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6화(336/505)
336화 미국…… [3]
나는 그렇게 리스턴과 함께 시선을 교환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 측 병사? 갱단?
병사라고 하면 좀 그렇고, 갱단이라고 해도 좀 그렇다.
그래, 용병이라고 하자.
‘이 사람들보다 더 많은 놈들이…… 무장하고 있네.’
진짜 이상한 광경이었다.
런던도 뒷골목으로 가면 무법천지라는 말밖에 안 나올 정도인데 여기는…….
이 사람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마을 사람들이다.
판타지 게임 해 보면 동네 밖으로 몇 발자국만 나가도 괴물들이 돌아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 1, 2 같은 사람들은 아무 무장도 안 하고 있잖아?
근데 이 사람들은 주점 주인도 다 총이 있다.
‘총기 난사가 없을 뿐이지, 이미 이때부터 미국은…… 미쳤구나.’
총기 규제라는 게 말은 좋은데 실행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니만 이제 이해가 간다.
아니, 거즘 200년 전부터 이 모양이었는데 뭘 어떻게 규제를 한단 말인가.
조상님께 물려받은 총인데 어찌 돌려주냐고 하다가 빵 하고 발사하는 불상사가 정말이지 심심하면 발생할 것만 같다.
‘어쩌죠?’
얘기가 왜 이쪽으로 흐르나 싶었을 텐데…….
지금 이 상황과 너무 맞닿아 있다.
허튼짓하면 벌집 될 테니까.
실제로 몇몇은 의사를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다, 지금도.
그것도 총을 들고…….
‘어쩌긴. 일단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지.’
‘안 되면?’
‘내가 한둘 정도는 1초 안에 인질화할 수 있네.’
‘아하.’
그러나 내겐 리스턴이 있다.
‘다 죽여도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
‘아니, 그러진 맙시다. 현상 수배되면 좀…….’
‘돈으로 협상할 수는 있을 거야. 무엇보다 우리는 영국인이잖나? 이놈들 잘못으로 몰고 갈 수 있을 거야. 따지고 보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선 사람한테 뭐라고 하는 게 나쁜 놈들이지.’
‘그건 그런데…….’
그래, 21세기 현대 의학을 생각하면 그렇긴 하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난동 부리거나 의료진 폭행하는 거…….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그래도 환자나 보호자로 왔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강경 대응한다.
우리나라야 뭐…….
의료진이 알아서 피해야 된다는 게 정설이긴 하다.
심지어 환자 대표란 사람은 환자는 정 마음에 안 들면 의사를 때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도 있다.
‘아니, 그래도…….’
갑자기 화가 나는데, 그래도 의사가 그러면 안 되긴 한다.
눈앞에 다친 사람이 있으면 이것부터 봐야지.
그리고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이미 열과 성을 다해 보고 있다.
지이익.
일단 옷도 찢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보는 놈들도 있지만, 찢은 게 리스턴이고 그렇게 하면서 그의 우람한 근육을 내보여 주었기 때문에 웅성대는 소리 따위는 없었다.
아, 있긴 했다.
“와…….”
“대단한데…….”
마초 문화 강한 나라 아니랄까 봐 벌써 몇몇은 리스턴에게 반한 듯했다.
어쩌면 리스턴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 살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국에서도 대장이긴 한데…….
여기서는 아마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대단히 많을 거다.
“물!”
아무튼, 시야를 잘 확보했으니 나도 나서야 했다.
다행히 이번에 내가 데려온 녀석들은 베테랑들이라 벌써 환자 탁자 위에 눕히는 걸 보고 움직이고 있었더랬다.
그중에서도 발군은 역시나 조지프였다.
이 녀석이 리스턴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정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제일 또라이다.
실제로 덩치도 꽤 커서 이미 주방에서 물을 끓여다가 식혀 온 마당이었다.
중간에 제지가 없었을 것 같진 않지만 어떻게 했는지 해 왔다.
“소독!”
