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7화(327/505)
327화 담배 [1]
담배.
우리 콜럼버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매독이랑 설탕만 들고 온 줄 알았는데, 담배도 들고 왔다.
하…….
이놈의 담배.
-어르신 이제 담배 끊으야죠.
이 말만 하면 디폴트로 튀어나오는 답이 ‘내가 아는 의사들은 다 피우던데’다.
뭐…… 이게 한 30년 전이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젠 아닐 거다.
적어도 내가 친하게 지내던 의사들 중엔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하나도…….
아니, 있긴 하네.
이상하게 외과는 좀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다 핑계다.
내가 외상외과인데 난 안 피웠거든.
‘앗. 생각해 보니까 난 담배도 안 피웠는데 암 걸렸네.’
시발…….
욕이 나온다.
“왜 그러나. 설마 안 피워 봤나?”
지금 상황도 욕이 나온다.
아니 왜 의사들이 모여서 담배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그걸 추천하고 있냐고.
뭐 거기까지는 그래,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치는데 싫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아, 설마, 자네.”
요새 수혈이니 뭐니 하면서 바빠서 오랜만에 온 블런델은 숫제 비난하는 어조다.
“담배 반대론자인가? 담배 피우면 건강에 안 좋다느니 뭐니 하는 비과학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야?”
“아니…….”
“아, 그건 아닌가 보군.”
“아니…….”
가끔 혁신의 아이콘처럼 굴 때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뭐…….
19세기 의사 그 자체다.
이 사람만이 아니라 다 그렇다.
‘그래…… 담배가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지…….’
지금까지 애써 무시해 왔다.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방이고 밖이고 막 피워 대는 놈들이 많지만, 적어도 앨프리드 선배네에서는 방에서 피우진 않거든.
그게 안 좋다는 인식 때문은 아니고, 목재 장식이 많은데 혹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는 아저씨의 걱정 덕분이었다.
병원?
병원도 본원은 원장님이 불나면 니들이 책임질 거냐고 해서 안 피웠다.
‘여긴…… 리스턴 하고 내가 대장인데, 내가 리스턴한테 이런 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담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 센터가 설립된 다음이다.
바로 다음은 아니긴 했다.
학생들은 감히 피울 생각도 못 했으니까.
리스턴이 떡하니 피우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된 거다.
그렇다고 해서 리스턴 뒤통수를 후릴 수 있냐?
아니다.
‘실험을 해 보자고 하기도 어렵지.’
비소 같은 건 진짜 독이니까 먹이면 바로 죽지만, 담배는…….
이놈들이 즐기는 방식으로 해서 사람이 죽는다는 걸 증명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그것만 해도 까마득한데, 사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다른 이유로도 너무 많이 죽다 보니 담배의 해악을 증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 아니지?”
“아니라면 피워 보게. 이게 얼마나 좋은데.”
“그래, 집중력이 확 올라간다네. 내가 괜히 수술하기 전에 무조건 이걸 피우는 게 아니야.”
“난 자네가 무조건 피울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까 한 번도 못 봤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피우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담배의 해악을 알면서 피운다는 건 그렇잖아.
그렇다고 ‘한번 피우고 말면 되지’ 하기도 어렵다.
이거 중독성이 사실 대마 같은 것보다도 훨씬 높단 말이야.
‘무엇보다…… 난 벌써 한번 했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아랫도리를 흉측한 몰골로 장식하고 있는 철 컵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놈들이야 무섭게만 보거나 황당하게 보거나 드물게 안쓰럽게 보겠지만…….
내게 이건 일종의 주홍 글씨 같은 거다.
잘만 씻을 수 있다면 딱히 의학적인 이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짓을 용기가 없어 하게 되었으니까.
“그…….”
“그 뭐.”
“뭔 소리를 하려나, 이번엔.”
리스턴과 블런델이 나를 보며 빈정대고 있다.
실로 드문 일인데, 아마 그렇다 보니 더 신나서 이러는 걸 거다.
말마따나 내가 이 둘보다 훨씬 어린데 지금까지 사실상 스승격으로 살아왔잖아?
관계 역전 자체가 재미인데 이 둘에게는 얼마나 각별할지 예상이 된다.
‘조선을 파는 건…… 어렵다.’
내게 가져다준 이 담뱃대가 청나라 물건인지, 일본 물건인지 아니면 정말로 조선 물건인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어설프게 조선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네 어쩌네 하면 바로 걸릴 거다.
애초에 최근 들어서는 나보다 오히려 리스턴이 조선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잖아.
더군다나 조선에서는 담배를 그리 배척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사실 담배에는 니코틴이 있다 보니 일시적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데다가 중독성도 강하다 보니 의학적인 대규모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문화적인 흐름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역시 주님인가? 아니야…….’
내가 가톨릭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뉴스인지 어딘지에서 대주교들이란 분들이 회의하면서 담배 물고 있는 걸 본 것 같다.
그 폐해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마약류에 비해 담배는 당장 가져다주는 이득은 있는 데 반해 폐해가 나타나기까지는 꽤 걸린다.
물론 담배도 너무 많은 양을 한 번에 취하게 되면 급성 중독을 일으켜 심하면 죽을 수도 있긴 한데…….
우린 그렇게 할 게 아닌데 뭔 소리 하냐고 하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럼 나는 무엇을 팔아야 하지? 부모?’
역시 부모일까?
