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1화(341/505)
341화 조선 주술사 [1]
자랑은 아니지만…….
아니, 솔직히 말해야겠지.
자랑이다.
그것도 대놓고 자랑.
‘나만큼 관찰력 좋고 눈썰미 좋은 사람도 얼마 없지.’
재수 없게 들릴 텐데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그 덕에 내 실력은 고점은 그냥 그럴 수 있겠지만…….
상당히 러닝 커브가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중증외상센터를 택한 것이고.
또 여기 와서도 내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수술을 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말을 하다 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랑인데, 뭐 어쩌겠나.
뭔 얘기 하다가 이렇게…….
‘아.’
그래, 그 농장주.
이름이 빌리 크래시라고 했었지.
이름이야 뭐 그냥 넘어가도 될 거 같다.
중요한 건 그의 외양이다.
‘일단 살집이 꽤 있었지…….’
미국인들, 그러니까 앵글로·색슨족들이 BMI에 비해 대사 증후군이 덜 발생하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췌장 크기나 기능 같은 것들도 사실 아시안들에 비해 더 낫기도 하고.
똑같은 걸 먹어도 당뇨에 잘 안 걸린다, 이 말인데…….
그래 봤자 19세기다.
잘 안 걸린다고 해도 막살면 걸리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딱히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다.
아니,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그 관리라는 것들이 대개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거기에 골초. 무엇보다 손끝…….’
놀랍게도 손가락 모양을 통해 진단 내릴 수 있는 질환이 있다.
그렇다고 무슨 뭐 손톱의 반월판으로 당뇨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유사 과학이다.
실제로 반월판이 태어날 때부터 없는 사람도 있거든.
하지만 손가락은 나름 신빙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곤봉지, 즉 손가락 끝이 곤봉처럼 뭉툭해지는…….
손톱 표면과 손톱 바탕 부분이 이루는 각이 180도 이상 되는 현상을 보이는 손가락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곤봉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참 생김새가 다양해서, 원래 그렇게 생긴 사람도 있긴 하거든.
“음?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이거 다 걸으면서 생각한 거다.
밖에 나가서 걸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아니다.
집 안에서 걸었다.
런던에도, 심지어 켄싱턴에도 이만한 집은 거의 없다.
물론 교외로 나가 성이나 대저택으로 가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는 하는데…….
‘이 정도면 뭐 거의 공작님들 집이나 마찬가지네.’
내부를 꾸민 방식이나 가구나 벽지 등은 아무래도 좀 촌스럽긴 하다.
아마 들인 돈 자체도 적을 것이고, 돈을 많이 들였다 한들 런던이 아닌 미국 촌구석에서 살 수 있는 사치품은 한계가 명확할 거다.
그렇다 해도 식당, 거실, 서재, 음악실에 접대실 그리고 수많은 침실과 가운데 있는 로비 등은 이곳이 대저택이라 불리는 데에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 농장주님을 뵐 수 있을까 해서요.”
“아…… 무슨 일로요?”
그렇게 한참을 걸어 마주한 사람은 이 저택 고용인 중에서는 유일한 백인인 캘빈이다.
집사장이라고 해야 할 텐데, 아까 날 안내해 주었던 베티나의 말에 의하면 하인들만큼은 농장주보다도 이 캘빈을 어려워한다고 들었다.
하긴 인상이 그리 좋진 않더라고.
지금도 그렇고.
“자네가 들어서 뭐 하게?”
자꾸 까먹나 본데, 나나 리스턴이나 대영제국의 당당한 귀족이다.
물론 미국은 더 이상 영국에 속한 국가가 아니고, 독립 전쟁 이후로도 한 판 더 붙는 바람에 이제 와 속국이니 뭐니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 프랑스에서조차 영국 귀족이라 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프랑스 귀족들의 체면도 깎여 나갈 테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놈은 사실 하잘것없는 놈이다.
“제가 들어야 설명을 드리죠. 리스턴 경만 만나시는 것이 좋습니다.”
“평은 왜 안 된다는 것이지?”
“쿨리…….”
“뭐라 했나?”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이게. 어, 어어. 어어어업.”
그렇다고 해서 지금 리스턴이 한 것처럼 목을 졸라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도 기절할 만큼 제대로.
“나는 멱살만 잡았네.”
리스턴은 끽끽거리면서 쓰러진 캘빈을 보면서 마치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다는 듯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를 돌아보는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나 블런델 그리고 제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뱃사람이나 밀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주변에 있던 흑인 하인들 또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어.”
“주, 주인님!”
두 명이 혼비백산하며 튀기 시작했다.
그냥 두면 뭔가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 거 같았다.
현대 사회라면야 설령 착오가 생겨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들 결국엔 평화적으로 해결될 거란 굳은 믿음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영국도 그런데 미국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와서 보니까 그냥 야만인들이야, 이 새끼들.
“합!”
일단 하나는 리스턴이 잡았다.
경공이 좀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단거리 주파 시에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빨라서 가능한 일이다.
“억.”
그렇게 뒷덜미가 잡히는 동시에 하인 하나가 축 늘어졌다.
너무 세게 잡아서일 거다.
어쩌면 부러졌을 수도 있다.
“힉.”
그걸 본 다른 흑인 하인이 딸꾹질을 하더니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달리긴 했지만 달리기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해서 품에 잡히는 아무거나 잡아서 던졌다.
하필이면 펜이어서 놓치겠다 싶었는데,
“억.”
