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8화(328/505)
328화 담배 [2]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는 사실 뭐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21세기에서는 아무리 애연가라 할지라도 담배가 나쁘다는 걸 애써 부정하는 사람은 없잖아?
뭐 잘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긴 할 텐데…….
적어도 병원 와서 의사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각종 암이야 뭐 당연하고.’
담배 연기가 지나는 경로에 있는 코, 구강, 인후두, 기도, 폐 모두 암 발생률을 확 끌어올린다.
문제는 딱히 여기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전신에 생길 수 있는 암은 다 일으킬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뿐이냐?
아니다.
폐의 호흡 능력을 떨어뜨려 정말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아무리 해도 별 소용이 없겠지.’
나중에는 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지금 비밀리에 짓고 있는 요양원은 금연 시설이거든.
더군다나 런던 시내도 아니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제아무리 런던이 19세기 최대 도시라 해도 조금만 빠져나가면 바로 한적한 시골이 나오는 데다 딱히 오염 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이 없다 보니 공기도 엄청 좋다.
‘거기랑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랑 몇 년만 지나도 예후 차이가 확 나긴 할 거야.’
시간 문제라는 건데.
문제는 그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그만큼 죽어 나갈 거 같다는 거다.
그래서 이건 이 방법은 나중에 쓰기로 하고 다른 걸 써먹기로 했다.
“근데.”
“응?”
봐, 지금도 담배 또 태운다.
뭔 놈의 담배를 이렇게 줄담배를 태우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있다간 진짜 죽을 거 같아서 말을 서둘러 내뱉었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는 딱히 어? 건강에 나쁠 만한 짓이라고는 일밖에 안 했는데 암 걸렸잖아.
이번 생이라고 해서 내 유전자가 우월하리란 보장이 있나?
없다고 봐야 한다.
나 한 번이라도 좀 오래 살고 싶어…….
“제가 담배 태우다 죽을 뻔했다고 했잖아요.”
“어, 그렇지.”
인간적으로 그랬다고 하는데 남의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 뿜어 대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상식인 걸까?
내 생각에 조선에서는 이러진 않았을 것 같다.
예전엔, 그러니까 21세기에 있을 땐 무조건 서양 쪽이 적어도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는 우월할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만약 조선이 여기보다 더했으면 나라 망했지…….
“그리고 이게 담배 피우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닌 사람이 맡으면 굉장히 역하거든요.”
“그래?”
또 뿜는다.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그나마 내가 인상을 구기니까 다른 쪽으로 뿜어 대긴 하는데…….
애초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이 담배 태우면 그 뭐냐. 벌레들이 덜 온다고 하지 않아요? 특히 모기 같은 거.”
“그래, 이게 참 여러모로 좋은 것이지.”
또 이런다.
리스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너는 나랑 같이 비소 벽지도 다 뜯었잖아.
그때 분명히 말했다.
-상식적으로 벌레나 쥐도 버티지 못하게 만드는 건데 그게 어떻게 사람한테 좋겠습니까?
물론 여전히 이와 같은 이유로 프랑스, 그리고 런던을 제외한 영국 다른 지역에서는 비소 벽지를 죽어라고 쓰고 있다고 들었다.
어이가 없긴 한데…….
뭐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말을 듣겠다는데 내가 거기서 뭘 더 하겠어.
아마 모르긴 해도 잘 찾아보면 런던에도 아주 없진 않을 거다.
생각보다 쥐나 벌레만 없어도 삶의 질이 쭉 올라가는 시대거든.
“비소 때를 상기해 보세요. 이 연기를 모기나 다른 벌레들이 왜 피하겠습니까?”
“으음……?”
“실험을 한번 해 보죠.”
“실험?”
“어, 근데 왜 일어나요.”
“여기 죄수들 있잖아. 걔들 데리고 해 보면 되지.”
아까 잠깐 내가 좀 무서웠는데, 이 모습을 보니까 또 마냥 그럴 만한 일은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이 사람도 실험이라고 하면 바로 인체 실험부터 떠올리잖아.
뭐…….
내가 잘못된 건 아니란 말이다.
“아니, 벌레 가지고 해 보죠.”
“하하. 벌레랑 사람이랑 같나.”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벌레가 죽거나 하면 사람에게도 안 좋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벌레야 미물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신 결과물 아닌가.”
음.
시대가 너무 잘못되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 사실 내 잘못이다.
원숭이, 하다못해 개라도 들이밀었다면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았을 거 같은데…….
벌레랑 사람이랑 여하간에 같은 생물이라는 말을 납득하기엔 좀 무리가 있긴 하다.
비소 때도 사실 쥐나 벌레로 설득이 된 게 아니기도 했고.
‘그때처럼 사람이 픽픽 죽어 나가는 물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 아니, 아니지.’
상황이 척박해져서 그런가.
자꾸만 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음……. 그럼 사람으로 할까?”
“그렇다고 벌레에서 바로 사람 실험으로 가나?”
“아니, 아니. 벌레는 죽는 걸 보려고 했죠.”
“사람은 안 죽나? 하긴 사람은 안 죽긴 하지.”
아니, 죽는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근데 담배의 해악에 있어서 너무 그런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뭐 그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담배라고 하면 죽음이 연상될 수밖에 없을 만큼 교육이 되어 있으니까.
바야흐로 보건복지부와 의학계 합작으로 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헌데…… 마냥 상상은 아니에요.”
“으음, 그래. 뭐 말해 보게. 자네 말이라면 언제나 들을 만하긴 하니까.”
“자, 조선입니다.”
“아, 조선인가. 좋지.”
예전에도 리스턴은 내가 조선 운운할 때마다 꽤 비상한 관심을 보이곤 했더랬다.
조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지금은 그럼 어떨까?
