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5화(325/505)
325화 뽑지 말아 보자 [2]
쩔껑.
나는 환자를 눕히는 과정에서 내 아랫도리 쪽에서 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사실 이제 와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보면 무서워하긴 한다.
근데 오늘은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는 느낌이었다.
보통 날 무서워할 때는 나 자체보다는 나를 둘러싼 이야기를 무서워하는 느낌이어야 하는데…….
‘이래서 이랬나.’
자꾸 까먹는데, 나는 아직 철 컵을 차고 있다.
전용으로 만든 바지가 아까워서는 아니다.
이제 이까짓 옷 정도는 한 번 입고 버려도 될 정도로 잘사니까.
진짜 이유를 꼽아 보자면 역시 불안감이다.
뭐…….
원래 포경하고 항생제를 처방하잖아?
외과의로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무조건 감염이 생길 걸 걱정해서 주는 건 아닐 거다.
사실 갑상샘절제술 같은 경우에도 반드시 항생제를 줘야 되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항생제를 주는 것과 아닌 것은 의료진의 불안감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근데 난 의료진도 아니고 당사자지.’
남들은 다 잘라도 된다, 뭐 이따위 마인드는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개차반인 의사는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공감을 잘하는 의사라 해도 자신이 잘린 상태인 것과 아닌 상태인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항생제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이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매일 철 컵을 소독하고 그걸 차고 있다.
어디에 닿기라도 했다가 이거 썩으면…….
지금도 살아가기 힘든 19세기인데 이걸 반이나 자르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평. 이런 거 너무 그렇게 보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철 컵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말렸다.
나야 진짜 순수하게 철 컵을 보는 것이지만 남들에게는 그 안에 든 것을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테니 그의 우려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까부터 날 보고 있던 다른 놈들의 표정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뭐…….
내가 철 컵 끼고 있다는 걸 죄수들이나 경찰들이나 알 수가 없지 않겠나.
크기가 너무 큰 것을 떠나 일상생활 중에 계속 이런 상태라는 것만 해도 기이하게 보이긴 할 거다.
“아, 네.”
“그래. 이럴 땐 또 빨리 수긍하는구만그래.”
“저야 늘 합리적이죠.”
“그래. 근데 왜 환자 바지를 내리나.”
“아, 맞다. 오늘은 이거 아니지. 요새 하도 깠더니.”
“정말 괜찮겠나? 사실 이거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처음이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요.”
철 컵 때문에 정신이 잠시 딴 데 팔렸다.
그런 나를 리스턴이 말려 주었고.
참 잘 맞는 콤비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환자라면 이따위 콤비가 고치겠답시고 오는 일을 절대 반기진 못하겠지만…….
“으으.”
아무래도 우리 죄수님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게 왜 강도질을 하셨어, 그래.
아무리 먹고살기 팍팍한 시절이라지만 쇠꼬챙이로 다른 사람 팔을 쑤셨다면, 언제든지 자신도 그 비슷한 짓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야만 하지 않겠나?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사람 팔다리를 절단 내겠단 건 결코 아니다.
심지어 맨정신에 뭔갈 하지도 않을 거다.
마취할 거야.
“자, 충치 치료할 거야.”
“으으.”
“좀 아플 수 있는데, 마취할 거고. 뽑을 일도 없을 거야.”
“으으.”
“사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으으!”
“앨프리드.”
죄수가 점점 시끄러워진다.
나는 치료하려고 하는 건데 왜 이러는지 진짜 모르겠다.
뭐, 결과가 다소 어긋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난 진짜 선의에서 이러는 거라고.
게다가 그 끝에는 왕을 비롯한 대영제국의 권력자들 아니, 아니.
일반 시민들의 건강한 삶이 놓여 있다.
끼리릭.
뭐, 잠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괜찮다.
대붕의 뜻을 어찌 참새가 이해하리오.
“으윽.”
괜찮긴 한데 시끄러우면 집중하기가 아무래도 어려우니까 조용히 시켰다.
어차피 마취시킬 거니까 조금 미리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으음.”
“왜요.”
“아닐세.”
리스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나를 도와 환자의 입을 벌렸다.
구강 벌림개를 이용해서였는데 내 회심의 역작 중에 하나다.
지금까지 써 왔다는 것들 보니까 그냥 쇳덩이들이더라고.
근데 난 고무 전문가가 있잖아.
해서 이에 물리거나 입술에 닿는 부위에 고무를 입혔다.
물론 21세기 치과에서 쓰는 것처럼 느낌이 좋거나 냄새가 좋진 않겠지만, 어차피 마취가 되었는데 뭐가 중요하겠나.
손상만 피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일 거다.
끼리리릭.
다소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면서 환자의 벌려진 입에 벌림개가 끼워졌다.
그러자 아까는 잘 보이지 않았던 충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을 달아 놓은 덕도 있긴 할 거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충치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
“네.”
“흠……. 뽑는 게 깔끔하지 않겠나……? 이걸 갈아 낸다니, 이게 참.”
“한번 해 보는 거죠. 이도 이게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건데 최대한 보존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마 한 20, 30년 뒤에 나올 거다.
그 말은 그전까지는 창조론을 건들 만한 놈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 이후로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신앙 자체는 공고하니 당연한 얘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주님을 팔면…….
아, 가룟 유다 아니다.
아무튼, 무조건 통한다.
“그거나 줘 봐요. 죽은 사람 이는 잘 부수던데, 이게 진짜 되는지 봐야죠.”
“으음…… 그래. 자.”
그렇게 설득을 끝낸 나는 리스턴에게서 드릴을 받아 들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형태의 드릴은 당연히 아니다.
수동으로 돌려야 끝이 돌아가는 드릴인데, 이 비슷한 기구를 원래는 머리 열 때 쓰고 있다.
