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3화(323/505)
323화 충치 [3]
“아.”
말 그대로 ‘아’밖에 할 말이 없다.
듣다 보니까 사실 그렇긴 해서 그렇다.
맞는 말이지 뭐.
이 이를 다 어디서 뽑았겠나.
설마하니 고문 기술자라서 생니 뽑은 건 아닐 거 아닌가.
‘아니, 아니지. 그런 이도 있었을 거야.’
있긴 할 거다.
고문이라는 단어를 떡하니 경찰에서 쓰고 있는 시대니까.
어떤 형사분은 내게 주먹과 물만 허락하면 어떤 정보든 빼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나이 지긋하신 형사분이 절레절레 고개를 뒤흔들길래 아, 그래도 역시 연륜 있는 분이 좀 낫긴 하구나 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잠 안 재우고 굶기는 게 최고지.
하.
진짜 고문의 정석이다, 정석.
개무서워, 진짜로.
“그 이를 어떻게 뽑고 있습니까?”
그건 그거고 이 사람들이 어떤 치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애초에 뭔가 더 놀라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니잖아.
사실 놀라고 싶으면 그냥 이스트엔드에 놀러 가면 된다.
괜히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게 아니다.
진짜 신기해, 거긴.
사람이 어떻게 저런 데서 저렇게 하고 살지 싶기도 하고…….
“아…… 저만의 기술이 있습죠. 이 친구들도 다 제게 배웠습니다.”
아무튼, 내 말에 우리 목걸이 사내는 들고 있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촤르륵 소리가 나는데 묵직한 쇳덩이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리고 꺼내 놓은 기구들을 보는데 하나같이 참 대단했다, 그 위용이.
마치 이전에 저기 뭐야, 리스턴칼을 보는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조그마한 이 뽑는 데 굳이 이렇게 큰 도구를 쓸 필요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걸로 이를?”
“네. 환자가 아무래도 움직이니까요.”
“요새는 마취……하지 않나?”
“아, 아아. 그렇죠. 요새는 그렇죠. 세상 좋아졌습니다. 하하. 저 때는 한 네 명이 잡고 다른 하나는 강제로 입 벌리고 이걸로 뽑았는데요, 하하.”
누구라도, 내가 존경하는 관우 선생님이라고 해도 눈앞에서 이런 거 들고 이 뽑겠다고 하면 오금이 지려서 도망갈 거 같다.
근데 이젠 말마따나 마취가 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따위 기구를 쓰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근데 이젠 이렇게 클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응? 아, 그럴까요?”
그 생각을 이제야 떠올린 모양인지, 목걸이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마치 목욕하다가 금 무게 재는 법을 떠올린 아르키메데스라도 된 양 놀란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 꼴을 보아하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뭐…… 마냥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마취가 나오고 나서 수술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 맞긴 하지만…….
그래 봐야 기존의 수술에서 탈피한 건 수년, 혹은 10년 이상 지난 다음의 일이었거든.
생각보다 인간은 지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기 어려운 동물이라서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21세기처럼 안전한 세상에서나 혁신, 변화가 좋은 거지. 지금 그런 걸 너무 좋아하면 뒈지기 십상이다.
“그래요. 어차피 환자가 가만히 있을 텐데 뭐 하러 이걸 이렇게 해요.”
“아…… 역시 평신 님…… 이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 봤습니다.”
“뭐, 그럴 수 있죠.”
“허어…… 진짜 좀 더 작은 기구를 쓸 수 있겠구나…….”
이 친구 놀라는 걸 보니 기분이 좋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렇게만 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해서 이것저것을 더 물어보았다.
발치 말고 다른 치료를 시도하고 싶어서 그렇다.
내가 치과 의사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발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잖아?
지금이 뭐 21세기 대한민국처럼 임플란트가 자유롭게 되는 시절도 아니고.
기껏해야 틀니나 만들 수 있을 텐데, 이 틀니라는 것도 지금 기술로 만들면 개판일 거다.
“응? 아…… 뭐, 유행했던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근데 저는 안 합니다.”
“유행……?”
해서 다른 거 뭐 없냐고 옆구리 푹 찌르니까, 애초에 내 앞에서 무엇 하나라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던 목걸이 사내가 부리나케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근데 유행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좀 불안했다.
더 듣고 보니 과연 불안해하는 게 맞았다.
“이가 까맣고 이러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야 애 어른 가릴 거 없이 다 이가 썩지만, 예전에는 높으신 분들이 이상하게 그랬거든요.”
“높은 사람들 아니라도 이가 까마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죠, 그렇긴 한데. 우리 같은 놈들이야 뭐 파티 같은 데 갈 일 있나요.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렇긴 하죠.”
나만 해도 초청장이 자주 온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매일 파티장에 갈 수 있을 정도다.
바쁘기도 하고…… 가면 인싸 놈들한테 기 빨리는 게 고통스럽기도 하고…….
-오, 당신이 피영시인이군요……?
이상한 소문이라도 번진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귀부인들이 무서운 게 제일 크다.
아니, 대체 왜 사람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거냐고.
아무튼,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어마어마하게 다닐 거다.
근데 이가 까맣다면 좀 그럴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까 나한테 추파 보냈던 귀부인 중에 하나도 앞니 하나가 까맸어.
“그걸 하얗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으응……? 사기 아닌가?”
“아, 아뇨. 분명 하얘집니다. 지금 당장 이 이들도 다 하얗게 할 수 있어요.”
“허.”
뭐지?
치아 미백이 된다고?
그것도 뭐…… 어?
21세기에서도 쉽지 않은 거 아닌가?
심지어 단순히 착색이 된 치아가 아니라 썩어서 까맣게 된 걸 하얗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사기 또는 상당히 끔찍한 시술이 떠오른다.
