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0화(340/505)
340화 캔자스 [3]
사람은 언제나 솔직해야겠지.
대농장 투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은 제거해도 되겠다.
‘생각해 보면 언제 이런 데를 와 보겠냐…….’
우선 놀라웠던 건 강변에 위치한 선착장이었다.
그냥 나룻배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진짜 꽤 커다란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어쩐지 마을? 아니, 농장으로 드나들 수 있는 육로의 정비가 좀 허접하다 싶었다.
대농장주들은 말마따나 진짜 갑부들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우물 안의 개구리란 생각도 잠시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착장을 보고 나니 역시는 역시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은 벌써 대대로 농장을 경영하고 계시거든요. 다른 농장엔 이런 선착장이 없는데도 많아요.”
“아…… 그렇군요.”
“이제는 뭐 돈 주고는 못 사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노예이면서도 나름의 주인 의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째 소개하는 게 꽤나 성의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도 많아 보였다.
괜히 대농장이 아니다 보니 어디 하나 가면 다른 한 곳 가는 데 한참 걸렸는데, 풍광이라는 것도 죄 작물만 있다 보니 나로서는 차이를 알기가 어려웠다.
지루한 이동 시간 동안 할 게 없다는 건데, 그렇다 보니 차라리 질문이라도 많이 듣는 게 낫기는 했다.
“정말 귀족이세요? 주인님이 없어요?”
그 질문이라는 게 이따위 것이라는 건 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쩐지 <장고 : 분노의 추적자>가 생각나는 분이로구만.’
나는 고개를 티 나지 않게 내젓고는 답했다.
“없어요. 귀족이 된 건 얼마 전이고, 그냥 자유민이에요.”
“와…… 그러고 보니 옷도 좋아 보여요.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의사입니다.”
“의사……요?”
“네, 왜요?”
“그…… 보통 사람 죽이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렇게 대우해 줄 리가 없는데.”
19세기 미국은 21세기 미국과는 그냥 다른 나라라고 보면 된다.
뭐 어떻게 독립 전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것도 사실 대영제국이 전심전력을 다 했으면 안 되었을 거다.
애초에 미닛맨, 그러니까 민병대로 이루어진 군대가 어찌 레드 코트를 이긴단 말인가.
나와 리스턴에게 군대 2천만 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정복할 자신이…….
아니, 아무튼.
명백한 2류 열강이란 말이다.
1류 열강 의사들도 엉망인 시대에 여긴 뭐 오죽하겠나.
나는 십분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살리니까요.”
“정말요?”
“네, 왜요?”
“아니…… 음. 아닙니다.”
그러곤 어필을 좀 했는데, 어쩐지 반응이 좀 석연찮다.
캐묻고 싶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대농장 중앙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까와는 달리 대저택 뒤쪽에 있다는 점인데, 말이 그렇단 것이지 그 뒤로는 거의 마을 하나가 들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저택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내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걸 베티나의 설명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거다.
“저기가 훈연실, 그 옆이 도살장이에요. 옆에 있는 건 별채 주방이고요.”
“아…… 뭔가 체계적이네요.”
“돈 버는 곳이니까요. 저기가 헛간이고, 옆이 마구간. 아까 당신들이 몰고 온 말들 지금 다 저기 있을 거예요. 작업장이랑, 담배 가공실도 있고요.”
“히야…….”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으려니 베티나가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그쪽에서도 연기가 꽤 여러 개가 올라가고 있었다.
“저긴 우리 같은 노예……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이 있어요.”
“아.”
“가 보는 건 안 됩니다.”
“네.”
가 보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뭔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가서 구경하는 건 좀 악랄한 거 같았다.
“저긴 교회예요. 일요일에는 덕분에 일을 쉬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요.”
“그건 다행이네요.”
“옆으로는…….”
지금 말한 것만 해도 사람이 많았는데, 그뿐 아니라 목수, 통 제조업자, 대장장이, 무두장이, 가죽 기술자. 신발 제조업자, 방적공, 방직공, 주조가들도 있다고 했다.
진짜 하나의 꽤 커다란 마을이 있다, 이 말이었다.
“저건 뭐예요?”
“아…….”
그 중간엔 광장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텅 빈 공터가 있었다.
동그란 땅을 둘러싸고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뭔가 하는 곳인 모양인데, 그냥 봐서는 대체 뭔 용도로 만들어진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물었더니만 베티나의 얼굴이 좀 일그러졌다.
‘좋지 못한 곳인가.’
생각해 보니까 저기서 노예를 다 모아 놓고 때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일벌백계의 공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저기서 운동 경기를 해요.”
“경기? 아…… 뭔 경기를 해요?”
“보통 잡기나 복싱이나 레슬링이요.”
“아…… 농장 주인이 체격이 좋긴 하던데.”
이 말을 하자 베티나의 얼굴에 뭔 소리냐는 기색이 드러났다.
왜 그런고 하니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거예요. 백인들은 주변에 서서 맥주 먹으면서 구경하죠.”
“아…….”
일종의 티브이였다, 저 공간은.
유희를 위한.
하긴, 19세기가 참 심심한 곳이긴 하다.
나처럼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닌데 딱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면 살아가면서 따분함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적일 터였다.
카드놀이 정도가 제일가는 유희였으니 뭐 말 다 한 셈이다.
컴퓨터까지 갈 것도 없이 손안에 휴대폰만 봐도 세상 모든 정보와 콘텐츠를 죄다 즐길 수 있었던 몸으로서 일견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런던에 스포츠 경기가 있던가?’
