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2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29화(329/505)
329화 담배 [3]
치과 치료받은 죄수들이 쭉 줄지어 있다.
리스턴의 가설, 즉 이가 다른 뼈처럼 저절로 회복이 될 거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 놈들이 한 절반 되었다.
물론 내가 나름대로 때워 준 놈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왜?
치과 의사가 괜히 따로 있겠나.
심지어 같은 과 내에서 나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의대, 치대가 나뉘어 있다.
‘뭐…… 치과에 한해서는 남들이 돌팔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지.’
어쩌겠어.
진짜 돌팔이인데.
다만 개념 자체는 내가 훨씬 우수할 거다.
발치 자체가 주는 위험을 나는 꽤 잘 알고 있으니까.
‘응? 내가 뭐 교정을 하겠어, 임플란트를 하겠어. 기껏해야 충치치료 하나 하는 거 아니야…….’
물론 충치치료야말로 치과의 중심이긴 할 거다.
특히 이 당시는 더더욱 그럴 거다.
왜?
거의 모든 문제가 충치로 인해 발생하니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원래 이런 거 할 때는, 그러니까 임상시험을 위해 사람들을 나눌 때는 이딴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비교군, 대조군을 나눌 땐……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지.’
나라고 뭐 실험 안 해 봤겠나?
아무래도 우리나라 대학 병원 연구라는 게 미국이나 이런 데랑은 좀 차이가 있다 보니 처음부터 임상시험을 하게 되는 경우보다는 이미 치료를 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후향적으로 하는 연구가 많기는 한데…….
그럴 때가 오히려 더 선정을 잘해야 한다.
아무래도 모든 연구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연구진의 이론이나 가설을 입증하려는 방향으로 비뚦 현상이 발생할 수 있거든?
이 비뚦이 가장 심해질 수 있는 게 환자 선정 단계다.
이때 양쪽 군 모두 동일한 특징을 가진 환자들로 해야 해.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근데 사람이 어떻게 동일한 특성을 갖겠나.
크게 봐도 나이, 성별, 흡연, 음주, 기타 과거력 정도는 같게 설정을 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대상군의 숫자가 엄청 많아야 한다.
헌데 우리는 기껏해야 죄수들만 동원이 되잖아.
더 큰 권력자라면 뭐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도 해 볼 수 있겠지만…….
‘아니, 아니지. 이건 해악을 끼치는 거잖아?’
뭐, 말을 안 해도 수술받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다 할 테니 어찌 보면 내가 선정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은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긴 한데…….
아무리 내가 여기 와서 나름 인체 실험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뻔히 보이는 문제를 진행하라고 하는 건 좀 그렇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하나?
“자, 너 이쪽. 너 이쪽.”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잘도 환자를 양옆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최대한 생각 없이 나누고 있다.
그래야 더 비뚦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21세기 연구진들이 보면 저 사특한 놈들이라고 하면서 뭐라고 하겠지만…….
걔들도 여기 오면 생각이 확 변하긴 할 거다.
세상엔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니까.
“자, 니들은 이제부터 금연.”
“네에?”
“니들은 흡연.”
“네에에에엥!”
그렇게 나눈 둘에게 나는 간략히 해야 할 일을 전했다.
원래 같으면 수술 후 흡연하라고 공지 받은 놈들이 난리를 쳐야 하고 금연하라고 공지 받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야겠지만…….
이쪽은 반대다.
사실 죄수들이다 보니 아예 담배가 주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금연 그룹은 그냥 원래대로 있는 것에 불과한데도, 다른 놈들이 흡연할 수 있다고 하니까 감히 내게 눈을 부라리는 놈도 있었다.
“뭐?”
“아, 아닙니다! 살려 주십쇼!”
하지만 평소의 나도 무서울 텐데 철 컵 단 상태의 나는 공포의 군주 그 자체다.
부라리던 놈을 향해 불만 있냐고 묻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더 흠칫 놀랐는데 당연했다.
고개를 숙이면 내 철 컵이 아무래도 더 도드라져 보일 테니까.
“으아아.”
“자,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흡연 그룹은 저쪽으로 가.”
금연 그룹 애들이 아무래도 좀 삐진 듯했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나.
원래 입에 쓴 약이 더 좋은 법이다.
이 상황에서 그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금연할 놈들은 변화 없이 그냥 있던 대로 있으면 되기 때문에 나는 흡연 그룹과 함께 이쪽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왜냐면 이쪽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 때문에 저쪽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어서 혹 결괏값이 바뀌기라도 하면…….
-김태평이 실험했는데 수술 시에 담배를 피우나 안 피우나 똑같다더라!
이따위 소문이 바로 퍼질 거다.
원래 세상이 빌어먹을 세상이라 그렇다.
제발 퍼졌으면 하는 소문은 안 퍼지고 제발 안 퍼졌으면 하는 소문은 금세 퍼지잖아.
이건 딱히 19세기라서 생기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21세기는 SNS니 커뮤니티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던 거 같다.
“좋아.”
아무튼, 방에 딱 들어가자마자 신이 난 얼굴의 리스턴이 나섰다.
어느 틈에 준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담뱃대 그러니까 파이프 담배, 엽궐련, 지궐련, 코담배를 상당히 두둑한 양으로 꺼내면서였다.
이제 보니 저 양반이 들고 다니던 가방의 한 절반쯤은 담배였던 모양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긴 하다.
“저도.”
“여기.”
내 제자들 그리고 블런델까지 다들 십시일반으로 담배를 내놓고 있다는 걸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좀 흡연자들이 흡연자끼리 끈끈한 게 있긴 한데…….
설마하니 죄수들한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아, 코담배는 안 됩니다.”
“응? 그래?”
“네. 이건 안 태우잖아요.”
