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3화(333/505)
333화 콜로라도? [4]
“한 2주 정도 걸릴 겁니다.”
“아, 그렇군요. 2주라…….”
“좀 지겨우실 겁니다.”
“뭐…… 2주 정도면 버틸 만하죠.”
그래, 2주면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생각보다 엄청 짧다.
대항해시대 게임에서도 이랬었나……?
아닌 거 같다.
꽤 오래 걸렸던 거 같아.
‘뭐…… 그 게임 배경이 16세기니까…….’
지금은 19세기니까 무려 300년이 흐른 거다.
배 생긴 것만 보면 그냥 범선 같아 보이긴 했지만, 범선 안에서도 나름 발전이 있긴 한 모양이다.
하긴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하다.
우리가 살던 21세기가 이상하게 빠르긴 하지만 그 전이라고 해서 발전이 완전히 멈춘 적은 없었을 테니까.
“그럼 가 보겠습니다. 혹시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바로 불러 주십쇼.”
“그래요.”
사실 이보다 항해가 좀 더 길다고 해도 괜찮을 거 같다.
일단 우리 이제 진짜 VVIP거든.
애초에 의사라는 존재는 어딜 가나 환영받기 쉬운 존재긴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실력이 좋다면 더더욱 그렇다.
처음 배 탄 게 프랑스 갔을 땐데, 그때도 그랬잖아?
헌데 이제는 그 실력도 거의 최고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위도 엄청나게 올랐다 보니 선장부터 선원 그리고 승객들까지 모두 배려를 해 주고 있다.
뭐…….
돈도 많이 내긴 했다.
이동 중에 고생하기가 딱 싫어지더라고.
“우웁.”
그렇게 배려를 해 주는데도 멀미하는 모지리가 있다.
“조지프. 그렇게 힘드냐?”
“우…… 배 탈 일이…… 우웁.”
얘만 이러는 게 아니다.
“아, 나는…… 나는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은…… 웁.”
“가, 같이 가시죠.”
앨프리드랑 콜린도 그렇다.
조지프도 그렇고, 저 둘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다들 상인의 자식들 아닌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장사 좀 크게 한다 하면 대개 배를 탄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우…….”
“아이고…….”
심지어 이 배가 숫제 앨프리드네 배다.
원래 같았으면 아저씨도 같이 탔을 텐데, 중국 쪽 차 무역에…….
나랑 리스턴 덕에 한 숟갈 거들 수 있게 되어서 그쪽에 주력하느라 여긴 다른 직원이 탔다.
방금 앨프리드 데리고 들어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걱정하는 얼굴도 있지만 숨길 수 없는 무시도 뒤섞여 있다.
배 타는 것이 숨 쉬듯 당연한 사람들일 테니, 그럴 수 있다.
“닥터 피영은 괜찮으시군요?”
“나도 괜찮네만.”
“리스턴 경은…… 솔직히 말하면 어디 던져 놔도 괜찮을 거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하하.”
그 직원.
직원이라기엔 선장이랑 맞먹을 만큼 높은 사람이 앨프리드를 안에 데려다주고는 다시 나와 다가왔다.
그러곤 일행 중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우리 둘에게 좀 놀랐다는 투로 말했다.
말이 놀란 것이지, 일정 부분 대견해하는 투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딱히 우리 일행들만 멀미를 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대다수의 승객들이 그러고 있긴 하다.
폭풍우까지는 아닌데 약간 바다가 거칠어.
“아…… 우리야 뭐…… 아ㅍ…… 아니, 청나라 쳐들어갈 때도 가 봤으니까요.”
“아, 맞아. 들었습니다. 이제 보니 바다에 익숙하신 게 당연하군요.”
“뭐…… 케이프타운? 거기 넘어갈 때는 좀 힘들었죠.”
“거기는 저희 같은 사람들도 힘들 겁니다.”
“거기 말고는 뭐…… 괜찮던데요?”
