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4화(324/505)
324화 뽑지 말아 보자 [1]
치과.
어느 과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그냥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하는 말이란 뜻이다.
아무튼…….
‘진짜 개무서운 곳이지.’
비단 어릴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다 커서도 무섭다.
윙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손에 땀이나.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런 치과가 그리워지긴 한다.
아프긴 한데 그래도 국소 마취도 해 주고, 적어도 내 이를 살려 주잖아.
‘이게…… 절대 남의 일이 아니야…….’
난 치실도 하고 있고, 나름대로 이를 열심히 닦는 편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 칫솔 또한 돼지털로 만든 것이고, 치약이랄 것도 없어서 소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소금이나 동물 털 이용한 칫솔이 꽤 비싼 축에 속하는, 이른바 사치품이라는 건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별문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칫솔이나 치약이 있다면 돈을 더 줄 용의도 있다.
근데 그게 안 되잖아?
언젠가는 내 이도 썩을 수 있다, 이 말이다.
‘시발…… 그때 내 이를 대체 누구에게 맡긴담……?’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치아 맹획, 한스뿐이었다.
어휴…….
한스라니.
그 커다란 발치 기구를 마취 가스 나온 지가 언젠데 여태 개량도 안 하고 그냥 쓰고 있던 놈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 평.”
“형님.”
“이제 하다 하다 이까지 건드리나.”
“어쩔 수 있나요. 내 이는 소중한데요. 조선에는 오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치아 건강한 것이 그 안에 들어갑니다.”
“음? 내가 알기로 조선의 오복이란 곧 오래 사는 장수(長壽),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부(富), 건강하게 사는 강녕(康寧),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 있는 봉사를 하는 유호덕(攸好德), 자기 집에서 깨끗이 죽음을 맞는 고종명(考終命)을 뜻하는데?”
어……?
치아가 아니야?
사실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저 양반은 영국인이니 보통 이럴 때면 내가 맞아야 한다.
하지만…….
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고, 저 인간은 왜인지 모르게 조선에 진심이 되어서 매일매일 그쪽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딱 들어도 저쪽이 훨씬 그럴싸하잖아.
장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에 치아가 끼는 건 좀 느닷없게 느껴진다.
“그, 그만큼 치아가 중요하다. 뭐 이런 뜻이죠. 속담에 있습니다.”
“아하…… 속담. 그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뭐 이런 거지?”
“아니…… 그거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에요?”
“알지, 그럼. 고깔 놓고 에이 자도 모른다는 거 아닌가.”
“허.”
이쯤 되니까 좀 무섭다.
리스턴 형님이 조선 민수가 되어 버렸어.
상당히 어려운 속담인데 저걸 듣자마자 현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진짜 언젠가 같이 조선 갈 일이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워진다.
-이보게, 평.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그래.
이럴 거다, 백 프로.
왜?
나도 지금 조선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당최 알 길이 없거든.
그나마 내가 나름 의사치고는 잡지식에 관심도 많은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의학 아닌 다른 분야에 각 잡고 열심 낼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X튜브나 보고 그랬는데, 그때 본 거에 따르면 좀…….
어? 조선이 어떻게 봐도 여기만큼 발전해 있을 것 같진 않단 말이야.
-이보게 평, 이것 좀 보게.
스릉 소리 나면서 목 자르면 어찌해.
“이보게, 평. 이것 좀 보게.”
“힉.”
“왜 그러나. 여기 죄수들 왔잖아.”
“아.”
이 양반이 무림인이라 그런가 생각도 읽나 해서 화들짝 놀랐다.
허나 그가 가리킨 곳에 우르르 몰려온 죄수들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뭐, 말이 몰려온 것이지 그렇게 수가 많진 않다.
이까짓 충치치료 실험으로 감형이 고려될 정도면 진짜 경범죄나 저지른 놈들이라 그럴 거다.
아, 여기서 경범죄라고 해서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가벼운 범죄를 떠올리면 안 된다.
노상 방뇨나 침 뱉기, 길거리 담배빵 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엄연히 누군가를 패거나, 뭔가 훔치거나 빼앗은 분들이다.
“자, 이쪽으로.”
이전과는 달리 나는 경찰이나 갱단 보조 없이 리스턴만 대동한 채 죄수들 앞에 섰다.
그러곤 한쪽을 가리켰다.
“힉…….”
“피영시인…….”
“누, 눈 마주쳤…… 읍.”
왜냐고?
이젠 리스턴 없이 나 혼자만 있어도 애들 벌벌 떨거든.
흉악범들만 왔어도 벌벌 떨기는 매한가지였을 거다.
어쩐지 나는 힘으로 안 될 거 같잖아.
저주다, 저주.
심지어 대영제국의 국왕 폐하마저 두려워하는 저주.
짝.
이번에도 또 하나 쓰러지길래 맥박을 짚었는데 뛰긴 뛴다.
해서 뺨을 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허허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이거야 뭐 아주 자연스러운 대처요, 반응이지 않나.
런던이야 그렇게까지 뜨거운 나라가 아니다 보니 온열질환자가 많진 않지만, 기립성저혈압이나 미주신경성실신은 봤을 거 아니야.
근데…….
“어우…….”
“아까 눈 부라리더니…… 병신. 상대가 그 피영시인인데.”
“야야, 조용. 너도 죽고 싶냐.”
“영혼 바뀌고 싶지 않으면 다들 조용히 하자고.”
시선이 삐딱해 놔서 그런가.
뭐만 하면 이 지랄이다.
하지만 뭐…… 나쁠 건 없다.
아까보다도 더 빠릿빠릿해졌으니까.