“와…….”
그게 또 도망가던 사람의 발뒤꿈치에 팍 박혀 버렸다.
동시에 훌러덩 넘어졌고.
“날아가는 방향이 이상했는데…… 주술인가?”
“아뇨. 그럴 리가요. 우연입니다.”
“그래? 아까 불탄 시체 봐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아니라니까. 아무튼, 이 뒤에 있는 모양인데요.”
“그래, 들어가지.”
하여간, 우리는 세 명을 대충 처리하고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원래 열려고 해 둔 상태가 아니었는지 요란한 소리가 났는데, 정작 문을 연 리스턴은 딱히 힘준 기억도 없는 모양이었다.
뭐야? 이거? 이런 얼굴이었다.
당연히 남들에게도, 특히 집주인에게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뭐, 뭡니까?”
늘 당당하던, 실제로 당당할 만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빌리 크래시가 대단히 놀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손을 부리나케 움직이는 것이 총을 찾는 모양이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뭐 하나?”
“으…….”
덩치가 꽤 커다랬지만 덩치만 크면 뭐 하나.
무공을 익혔어야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리스턴 형님에게 손을 잡힌 그는 그대로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아, 진료하는 겁니다. 걱정 마세요.”
“지, 진료라고! 이게 뭔…….”
“일단 가만히 있어. 좀 봐야 되니까.”
그렇게 힘에 의해 굴복한 빌리를 나는 위에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말만 들으면 좀 느와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나는 의사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 뭐가 보이나?”
리스턴은 빌리 대신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닥터 평이 아니라 조선 주술사 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하긴, 그럴 만하긴 했다.
-뭐? 병이 있을 거라고?
-네, 그렇다니까요?
-어찌 알았나.
-손을 보면 알죠.
-으음……? 맥을 짚었나? 조선에서는 그런 식으로 보는 의사도 있다고 들었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으음.
방에서 나오기 전에 끝난 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보면 안다는 말이…….
이게 참 그럴싸하기도 하고 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얼굴만 보고 진단할 수 있었으면 뭐 하러 병원에서 CT를 사고 MRI를 사고 하겠나.
“역시.”
“역시?”
“응?”
나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 환자의 손가락부터 살폈다.
확실히 손가락 끝이 곤봉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숨길 수 없는 담배 쩐 내도 마구 풍겨 왔다.
이 시기 담배는 놀랍게도 필터도 없다 보니 더더욱 이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담배 피우는 사람 입안을 잘 살펴보면 재가 묻어서 거뭇거뭇할 지경이다.
아니, 재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색이 변했다고나 할까?
‘그게 썩은 거랑 뒤섞여서 진짜…….’
보고 있다 보면 왜 런던의 치과 의사들이 무작정 이를 뽑았는지 이해가 가긴 한다.
방법이 없어 보이거든.
아무튼, 이놈의 입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내가 봤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심하다.
‘하긴, 담배 농장 주인이 금연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긴 하지.’
이 시기에는 오히려 담배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흐음. 청진기.”
“어, 네.”
내 말에 콜린이 청진기를 건넸다.
충분히 당황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바로바로 움직이는 게 역시 내가 점찍은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다 훈련이지.’
외과 의사는 당황하면 안 된다.
뭐 내과 의사도 침착하면 더 좋겠지만, 외과 의사는 수술 도중에 당황해 버리면 사람이 죽지 않나.
안 죽더라도 원래보다 더 결과가 나빠질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아진다.
그런데 스승이 이렇게 어? 갑자기 세 명을 때려 눕히고 들어가서 갑작스러운 진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준다면 아무래도 당황할 일이 없지 않겠나?
“흐음…….”
아무튼, 나는 그렇게 건네받은 청진기로 환자의 폐 소리를 들었다.
끄륵끄륵한다.
폐렴은 아닐 거다.
그냥 폐가 망가진 것이지.
‘암도 있으려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뭔 놈의 의사가 이렇게 말을 하나 싶겠지만 진짜 그렇다.
알 수가 없잖아?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전문가다.
아무튼, 나는 내 예상이 대강 맞았단 생각에 슬며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갈무리하고 아까 생각했던 시나리오대로 입을 열었다.
“음…….”
“응?”
이제부터 나는 의사가 아닌 주술사다.
에드워드 4세 앞에서 지었던 그 표정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 표정을 본 리스턴이 어랏 했지만, 딱히 말을 더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혹 저주에 섞일까 두려워서일 거다.
태자귀니 뭐니 하길래 슬쩍 물어봤더니 뭔가 민속학스러운 것들을 많이 알고 있더라고.
“1년…… 남았나.”
“네? 1년? 아니, 이 사람이 재수 없게.”
“재수는 내가 없지 이것아!”
“응?”
아무튼, 나는 1년이라고 외쳤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무당 흉내를 내면서였다.
“살을 맞았어. 살을!”
하늘을 가리키면서 살 운운하기 시작하니까 처음엔 기분 나빠하던 빌리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냥 얼떨떨해하고 있다.
“멍청한 놈 살이 뭔지 모르니까 이렇게 태평하지.”
“어……?”
“네놈이 지은 죄가 하늘에 닿았다, 이 말이다! 주님께서 그냥 두고 보실 줄 알았더냐!”
말하다 보니까 너무 좀 무속신앙스러워서 주님을 살짝 섞었다.
이러다 혹 벼락은 내가 맞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기왕 시작한 거 어쩌겠나.
끝을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