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6화(326/505)
326화 뽑지 말아 보자 [3]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도박에 통용되는 말이지만…….
역시 조선이다.
어? 우리 조상님들 말씀이 하나도 허투루 들어도 되는 것이 없어요.
“아잇.”
“이런.”
우리의 드릴…….
끝이 금세 무뎌져서 그럴까?
갈아 내는 게 아니라 이를 깨 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뭐, 어차피 치과 맹획에게 갔으면 냅다 뽑아 버렸을 이들이다 보니 우리가 조금 복잡한 절차를 갖고 뽑는 것에 그렇게까지 커다란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은 아니긴 한데…….
우리가 뭐 이 사람만 치료하겠다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어…… 벌써 떨어졌는데?”
“이거 좀 너무 무른 거 아닌가?”
이만 깨지는 게 아니라 아말감도 떨어지고 어디 들러붙고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엄청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다 예상하고 있었다.
“이게 왜 이러는 거야!”
“허어.”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그렇다.
그러니까 아말감도 수은 농도별로 거의 20개를 준비해 놨지.
공교롭게도 이 20개 중 적정 농도가 없는 것 같은 건 나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경범죄로 수감 중이던 놈들은 이제 대부분 딱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대충 등불 들고도 처치가 가능한 이에 대한 처치는 다 끝났지만 새로이 문제를 만들고 있는 친구들이 있거든.
바로 설탕 섭취를 줄이는 것이 다름 아닌 치아 건강에 유효할 거라는 것과 양치 똑바로 하는 것 또한 유효할 거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도 끈적한 설탕 덩어리를 자진해서 먹고 있는 다른 그룹이 그것이다.
“역시 죄수들부터 해 보길 잘했네요.”
“난 대체 왜 그 귀한 수은과 은을 저런 놈들에게 낭비하려고 하나 했더니만…….”
“다 생각이 있죠.”
“그나저나 저건 어쩔 건가?”
리스턴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이를 갈아 냈는데 아말감 상태가 이상해서 그 부위를 채우지 못한 죄수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끔찍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저게 당연하긴 하다.
일단 나는 치과 의사가 아니거든.
이 때운 경험밖에 없는데 내가 해서 문제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게다가 함부로 갈아 낸 부위가 덮여 있지도 못하면 더 아플 거야.
“씌우긴 해야죠. 아말감 내일까지 수정해서.”
“내일? 오늘은 그냥 저대로 둔다고?”
“그렇다고 아무거로나 때울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 아니, 그냥 뽑지. 그러면 잠깐 아프고 말잖아.”
“음.”
이 사람이 미쳤나 싶었다.
아까 내가 했던, 그러니까 주님의 창조물이니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는 말은 똥구멍으로 싸 버린 건가?
하지만 리스턴만의 의견은 아닌 거 같았다.
내 제자들도 다 여기 붙어 있다.
최근 들어, 특히 철 컵 단 이후로는 감히 토 달지 못하던 것들이 오늘만은 예외인지 다들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역시 썩은 이는 뽑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 콜린마저 그렇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를 이렇게 많이 주신 이유도 있지 않겠습니까?”
똘똘이 존 스노도 환장할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존 스노는 진짜 천재였는데…….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
설마 내가 너무 일찍 거두는 바람에 망가진 건 아니겠지?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게, 아편 전쟁같이 커다란 전쟁까지 당겨졌잖아.
생각보다 나비 효과라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걸 실시간으로 깨닫고 있다.
“흐음…… 그러니까요. 아파하지도 않는데, 그냥 뽑아 버리면 어떨까요?”
앨프리드야 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 양반은 마취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꽤 출중한 데 반해 다른 건 좀 달리거든.
자기도 그걸 아는지 요새는 수술하겠다고 잘 나서지도 않는다.
뭐…….
사실 마취가 필요하면 이제 앨프리드가 최고의 인재가 되었으니 나쁜 정책은 아니긴 하다.
게다가 21세기에서는 마취과가 진짜 힘센 과잖아.
원장단 중에 마취과 교수님 빠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랬다.
