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2)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2화(322/505)
322화 충치 [2]
충치.
쉽게 말하면 썩은 이를 뜻한다.
이의 겉면에 해당하는 에나멜부터 상하기 시작해서 종래에는 우리가 흔히 신경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까지 들어가고, 심하면 뿌리를 통해 턱뼈까지 썩게 만들 수 있다.
물론 21세기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양치도 열심히 하거니와, 대한민국 치과는 손재주 좋기로 유명해서 그렇다.
아, 손재주만 좋은 건 당연히 아닐 것이고, 치의학이 어마어마하게 발전을 했을 거다.
‘이 충치가 있으면…… 수명도 줄겠지?’
비슷한 내용을 어디 논문에서 봤거나 주워들은 것 같다.
사실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만 해 봐도 그럴 거 같다.
일단 이가 썩으면 제대로 음식을 씹을 수가 없게 되잖아.
그럼 아무래도 소화가 잘 안 될 수밖에 없다.
젊은 놈이면 뭐 위장 기관이 강력해서 딱딱 소화를 시킬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국왕 폐하와 비슷하게 나이가 든 사람들은 위가 약하지 않겠나?
그럼 가뜩이나 불균형한 식사를 하거나 혹은 부족한 식사를 하고 있을 텐데 소화까지 안 되면 이게…….
‘게다가 균이 거기 계속 있는 거잖아.’
균이 있고, 염증이 있다.
그거 다 침으로 뱉는 사람 있나?
없다.
아, 뭐…… 우리 19세기 런던은 길바닥이 워낙에 더럽기 때문에 가래침 정도 뱉는 건 오히려 신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언제나 뱉을 수는 없다, 이 말이다.
그 말인즉슨 지속적으로 위험한 감염 물질이 몸에 들어가고 있단 소리가 된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은 신체 여러 기관들의 협조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렇다 보니 사레도 점점 더 잘 들리게 되는데 그냥 물만 넘어가도 위험한 곳이 폐인데 균이 넘어가면 어떻게 되겠나.
덜컥 돌아가실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당뇨 위험성도 올라간다고 하던데.’
이건…….
솔직히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반대로 된 기사를 본 거라 진짜 그런지도 잘 모르겠다.
양치 세 번 잘하면 당뇨 위험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그럼 뭐 안 하면 위험성이 올라간다고 하는 것도 썩 합리적인 추론이지 않겠어?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나, 사람 불안하게.”
“제가 런던 최고의 명의인데 그게 왜 불안한 일입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원장님이 진짜로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한 채 물어 왔다.
그래서 되물었더니 헛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어이가 없다.
“하하…… 생각을 해 보게. 자네가 지금까지 냈던 아이디어들이 다 어땠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죠.”
“돌이켜 보면 그렇지만 당장 보면 어때. 난 아직도 비소 옷을 입고 죽어 가던 사람의 얼굴이 꿈에 나온다네. 자네도 그렇지 않나?”
“아, 그랬지.”
“아, 그랬지? 자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원장님은 이외에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었다.
듣다 보니까 좀 걱정이 될 만도 해 보이긴 했다.
하긴…….
너무 위대한 진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법이지 않겠나?
더군다나 최근에는 내가 사회적인 지위가 생겼다 보니 이전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게 되지 않았겠나?
그래서 그런가…….
좀 더 끔찍해 보일 수 있는 일들도 있었던 것 같다.
“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합니다만.”
“그래, 뭐…… 근데 이번에는 상대가 국왕 폐하라는 걸 상기하게나.”
“그렇군요. 흐음……. 어쩐다?”
“그러니까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냐고.”
“아니, 아까는 뭐라도 하라면서요.”
“근데 그 ‘뭐’라는 것이 뭔지 안 알려 주고 있지 않나. 너무 불안하다네.”
원장님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그러곤 내 명령에 의해 밖으로 옮겨지고 있는 여러 돌팔이들을 바라보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 그런가, 표정이 좋았다.
하지만 집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가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놈들은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원장님이 집중한 것은 바로 그쪽에 있었다.
“저 친구들도 보게나…… 돌팔이들이라고는 해도 나름 몸 편한 일만 하던 놈들인데 끌고 가서 일을 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이놈들에게나 대영제국에나 다 도움이 될걸요.”
“그건 자네 생각이지.”
“제 생각이라뇨? 이놈들도 여기 갇혀 있는 것보다는 해 아래 나가서 운동하는 게 낫지.”
“자네는 대체 왜 고생하는 걸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맞으니까.”
“하…… 그래서 국왕 폐하를 그렇게 곤혹스럽게 했어?”
“그건…… 폐하께서 그렇게 약하실지 몰랐죠.”
내 말에 원장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내가 뭔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러한 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어차피 국왕 폐하의 주치의는 나니까.
아부해서 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아부한 적도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어…… 자네 말대로 하겠네.
그 양반이 나한테 주치의를 맡기고, 오직 나한테만 건강을 맡기겠다고 해 놓고 이상한 짓을 계속하거든?
미친놈들이 사방에서 아무리 그래도 정기적으로 피를 뽑는 게 좋다는 둥, 이게 건강에 좋은 거라고 하면서 뭐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약을 먹어야 한다는 둥 별별 지랄을 다 하길래 가서 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래도 말 잘 듣는다.
왜?
-근데…… 그 친구 정말 전에 그 친구인 건 맞지?
내가…….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또 다른 소문도 돈다.
영혼 교체자 김태평…….
시벌.
평소에 뭔 생각들을 하면서 사는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런 별명이 붙어 버렸다.
그럴 만도 한 게 하필이면 그놈이 내가 심폐소생술 해 준 후 적절한 다른 치료가 들어가지 못했고, 또 진짜 심장 문제긴 했는지 이후에 약간 인지 능력이 떨어졌더랬다.
