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3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38화(338/505)
338화 캔자스 [1]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중에서 제일 종합 능력치가 떨어지는 건 앨프리드다.
인성도 좋고, 돈도 많고, 무엇보다 내게 굉장히 잘해 주지만 그러한 것을 능력 평가하는 데 고려하는 건 전형적인 비리다.
‘그래서 두고 갈 수가 없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수술보다는 마취 위주로 가르치고 있다.
가스 밸브 돌리는 것만 가르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아니다.
그런 소리 하면 우선 마취과 학회에서…….
아, 여긴 마취과 전문의도 없지.
하여간에 앨프리드는 우리 중 혈압 재는 것도 가장 숙달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래 봐야 기기의 신뢰성이 떨어지다 보니 백 퍼센트 믿을 수만은 없긴 한데…….
그래도 제일 낫고, 블런델을 제외하면 수혈도 제일 잘한다.
혈관 잡는 건 그냥 제일 낫고.
사실상 19세기 제일의 마취과 의사라 할 수 있다.
‘그래…… 내가 진짜 대단하게 만들어 줬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앨프리드의 앞을 지나쳐 갔다.
내가 가타부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선별 과정이라는 것 정도는 다 눈치챈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19세기 의사들을 믿지 못하는 건 이제 우리 일행들도 마찬가지가 된 지 오래니까.
우리가 치료하면 살 사람이 다른 데서 치료하면 죽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잖아?
여기가 딱 그렇다.
“휴.”
앨프리드는 뭐가 되었건 멀리까지 가고 싶었던 건지 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사이 나는 조지프 앞으로 이동해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이놈은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의과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외과 의사가 되었을 거다.
세상을 바꾸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눈앞에 놓인 환자의 생명은 바꿀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소독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뭐 하냐?”
“아, 닦고 있어.”
“왜……?”
“혹시 모르니까.”
지금도 서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아까 수술하는 데 꺼내 썼던 기구들을 닦고 있다.
어차피 저래 봐야 또 끓는 물에 삶고 해야 할 텐데 저러는 걸 보고 있자면 집념이 아닌 광기라고 해도 좋을 거 같다.
광기라고 하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좋은 거다.
적어도 여기서는 무조건 좋다.
‘실제로 이놈 없으면…… 안 되지.’
그래, 조지프도 통과.
그렇게 마지막에 남게 된 것은 콜린과 존 스노였다.
이 두 놈은 소위 말하는 천재다.
정확히 말하자면 콜린은 외과의 천재고 존 스노는 내과형 천재다.
“제가 남겠습니다.”
둘 다 데리고 다니고 싶다, 솔직히.
앞에 둘은 필요해서 또 친분 때문에 데리고 다니고 싶다면, 이 둘은 성장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너 개는 알거든.
심지어 존 스노는 안 가르쳐 준 것도 알아낼 때가 있다.
당연히 삽질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거야 내가 정정해 주면 된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가 이미 교수가 된 다음에 들어와서 그런가 충성도나 존경심도 대단하거든.
“왜?”
근데 그런 녀석이 남겠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우물쭈물하는 게…….
단순히 환자만 보기 위함은 아닌 거 같다.
‘뭐지. 천재라 뭔가 알아냈나?’
천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걸 본다는 말이 있잖아.
‘에이, 뭐 천재도 사람인데 설마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천재를 몰라서 그런 거다.
대학 병원에만 가도 진짜 천재들이 있는데, 그보다 더한 천재들도 있지 않나.
오펜하이머 전기 같은 거만 봐도 그렇고 파인만을 봐도 그렇고, 아인슈타인, 괴델, 페르미 등등 시대를 울린 천재들을 보면 진짜 뭐가 다르긴 하다.
“아무래도 미국이…… 여기가 런던과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거의 시골과 도시의 차이가 있다.
아니,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르다.
생각해 보면 1600년대에 영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미국인이 된 건데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일인가 싶은데…….
뭐…… 환경이 달라지면 영향을 받게 마련 아닌가?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한민국과 북한도 같은 한민족이 맞나 싶을 만큼 달라졌잖아.
“그 차이가 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오…….”
“이동하면서 내내 그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온천을 보러 가면 이걸 확인할 시간은 없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것도 그렇지. 흐음…….”
역시 천재는 다르다.
새삼스럽게 질투심이 샘솟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내 제자 아닌가.
제자가 잘되면 그 공 중 일부는 내가 쓱 가져올 수도…… 아니.
‘뿌듯하지. 그냥.’
하하.
“제 생각에도 존 스노 학생이 남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속으로 영 좋지 못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민망해서 웃고 있으려니 밀러 커티스가 나섰다.
붉은 얼굴의 인디언은 그간 볼 수 없었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분노? 공포?
아무튼, 좋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왜요?”
“캔자스시티는…… 여기랑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요?”
“거긴 흑인 노예들이 많아요. 다른 남부 지역도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면 캔자스는 북부와 아주 붙어 있다는 거죠.”
“그래요?”
남부는 다 북부랑 붙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다소 무식해 보이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괜히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있겠나.
진짜 잘 아는 사안이 아니라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더 있어 보일 때가 많다는 걸 살다 보면 알게 되는 법이다.
“네. 그 정도가 아니라 캔자스시티의 북부는 공업화된 곳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쪽 농장에서 도망가는 노예들이 되게 많은데…… 그 때문에 오히려 더 혹독하게 대합니다.”
“혹독하게라…….”
때리나?