“아니, 나는 이 방식이 좋아.”
딱 하나 내 편이 있었다.
바로 조지프 리스터, 내 친우다.
“까맣던 게 하얘질 수 있다니. 이게 치료지.”
딱히 의학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고, 놈의 그 소독 강박 때문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뭐 나쁠 건 없을 거 같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건데 이유가 뭐가 되었건 날 지지하고 나서 주면 좋은 거 아니겠나.
“일단 뽑지 말고 둬 봐요. 뭐 먹지만 않으면 그렇게 안 아플걸요?”
“자네 때문에 술도 못 먹고 물 먹는데…… 그거만 마셔도 시리다고 난린데?”
“이 시리다고 이 뽑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아니, 그리고 애초에 왜 저거…… 저거 뭐라고?”
“아말감이요.”
“그래, 저걸 굳이 왜 때워야 하는 건가?”
리스턴조차 뽑고 싶은데 참고 있다.
내 위상이 말 그대로 어마어마해졌다는 방증이다.
물론 다른 놈들과는 달리 리스턴은 나름 설명을 요하는 편이긴 하다.
귀찮게 만든다, 이 말인데.
뭐 나쁘지만은 않다.
설명 듣고 나서도 고집을 부리면 환장하겠지만, 나름 납득도 할 줄 알고 생각을 바꿀 줄도 아는 유연한 인간이라 그렇다.
생긴 것만 보면 아예 말이 안 통할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뼈도 말이야. 부러져도 저절로 붙지 않나? 내가 많이 부러뜨려 봐서 아는데, 좀 비뚤어지긴 하는데, 확실하다고.”
“그야…… 그렇죠.”
“이도 뼈잖아. 그럼 이것도 저절로 뭔가 자라나지 않겠나?”
“아.”
문제는 내가 단지 아니라고만 알고 있지, 왜인지는 모르는 것도 많이 묻는다는 데 있다.
내가 알기로 치아는 우리 몸의 뼈 중 유일하게 수복이 안 되는 놈이다.
근데 왜인지는 나도 몰라.
난 치과 의사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조선에 괜히 복 중에 치아를 논하는 게 아닌데, 치아가 뼈와는 좀 다르게 수복이 안 되는…….”
“앞말은 들어 봤는데 뒷말은 금시초문이로군.”
“금시초문……?”
“한자로 쓰면 ‘今始初聞’일세. 이번에 처음 본다, 이런 뜻이지.”
“아니…….”
이 사람이 어디 훈장님이라도 납치해 왔나 싶다.
금시초문이라는 말이야 나도 알지만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 자신 없거든.
아니, 돌려 말해서 자신이 없다는 거지 못 쓴다.
“아무리 자네라 해도 모든 일에 정통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그건, 그렇긴 하죠.”
하도 놀래서 그런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아마 이건 나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머리 노란 놈이 와서 한자를 써도 놀랄 텐데 19세기 영국 놈이 한자를……?
“이렇게 하세. 뭐 일단 다 두세. 대신 절반만 때우세. 나머지 절반은 그냥 둬 보자고.”
“아…… 저절로 좋아지는지요?”
“그래. 그렇게만 되면 굳이 은을 쓸 이유가 없어지지 않겠나.”
“그거야…… 그렇긴 하죠. 근데 대신.”
“알지. 음식은 먹지 않도록 하겠네. 특히 이 갈아 둔 곳으로는 말이야. 팔 부러진 거 보니까 최대한 만지지 않아야 좋아지더라고.”
“네, 그렇죠.”
뭐, 뼈는 사실 견인을 해야 제대로 붙긴 하는데…….
X-ray도 없는 마당에 이걸 뭐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
뻔히 눈에 보이는 이도 이제야 슬슬 갈아 내기 시작했는데 어쩌냐고.
게다가 지금 이 문제만이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게 산더미다, 산더미.
“허유, 그럼 좀 쉬시죠.”
이런 생각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콜린이 자리에 앉더니 파이프 담배를 뻐끔거리며 피우기 시작했다.