제일 중요한 건 본인도 본인이 나 욕하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인지, 날 볼 때마다 아주 벌벌 떨고 고개도 숙이고 별짓을 다 한다.
-그래, 내 자네 말을 믿어야지. 그렇게 하겠네.
그런 소문이…….
욕만 해도 죽어서 영혼이 교체된다는데 어찌 내 앞에서 불손하게 나올 수 있겠나.
또 다른 불온한 소문에 의하면 런던 대주교의 명으로 내가 혹 악마는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악마는 절대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릴 수 없지 않겠나?
만약 그렇다고 하면 교회의 위신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니 설령 의심이 된다 해도 별짓은 하지 못할 거다.
그렇게 나는 악마이면서 독실한 신자라는 상당히 독특하면서 동시에 가불기적인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또 19세기 분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당장은 무적이란 말이다.
“그래……. 내가 자네에게 뭔 말을 하겠어. 다만 너무 끔찍한 일은 하면 안 된다네.”
“알겠어요. 일단 부탁 하나만 할게요.”
“저 사람들 운반하는 거 말고 또?”
“네. 런던에서 이 치료 하는 사람들 좀 불러 주시죠.”
“그…… 그놈들은 왜.”
아, 런던에서 아니, 19세기 유럽에서 치과 의사들이란 사기꾼 또는 고문 기술자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지금이야 마취가 나왔으니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충치치료라고 하면 이 뽑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 마취가 없던 시절에는 그냥 뽑았다.
아마 그런 경험 있는 사람은 나 포함 아무도 없을 텐데, 이 뽑는 게 안 아플 리가 없다.
뭐 어지간히 썩은 상황이라면 흔들리기는 할 텐데…….
밑에서 이가 자라 나오면서 뿌리가 녹아서 뽑히는 젖니가 아니라 염증 때문에 흔들리는 거라면 그 염증 때문에 더 아플 수도 있다.
“알아볼 것이 있어서요. 우리 런던의 치아 상태가 어떤지.”
“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내 앞에 있던 원장님이 ‘아’ 하고 벌린 입 안쪽 구강 상태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엉망이다.
진짜로…….
‘아니…… 이 양반 정도면 그래도 꽤나 배운 사람……이지만 19세기 지식인이지.’
의아해할 필요는 사실 없다.
우리가 아는 전반적인 의학 상식은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정립이 된 거니까.
특히 이놈의 유럽에 잘 씻어야 한다는 상식이 번지게 된 것은 세계 제1차, 2차 대전 이후다.
이런 말 하면 좀 끔찍스럽긴 한데 전쟁이라고 해서 마냥 인류사에 있어 악영향만 미친 건 아니란 말이다.
“뭐,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근데 그놈들도 그럼 다 일꾼으로 쓸 거야?”
“아, 아뇨. 봐서요.”
“봐서……? 무슨 말이 그렇게 무서워.”
“무조건 그렇게 할 건 아니라는 거죠. 일단 좀 불러 봐요.”
“알았어.”
원장님은 리스턴에게도 툴툴거리는 사람이니만큼 나한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아무래도 리스턴보다 나에 대한 무서운 소문이 돌고 있다 보니 또 말을 잘 들었다.
약간 츤데레?
아닌가?
무서워서 잘해 주는 캐릭터는 뭐라고 하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원장님은 경찰력과 갱단을 동원해서 런던의 유명한 치과 의사들…… 그러니까 치아를 다루는 사람들을 보내 주었다.
‘와…… 저 새끼는 뭐지.’
19세기 사람들의 행색은 일반적으로 꽤 예의 바른 느낌이 있다.
낡고 해지고, 냄새가 날지언정 기본적인 옷차림의 형태가 다양하지 않아서 그렇다.
거기에 더해 딱히 장신구랄 것도 없는 시절이다.
특히 남자는 더더욱 그렇다.
손목시계도 없는 시대이니 당연한데…….
내 눈앞에 나타난 놈 중 하나가 좀 비상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덜그럭.
걸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난다.
목걸이를 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말이 목걸이지, 트로피라고 봐야 한다.
보수적인 런던에서 남자가 요란한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건 꽤 위험한 일이거든.
“안녕하십니까! 평신 님! 존경합니다!”
그놈이 이 중에서 대장인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열댓 명이나 몰려와서 놀라고 있었는데, 그 선두에 녀석이 서 있었다.
덕분에 나는 검게 변색된 무수히 많은 치아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상당히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와…… 이거 약간 리스턴 형님 옛날 버전 같네.’
경험과 실력을 보여 주려고 칼을 안 닦았었잖아.
그것에 비하면 뭐…….
치아 목걸이는 괜찮아 보이긴 한다.
동물 이빨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게 좀 마음 불편하게 만들긴 하지만…….
“런던에 계신 분들이 다 오신 건가요?”
아무튼 간에 불러 놨으니 애초에 물어보기로 했던 건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당장 그걸 묻기에는 다른 궁금증이 돋아나고 있긴 하다.
괜찮다.
시간 좀 더 뺏는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사실 돌팔이는 시간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지 않겠나?
그만큼 사고 칠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이제 내 지위나 권력이 이런다고 문제 생길 정도가 아니다.
“네? 아, 아뇨. 이 근처에 있는 친구들입니다.”
“응? 열……여섯 분이나 되는데요.”
“아…… 거리마다 보통 하나씩은 있습니다. 수백, 수천 명도 더 될걸요. 겸사겸사 뽑는 친구들까지 다 하면요.”
“허. 왜 그렇게 많죠?”
내 말에 상대는 좀 어이없어하면서 답했다.
자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였다.
“충치가 워낙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