 주술로 영혼을 바꿔치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냐?’
항변했더니 리스턴이 죽은 사람 살리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공 굴리는 꼴을 보아하니 그 소문을 믿고 있는 모양이다.
하.
자꾸 한숨이 나오네.
“왜 그러나. 나 그래도 원장이야, 원장.”
“원장님한테 그런 거 아닙니다.”
“여기 둘밖에 없는데.”
“리스턴 형님한테 한 거예요.”
“그놈한테 감히 한숨을 쉰다고?”
“여기 없잖아요.”
늘 그렇듯 솔직하게 말하고는 원래 계획을 털어놓았다.
“아무튼, 여기 놈들 인부로 쓰려고요.”
“비리비리하던데.”
“그래도 뭔가 할 수는 있겠죠.”
“하긴 일이야 시키긴 나름이지. 그리고…… 자네가 하는 일이니 틀림없이 돈이 되겠지.”
“당연하죠.”
“아,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대체 홍삼 이거 언제 다시 들어오겠나.”
원장님의 말에 나는 꽤 오랜만에 홍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돌푸스 공작님께 탈모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주문이 폭주하길래 가격을 올렸는데도 금방 소진되었다.
분명 매진되었다고 여러 번 공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문의가 계속 들어올 정도로 인기다.
심지어 어떤 탈모 귀족분은 이렇게 꿍쳐 두고 있으면 언젠가 칼 맞을 일이 있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남겼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효자 상품 되겠어.’
사람 인식이라는 게 진짜 잘 안 바뀌는 법이거든.
대한민국에서도 어르신들 선물 뭐 할지 애매할 땐 홍삼만큼 좋은 것도 없잖아.
영국을 비롯해 유럽, 그리고 영연방까지 그 인식이 번지게 되면……?
어쩌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쌀농사 대신 인삼 재배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알아보고 있어요. 곧 들어올 겁니다.”
“그래. 내가 아주 곤란해. 국왕 폐하께서도 문의를 하고 계신다네.”
“제가 주치의인데 왜 저한테 말을 안 하시고?”
“뭐 한다고 그러면 맨날 하지 말라고 하니 답답한 모양이야.”
“아, 근데 진짜 쓸모없는 짓을 하려고 하시니까요.”
일단 사혈…….
휴, 그놈의 사혈이 진짜 문제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료가 시급한 건 바로 충치다.
아니…….
내가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노동자들이야 전반적으로 건강도 좋지 못하고, 당연히 위생도 좋지 못하니 구강 건강이 안 좋은 거야 충분히 예상이 되는 점이었다.
‘제이미 공작님도 그렇긴 했지만, 그 양반이야…….’
공작님 기준으로 상류층을 판단하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면 대영제국의 미래가 위태로워 보이잖아.
실제 역사에서는 잘만 나갔으니 아마도…….
내가 없었으면 우리 공작님은 스스로 고환 자르고 비소 벽지 바르다가 돌아가셨을 거다.
그 자리를 다른 좀 더 똑똑한 놈이 차지했을 것이고.
이건 좀 너무 나간 거 같지만 아무튼, 다른 높으신 분들은 괜찮을 거라 믿었다, 이 말이다.
‘근데 국왕 폐하께서 그 모양이라니.’
어휴 하고 고개를 내젓고 있으려니 원장님이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불안한 마음에 하는 일 아니겠나. 다 근거가 있는 일이고.”
“아니라니까요?”
“그럼 대안을 제시하게.”
“운동하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게 무슨 운동인가! 고문이지!”
운동하라는 말을 환자에게 했다고 버럭 화를 내는 의사가 여기 있다.
이 사람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이렇다.
리스턴 정도나 돼야 힘 쓰는 걸 좋아하니 그냥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 특히 지체가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들은 진짜 내가 제시하는 운동을 극도로 증오하고 있다.
처음엔 진짜 이해가 안 갔다.
아니, 몸 좀 움직이라고 하는 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싶잖아.
“그게…… 그 정도로 시키면 고문이지만, 적당히 하면 건강에 좋을 거라니까요?”
“웃기지 말게. 그건 고문이야.”
근데 글쎄…….
죄수들 중에 특히 악질인 놈들 대상으로 러닝 머신을 돌리고 있었더라고?
말이 러닝 머신이지 실상은 풍차긴 한데…….
그걸 이제 물 대신 사람 다리로 굴리는 형식의 기계였다.
실제로 보면 러닝 머신이라기엔 너무 크고 거대하기 때문에 운동 기구라는 느낌보다는 고문 기구라는 느낌이 강하긴 했다.
위에 올라가서 땀 뻘뻘 흘리다가 지쳐 쓰러지는 죄수들까지 보면 지옥이고.
심지어 그러다 죽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이 양반이 이딴 식으로 나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땀을 흘리는, 어떤 반복적인 행동은 운동이 아니라 고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제가 뭐 국왕 폐하더러 손수 풍차 돌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았다 일어나기를 바른 자세로 하라고 하는 건데, 그것도 안 됩니까?”
“아프잖아! 내가 따라 해 봤는데, 엄청 아프더구만!”
“조선에는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 얘기는 저기 리스턴한테나 하게. 그놈의 조선 조선 지겹지도 않나.”
“제 조국입니다만…….”
“지금은 대영제국의 당당한 귀족일세!”
“그 귀족 앞에서 이렇게 언성을 높여요?”
“아니…… 이 사람 참.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이 왜 필요한가. 내 말은 너무 싫어하시는 거 말고 딴 거, 좀 그럴싸한 걸 시키라는 말이야.”
“그럴싸한 거라?”
충치에 대해서는 갉아 내야 할 거다.
근데 그건 내가 당장 할 수가 없다.
대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양치 제대로 하게 만드는 건데…….
‘치과도 나올걸.’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