미친 사람처럼 소독을 외치고 있었을 테니…….
어찌 보면 비켜 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음…… 불!”
“네!”
이번엔 콜린이 나섰다.
불이야 뭐 우리도 들고 다니는 등잔이 있고, 여기도 있어서 확보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옷을 찢고, 물로 피를 대강이나마 씻고, 불을 댄 덕에 꽤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역시 야단났군.’
‘그러니까요.’
아까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두 눈 똑똑히 보게 되자 점점 더 커다란 절망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일단 맞은 부위가 영 좋지 못했다.
고추나 불알에 맞았다는 건 아니다.
이런 말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차라리 거기 맞았으면 살긴 살았을 거 같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될 수도 있긴 한데…….
‘배…… 그것도 비장 쪽…….’
‘비장…… 그거 핏덩이 아닌가?’
‘그렇죠.’
‘죽을 거 같은데?’
‘해 보는 데까진 해 봐야죠. 일단…….’
‘일단 절단할까?’
리스턴이 이게 대단한 사람은 맞다.
똑똑한 사람인 것도 맞고, 수술도 잘한다.
근데 당황하거나 하면 갑자기 절단무새가 된다.
평소에도 절단 좋아하긴 하는데 그 수준을 많이 넘어선달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속삭이는 리스턴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이 사람하고 다들 친하십니까?”
“친하죠.”
“기도해야 합니까?”
“주여!”
“고통 없이 보내 주소서!”
“아직 안 죽었어, 이 새끼들아…….”
그러자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그제야 한 가지 더 런던과의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과연 미국이 축복받은 땅은 맞는 게 이 양반들 팔뚝이 좀 두껍다.
근육이 있다 뭐 이런 얘기가 아니라, 잘 먹는단 얘기다.
‘그럼 내가 너 피 좀 빼도 되겠다?’
런던은…….
돈 받겠답시고 오는 빈민들 상태가 영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껏 매칭해 놓고 수혈을 못 했던 적도 있다.
사실 결정 전에 이 양반이 과연 수혈이 가능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건 기본인데, 워낙에 기본이다 보니 나조차 잊어서 그랬다.
아무튼, 여긴 그럴 일이 없겠다 싶었다.
“자, 그럼 다들 팔 걷고 준비하세요. 술 그만 드시고.”
“왜……?”
“아까 조선 주술사니 뭐니 했던 거 같은데.”
“초선? 그게 뭔데?”
“모르겠는데, 런던을 들었다 놨다 하고 칭키 놈들을 박살 냈다더구만.”
“같은 칭키…… 힉.”
해서 수혈할 준비를 지시했더니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직 날 모르는 놈들은 칭키청키 같은 말도 했는데, 뭐라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이, 이거 왜 이러는 거요!”
알다시피 수혈 담당은 블런델이다.
이전의 블런델이었다면 담당이 되는 동시에 도살자가 되었겠지만 이젠 아니다.
적어도 내 일행들은…….
제대로 이해를 하진 못했을지언정, 적어도 행동만은 똑바로 하고 있다.
그 똑바로 된 행동이라는 것이 좀 우악스럽긴 하다.
지금도 칼 들고 있다.
“피를 내야 됩니다.”
“이거 진짜 주술인가……? 이렇게 하면 삽니까? 저 친구?”
“주술은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 아니, 주술이 섞일 수도 있겠군.”
블런델은 간신히 말을 잇다가, 이제는 의식을 완전히 잃어 가고 있는 환자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것도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자, 그럼 준비해 주시고! 소독!”
“네!”
이제 진짜로 배를 열고 들어가야 하니까.
좌아악.
다행히 우리에겐 조지프가 있었다.
물이야 그 무게 때문에 늘 준비하고 있진 않지만, 소독액은 그 흔들리는 배를 2주가량 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켰다.
심지어 캔자스는 뱃길보다 험할 수도 있고, 높은 확률로 오래 걸릴 텐데, 그걸 견디기 위해 싸 놓은 많은 짐 안에도 소독액은 빼놓지 않고 챙겼다.
