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5화(335/505)
335화 미국…… [2]
“음…… 기차가 아직 없군요?”
콜로라도.
솔직히 말해서 전생에서는 지명이 아니라 차 이름인 줄 알았다.
쉐보레 콜로라도.
그만큼 생소한 곳이라는 얘긴데…….
지도를 들여다보니 진짜 드럽게 멀다.
미개한 놈들이 2천 마일쯤 된다고 하는 걸 보면, 거의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3천…….’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얼마나 되지?
아마 380km 정도나 될 텐데…….
거의 8배다.
조선 시대에 귀양 가던 거리라 이 말인데…….
그거 가다가 죽은 사람들도 꽤 있지 않던가?
“없지. 여긴 미국이야.”
“너무 그렇게 말씀하진 마시죠. 있긴 합니다.”
“아, 있나?”
“네, 뭐…… 오하이오에서 남쪽으로 가는 철도긴 한데…….”
“거긴 어딘가?”
“경로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오하이오는 지나가긴 할 테지만.”
“그럼 왜 말했나.”
“죄송합니다.”
뭔가 막막한 기분이 들어서 한탄을 늘어놓았더니, 그 한탄을 받아 리스턴과 밀러 커티스가 대화를 나누었다.
배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좀 더 건방진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공손하기 짝이 없다.
뻔하다.
어제 봤잖아.
검성 리스턴의 힘을.
밀러 커티스가 아무리 일반적인 원주민들과 거리를 좀 두고 있다고 해도 이 식민지인들과의 싸움에도 관심이 아예 없을 수는 없을 텐데…….
‘그 강력한 식민지인들…… 미국인들조차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뭐.’
무엇보다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게 진짜 충격이었을 거다.
나야 맨날 보니까 그냥 그렇긴 한데…….
“아무튼, 그럼 이걸 타고 가야 한다는 말인가?”
“네. 뭐…… 장거리 이동에는 마차만 한 것이 없습죠. 그렇다고 말을 타고 가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은…….”
여전히 밀러와 대화를 나누던 리스턴이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말을 잘 못 타서 그렇다.
비난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괜찮다.
나만 못 타는 게 아니거든.
조지프도 잘 못 탄다.
블런델도 그렇고.
앨프리드나 콜린은 좀 타긴 하는데…….
뭔 상관이야?
“안 되겠지. 그럼 마차를 타야 한다, 이 말인데…… 가는 중간에 마을 같은 건 있나?”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고 그렇죠.”
“뭔 말이 그렇게 애매한가?”
“진짜 애매해서 그렇습니다. 캔자스도 그렇지만 콜로라도 쪽은 거의 야생이에요.”
“야생이라…… 거기서 사냥도 좀 할 수 있을까?”
“원치 않아도 해야 할 겁니다, 아마.”
“아하. 좋구만.”
“보통은 싫어하죠.”
내가 혼자만의 생각을 이어 나가는 동안 대화도 이어졌다.
딱히 좋은 말이 더 나오진 않았다.
아니, 어째 나오는 말마다 안 좋은 소식뿐이었다.
거의 야생이라니?
바다 건너기 전까지만 해도 문명화된 곳이라고 했는데?
해서 노려보니, 주술사인 나도 이제 슬슬 두려워하게 된 밀러가 멋쩍게 웃었다.
“우리 문명도 문명이죠.”
“미친놈이?”
“어어, 우리 문명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건…… 아닌데. 말이 다르잖아요?”
“하하. 걱정 마십쇼. 저랑 가는데 뭐 별일 있겠습니까. 좀 고생스럽긴 할 텐데…… 괜찮을 겁니다. 리스턴 경도 계시고. 여기 용병들도 있는걸요.”
용병…….
밀러가 말을 하면서 손으로 가리킨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죽으로 된 신발을 신고, 면직물로 만든 옷을 걸친 채 총을 어깨에 메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염도 거칠게 길렀는데, 무엇보다 자꾸 담배를 씹어서 그런가 수염이 유독 더 지저분했다.
“카악, 퉤.”
“퉤이.”
물론 그들이 서 있는 자리 또한 실시간으로 더 지저분해지고 있다.
‘하.’
자연스레 당직 시간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이 떠올랐다.
용병과 강도의 차이는 정말 미미하다고 했던가?
실제 역사도 그랬으니 뭐 할 말이 없다.
다행인 것은,
“피영시인, 걱정 마십쇼. 사실 주술 한 방이면 저 인디언 놈들이나 곰도 한 방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하하. 팬입니다!”
“존경합니다, 형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리스턴뿐만 아니라 나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냥 두려워만 하는 건 아니고 존경도 하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지금 당장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중간에 변심하고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이지 긴 거리 아닌가.
매일 2, 300킬로미터를 간다 해도 열흘이다.
상식적으로 군대도 아닌 집단이 그렇게 행군을 할 수는 없으니…… 넉넉잡으면 그 두 배는 더 가야 한다고 봐야 했다.
중간중간 운하 따라 배 타는 구간이 있어, 밤에도 이동할 수 있다곤 하는데…….
‘미국 땅은 사기라 자연 운하가 다 이어진다며?’
그것도 아직은 다 개통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역시 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이었다.
하여간, 그 긴 거리를 가면서 습격이 없을까?
인디언과 야수들만 적이 아니다.
미국은…….
사실상 도시를 벗어나면 무법 지대나 다름없다 보니 갱단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고 한다.
“좋구만.”
리스턴 같은 놈이야 희열을 느끼겠지만 난 아니다.
해서 모인 사람들에게 모두 고용을 약조하고, 그 인원에 맞춰 마차와 마부까지 대여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돈이 덜컥 나갔다.
그래도 괜찮긴 하다.
