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1화(331/505)
331화 콜로라도? [2]
뭉게구름이 천장 위로 점점 더 짙게 번져 가고 있다.
한 놈은 긴 담뱃대, 한 놈은 엽궐련, 우리의 리스턴은 돌연 엽궐련을 내려놓고 조선의…… 그러니까 곰방대로 피우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안에 든 담배가 각기 다 다른 종류의 것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건…….
“혹시 누구 대마 피웁니까?”
“아, 저요.”
담배 냄새에 뒤섞여서 몰랐네.
사실 내 눈앞에서 감히 대마 피우는 놈이 없어서 이런 모양새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느낌.
이 이상한 상황에서조차 뭔가 안정되는 듯한 느낌.
이건 이상하지.
“사업 얘기하러 오신 건데 그거 대신 담배나 태우시죠.”
“아, 그게 상관이 있나요?”
“상관이 있어요. 설령 아니더라도 내가 좀 언짢습니다?”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좋게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고집을 부리네.
해서 눈알을 부라렸더니, 저 바다 너머 미국에도 이미 내 악명이 번진 것인지 뭔지 즉시 대마를 껐다.
그러곤 다른 걸 물었는데 긴장해서 그런가, 금세 불을 붙이진 못했다.
그러자 인디언인 밀이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이 물고 있던 것을 건네주고는 대신 선원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 천천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찌나 맛있게 피우는지 담배가 안 좋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나조차 한번 피워 볼까 싶을 지경이었다.
“여기 이 친구가…… 대단한 친구입니다. 캔자스에서 알아주는 유력자예요.”
그런 밀을 보면서, 선원이 허허 웃었다.
내가 볼 때는 사실 이 시대에 벌써 미국, 런던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선원이 더 대단해 보였지만, 뭐 앞에 있는 사람 대단하다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 저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게다가 저 리스턴조차 흥미를 보이고 있다.
이 양반이야 누가 되었건 감히 자기 앞에서 당당한 모습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니 당연하긴 하다.
나를 받아 준 걸로 미루어 볼 때 애초에 인종 차별적인 생각도 없는 거 같고.
“그래? 캔자스? 그게 어딘데?”
아닌가?
그냥 처음 듣는 거에 호기심이 돋운 모양인가 보다.
엉뚱한 것에 꽂혔다.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물질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전해 들은 건 분명 이 말이었으니…… 엉뚱하단 말도 딱히 억울해할 건 아닌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내가 괜히 본론 운운할 필요도 없을 거 같긴 했다.
나도 캔자스가 어딘지 모르기도 하고…….
아이스 브레이킹 하면서 상대가 진짜 믿을 만한 놈인지 어떤지도 봐야 하지 않겠나?
제일 확실한 건 미국에 가 보는 것이겠지만…….
아이구…….
아무리 요새 배가 좋아지고, 심지어 증기선도 뜬다지만 아직까지는 여행은 고생과 같은 말인 시대다.
최대한 런던에서 뭉갤 수 있으면 뭉개는 게 맞다, 이 말이다.
“아, 캔자스는…… 미국 거의 서쪽 끄트머리 쪽에 있는 곳인데…… 완전 내륙 지방입니다.”
“근데 자네는 왜 갔어?”
“제가 간 게 아니고 이 사람이 온 겁니다.”
“아…… 그렇군.”
리스턴은 이 사람이라는 말에 밀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얼굴에 검은 머리를 지닌, 전형적인 인디언 사내로 보이는 그는 그러나 자세나 말투만 보면 여느 유럽의 귀족이 연상될 지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자리에 진짜 귀족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양반이 제일 귀족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업차 간 겁니다. 여전히 서쪽에서는 저희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작물이나 가죽 수요도 많고요. 아무래도 우리가 그런 기술은 좋죠.”
“아…… 그렇구만. 확실히.”
밀의 풀 네임은 밀러 커티스였다.
캔자스 지방의 커티스…….
누가 떠오르긴 하는데, 생긴 걸 모르니 이렇게만 봐서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얼굴을 안다 해도 이 양반이 적어도 2대 조상은 될 텐데 유추가 가능하겠어?
물론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내적 친밀감이 조금씩 샘솟기 시작했다.
리스턴?
리스턴은 밀러 커티스가 말을 꺼내면서 보여 준 가죽 신발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누가 검성 아니랄까 봐 조금이라도 남성적인 물건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
“그건 그렇고 제가 가지고 온 아이템은…… 이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보처럼 히죽거리고 있으려니 한참 더 떠들던 밀러가 품에 담고 있던 병 하나를 꺼냈다.
유리병이었는데 안에 든 액체는 투명했다.
마치 물처럼.
“이게 뭐예요?”
“물입니다.”
“물?”
아니, 물이었다.
이걸 대체 왜 들고 온 건가 싶었다.
리스턴을 돌아보니 아무래도 나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물이 더러워서 맥주나 와인 먹는 양반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조선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19세기 유럽에서 물은 찬밥 신세였다.
“이따위 걸 왜?”
“이따위라뇨. 콜로라도 온천수가 얼마나 귀한데.”
“콜로라도? 거긴 또 어디야.”
“캔자스 옆에 있는 곳인데…… 거기 온천수가 진짜 좋습니다.”
해서 리스턴은 표정을 굳히고 상대를 을러대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되면 확 쫄아야 정상인데, 밀러는 그런 리스턴을 보면서 또박또박 대꾸하는 중이었다.
역시 상원 의원의 조상인가 싶었다.
뭐…….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만, 아무튼.
“온천수……? 흠…… 담그는 물이라 이건가? 하긴, 온천은 좋긴 하지.”
헌데 물은 그렇게 싫어하던 양반이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었다.