“끄으으…….”
소독약이 독하기도 하거니와 조지프의 손이 야물딱지기도 해서 의식을 잃어 가던 환자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한다는 뜻인데, 나쁜 건 아니었다.
혈압이 올라가지 않겠나?
지금처럼 출혈이 있는 상황에서는…….
혈압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앨프리드!”
“네!”
그렇게 소독이 마무리되어 가는 순간, 그러니까 칼 대기 직전쯤 앨프리드가 가스 밸브를 틀었다.
조지프가 소독에 집착한다면 앨프리드는 가스에 집착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약간…….
중독이 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착해서 걱정이긴 한데, 뭐가 되었건 마취가 필요할 때 딱딱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흐으…….”
환자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허벅동맥(대퇴동맥)을 짚고 있던 내 손가락을 통해 전달되던 맥박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케타민이 있으면 좋겠는데…….’
케타민이 요새 대한민국에서는 마약류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데…….
사실은 대단히 안전한 마취제 중 하나다.
우울증 치료제로도 쓰이고.
‘우울증도 고치긴 해야 하는데…….’
21세기도 살아가기 그리 쉬운 세상이 아니지만 19세기 런던은 도시 전체가 우울증 생산 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뭐…….
아직 내가 거기까지 신경 쓸 만큼 다른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니 마취제 얘기로 돌아가자.
‘혈압을 올려 주는 마취제…….’
다른 마취제들은 대개 혈압을 낮추는 데 반해 이 녀석은 오히려 혈압을 올려 준다.
외상을 주로 다루는 과에서는 이만한 약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깰 때 좀 악몽을 꾸거나 하긴 한데…….
인생이 악몽이 되거나 그냥 죽어 버리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지이익.
없는 거 찾는 거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일단 마취된 환자의 배를 갈랐다.
갈랐다고 해서 절단 식으로 호쾌하게 갈랐다는 건 아니다.
가운데 부위를 한 10cm가량 쨌다.
“평. 근데 갈비뼈 따라서 가르는 게 더 낫지 않나? 비장은 좌측에 치우쳐진 장기잖나.”
“응?”
“아, 조선말 실력 어떤가.”
“아니…….”
그렇게 째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보조는 귀신같이 하면서 물어 왔다.
한국말로였다.
“이렇게 하면 남들 모르게 비밀 대화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나.”
“그건 그런데…….”
“아무튼, 묻는 말에나 답해 주겠나.”
“그, 그러죠.”
그렇게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행들도 그랬다.
더군다나 이 말이 인디언들이 쓰는 말도 아니다 보니 주변인들의 시선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주술에 점점 힘이 실리는 느낌이었다.
“비장 장기 자체야 치우쳐져 있는 게 맞죠. 하지만 그게 어디 붙어 있죠?”
“붙어?”
“혈관이요.”
“혈관? 아…… 비장으로 가는 건 대동맥에서. 아하. 그렇군. 그래, 그렇구만? 근데 비장을 아예 떼 버릴 생각인가?”
리스턴은 좌측 복부에 난 상처를 보며 말했다.
구멍은 그리 크지 않았다.
총알 자국이라는 게 문제지만.
‘우습게 봤다가 조질 뻔했지…….’
총상은 무섭다.
일단 내가 외상외과긴 한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특성상 총상 볼 일보다는 아무래도 교통사고 볼 일이 많았다 보니 익숙지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직접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이 시기 총상이 오히려 21세기보다 더 좀 그런 것도 있다.
총알이 깨지더라고.
그것도 납으로 만든 게.
“네, 떼 버리려고요. 어설프게 꿰매려고 하다가는 진짜로 이 탁자 위에서 죽어요.”
“사람이 죽기 적당한 곳은 아닌 거 같긴 하군.”
“적어도 집에서 죽어야죠.”
“그 말도 달갑게 들릴 거 같진 않은데.”
“그래서 한국어로 하잖아요.”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