“질산을 바르면 됩니다.”
“아.”
내 생각이 맞았다.
그래, 겉에 까맣게 된 거 제거하면 하얘지기는 할 거다.
하지만 산이라니.
콜라에만 넣어도 녹는다던데, 치아는.
그걸 진짜 본격적인 산으로 처리하고, 그 방법이 유행했다니?
“근데 하얗게 되긴 하지만 이후에 이를 뽑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져서요. 하하…… 이게 참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뽑기만 합니다.”
이놈이 생긴 건 이래도, 또 행색은 이래도 나름 양심적인 놈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질산은 안 발랐다고 하잖아.
해서 더 깊숙이 물어봤는데 아무래도 아직 치과에서 충치치료란 발치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치료는 안 하는 거 같아.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이전에 비해 틀니나 브릿지 같은 것도 시도해 보는 등 뭔가 발전이 있는 거 같긴 한데…….
“흐음…….”
“뭔가……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던 거 같군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뭐. 실태를 잘 알았으니 좋죠.”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살려 주시는 겁니까?”
“응? 당연하지. 내가 뭐 누구 죽이거나 한 적은 없는데?”
“아, 네. 그, 그렇습죠.”
내 한숨에 앞에 있던 목걸이 사내가 흠칫 쫄았다가 다시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검게 변색된 이들이 잘그락거리고 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자꾸만 우리 국왕 폐하의 이가 떠올랐다.
‘안쪽 어금니는 다 썩었지.’
앞니는 어떻게 관리를 한 건지는 몰라도 살리긴 했다.
하지만 안쪽은…….
안쪽은 엉망이다.
사실 나 정도나 됐으니까 치실도 하고 어? 이도 닦고 한 거지 지금 이 시대에서 구강 관리란 거의 별세계 일이나 다름이 없긴 하다.
‘근데…… 그래도 이를 닦기는 하던데……?’
그렇다고 양치를 아예 안 하냐? 그건 또 아니다.
뭐…… 우리가 알고 있는 칫솔이나 치약과는 많이 다른 무언가를 사용하고 있긴 하다.
칫솔이야 동물 털을 이용한 것이다 보니 그저 후진 수준에 불과한데, 치약은…….
이쪽은 이제 ‘약’이잖아?
19세기 약치고는 뭐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다 보니 그냥 다 개판이라고 보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부터 해서 인이나 뼛가루도 쓰고 어떤 미친놈은 질산염을 희석해서 쓰기도 한다더라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목걸이, 치과 맹획에게 들은 것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무리 후져도 일반인보다는 더 관리를 하긴 할 거야. 당연하지. 당연한 일인데…….’
사실 치약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냐고 하면 그건 아니라 할 수 있다.
뭐 현대 사회처럼 달고 끈적한 것들이 많은 세상이라면야 필요하겠지만, 여긴…….
여긴 19세기 영국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어떻게 하면 더 맛없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놈들이다.
그렇다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 같진 않긴 하다.
‘생각해 보면 교수님들이 영국은 심지어 버X킹도 맛대가리가 없게 만들더라고 했지.’
세계사에 씻지 못할 죄를 지어서일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음식은 거의 벌을 받은 정도다.
어, 뭔 얘기 하다가?
아, 그래.
음식 때문에 더 썩을 것 같진 않다는 거다.
“아, 어르신! 제발 디저트 좀 줄이시라니까!”
“그럼 먹을 게 없는데 뭘 먹어!”
“당뇨라니까요? 아니, 공작님. 죽어라고 살려 놨더니 왜 이래요? 대체?”
“이놈이 어디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네가 피영신 제자지 피영신이야? 어?”
그때 옆방에서 소란이 일었다.
늘상 있는 일이다.
당뇨 치료라는 게 사실 지지부진한 과정이잖아.
인슐린만 맞는다고 치료가 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심지어 지금 시점에서는 보조제로 쓸 만한 약도 없고, 영양학적으로 제대로 된 식단을 꾸려 줄 수도 없다.
사실 혈액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인간 소믈리에를 가동하고 있으니 뭐…….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제한이 되는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디저트 제한이다.
디저트라는 게 뭐 다들 그렇겠지만 이 시기 디저트는 말 그대로 설탕…….
“아.”
설탕.
설탕이 범인이다.
벌컥.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제이미 공작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벌컥.
확 열고 들어가니까 잔뜩 골이 난 얼굴의 제이미와 내 애정하는 제자인 존 스노가 눈에 들어왔다.
“어, 피영신?”
아무리 골이 났다곤 해도 내가 나잖아.
제이미 입장에서는 어?
진짜 생명의 은인보다도 더한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나를 반기기 위해 무려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어어.”
나는 다시 자리에 앉혔다.
“공작님.”
“응?”
“입 좀 벌려 봐요.”
“뭐, 뭐야.”
그러곤 구강을 살폈다.
“아이고.”
“왜, 왜 그러나.”
이럴 줄 알았다.
이가 죄 썩었다.
앞니를 제외한 어금니 쪽이 특히 심각하다.
어쩐지 회의실에서 가끔 똥 냄새가 난다 했다.
“남의 입 들여다보다가 코 쥐는 건 예의가 아닐세.”
인상을 쓴 나를 보며 제이미 경이 나름 준엄하게 꾸짖었지만 스스로 고환 자른 자는 공작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위엄을 갖추기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병원에서 의사-환자 관계로 만났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건 모르겠고, 앞으로 좀 더 자주 오셔야겠는데요.”
“왜, 왜.”
“국왕 폐하의 건강 때문입니다.”
“응?”
왕보다는 공작한테 연습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아, 바로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랜만에 죄수 소집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