“허어…… 타고나셨군요. 하긴 범상한 사람이 아니시죠.”
내 말에 리스턴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럴 만했다.
청나라 갈 때 진짜 뒈질 뻔했거든.
뭐 그럼 어쩔 거야.
그때 그 모습 봤던 놈들…….
나중에 심장에서 피 뽑는 거 보고 다들 식겁해서 나에 대해 물으면 그 얘기밖에 안 하는데.
“아무튼, 바람이 좀 심상치 않긴 합니다. 배에 영향이 있진 않을 거 같긴 한데…….”
“뭐 문제가 있진 않겠죠?”
“네? 아…… 하하. 미국 가다가 침몰하고 했던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이젠 괜찮아요. 항로도 다 정해져 있고…… 무엇보다 배 만드는 기술도 그때보다 훨씬 나아요.”
“그렇군요.”
“이건 비밀인데, 이 배가 사실은 미국에서 만든 배입니다.”
“네?”
아니…….
21세기 미국산이면 좋은 거 맞다.
뭐 무조건 그런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무기류에 있어서는 미국산이 짱이잖아.
하지만 이 시기에는…….
특히 영국인에게 미국산이라는 건 담배 같은 거 몇 개 빼면 거의 중국산 느낌 아닌가?
그래서 비밀이라고 했나?
근데 그걸 왜 굳이 말하는 거지?
“아, 아아. 오해를 하셨구나. 저도 그랬으니 무리는 아니죠.”
“네?”
“요새는 미국 배가 더 빠릅니다. 이놈들…… 중국 가는 데 한 달밖에 안 걸리는 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 헛소문이겠지만요.”
“한 달……? 우리는 군함이었는데도 그거보단 느렸던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죠. 일반 상선은 석 달도 더 걸립니다. 근데…… 미국 배는 느려도 2달 안에 갑니다.”
“허…….”
역시 미국…….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괜히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게 아닌 거 같다.
하긴 벌써 영국도 이겨 버렸지.
그래, 미국이랑 안면 트는 게 진짜 잘하는 일인 거 같긴 하다.
나중에 훌륭한 조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겠지?
“아무튼, 힘드시면 들어가 계세요. 생각보다 여기 바다도 험하기 시작하면 많이 흔들려서요.”
“네네. 뭐 바다야 익숙하니까요.”
“네.”
그렇게 노가리 까고 있으려니 어느덧 해가 슬슬 안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져서는 아니었다.
구름이 꼈다.
-휴, 좀 살겠구만.
모자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선에 내리쬐는 햇빛을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선원들이 대머리가 많은 게 아니다.
진짜로…….
머리가 타는 거 같다.
심지어 배에서는 진짜 식수가 아예 없고 술밖에 없다 보니, 머리가 뜨거워도 잘 모를 때가 많아서 더 타고 더 빠지는 거 같은데…….
하여간, 당시 나는 몰랐지만 벌써 머리 상태를 염려했던 리스턴이 내게 구름 낀 하늘을 보며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X된 거 같군, 평.”
그 후에 장구하게 펼쳐졌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의 귀족 나리께서 이토록 상스러운 욕을 하는 게 그리 뭐라 할 만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저 ‘이 말이 맞지’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일단 안으로 갈까요?”
“그래. 그나마 이 배는 전에 그 배보다는 나을 거야.”
“무슨 근거로요?”
“더 크잖아.”
“하긴. 근데…….”
그래, 크긴 하다.
하지만 저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저 잔혹한 자연 앞에서는 나룻배건 범선이건 다 같지 않을까?
뭐…….
엄청 큰 화물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으아아…….”
“으어어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안쪽은 이미 난리가 났다.
그나마 일등석이라 공간도 꽤 넓고 또 모든 가구가 붙어 있는 데다가 문도 잠금장치를 하게 되어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물건들도 죄 쏟아졌을 거다.
지금처럼 벗어 놓은 옷이랑 신발 정도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이거 잡아.”
