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화(34/505)
34화 수술에 써 보자! [2]
“으, 으으.”
환자는, 아까 분명히 어느 정도 설득이 되었던 환자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괜히 닦았나 싶을 정도로 번뜩이는 저 칼을 보라.
진짜 로마 검투사나 이름난 기사 같은 모양새였다.
당장 저 칼에 맞을 일 없는 나도 좀 무서운데, 당장 맞아야 하는 환자는…….
“으아아아!”
“평.”
도망가고 싶을 터였다.
허나 별 소용이 없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지금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죄다 베테랑 조수들이지 않나.
실제로 수술 앞두고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다더니 대비가 딱 되어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저렇게까지 단단하게 결박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단단히 붙잡힌 상황이었다.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지금처럼 비명이나 지르는 일뿐이었다.
“네!”
그게 꼭 보기 좋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고통은 신체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잘 모르긴 해도, 팔다리 잘린 사람 중에 PTSD를 겪는 중인 사람도 꽤 있을 터였다.
이 환자도 그 비슷한 고통을 겪을 이유는 없었다.
해서 나는 일단 가스통을 열고, 환자의 얼굴에 들이댔다.
“으으으.”
환자는 꼭 붙잡혀선 영문도 모른 채 가스를 들이켰다.
처음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으으응?”
슬슬 안정이 찾아오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게 딱 환자한테만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야 준비가 딱 되어 있으니 소매로 코와 입을 처막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미리 준비를 안 해 놨다는 게 문제였다.
“아.”
이건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선배, 선배!”
특히 환자의 머리통을 고정하고 있던 선배가 치명상을 입었다.
“하하하하!”
그 결과 꽤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후원자가 되어 줄 사람이나 병원 측 사람들이 모여든 광장에서 깔깔거리며 뛰어 내려가게 되었다.
‘조졌네.’
이미지 실추라는 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뛰어 내려간 놈은 내려간 놈이고.
우리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해서, 나는 선배 대신 정신을 잃은 환자의 머리 쪽으로 달려갔다.
“평. 자네는 보조하게.”
로버트 리스턴이 날 만류했음에도 그랬다.
칼을 들고 있어서 어지간하면 들어주고 싶었지만…….
‘안 돼. 저건 못 한다.’
난 전에 봤단 말이지.
저 사람이 어떻게 사람 다리를 자르는지.
겁나는 건 아니었다.
자르는 거라면 나도 많이 봤다.
사지는 아니더라도 내부 장기, 장 쪽은 직접 자르기도 했고.
하지만 저런 방식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내가 잘려.’
번뜩이는 칼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 순간 서걱 뼈가 잘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거의 기절 직전이어서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끝나는 데까지 몇 초 안 걸렸던 것 같았다.
그 말은 곧 내가 실수라도 해서 손을 늦게 빼면 손가락이 다 잘린다는 얘기였다.
사실 환자가 마취된 이상 그렇게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겠지만, 습관은 무서운 법이었다.
“저는 일단 환자 마취를 보겠습니다. 제가 제안한 거니 책임을 져야겠죠.”
저 봐 저거.
칼 들고 서 있는 거.
누가 봐도 최대한 힘줘서 후려칠 기세잖아.
잡고 있다가 손 늦게 빼면 바로 뒈진다고.
꿀꺽.
그 숙련된 조수들조차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게다가 방금 내가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호흡 정지가 올 수 있다고 했지. 확실히 호흡 억제는 있을 수 있어. 그게 아니더라도…… 심혈관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난 웃음 가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일단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게 불법이기도 했고, 합법이라 해도 그런 신나는 파티에 날 불러 줄 사람은 없었거든.
파티나 불려 다닐 만큼 한가하진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공부하느라 친구를 못 만들었다.
‘아니, 아니지. 그런 이유가 아니라.’
잠깐 딴 데로 얘기가 샜는데, 하여간 아산화질소의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좋다는 프로포폴도 호흡 억제 기전이 있어서 로컬에서는 사람이 죽지 않던가.
여기서?
여기는 뭐 뻑하면 죽어 나갈 터였다.
“그래? 그러지, 그럼. 시간이 없으니…… 자, 그럼 간다!”
“자, 잠깐!”
내게는 다행히도 로버트 박사님은 무척 절단을 서둘렀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딱 봐도 환자는 안정을 취하고 있었지만 혹 모를 일이지 않나.
오늘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날이었고, 누구보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박사의 어깨를 누르고 있을 게 뻔했다.
그 부담감을 조금만 더 이용하기로 했다.
“뭔가?”
“소, 손이요. 이거 들고 왔습니다.”
나는 대야 같은 곳에 퍼 온 염화질소를 들이댔다.
“윽.”
역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로버트 박사는 놀랍게도 손을 집어넣었다.
문질러 닦는 등의 성의를 보이진 않았다.
허나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 그거다. 세계 최초의 시도에 예외를 두고 싶진 않겠지.’
내 바람과 더해 광장에 있던 이들의 반응도 썩 괜찮았다.
원래 인간들이란 허례허식에 약한 이들 아니던가.
딱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가스가 새어 나오고 환자가 기절하듯 잠들자마자, 다들 조용해진 참이었다.
