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화(33/505)
33화 수술에 써 보자! [1]
기도를 마친 로버트 리스턴은 자리를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얼굴엔 살기가 흘러넘쳤다.
아마 실상은 사람을 살리려는 일념이었겠지만, 보기엔 그랬다는 얘기다.
하여간, 로버트 교수는 뒤에 서 있던 나를 잡아끌고는 밖으로 향했다.
“다 따라 나와! 콜린! 자네도 나오게!”
나 외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방금 이 뽑히고 자기 이를 겨우 찾아내서 집어 든 콜린도 함께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한창 강의 중이던 블런델 교수도 밖으로 나왔다.
“대체 뭘 하려고 그러나!”
그럴 만도 했다.
누가 봐도 좀 무섭잖아?
원래도 무섭게 생긴 사람이 눈알이 반쯤 돌아가서는 철통을 들고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그 철통 안에 든 아산화질소, 즉 웃음 가스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숭고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긴 했지만, 얼굴은 그저 철통이 철퇴처럼 보일 뿐인 중세 기사 그 자체였기에 말릴 생각만 들었다.
“사람 살리려고.”
“죽일 얼굴이네!”
“얼굴은 원래 그렇게 생겼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 아니!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닐세. 자네 너무 흥분했어! 게다가 저쪽은 병실일세. 이 꼴로 환자에게 갈 셈인가?”
“옷 잘 입었네.”
“아니, 그.”
허나 여의치는 않았다.
꼬락서니라고 하기엔 멀끔해서 그랬다.
진짜 머리도 잘 빗어 넘겼고, 정장도 입었다.
가운이야 뭐 다들 안 입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하…… 진짜 갈 길이 구만리네.’
가운을 왜 입게 되었나.
수술복은 또 왜 입게 되었고.
그게 다 여러 사건이 있어서 그랬다.
일단 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입고 다니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밖에 있는 놈이 들어와서 환자 수술한답시고 죽이면 어찌한단 말인가.
실제 수술과 살인이 겉으로 봐서는 전혀 분간이 안 가던 시대이니만큼 더더욱 그랬다.
“아…….”
물론 내 고민은 블런델의 만류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한 손을 로버트 박사님께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저 질질 끌려왔다.
“환자분.”
정신을 차려 보니, 그냥 병실도 아니고 무려 환자 앞이었다.
“히이이익!”
눈앞의 환자는 무슨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180이 넘는 거구가 무기를 들고 나타나지 않았나.
‘으음.’
그것과는 별개로, 숙련된 외과 의사인 내 눈엔 환자의 얼굴뿐 아니라 다리도 들어왔다.
우측 발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집이 좀 있었는데, 아마도 당뇨 환자가 아닌가 싶었다.
당뇨 진단 자체는 되었을 수도 있었다.
왜냐고?
의외로 당뇨 자체는 병으로 인식한 지가 좀 되었더라고.
물론 그걸 대체 어찌해야 할지는 갈피조차 못 잡고 있었지만…….
‘당뇨발…… 이 지경이면 일단 자르긴 해야지.’
하여간 잘라야 했다.
저만큼 썩었다면 곧 위로 뻗어 올라올 테니까.
아니, 그 전에 환자가 그냥 죽을 수도 있었다.
패혈증을 일으킬 수도 있고, 애초에 당뇨가 있다 보니 고삼투압성 고혈당 증후군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뭐라도 하려면 잘라야 했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칼도 안 들었는데.”
“아니! 그게 의사가 할 소리입니까!”
“그럼 누가 해야 합니까.”
“그…….”
다들 얼굴만 봐도 놀라는 탓에 짜증이 났는지, 우리 로버트 교수님의 반응은 평소보다 더 공격적이었다.
진짜 누가 보면 사람 죽이러 온 줄 알겠어.
‘살리려면 잘라야지.’
물론 나는 이 사람의 진심을 알기도 하고, 또 정말 간만에 의학적인 의견도 일치했기에 입을 털었다.
“환자분.”
환자 입장에서도 잘된 일이었다.
아무래도 험악한 로버트 박사보다는 노란 내가 보기엔 더 나을 거거든.
이 시기 런던에서는 진짜 드문 일인데, 이것도 다 로버트 교수님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어, 네네.”
마치 구세주를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 이거지.
이래서 의사 하는 거지.
“환자분의 발 말입니다. 썩어들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거 그대로 두면…… 환자분 돌아가십니다.”
“그냥 불편하고 아픈 걸로 끝 아닙니까?”
살짝 취소하고 싶어졌다.
이런 반응이라니…….
이건 너무 상식에서 벗어났잖아?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너무 좋은 환경이기는 했다.
국민 절대다수가 고등 교육을 받고, 동시에 보건 지침에 그렇게 잘 따라 주는 사람들이 또 있겠나.
미국보다도 훨씬 나을 텐데…….
“아뇨. 처음 오셨을 때랑 비교해 보세요. 그때보다 이 붉은 기운이 더 올라왔죠?”
난 냄새를 간신히 참으며 환자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바지 끝은 이미 고름에 젖어 있었다.
그 밑에 있는 시트도 말할 것도 없었고.
“그…… 그건 어떻게…….”
“제가 매일 병실 도는 거 몰랐습니까?”
몰랐을 거다.
거짓말이거든.
특히 지난 며칠간은 장갑 만들고 해부하고 또 파티 가고 하느라 아예 병실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허나 말은 맞지 않았나?
환자보다는 로버트 박사님이 꽤 놀란 얼굴이었다.