지금도 제자들이 시시각각 돈을 벌고 있을 테니까.
‘안 괜찮군…….’
뉴욕…….
내 생각과는 달리 런던보다 더한 마굴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세인트 레지스 호텔과 그 근방은 진짜 신도시 느낌 나고 깨끗했지만 한 블록만 더 들어가면 그냥 지옥이다.
센트럴 파크도 없는 시절이라 그런가 공원도 하나 없이 그냥…….
어디서 이민자들이 그렇게 밀려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빈민들이 진짜 많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런던인데, 여기선 그 빈민들이 담배를 씹고 침을 뱉는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하늘은 좋았는데.’
여기라고 공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규제고 나발이고 없던 시절이니만큼 쉴 새 없이 매연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맑았다.
기후 탓일 터였다.
‘여긴 하늘만 좋네.’
그렇게 뉴욕을 떠나오자 황량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도 나름 도시를 벗어나면 꽤 황량한 편인데 여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진짜 자연 그 자체인 풍경이 여기저기에 있다.
아, 우리가 달리는 길도 자연이다.
덜컹.
비포장도로라는 얘긴데, 우리가 흔히 아는 흙길도 아니다.
진짜 그냥 자연 그 자체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흔들리는데…….
그렇다고 천천히 가자고 하기엔 예상한 것보다도 더 느려질 게 뻔해서 말을 안 하고 있다.
그나마 하루 이틀 정도는 버틸 만했는데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보니 죽을 거 같다.
“오늘 안에 신시내티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인 건 오늘은 야영이 아닌 제대로 된 숙소에서 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봐야 뉴욕처럼 좋은 호텔이 있거나 하진 않겠지만…….
-분위기는 썩 나쁘진 않을 거예요. 여긴 저 남쪽처럼 노예를 부리거나 하진 않으니까.
나는 아까 밀러와 앨프리드네 선원이 해 준 말을 떠올렸다.
미국 지리에 익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다.
교수가 되면 연수라는 걸 가거든.
정말 드물게 미국 아닌 다른 나라로도 가긴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기 드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만큼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대개는 서부로 가긴 한다.
샌디에이고나 캘리포니아.
우리가 미국이라고 하면 딱 떠올리는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동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동양인 때문이기도 하다.
‘버지니아도 나쁘지 않다고 해서 생각은 했었는데…… 여긴 북부지, 그럼.’
워싱턴 D.C 쪽도 동부치고는 괜찮단 말이 있어서 고려했더랬다.
덕분에 신시내티가 있는 오하이오가 북부에 속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아직 남북 전쟁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으니 꽤나 갈등이 있긴 할 터였다.
그리고 그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노예제라는 것 정도는 배웠다.
‘뭐……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다 노예제를 폐지했는데 남부만 말 안 듣고 있으니 북부 쪽에서는 짜증 나겠지.’
쪽팔릴 거다.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노예제에서 벗어난 이들을 뉴욕 호텔에서 봤듯 싼값에 부리고 싶을 것이고.
“보입니다!”
나만 도시가 반가운 건 아닌 모양이었다.
용병들도 그렇고 리스턴도 그렇고 그냥 다 그랬다.
무엇보다 인디언인 밀러가 반가워하는 모습은 좀 이질적이었는데, 그의 평소 행동을 보면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문명의 혜택을 입기 시작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기 마련 아니겠나.
그렇게 도시로 들어간 우리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혹 사업차 여기까지 온다는 직원 덕에 손쉽게 괜찮은 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말이 도시지 런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뉴욕에 비해서도 많이 쳐졌다.
“저거…… 저건 뭐야?”
“무시하십쇼. 동양인을 아마 살면서 처음 보는 걸 겁니다.”
그렇다 보니 적대적인 시선 반, 신기함 반이 섞인 눈으로 나를 보는 이들이 꽤 많았다.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진 못했다.
이쪽엔 총 든 용병들이 무려 8명이나 있었으니까.
사실 우리도 일단 들고 있긴 했기 때문에 거의 1개 분대 이상 되는 병력이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덜커덕.
덕분에 우리는 호텔에 딸린, 빈말로도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맛은 썩 괜찮은 식당에서 무사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의사, 의사를 좀 불러 주시오!”
그렇게 다 먹어 갈 때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들쳐 업고서였는데, 딱 봐도 상태가 무척 좋지 못해 보였다.
“어찌 된 일인가?”
나도 그렇지만 리스턴도 눈앞에 다친 사람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품이지 않나.
게다가 무림 고수다 보니 진짜 눈 깜짝할 새에 환자 앞에 가 있었다.
들쳐 업고 있던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였다.
무엇보다 억양이 자신들과는 좀 다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아, 런던에서 오신 의사분입니다. 운이 좋군요. 로버트 리스턴, 영국 제일검…… 아니, 의사입니다.”
직원이 부리나케 나서서 제대로 된 소개를 해 주었다.
나는 그래 봐야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생각해 봐라.
독립 전쟁이 고작해야 50년 전 일인데…….
“오, 런던!”
“오…….”
허나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다면 안심이지.”
“여느 돌팔이들하고는 다르겠구만?”
런던에 안 가 봐서 그럴까?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뭐…….
생각해 보면 무리는 아니다.
이 시기 영국이면 최강대국이니까.
그에 비해 미국은 열강에도 못 들어간 후진국이고.
“저도요.”
“이 노랭이는 뭐지?”
“런던 제일의 주술…… 아니, 의사이신 닥터 티에피영입니다. 기사 작위도 받으셨습니다.”
“오오.”
덕분에 나도 처음엔 난관이 있었지만, 금세 낑겨 들어갈 수 있었다.
“음.”
“으음.”
그렇게 들어가서 환자의 상처를 확인한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괜히 나섰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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