무엇보다 오늘은 이렇게 움직여 주는 게 중요하다.
아무나 가스 틀어서 눕히고 이 갈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단 안을 들여다보고, 치료할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자, 모두 입 벌려!”
“네!”
거의 군대를 방불케 할 만큼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덕분에 나랑 리스턴 그리고 콜린, 조지프, 앨프리드와 똘똘이 스X프 존 스노는 손쉽게 모여든 인원의 구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오…….”
일단 구취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상류층들은 별 이상한 걸 씹어서 냄새만큼은 숨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친구들이야 그런 게 안 되는 애들 아닌가.
그렇다 보니 노골적인 냄새가 나는데 입 벌리라고 한 게 나다 보니까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일단 너는 저리로. 너는 여기 있고.”
아무튼, 오늘 이렇게 다 모이라고 한 건 단순 충치 치료만을 위해서가 아닌 전반적인 구강 위생 개선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죄수들을 사사로이 오라 가라 하는데 좀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당연하게도 우리 연구소에는 보다 효율적인 칫솔과 치약 개발을 하라고 일러두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직까지 화학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보니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거 같지 않다는 거다.
‘코카인도…… 순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지?’
내가 그거 분명 다 폐기하라고 했다.
이 관련 지식과 자료 모두 다 폐기하라고 했지만, 말하면서도 알았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해서 뒷구멍으로 좀 파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이미 공작님을 필두로 해서 코카인 장사를 시작했다.
-이게 그렇게 나쁜 약이라면 프랑스에 팔면 애국 아닌가? 우리야말로 역사에 남는 애국자라는 얘길세.
뭐 이런 말을 하면서였는데…….
생각해 보면 아편 전쟁도 일으킨 놈들이니 이건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해서 뒤로 구해 와서 효과를 봤는데, 내가 했다는 건 아니다, 뭐……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우려할 정도는 아닌 거 같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아저씨가 팔던 그런 거랑은 비할 바가 안 돼.
‘그런 와중에 치약을 만들 수 있을까?’
치약 그거 그냥 대충 하얗고 끈적한 무언가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그래서 하나 더 내린 명령이 있는데, 우리 대영제국이 지배하고 있거나 지배하고 싶거나 혹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수준의 곳들 중 어디라도 좋으니 이가 잘 안 썩는 지방이 있으면 그거라도 알아 오라고 했다.
아, 이건 연구소나 그런 데가 아니라 군에다 짬 때렸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민간인인데 이게 되나 싶겠지만, 내 긴 팔이 어느새 거기까지 닿고도 남더라고.
“자, 그럼 우측으로 온 친구들. 우리 친구들은 이 안으로 들어가.”
“네, 네!”
“네!”
하여간, 분류를 통해 치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된 놈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어?”
“어어어!”
당연하겠지만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양호한 애들에게는 설탕이 들어간 디저트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감방에 갇히기 전에도 이런 거 어? 먹어 봤겠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설탕이 처음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보다야 가격이 뚝뚝 떨어졌다지만, 그것도 다 먹고살 만한 수준의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달짝지근한 간식은 꿈이다.
“자, 자자. 마음껏 먹게.”
우리 요리사 헨리 아저씨가 자기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하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리스턴 형님이 뒷목을 쳐서 골방에 가둬 놨다.
고로 이 간식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진짜 달기만 한 음식들 되시겠다.
하지만 죄수들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일 수밖에 없다.
‘정말…… 저게 사람 이를 더 썩게 만든다는 건가?’
‘그렇다니까요. 통계적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치아 벌레는 순 우연히…….’
‘그…… 제가 보니까 그 벌레라는 거 이제 전반적으로 안 믿는 거 같던데요.’
‘하아…….’
그렇게 즐거운 얼굴로 설탕 덩어리를, 일부러라도 좀 더 끈적하게 만들어서 진짜 하루면 이 썩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죄수들을 바라보고 있는 건 역시나 런던의 유력자들이었다.
제이미 공작님을 비롯해 여러 백작, 의원, 사업가 등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영국에서…… 설탕이 위험 음식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콜럼버스께서 신대륙에서 들고 오신 게 매독만이 아니라, 이거지.’
나는 미래 지식 아니라 우리 치과 맹획을 통해 입수한 정보 때문에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 설탕이 전래된 이래 지금까지 수백 년간 런던의 충치 환자 수는 쭉 우상향을 그려 왔다.
당연히 치과 의사 수도 그랬다.
발치술도 그 후로 엄청 늘긴 했다더라고.
그래 봐야 이 뽑다가 턱뼈도 부수고 하다가 이젠 이만 뽑게 된 수준이긴 하지만…….
“자, 여기는 보다 가시고요. 어차피 한 며칠 있어야 됩니다.”
“아, 그래.”
“이 와중에 차에 설탕 타 먹고 싶습니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뭐…… 그러시죠.”
나는 그 유력자들을 두고, 이제 ‘심각’으로 분류된 죄수들에게로 향했다.
이미 리스턴을 비롯한 우리 의료진들은 그들을 자리에 차분히 앉혀 놓고, 몇몇은 내 명령으로 만들게 된 치과 의자에 앉혀 놓았다.
말이 치과 의자이지, 그냥 좀 푹신하고 뒤로 눕혀지는 의자긴 하다.
위에는 기름 등잔이 있어서 나름 밝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지만, 이것도 나나 조수 머리통이 가리게 되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다는 거지.’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뻔뻔한 얼굴로 죄수를 향해 걸어갔다.
“평소에 이가 좀 시리다고?”
“네? 네네.”
“고쳐 주마.”
“미,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