저 싸가지 없는 놈의 자식 좀 봐라.
아무리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모른다 해도 냄새 피우는 일인데 어른들 계시는 자리에서 저게 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음, 향이 좋은데? 어떻게 한 건가?”
물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얘네도 조선 못지않게 보수적인 놈들이다 보니 예의범절깨나 따지긴 하는데…….
이제 콜린을 비롯한 제자들과 나, 리스턴 사이는 단순한 교수 제자 관계를 뛰어넘게 된 지 오래라 그렇다.
“형이 선물해 준 건데…… 비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수님도 좀 드릴까요?”
“응? 아, 아니. 나는 이걸로 좋네.”
리스턴은 콜린이 선물하는 걸 마다하고는 서랍에서 작은 도자기를 꺼냈다.
청나라제 도자기인데 딱 봐도 황제에게 납품하는 곳에서 만든 제대로 된 물건이다.
물건이 제대로 된 것이라 해서 반드시 제대로 쓰이는 건 아니다.
달그락.
청명한 소리를 내며 열린 뚜껑 틈새로 우선 진한 풀 냄새가 새어 나왔다.
대마랑은 뭔가 좀 다른 냄새인데, 하여간, 오래 맡긴 싫은 그런 냄새다.
당연하다.
안에 담배가 있거든.
“아……. 역시 교수님. 요새 유행하는 걸 아시는군요?”
그걸 본 조지프.
이 새끼 나랑 동갑이니까 이제 18살인데, 벌써 담배 피운 지 7, 8년은 됐다.
상당한 애연가가 되었다는 말인데 괜히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니다.
“그렇지. 코담배라네. 뭐 예전만큼 구하기 어려운 건 아니야. 하하.”
“그래도 이게…… 엄청 비싸지 않습니까?”
“비싸긴 한데 우리가 뭐 돈이 없어서 못 할 건 없지 않겠나?”
“하긴, 그렇습니다.”
아, 조지프를 비롯해 모든 제자는 우리에게 월급을 받고 있다.
뭔가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헐값 또는 무료로 부려 먹는 경우가 흔하다 못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지만, 내가 또 그렇게 부려 먹기엔 양심에 찔려서 못 하겠어서 꽤 많이 주고 있다.
아무튼, 저 코담배를 피우는 방식은 딱 봐도 위험해 보인다.
“흡.”
코카인처럼 코로 흡입하는 거다.
뭐…….
불로 태우거나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연기도 안 나고 해서 주변인에게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게 안전할 것 같진 않다.
마냥 더 좋은 방식이었다면 궐련보다는 저게 살아남았겠지.
“휴.”
“아니, 자네는 왜 그런 걸 피우나?”
반면 앨프리드는 궐련을 꺼내 물었다.
손에 끼워 피우는,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의 담배 즉 지궐련이다.
21세기에서는 담배 하면 이걸 떠올릴 만큼 대중적인 담배가 되었지만 이땐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피우는 담배였다.
“아, 이것도 이거 나름의 맛이 있어서요.”
“그래도 가루가 좀 들어오지 않나?”
“이걸 사용하면 괜찮습니다.”
필터도 없이 그냥 막 싸서 피우는 거니 당연히 부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물론 앨프리드는 어쩔 수 없어서 피는 게 아니라 취향 때문에 피우는 사람이니만큼 물부리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피우기 시작했다.
“후.”
그렇게 그러잖아도 작은 방 안에 뿌연 연기가 차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알 텐데, 세상 살면서 이것보다 불쾌한 경험도 잘 없다.
그나마 21세기에는 인상 찌푸리는 사람이 있으면 미안해하기라도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이 좋은 연기를 공짜로 쐬어 주는데 왜 저러나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이 안에서는 내가 꽤 높은 사람이기도 하고 다 친한 사람들이다 보니 바라보고만 있진 않았다.
“아, 보니까 평. 자네가 담배가 없더구만? 이거 받게.”
리스턴은 내게 담뱃대를 건네주었다.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르겠는데…….
옛날 조선 민화에 나올 법한 그런 담뱃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