꼭 유교 사회가 아니라 해도 부모 건드리는 건 터부시되기 마련이다.
애초에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의 자식일 수밖에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역시 팔아먹으려면 부모만 한 게 없긴 해.’
나는 흐뭇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살포시 입에 물려 주었던 담뱃대를 옆으로 치우면서였다.
물론 표정만 이런 것이지, 머리는 바삐 굴리고 있었다.
암만 팔아먹기 좋은 최적의 재료라 해도, 일단 팔려면 가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내가 운동시키고 혈압 재고 한 이후로는 병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데다가, 금욕주의자들인 데 반해 술을 먹는 대신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담배를 안 피우신다.
“형님, 블런델 형도 들어 보십쇼.”
“그래, 털어 보게.”
“우리 평이 담배 반대론자였다니…… 참…… 이럴 수가 있나.”
둘은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열 받는다.
정답을 아는데 그럴싸하게 말할 수가 없어서 마냥 당해야만 한다니.
사실 최근 들어 내 위치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는데 역시 아직 모자란 거 같다.
논리가 부족하면 힘으로라도 강제할 수 있도록 더 강해져야 될 거 같다.
‘뭐…… 그런다고 리스턴을 물리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위해 출세를 해야겠다는 숭고한 맹세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마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숨이 막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음식 알러지.
혹자는 알러지가 마치 현대에 이르러서 발생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맞지만 그전에도 있었다.
뭐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니긴 한데…….
조선인지 중국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어떤 피부병을 가진 사람들은 새우나 닭고기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들었던 거 같다.
뭐 조선에서는 옻닭 먹다가 죽었다는 사람들도 있고.
“으음…… 그런 말을 들어 본 것도 같네.”
“근데 그건 음식이지 않나?”
“코로 먹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담배는.”
“하하, 뭘 모르는구만! 다시 뱉는다네.”
“보게나.”
블런델과 리스턴은 숙달된 솜씨로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빨아들였다가 코로 내뿜었다.
열 받지만 약간 멋지긴 하다.
둘 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러서 그런가 뭔가…….
몽환적인 느낌을 이끌어 낸다고나 할까?
물론 꼭 이 둘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 그러니까 제자들도 비슷한 묘기를 부리를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학교 가면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맞담배 피우면서 각종 기술을 알려 준다고 들었다.
아, 지금 내가 말하는 학교라는 건 교도소의 속어가 아니라 진짜 학교다.
“하지만 다 뱉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으음. 뭐…….”
“아무튼, 말해 보게나.”
“제가 이 담배를 피우다가 한번 죽을 뻔했습니다.”
“으응……?”
“그럴 수가 있나……?”
둘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아까 리스턴에게 들어서 그런가. 한자도 동시에 떠오른다.
아무튼, 이제 무르익었다.
부모라는 상품을 내놓을 준비가 됐다.
“저희 아버지, 어머님이 담배 피우는 거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대신 오늘은 빨리 집에 가야겠다.
설마하니 이거 알아보겠답시고 따라오거나 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일단 이 중에 앨프리드와 조지프는 아예 같이 살잖아?
물론 리스턴만큼 조선어에 능통하기는커녕 아예 배울 생각도 안 하는 놈들이니 비밀 얘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두 분에게서 물려받은 특성입니다. 저는 담배 피우면 안 됩니다.”
“실험을…….”
“예끼 이 사람. 그러다가 평이가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아, 그런가.”
“아, 그런가는 얼어 죽을. 담배 이까짓 게 뭐라고. 대신 아편도 하고 다 하잖아. 괜찮아, 이 정도는.”
다행히 죽는다는 말에 리스턴이 예민하게 반응해 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양반이 속정이 좀 있거든.
뭐…….
뒤에 굳이 아편이니 뭐니 하는 말을 붙였어야 했나 싶긴 하지만.
“후…… 좋구만.”
“그래, 이거 본원에서는 굳이 밖에 나가 피우느라 불편했네.”
한번 담배에 대해 인지해서 그런가…….
안에서 피우는 것도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필터가 없는 시대이니만큼 간접흡연이나 직접 흡연이나 건강에 안 좋기는 매한가지긴 하다.
적어도 내로남불 흡연은 아니다, 이 말인데…….
그래도 난 아예 안 피우는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는 건 사양하고 싶다, 이 말이다.
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있을 땐 전자 담배 연기도 피했던 사람인데 이건 그거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해롭잖아.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한다.’
무엇보다 이 새끼들 하는 말 들어 보니까 앞으로도 주구장창…….
아니, 앞으로 점점 더 안에서 피울 거 같다.
담배 쩐 내가 나게 될 거란 말이다.
해로운 것은 둘째치고 냄새도 역할 텐데…….
‘내 삶의 질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담배 안 피웠던 노인과 피웠던 노인을 모집해 봐?
아니, 그건 의미가 없다…….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만큼 다 피우잖아.
뭐 여성들은 피우는 사람이 훨씬 적지만…….
이 시기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원래 있는 신체적 특성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다고 믿는 놈들이 태반이다.
설득을 하려 한다면 맞춤 설득을 해야 한다, 이 말이다.
‘아.’
그때 뭔가 떠올랐다.
대체 내가 왜 이걸 먼저 떠올리지 못했을까?
언제부터 실험이라고 하면 인체 실험만 떠올리게 된 걸까.
조금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