드문드문하는 거 같긴 한데…….
놀랍게도 이 훌리건의 나라에 아직도 제대로 된 축구 협회조차 없다.
물론 우리가 아는 축구와 비슷한 놀이를 여기저기서 각자의 룰에 따라 하긴 하는데, 아직까지는 뭐…….
‘TV가 없으니 스타가 탄생하기는 어렵긴 하겠지.’
보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대라는 거다.
하지만…….
흐음.
이것도 어찌저찌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머릿속으로 추후 해 볼 사업 목록에 스포츠 사업을 추가한 후, 가운데로 난 널찍한 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왔다.
오는 길에 양옆에 선 백인과 그의 하인들로 보이는 흑인들의 따가운 눈총 세례를 받았지만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투어를 떠났건 간에 결국, 여기서 다 모일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리스턴의 옆에 있는 날 함부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것 참…… 진짜 저주 내리시진 마시죠.”
하지만 무례해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은 끊임이 없었다.
해서 조셉, 그러니까 뱃사람은 내게 와서 쩔쩔맸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저 에드워드 4세조차 내 저주를 피하지 못하지 않았나.
여기 와서는 배에서 악귀도 빼냈고.
“고민 중입니다.”
“아이고…… 중요한 거래처입니다.”
“알겠어요. 생각해 보죠.”
해서 꾸준히 읍소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저택 내에서의 대접은 썩 괜찮았다.
마주치는 하인들이 죄 흑인들이었는데 다들 친절했다.
무엇보다 저택이 앨프리드네나 켄싱턴에 새로 마련한 우리 병원보다도 더 좋았다.
안에 음악 감상실도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스피커 따위가 있는 시절이 아니지 않나.
무려 흑인 노예로 구성된 악단이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 있단 말이었다.
“어떻게, 잘 구경했소?”
“네, 덕분에.”
우리는 저택을 구경하고, 옷을 갈아입고 난 후에 자연스레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농장주의 말에 리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은 입맛에 맞으시고?”
“네, 아주 좋군요.”
아닌 게 아니라 소고기가 아주 맛있다.
방목을 해서 그런가 지방은 적은데, 그래도 육질이 좋다고 해야 할까?
가둬서 키우는 한우 맛을 보여 주면 자지러지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항생제가 필요하기에 기각이다.
1년도 못 되어서 비싼 소 죄다 폐사하고 망할 게 뻔하다.
“그쪽은?”
“아, 저요. 저도 좋습니다.”
“닭도 있는데 그것도 가져다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먹고 있다 보니 웬일로 내게 닭 얘기를 한다.
닭…….
다른 말로 하면 치킨…….
이런 말이 있지 않나.
한국인은 치킨심으로 산다.
“기름에 튀긴 거라면 너무 좋을 거 같군요.”
“하하. 그럴 줄 알았지. 이봐, 갖다줘. 바로 튀겨서.”
“네, 주인님.”
그래서 청을 했더니 어째 반응이 좀 묘하다.
특히 주인 쪽이 그런데, ‘네까짓 게 그럴 줄 알았지’라는 게 느껴진다.
뭔지 모르겠다만…….
“오.”
옥수수가 많이 나는 곳이라 그런가 옥수수유에 튀긴 모양인데, 솔직히 진짜 맛있었다.
“하하, 맛있나?”
“네, 맛있는데요?”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농장 주인은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면서 아주 좋아했다.
보통 사람이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X같았다.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해서 옆에 있던 리스턴에게 물었더니,
“자네만 처먹지 말고 나도 좀 주게.”
이딴 말이나 돌아왔다.
하긴, 미국 놈이 뭔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나.
그나마 알 만한 사람은 조셉이나 밀러 정도일 텐데, 아쉽게도 이 자리엔 초대받지 못했다.
나머지는 다 영국인들이다 보니 역시나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 조지프는 리스턴처럼 입맛이나 다시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네. 왜 그런 거죠?”
해서 다 끝나고 돌아와 조셉에세 물었더니, 하 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노예들에게 닭을 줍니다. 우린 닭을 잘 먹지 않아요. 특히 다리나 날개는요.”
병신들인가 싶었다.
다리나 날개가 진짠데, 그걸 왜 안 먹어?
“심지어 튀기는 건…… 흠…… 근데 진짜 좋아하십니까?”
“네. 한번 드셔 봐요. 엄청 맛있어요.”
“아니, 저는 됐습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날 노예 취급했다, 이 말이죠?”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군요. 거참…… 사람이…… 다 좋은데 너무 유색 인종을 싫어해서요. 감히 대영제국의 귀족에게…….”
“그랬다, 이거지.”
안 먹는 건 안 먹는 거고…….
맛있었던 것도 맛있었던 거고.
그 의도는 기분이 참 나빴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군그래.”
“그러니까요.”
다행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일행은 다 한마음 한뜻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의 우정은 인종을 뛰어넘은 지 오래라 그랬다.
“뭐가 필요한가. 닭의 피? 말만 하게. 태자귀라도 만들어 줄 테니.”
리스턴, 이 인간은 이제 나조차 모르겠는 조선말을 할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태자귀…… 뭔지 모르겠지만 섬뜩한데요?”
“그렇긴 하네. 하지만 저주로는 제격이지.”
“그 정도는 필요 없어요.”
“그럼……?”
“진료를 보죠.”
“진료를……? 그건 좋은 일이잖아.”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많이 아픈 사람은 진단을 받을 때, 선고받은 얼굴이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19세기는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많지 않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