“그럼 코담배는 자네 생각에도 좋은 담배라 이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어차피 많이 피우는 형태도 아니긴 하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코담배.
이건 쉽게 말해서 코카인처럼 코로 흡입하는 형태의 담배를 말한다.
미쳤구나 싶을 텐데…….
의외로 귀족들이나 성직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담배다.
-담배는 악마의 물건입니다!
특히 성직자들이 좋아한다고 들었다.
앞에서는 이렇게 말해 놓고 몰래 담배를 즐기기 위해서.
코담배는 잎 자체를 흡입하는 거다 보니 냄새도 안 나고, 티도 안 나거든.
대충 코만 털면 아무도 모른다 이거.
그래 봐야 니코틴 등의 유해 성분이 쓱 들어가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는 종류의 담배다 보니 거리낌이 좀 생긴다.
당연하겠지만 불로 태우는 과정을 거치는 다른 담배에 비하면 단기 부작용이 덜할 것도 같고.
게다가 이렇게 쓸 수 있는 담배는 가격이 비싸서 아무나 하지도 못한다.
괜히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담배라는 게 아니란 말이다.
“자, 그럼 이렇게 세 개. 흠…… 이건…… 이건 되게 비싸 보이는데요?”
그렇게 코담배를 제외하자 나머지 세 개가 남았다.
이 중에서 내게 익숙한 것은 아무래도 지궐련이다.
종이로 아무렇게나 싼 것을 말하는데, 21세기 담배가 거의 이거다.
내가 가리킨 것은 당연히 그건 아니고, 엽궐련이라고 불리는 거다.
이것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모양인데 어디서 봤는지 당장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쿠바에서 온 시가야.”
“아…… 이게 시가구나.”
그래, 시가다.
“이건 빼지. 저놈들에게 주기엔 너무 고가잖아.”
“나도 내놓으면서 아차 했어.”
리스턴과 블런델 그리고 나머지 모두의 동의하에 엽궐련이 치워졌다.
“아…….”
코담배 치울 때는 없었던 아쉬움이 가득 담긴 탄식이 어디선가 들렸다.
이참에 엽궐련을 한 번이라도 피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림없지.
비싼 건 안 된다.
뭔가 생긴 것도 그렇고…….
순 내 편견이긴 하지만 어쩐지 시가가 덜 해로울 것 같거든.
“그럼 이 두 개로 주죠.”
“그래, 이게 보편적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렇긴 한데.”
지궐련을 보는 눈빛은 그에 비해 혐오에 가깝다.
결국엔 이게 세계를 석권한다는 걸 아는 내게는 굉장히 의외의 반응이다.
그렇긴 한데 뭐 이놈들이 의외의 모습 보여 주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떡하니 맞는 게 있는데 죽어라고 틀린 거 파는 시대에 이깟 담배 취향 안 맞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 알 바도 아니다.
“자…… 죄수들 중에 포경수술 원하는 놈들이 꽤 있어서 예약도 잡았네.”
“좋아요. 근데 이건 좀 마음에 걸리는데.”
“왜? 아, 설마 담배 하나 피운다고 이거 자르게 되겠나? 내 생각은 다르네. 하하.”
“그래도…….”
“하하! 그래서 수술도 내가 할 거 아닌가. 자네는 다 좋은데 가끔 너무 소심한 게 탈일세. 이 좋은 걸…… 페스트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네.”
“하…….”
담배 피우면 발기부전도 오는데…….
그런 얘기를 했더니 리스턴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응? 자네 한번 까 보게.
-네?
-비교해 보자고.
미친놈이…….
그게 지금 당장 비교가 되겠냐?
나이가 좀 더 들어야 깨닫지.
뭐, 좀 후달리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긴 하다.
담배가 탈모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다.
-응? 진짜 그런가?
-그렇다니까요.
-아닐 거 같은데. 그랬으면 온 유럽이 다 대머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끝은 결국 아닌데 엔딩이긴 했다.
하여간 영국 놈들 아닌데, 아닌데 하는 거 알아줘야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봐야 아는 놈들이라 그런데…….
사실 지들 손해 아닌가?
나는 간접흡연만 피할 수 있으면 장땡이다.
그런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한 지 열흘가량이 지났다.
처음 며칠간은 리스턴뿐만 아니라 심지어 콜린까지 내게 와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허.”
“이럴 수가.”
하지만 열흘이 지나자 확연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포경보다는 아무래도 상처 난 부위에 직접 담배 연기를 사정없이 쐰 충치 쪽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한두 명을 제외하면 다들 이를 뽑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물론 내 치료 자체가 미숙하다 보니 금연한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 발치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는데…….
다행히 꽤 차이가 났다.
“진짜 그런가……?”
“충치에 있어서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군. 연기 때문인가?”
“하긴…… 연기 때문일 수 있겠군그래.”
“그래…… 연기가 나쁜 거야.”
그렇게 보여 줬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지금의 상식과 차이가 나서 그런가 쉬이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다.
“그 연기가 고추에도 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거치고는 차이가 그렇게 많이…….”
“그래도 차이가 나긴 하잖아요. 이거 보세요. 결국 잘랐잖아요.”
그런 그들에게 나는 오늘 자른 성기 두 조각을 보여 주었다.
금연에 금주까지 한 그룹은 단 한 명도 부작용이 없었던 것에 비해 흡연을 진행한 그룹은 두 명이나 잘라야 했다.
사실 어제, 그제 잘랐어야 했는데 리스턴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는 바람에 오늘 자른 거다.
툭.
아무튼, 그걸 앞에 던져 주자 우리의 애연가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이런다고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담배를 태우진 않을 것 같다.
뭐, 더 나아가서 환자들에게 수술 후 회복할 때까지는 금연과 금주를 강요할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