물론 선배가 웃으며 뛰어가는 바람에 잠시 웃음이 일긴 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거기에 더해 이상한 액체에 손을 담그자, 과학과 종교 그리고 미신 등이 한데 섞여 괴이한 사회상을 이루고 있던 19세기 관중들은 숨까지 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쇼맨십을 키워야 했던 이 시대 외과 의사의 대표 주자 로버트에게 긍정적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자, 니들도 닦아라!”
“네, 네.”
제자들이야 까라면 까는 존재 아닌가.
이 시기 스승이 그런 존재이기도 했고, 로버트는 딱히 제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통하는 얼굴과 몸집을 갖춘 사람이었다.
해서 일사불란하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손을 담갔다.
저걸 좀 더 빡빡 닦고, 손톱 밑도 좀 닦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일단은 조용히 있었다.
저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지 않나.
이 새끼들 손은커녕 기구도 안 닦고 맨정신의 사람 다리나 자르던 야만인들이었는데, 이제는 나름 마취도 하고 손도 닦고 기구도 닦았다.
붕.
하여간 로버트 박사님은 부담감까지 더해 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보다도 칼이 훨씬 빨랐다.
거의 뭐 은빛 광선이라도 스쳐 지나간 느낌이었다.
서걱.
그와 동시에 살가죽이 후루룩 잘려 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땐 톱질이 한창이었다.
툭.
아니, 다리가 잘려 나갔다.
‘와…….’
이건 진짜 언제 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절단만 딱 놓고 보면 21세기 정형외과에서도 탑을 달리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해부학적인 고려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와아아아아!”
“와아!”
“로버트 리스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광장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뭔 소린가 싶어서 둘러보니, 다들 상기된 얼굴이었다.
“이건 기적이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광장의 관중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수술에 참여했던 이들의 반응이 더 극적이었다.
특히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들고 있던 칼을 내팽개친 채, 평소에 그렇게 아끼던 칼을 무려 바닥에 집어 던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나님…… 주여…….”
숫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 같아서 살짝 무서웠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내게는 마취가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지 않을까?
비명이 사라진 수술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여간 나도 눈을 감고 무릎을 꿇었다.
‘괜히 어? 마녀로 몰리면 뒈진다고.’
가뜩이나 얼굴도 노란데, 튀는 행동 해서 좋을 게 뭐 있나.
사특한 마술이라도 썼단 얘기를 들었다간 진짜로 죽음이었다.
이 시기 런던은 과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제일 비과학적인 일도 많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조심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주님!”
해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목소리로 기도했다.
당연하게도 중앙에 있던 로버트 리스턴 박사도 내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곤 내게 찾아와서.
“평, 일어나게.”
나를 한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와…….’
딱히 힘을 준 것도 없는데 일어날 수 있다니.
이것이 무중력인가.
인간의 힘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으려니, 그런 내 얼굴을 보며 로버트 박사님이 흐뭇하게 웃었다.
뭔가 영적인 오해를 한 거 같았지만, 굳이 수정은 하지 않았다.
“여러분! 이 젊은 친구를 보십시오!”
거의 무슨 교회 부흥회를 방불케 하는 광장 속에서 로버트 박사님은 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제야 모두의 눈이 내게로 쏠렸다.
저 노란 놈은 뭔가 싶은 얼굴들이었다.
검은 머리에 노란 얼굴에 검은 눈동자.
이 새끼들 중에 분명 얼굴만 보고 사탄의 자식 떠올리는 놈도 있을 거다.
“주님의 충실한 종이요, 기독교인인 평이라 합니다. 오늘 마취에 이 친구의 아이디어가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오.
로버트 박사님도 그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말을 해 준 것 같은데…… 확실히 생긴 것에 비하면 섬세한 면이 있었다.
뒷말도 당연히 감동이었다.
‘와, 나를 띄워 주네?’
나는 그냥 아이디어 주머니로 들고 다녀도 감지덕지라 여겼는데.
“와아아아!”
“평!”
“평!”
광장에 이제 내 이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럴 일인가 싶었다.
난 그냥 니들이 놀 때 쓰던 가스 여기에 쓴 거뿐인데…….
“하하.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죠.”
물론 그따위 말을 하진 않았다.
생각과 다른 말을 입 밖에 내는 것.
그게 내 특기이지 않은가.
교수들한테 아부할 때마다 하도 많이 연습해 봐서 그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혀가 알아서 돌아갔다.
“게다가 로버트 박사님께서 실험을 해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이봐, 이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손바닥 비비고 있잖아.
“하하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물론 세상을 얼마간 살아 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아부에는 적당히라는 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었다.
특히 교수들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점점 감을 잃어서 무슨 말을 해도 다 사실로 받아들였다.
아, 당연히 좋은 말만.
나쁜 말은 암만 제대로 말해도 안 들었다.
하여간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지가 한 것이라고는 멀쩡한 생니 뽑은 거밖에 없는 주제에, 무슨 노벨의학상이라도 탄 사람처럼 뿌듯해했다.
“아뇨,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아니면 대체 누가 이런 진취적인 일을 해내겠습니까!”
“하하하하하!”
“이게 다 교수님의 홍복입니다!”
“꺄르륵!”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더욱 아부를 했고, 그날 우리는 말만 안 정했을 뿐 의형제가 되었다.
“언제든 어려움이 있으면 나를 불러라. 내가 도울 테니까.”
“네, 교수님!”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불러. 나 아직 30대야.”
“네?”
“응?”
살짝 어색해질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하여간…….
런던제일검, 로버트 리스턴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