그럴 만하긴 했다.
온천은 또 구별하긴 하거든.
치료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나 일본도 온천수 하면 좋은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유럽은 더하다.
특히 프랑스 같은 곳은 온천 전문의가 있을 정도니까 뭐…….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리스턴이 홀랑 넘어갔단 거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근데 온천이랑 충치랑 뭔 상관이죠?”
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상대는 여전히 여유로운, 어떻게 보면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응? 그럼 왜 여기까지 왔어요?”
“런던이야 겸사겸사 온 것이죠. 아직 공산품은 영국산이 좋으니까요. 자식 놈 보낼 대학도 알아봐야 할 거 같고.”
“대학……? 굳이 미국에서 여기로?”
“뭔 소리 하는 겁니까. 미국이랑 런던 대학은 비교도 안 되지.”
“아, 지금은 그런가.”
잠시 얘기가 샜는데, 확실히 지금 미국은 우리가 알던 그런 초강대국과는 거리가 많이 멀긴 할 거다.
유럽에 비하면 후진국이라는 말조차 쓸 수 있을 정도일 거고.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미국에서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이 여기나 프랑스 쪽으로 유학을 많이 간다고.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는데 의학은 좀 말리고 싶다.
미국도 개판일 텐데 여기라고 해서 다르진 않을 거라 그렇다.
“아무튼, 이 물이 뭘 어떻게 하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렇다고 말리는 건 좀 선 넘는 거 같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상대가 먼저 본론으로 돌아와 주었다.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럼 어떤 근거로 충치 얘기를 한 거죠?”
“콜로라도…… 거기 온천 주변에 사는 부족들은 이가 거의 안 썩어요.”
“오……? 뭐 음식이나 이런 게 다른 건 아니고요?”
“뭐…… 조금 다를 수야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디언들이 먹는 게 거기서 거기죠.”
아까부터 조금씩 느꼈는데, 이 양반…….
자기랑 일반적인 인디언들이랑 되게 구분해서 말한다.
뭐 19세기 말로 하면 문명화된 사람이니 그럴 만하긴 했다.
인종 차별은, 좀 슬픈 말이지만, 가해자만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도 하기 마련이니까.
개중에는 이렇게 자기 혈통을 부정하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
“그럼 이 물에 진짜 뭔가 있다는 건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거죠.”
“흐음…….”
“구미가 당기시면, 어떻습니까? 저랑 한번 가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미국을요?”
“네.”
미국…….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국가다.
20세기 중반부터는 진짜 초강대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나라니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난 싫네…….’
저 상남자 그 자체인 리스턴조차 뒤에서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청나라는 갔던 사람이 미국은 가기 싫어하고 있다, 이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게 이제 겨우 50년이다.
대체 대영제국이 왜 그런 후진국한테 진 건지 모르겠단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나라였다.
미닛맨한테 발린 레드 코트라니…….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은 좀 기피 대상이다.
몸은 솔직해서 아메리카산 담배나 여러 작물은 잘도 사 와서 즐기지만.
“신대륙입니다, 신대륙.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런 제안 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태평 님에 대해서 들어 보니 도전 정신이 대단하다던데요?”
“그…… 뭐…….”
입발림 소리를 한다고 갈까 보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리스턴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 리스턴 경께서는 검성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거 아십니까? 아메리카에는 덩치 큰 야수들이 많습니다. 사냥하는 데 딱히 제한이 있지도 않죠.”
“오……?”
미친놈이.
여기서 솔깃하면 어떡하냐.
저놈 저거 저러다 도장 찍겠다.
“게다가…… 미국인들 태반은 아직 가난합니다. 보아하니 죄수들 대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신다는데, 거기선 담배 조금만 쥐여 줘도 스스로 나설 사람 한둘이 아닐걸요.”
“오……?”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게다가…… 옳지. 충치만 해도 거긴 그냥 미어터질 겁니다. 다른 병이야 말할 것도 없죠. 실험 대상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이 말입니다.”
“오…… 어?”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미국행 배 티켓을 산 후였다.
나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리스턴, 블런델에 제자들까지 다 샀다.
길게 다녀올 작정은 아니고, 길어야 두 달? 세 달 정도 될 거 같다.
바닷길은 변수가 되지 않을 텐데, 내륙길이 문제다.
괜히 미국이 수정 헌법 제2조에 명시된 총기 소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강도뿐만 아니라, 아까 밀러가 말한 야수들도 문제다.
작게는 코요테부터 해서 늑대, 곰 등 런던에서는 꿈에서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놈들이 지천으로 있다.
-검성께서 계시는데 뭔 걱정입니까. 저 같은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걸요.
헌데 듣고 보니 과연 그렇긴 했다.
우리 리스턴을 대체 누가 건들 수 있겠나.
군대라도 끌고 와야 할 텐데…….
우리가 그럴 만큼 악독한 놈들은 아니다.
“응? 미국에? 세 달?”
전 같았으면 이렇게 훌쩍 떠나면 될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왕실 주치의잖아.
“어, 가게. 가.”
허락이 필요하다, 이 말인데…….
이 양반이 어째 너무 신속하게 허락해 주니 기분이 이상하다.
“저 없다고 이상한 거 하지 마시고요.”
“알겠네, 알겠어.”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닙니다.”
“아, 알겠다니까?”
왕의 말이 이렇게 가벼이 들릴 수가 있을까?
안 되겠다.
“뭐 하나……?”
“부적입니다.”
“부, 부적?”
대충 내가 아는 한자 끄적인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러곤 최대한 무서워 보일 만한 표정으로 협박했다.
“허튼짓하면 제가 알게 될 겁니다.”
“아, 알면……?”
“글쎄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제길. 알겠네, 아무것도 안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