“네네. 잡고 있습니다. 으…….”
나랑 리스턴은 사정이 훨씬 나았다.
미리 고생을 해 본 덕이고 또 이번 풍랑이 저번보다는 아직 나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땐 진짜 뒈지는 줄 알았다.
“이거 이래서는…….”
“다른 사람들 중에 다치는 사람들이 나올 거 같은데요?”
“그러게. 전에 프랑스 가는 배에서도 다치는 사람이 나왔잖아.”
“어쩐다.”
“어쩌긴. 다쳤으면 잘라야지.”
리스턴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내가 한동안 기억 저편에 두고 있던, 그러나 역시나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질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골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골절은 그리 흔한 질환이 아니다.
애초에 현대 사회라는 게 그렇게 생겨 먹었다.
밤에도 밝고, 도로는 반듯하고 계단 단차 같은 것도 모두 같다.
물론 엉망으로 지은 집, 대표적으로 군대 건물 같은 경우엔 아니긴 한데…….
뭐가 되었건 젊은 성인, 그중에서도 영양 결핍이 없는 성인이라면 골절의 위험성이 내려가는 것도 있다.
그에 비해 여긴 어떠냐.
‘진짜 툭 하면 부러지지.’
리스턴이 툭 치면 누구라도 부러지기야 하겠지만, 개중에는 그냥 멍 들고 끝났어야 할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거다.
근데도 골절이 생긴 건 만성적인 영양부족 때문이다.
여기 뱃사람들이야…….
영양부족은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원체 강한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고 또 요령도 있어 세게 부딪치거나 하진 않을 거다.
문제는 승객들이다.
‘뭔 이민을 그렇게 가냐…….’
우리처럼 사업차 또는 여행하러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고, 대개 일등성에 있다.
그 외에 다른 승객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이 배에 탄 모양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아까 들어 보니 일 년에도 수십 척의 배가 이민자를 싣고 간다고 하더라고.
영국에서만이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꽤나 많이 간다는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은 이민자들의…….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21세기 대한민국에서야 이민이 보통 좀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잖아?
딱히 그게 아니라 해도 엄청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지는 보통 아니다.
하지만 여긴 아니다.
저 시궁창 같은 런던 뒷골목에서도 더 절망스러운 사람들이 가진 걸 다 팔아서 이 배를 탄다.
그 사람들 뼈가 튼튼할까?
‘다들 잘 붙잡고 있길 바라야겠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장거리 항해용 배라 그런가, 모든 곳에 어디라도 붙잡을 곳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 봐야 3등칸은 방이 막 있는 게 아니라 거의 텅 빈 창고 같은데 누워 가게끔 되어 있긴 하지만…….
19세기 사람들은 강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으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지식을 뒤져 봐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만 가지고 골절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다.
혹 개방형 골절이다?
그럼 진짜 절단 엔딩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
촤아아아.
돌연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창을 통해 밖을 보니 느낌이 온다.
물론 나로서는 뭔가 붙잡고 버티는 상황에서 입까지 놀릴 여유가 없다 보니 그냥 있었다.
대신 입을 열어 준 것은 리스턴이었다.
“최소 이틀짜리네. 다들 그냥 자.”
“으.”
“윽.”
희망이 꺾이는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풍랑이 멈춘 것은 정말로 이틀 뒤의 일이었으니까.
천만다행으로 항로에서 딱히 벗어나지도 않았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다.
좋게좋게 끝났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나는 골절 치료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골절 위험에 처하는 경우야 항해 때밖에 없겠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사시사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 골절이란 아주 높은 확률로 신체 기능 장애와 직결된다.
‘충치에 김치에 골절까지. 할 게 많네.’
나는 머릿속으로 드문드문 기억나는 지식을 정리하면서 미국으로 향했다.
저 멀리 뉴욕이 보였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직 없었다.
그러나 고층 건물은 이미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게 내 미국 기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