머리 열 일이 있으면 뭐 얼마나 있다고 기구까지 만들었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의원님 두통을 사혈로 치료했다는 소문이 돌고 난 후로 온갖 용기 있는 의사들과 환자들이 이걸 시도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대개는 죽는다.
환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보호자들 손에 죽는 의사들도 없진 않은 모양이니.
‘근데…… 확실히 집단 지성이라는 게 대단하긴 한 거 같아.’
19세기가 내 눈에는 미개 그 자체로 보이긴 하지만, 나름 벨 에포크 시대라 불리는 시대기도 하지 않나.
문명의 이기를 본격적으로 누리기 시작한 시대다, 이 말인데. 그래서 그런가. 기구는 또 기가 막히게 만들고 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건 그걸 개량한 물건인데, 오직 리스턴만이 제대로 사용 가능했던 초창기 모델에 비하면 이건 거의 혁신이다.
두두두두두.
돌아가는 소리가 상당히 공포스럽긴 한데…….
끼기기긱.
오, 이에 갖다 대니까 더더욱 끔찍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뭐 괜찮다.
부서지긴 하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드릴 위력이 어마어마하진 않아서 그렇다.
드드드득.
뼛가루가 사방으로 튀는데, 석션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내는 순간 인간 석션이 등장하게 될 테니 참아야 될 거 같다.
원래 같았으면 인간 석션 아니라 더한 무엇이 등장한다 해도 기탄없이 아이디어를 냈겠지만…….
이번에 포경 수술을 당했다 보니 아무래도 소극적이게 된다.
참…… 아이디어 뱅크를 이런 식으로 핍박하니 진보가 느려지는 건데…….
이런 얘기 어디 가서 하기도 그렇고.
드득.
“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충치를 갈아 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심상찮은 소리가 나면서 지금까지보단 커다란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음.”
“으음.”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방금 떨어진 이를 들여다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마취를 맡은 앨프리드를 제외한 모두가 그랬다.
그러다 남은 이쪽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깨끗해진 거 같은데?”
“그러니까.”
“검은 게 다 나왔어.”
“검은 것만 나온 건 아니고…… 하얀 것도 좀 붙어 있는데, 이건 괜찮은 건가?”
누가 소독의 달인 아니랄까 봐 조지프가 아주 깐깐한 눈으로 조각을 살피더니 우려의 말을 보탰다.
하지만 19세기는 낙관의 시대다.
다들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은 씹어 버린다.
사실 의사들만큼은 언제 어디서건 간에 그러면 안 되긴 한데…….
나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썩은 부위가 없어졌잖아.”
“흐음. 그럼 그냥 이대로 두면 되나?”
“안 될 거 같지 않아요?”
“뭐 방법이 있나?”
왜냐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서 그렇다.
모든 개념이 부족해서 그런데…….
지금도 봐라.
누가 봐도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은 이인데 그걸 두면 안 되냐고 저 리스턴이 말하고 있잖아.
“그래서 이걸 준비한 거 아닙니까.”
“수은이라…… 유서 깊은 약이긴 하지. 근데 자네가 분명 수은을 쓰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이건 때워야 한다.
안 그러면 저 약해진 부위에 뭐가 들어가서 더 부술 거다.
게다가 저런 형태의 이만 남게 되면 그냥 저작 활동만 해도 부서질 거고.
21세기라면 오히려 모르겠는데, 여기 음식은 여전히 거칠기 짝이 없다 보니 그럴 공산이 더더욱 크다.
아니…….
내가 진짜 부자잖아?
근데도 음식은 여전히 아주 부드러운 것만 먹기가 어렵다니까?
덕분에 턱이 꽤나 발달했다고.
뭐, 오히려 이건 잘된 것 같긴 하다.
남자다워졌어, 얼굴이.
“왜 말을 하다 말고 그러고 있나.”
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리스턴이 들이민 것이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수은이긴 해서 그렇다.
뭐…… 수은 덩어리는 아니고 수은이랑 다른 금속을 합금한 건데, 남들이 볼 땐 그게 그걸 거다.
“뭐 알 것도 같긴 하네. 사실 수은이 유서 깊은 약이지 않나.”
아니, 그래서 사용하는 건 아니다.
안 좋은 걸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쓰는 거다.
은이랑 합성하게 되면 이게 확실히 좀 어?
이에 넣기가 좋은 물건이 되더라고.
조금만 가열해도 부드러워지고…… 좀만 있으면 단단해지고, 잘 붙고.
수은 함량에 따라 조금씩 상태가 달라지다 보니 최적의 수은 합금, 즉 아말감은 앞으로 치료하면서 점점 찾아봐야 하긴 하겠지만…….
“아니, 아니. 이거 왜 고른 건진 보셨잖아요, 형도.”
“어…… 그렇긴 하지. 수은이 참 신기한 물질이야. 왜 금 만들려고 그러는지 알겠다니까?”
“아니…….”
“아무튼, 그래. 이렇게 하면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치아 벌레도 죽겠군.”
“벌레 없잖아요. 보이잖아요.”
“하하, 자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눈에 안 보이는 미아즈마의 존재를 규명한 사람이 말이야! 안 그래도 이거 모아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생각일세. 치아 벌레가 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거야.”
“그…….”
이게 참.
그렇다.
아무리 정석적인 지식을 가르치려고 해도, 듣는 사람의 배경 지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찰떡같이 가르치는데 개똥처럼 알아듣는다.
‘그나저나 약간 무른가, 이거.’
나는 대화 나누는 그 잠깐 사이에 벌써 좀 모양이 뭉개진 아말감을 보면서 다음엔 수은 함량을 조금 더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떨어지면 어쩌냐고?
또 붙이면 된다.
애프터서비스 확실한 병원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