벌써 자세부터 고쳐 앉고 있다.
‘돌아라, 머리!’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부모 팔아서 직접 흡연을 피하고, 나라 팔아서 간접흡연을 피하고.
팔아 봤자란 생각이 들었다면 나도 이러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효과가 지대할 거 같다.
“조선은 작은 나라고 땅이 척박하지만 사람만은 똑똑해 그럭저럭 잘살고 있는 나라죠.”
이 안에 프락치가 있을까?
없을 것 같긴 하다.
있었으면 벌써 뭔가 사달이 났겠지.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여름엔 무척 덥고, 겨울엔 무척 추운 데다가 산세가 가팔라 군사 훈련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군 사령관이 했던 말이다.
참 살기 어려운 땅이다, 이 말이다.
진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으음. 그래서?”
“근처에 있는 나라는 청이나 일본 등과 같이 야욕이 대단한 나라들입니다.”
“그렇군.”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전투가 많은데…… 제가 알기로 그렇게 싸우고 다친 사람들에 한해서는 음주도 금하고 담배도 금할 겁니다.”
“어…… 그런가? 어째서?”
술, 담배.
모두 당장의 괴로움을 잊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들 아닌가.
더군다나 술은 수천 년 이상 된 놈이다 보니 사용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랄 게 없었다.
담배야 콜럼버스 이후로 전래 되었으니 기껏해야 몇백 년밖에 안 된 놈이라 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거의 만병통치제로 쓰였던 만큼 이쪽도 뭐 약간 그런 포지션이다.
아까 잠깐 리스턴이랑 블런델이랑 하는 얘기 들어 보니까, 말라리아, 천식, 신경질, 패혈증, 종기, 장염, 멍, 큰 종기, 동상, 급통, 변비, 경련, 낭종, 더러운 치아, 귓병, 심한 가래,
손톱 빠짐, 임질, 구취, 포진, 목쉼, 공수병, 눈 가려움, 관절통, 신장결석, 낭창, 마비, 시력 감퇴, 감기, 옴, 비듬, 발진, 인후통, 벌레 쏘임, 부종, 긴장, 파상풍, 장 경직, 사마귀, 기생충, 가슴의 슬픔 등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
정말 잠깐 들었는데 저 정도니까 아마 더 있을 거다.
그러니 리스턴의 이러한 반응도, 뒤에 조용히 ‘이잉’ 하고 있는 놈들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상처가 더디게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 말은 곧 몸에 부담이 좀 될 수 있다는 말이겠죠.”
“으음…… 그래? 그걸 어찌…….”
“실험해 보면 되죠. 어차피 지금 온 죄수들 다 흡연자 아닙니까?”
“없어서 못 피우겠지. 주면 좋아할 거야. 아…… 그래, 치아 간 놈들 중 일부한테는 담배를 줄 생각이구만, 그래.”
“그렇죠. 포경수술도…… 말 잘 들을 거 같은 사람들 골라서 금연하게 한 뒤 비교를 해 보고요.”
그래, 내가 이상하다 했어.
내가 수술한 환자들이, 술도 못 먹게 했는데도 남들보단 적어도 자꾸 덧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이제 보니까 범인이 담배였다, 담배.
그래, 내가 뭔가 잘못했을 리가 없어.
“아…… 그래, 그 정도면 실험이 되겠네. 헌데 말이야.”
“네.”
“이번에 자네가 예상했던 거와 반대로 결과가 나오면 어쩔 건가?”
“반대요? 안 그럴 거 같은데요?”
내 말에 리스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착 쳤다.
켄싱턴이다 보니 어차피 밖에 나다니는 사람들이라고는 거의 마차를 탄 사람들밖에 없는데도 그랬다.
실제로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길 바란다기보다는 지금부터 할 얘기가 그만큼 중요한 얘기라는 뜻일 터였다.
“반대로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 태반일걸세.”
“계속 마음 편히 담배 피우려고요?”
“아니. 계속 담배 팔아먹으려고.”
“아.”
담배는 21세기에서도 꽤 주요한 세수 수단이고 또 엄청난 이익을 보장받는 사업이지 않나.
약간 종류가 다르기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 카지노 사업 비슷한 느낌도 있다.
분명 나쁘지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또 오래되었다 보니 제한적으로 열자는 느낌?
“이건 진짜로 위험할 수 있어. 상대가 갱단이 아니라 사업가나 귀족들이 될 테니까. 어쩌면 국가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지.”
“비소 때도 근데 사업가들이 손해를 보지 않았어요?”
“그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업이었으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뒤로 물러섰겠지. 게다가 제이미 경도 끼어 있었잖아. 근데 담배는…… 좀 그래.”
“으음, 그럼 어쩌죠?”
“일단 실험은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하세.”
“그리고요?”
“그리고는 뭔 그리고. 천천히 알 만한 사람들에게 말을 해 보는 거지. 아무튼, 이건 어디 내거나 하는 건 안 돼.”
리스턴은 보기 드물게 걱정 그득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큰일이라는 건데, 나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돈 되는 사업을 훼방 놓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별로 없거든.
게다가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고, 경쟁자도 많이 없는 사업이었다면 더더욱 그럴 거다.
내가 진짜 겁나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나까지 없으면 큰일 나니까 사리는 거다.
“그러죠.”
“그래. 자네가 보기보다 겁이 많아서 다행이야.”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거죠.”
“신중한 사람은 이렇게 벌벌 떨진 않을걸.”
“담배 연기 맡아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거치고는 자네만 떠는데.”
“아무튼, 죄수들 선별하러 가죠.”
“그래, 뭐. 자네들도 어디 가서 입 놀릴 생각 말고. 그치들도 무섭겠지만 내가 더 무섭다는 걸 늘 명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