“채찍으로 때리는 것은 기본이고, 도망 노예를 발견하게 되면 그 즉시 나무에 매달아 놓고 때려 죽이거나 태워 죽이기도 합니다. 이거야 모든 대농장에서 하는 짓이지만…… 캔자스는 도망 노예가 많다 보니 마을 입구 또는 농장 입구마다 볼 수 있어요.”
“아…….”
나는 우리 중 제일 어린 존 스노를 돌아보았다.
이제 겨우 15살인 녀석은 말만 들어도 무서운지 고개를 내리깔았다.
따지고 보면 사실 나나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도 애인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 당사자들도 그랬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긴 했다.
“그럼 존을 남기고 가죠.”
“혼자 남기는 건 좀 그러니…… 이봐. 자네 둘이 남게.”
“네? 둘이나요?”
“괜찮아. 저기 계시는 분들이 누군지 아까 똑똑히 보지 않았나.”
“아, 아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우리는 용병 둘과 존 스노를 남겨 둔 채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야밤에 떠날 건 아니었기 때문에 잠은 여기서 자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초청이 와서 꽤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심지어 침구류도 대단히 편안했다.
누가 목화솜의 대륙 아니라고 할까 봐 여기저기에 솜을 밀어 넣어 놔서 그런가 푹신푹신했다.
너무 푹신해서 허리가 부러질 거 같은 느낌을 주는 게 단점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집주인 침대보다 내 침대가 더 푹신하기는 해서 그냥 참았다.
사실 옆으로 누워 자면 어지간히 편안하게 잘 수 있기도 했다.
‘역시 목화가…… 개사기긴 하구만…….’
런던에서도 이런 호사를 부려 보진 못했던 것 같다.
미개한 놈들이 바닥 난방을 안 하다 보니 겨울만 되면 ‘따뜻하다’란 느낌이 아예 없다.
런던이 서울보다야 따뜻한 편이지만 그래도 추울 땐 꽤 추운데 왜 온돌을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런던 왔을 때 온돌 구조를 물어봐서 그 사업을 해 볼까 했겠어.
‘그랬다간 교과서에 런던 자이언트 스모그의 원흉 김태평이라고 실리게 되겠지?’
100년 뒤에 생기면 별 상관 없겠는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무래도 내 살아생전에 보게 될 거 같다.
거기에 온돌 난방을 더한다?
다 죽자는 꼴이 되지 않을까?
“그럼 다녀오십쇼!”
“그래. 믿고 맡길게. 혹시 일 잘못되면 말 타고 도망쳐.”
“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존 스노를 두고 떠났다.
혹시 몰라서 제일 빠른 말 세필을 남겨 두고서였다.
지금이야 환자나 보호자나 감사하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관계라는 건 상황에 따라 툭툭 바뀔 수 있는 법이지 않나.
환자 죽거나 하면 튀어야 할 거다, 아마도.
나나 리스턴이 있다면 죽었어도 사람이 약해서 그랬다고 우길 수 있겠지만 존은 나이도 어리고 관록도 부족하다 보니 그래야 할 거다.
“그럼 우리 존 잘 부탁합니다.”
“네네.”
“이상한 일 생기거나 하면 아시죠?”
“아, 네! 며,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없어서, 도시 유력자 중 하나인 술집 겸 호텔 사장에게 신신당부했다.
말하면서 왕 협박할 때 썼던 입춘대길이라 쓰인 부적을 보여 주었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꼴을 보아하니 사달이 날 거 같으면 당장 총 들고 달려갈 거 같았다.
“좋네.”
“자네…… 저건 복을 빌어 주는 글자 아닌가.”
리스턴은 이제 한글도 모자라 한자도 잘 읽게 되었다.
“아…… 획이 틀렸군. 그럼 저주가 되나?”
심지어 나보다도 더 잘 아는 것 같다.
몰라서 틀렸다고 하면 좀 부끄러워질 거 같아서 나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죠. 원래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는 악마라는 말도 있잖아요.”
“멋들어진 말이긴 한데 들어 본 적은 없군.”
“조선말이니까요.”
“조선에 신과 악마랑 개념도 있나?”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 뭐.”
우리는 이제 서로 조선 얘기를 하면 뭔가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오래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미 대륙의 풍광은 참으로 볼만한 것이었다.
오하이오도 보기 좋았는데 캔자스 쪽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역들도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가면 어김없이 끝도 없어 보이는 밭이 펼쳐졌다.
“이제부터는…… 조심하셔야 됩니다. 뭐…… 흑인은 아니시니 당장 총부터 꺼내 들지는 않겠지만 저도 그렇고, 평신도 그렇고 시비 거는 놈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오늘 묵을 농장은 저희가 아는 곳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긴, 그렇죠. 그래도 이상한 꼴을 보게 될 수는 있습니다.”
“아…… 네. 그,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패트릭 아저씨네 직원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알 거 같았다.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거겠지.
나는 잘하는 거라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리스턴이었다.
“응? 날 왜 보나. 다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보니 다들 그를 보고 있었다.
이 중세 기사는 쓸데없이 또 정의감이 넘치지 않나.
정의감만 있으면 다행인데 그 정의를 실현할 힘도 있었다.
듣자 하니 대농장은 영주와 같아서 나름 민병대도 있다고 하지만…….
글쎄, 진짜 군대도 아닌 민병대가 성난 리스턴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안 될 거 같다.
“형, 사고 치지 마요.”
“하하, 내가 어린앤가. 야수나 잡게 해 주게.”
“그런 말을 하니까 불안한 거지.”
“아냐, 아냐. 그럴 필요 없네.”
“칼은 왜 자꾸 만져요.”
“절단 못 한 지 좀 오래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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