“매일 왔나?”
“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할 수 있는 사나이, 그것이 나다.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양심 조금 저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구?
“잘했군. 닥터 평 말이 맞아요.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이 붉은 기운이 더 심해지면 죽어요.”
로버트 박사는 내 말을 받아 환자에게 설명했다.
설명이라기보다는 거의 협박이었다.
아는 게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얼굴 때문에 그런가…….
혹은 둘 다인가…….
“죽는다…….”
“네, 죽어요.”
“하……. 그래도 나는…… 그 아픈 게…….”
효과는 있었다.
환자는 아까처럼 질색하는 대신 망설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광장에서 진행되는 수술은 거의 뭐 사형식이잖아?
얼마 전에는 수술하는 걸 구경하는 데 돈도 걷었다.
진귀한 구경거리다 이 말인데…….
‘그만큼 고통스러웠지.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답니다.’
나는 로버트 박사님과 눈을 맞추고는 그가 들고 온 가스통을 바라보았다.
로버트 박사도 껄껄 웃으며 그 가스통을 한 손으로 쭉 들어 올렸다.
환자는 그대로 철통으로 후려치는 줄 알았는지 비명을 질렀으나,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 백정처럼 생겼어도 속내는 명의란 말이지.
“이걸로 마취할 수 있습니다.”
“마취……?”
“안 아프게 수술할 수 있다, 그 말이죠.”
“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족들 불러서 인사는 하시고요.”
“아.”
혹시 모르니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는 배려인데, 자꾸 조폭이 죽기 전에 협박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환자는 온전히 배려로 받아들였는지 옆 사람에게 부탁해서 제 가족들을 불렀다.
그 사이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병원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수술 소식을 알렸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으니 딱히 구경꾼이 몰릴 이유가 없었지만, 오늘은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마취를 한다고……?
-누가 속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끼 로버트에게 죽겠군.
-또 엄한 환자만 고통받겠구만.
반응이 막 뜨겁지는 않았다.
냉소적이라는 말이 현상화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웃음 가스 알아볼 때까지 공부를 좀 하지 않았나?
여태까지 진짜 사기꾼들이 많기는 했더라고.
최면이니 뭐니 하면서…….
“자…… 평?”
하여간 나는 광장에 서 있었다.
말이 광장이지, 너무 급하게 잡힌 수술이다 보니 도시 중앙이 아니라 대학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마취라는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이 엄청 몰려 있었다.
‘그래…… 한 걸음씩 가자…….’
상식적으로 살을 째는 데 이렇게 사람들이 몰릴 일인가 싶었다.
어?
이거 하다가 감염이라도 되면 책임질 거냐!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뭐 어쩌겠나.
시대가 이런데.
다들 잔뜩 기대에 차 있는데 내가 뭐라고 하면 돌멩이라도 날아오지 않겠나.
심지어 로버트 박사님도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네?”
그 와중에 내 이름을 불러서 일단 답했다.
“칼 가져와라.”
“어…….”
뭔가 망나니 같은 말이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어마어마한 영예였다.
일단 로버트 박사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랬다.
보조의로 들어오라는 말과 다름없어서 그랬다.
해서, 나는 로버트 박사님 뒤에 있던 조수의 눈치를 보았다.
‘이 새끼?’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아닌데 눈으로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서 있던 학생들 중에서도 질시 어린 시선을 보내는 놈이 있었다.
‘개새끼?’
그중에서도 역시 생니를 뽑은 콜린은 거의 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네, 가져오겠습니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 그렇게 질투하라고.
두고 보자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들이 없으니까.
‘이참에 칼도 닦아야지.’
자신의 연륜을 지워 버렸다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죽일 수는 없어.’
실수라고 할 생각이었다.
오다가 넘어져서 손 닦는 데 사용하던 염화석회에 담가 버렸다고.
잠깐 생각해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로버트 박사는 생긴 게 저래서 그렇지,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 않나.
세계 최초 마취 시도라는 기념비적인 일을 두고 고작 칼 하나 닦았다고 지랄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닦은 칼로 수술하면 아무래도 더 잘될걸…….’
메스도 수술하다 보면 지방이나 이런 데서 묻은 기름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나.
수술실에서 흔히 쓰던 메스도, 진짜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섬세한 공정을 거쳐 나오는 건데도 그런데 리스턴 칼이면…… 더하면 더했지.
이 시기의 금속 다루는 솜씨가 설마 21세기만 하겠냐고.
‘너무 닦았나. 새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칼을 문대다 보니, 너무 맨질맨질한 것이 리스턴 박사님이 보면 좀 섭섭해할 것도 같았다.
너무 섭섭해서 내 머리를 뎅강 자르면 어쩌나 싶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달려갔다.
번쩍.
분명 길이가 30cm도 넘는, 단검보다는 확실히 긴 칼임에도 불구하고 칼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들고 뛰었다.
마침 광장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동안엔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었을 터였다.
피떡이 눌어붙어 있었으니.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
“과연…… 리스턴 박사…….”
내가 반들반들 닦은 칼은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 빛이 모두에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내 칼이. 내 경험이…….”
리스턴 박사님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와아!”
하지만 그가 그 번쩍이는 칼을 내게서 받아들었을 때 환호성이 일었고, 그 덕분인지 리스턴 박사는 오히려 좋다고 여긴 듯했다.
그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진짜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집어 들며 외쳤다.
“자! 오늘은 여기 이 환자의 다리를 자를 겁니다!”
로마 검투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