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2)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2화(342/505)
342화 조선 주술사 [2]
“어디 보자…… 주님…….”
나는 무속인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접었다가 폈다.
물론 입으로는 주님을 찾았다.
말 그대로 동서양의 대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아니,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다들 경원시하는 게 느껴진다.
특히 요새 조선, 그중에서도 주술 같은 것에 심취해 있는 리스턴은 아예 뒤로 물러났다.
사실 빌리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물러났으니 빌리가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허나 빌리 또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서였다.
‘벌써부터 이러는 건 좀 이른데.’
아무것도 안 했다, 나는.
그냥 뭐 좀 흉내나 낸 거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옳거니. 주님, 역시 그렇군요.”
나는 중간중간 응응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빌리의 서랍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 담배가 있군요!”
“히익.”
그러자 빌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뱃잎 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데다가 사실 아까 들어올 때 담배 넣는 것도 봐서 한 말이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신기가 느껴질 수밖에 없긴 할 거다.
“허어.”
리스턴도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나머지?
걔들은 이미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서 있다.
사실 빌리도 그러고 싶을 텐데, 의자와 책상 때문에 여전히 내 앞에 있는 것뿐이다.
“저 담배로…… 그래. 네 이놈! 최근에 기침이 자꾸 나렷다?”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주님께서 알려…….
아니, 딱 보면 안다.
청진기까지 가져다 댔는데 모르면 그게 의사인가?
게다가 이 사람은 술과 담배를 엄청나게 즐기는 사람이다.
심지어 증상이 생긴다고 멈출 시대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침에 담배가 좋다는 속설이 퍼져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병력은 안 봐도 뻔하다, 이 말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고?”
“허어…….”
“숨소리도 밤만 되면 쌕쌕거릴 거다.”
“으…… 어찌…….”
만성폐쇄성폐질환.
아주 무서운 병이다.
담배나 안 좋은 공기 등이 원인이 되는데, 이놈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런던에서 온 내가 할 소린가 싶긴 한데…….’
돌아가면 마스크라도 낄까?
갑자기 환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보니 무섭다.
이거…… COPD라고 하는데 진짜 답 없는 병이거든.
아무튼, 지금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나는 딴소리 하는 대신 빌리를 겁주는 데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아침만 되면 가래가 나올 것이야.”
“으…….”
“감기도 최근에 좀 늘었을걸?”
“어…….”
“간혹 손끝이 파래지기도 할 것이고?”
“아으…….”
더 하려면 솔직히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더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미 겁에 질릴 대로 질렸거든.
오히려 여기서 뭔가 더 하면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숨이 넘어갈 거 같다.
‘앞에서 대놓고 까불었으니까 그래도 싸지만…… 그래도 뭐…….’
패트릭 아저씨 사업에는 아주 협조적이라고 들었다.
그 아저씨 사업에 내가 딱히 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저씨 사업이 잘되는 게 넓게 보면 내게도 좋은 일이지 않겠나.
괜히 기분 풀겠답시고 얘 죽이거나 했다가 미국 쪽 사업이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애초에 아직 미국과 영국 사이가 딱히 좋은 게 아니라 새로 뚫기도 어렵거든.
오죽하면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이 대개 낭트에서 출발하겠어.
‘뭐…… 프랑스랑은 지금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긴 하지.’
영국이 싫어서 미국을 돕는 이상한 행동을 한 프랑스는 일단 미국에 호감 스택 쌓았다 이 말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여전히 좀 어렵고.
이런저런 이유로 살려 두기로 결정했다.
아마 빌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생사가 왔다 갔다 했는지는 꿈에도 모를 거다.
“이봐.”
“네, 네!”
“이게 다 왜 벌어진 일인지 아나?”
“제, 제가 감히…… 시, 신의 사자를…… 대접을…….”
“내 얘기 하는 건가?”
“네, 네!”
신의 사자라.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듣고 보니 기분은 좋다.
여러모로 써먹을 일도 있을 거 같고.
처음이었다면 마음이 영 좋지 못했을 텐데…….
이미 뭐 조선 주술사니 뭐니 하는 소리 죄 듣고 살고 있잖아.
거기에 엇비슷한 별명 한두 개 더 붙인다고 뭔 문제가 생기겠어.
“그래, 그것도 있지. 하지만 네 천벌은 그 때문이 아니야.”
“그, 그럼…….”
“여기 있는 흑인들.”
“네?”
“교회 다니고 있지 않나?”
“아…… 네,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이 무지렁이들을 전도해서…….”
“전도했으면 다 같은 주님의 자식인데 왜 함부로 대하고 있나!”
방금 언행은 내가 생각해도 좀 위험했다.
왜?
여긴 캔자스니까.
엄밀히 말하면 완연한 남부는 아니긴 하다.
남북이 뒤섞인 주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이다.
하지만 주변 농장들에서 이 말을 들었다간 어떻게 될까.
영국 귀족 아니라 왕족이라고 해도 일단 쏘고 고민할 거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까?
-대충 악어 밥으로 주지, 뭐.
그 고민이라는 것도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닐 거다.
이 정도에서 그칠 게 뻔하다.
해서 나는 내가 아닌 척을 했다.
“자, 자네 어딜 보면서 말하는 건가.”
“자네라고!”
“어…… 태평이가 아닙니까?”
이리저리 뛰고 별 지랄을 다 했다.
무엇보다 나와 빌리 사이의 어딘가를 바라보던 것이 주효했다.
아, 목소리도 최대한 바꿨다.
“감히…… 나를 몰라보면서 어찌 신앙이 있다 할 수 있겠나!”
“어, 어어. 누구신지.”
“으아…….”
꼭 누군가를 흉내 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뭐 본 적이 있어야 흉내를 내지.
다만 곡X이나 기타 다른 무서운 영화를 봤던 기억을 최대한 떠올리면서 그것을 흉내 내고 있었다.
“설마…… 성 패트릭…….”
“아…….”
그랬더니 지들 멋대로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
얘네 종교가 청교도니까 성인이니 뭐니 하는 거 없을 텐데 그런다.
하긴, 뭐…….
급하면 보통 제일 먼저 바뀌는 게 신념 아니겠나.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을 떠나 네덜란드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도 긴 항해가 두려워 당시 뱃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미신이 깃든 물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잖아.
그래서 순교자가 존경받는 건데, 적어도 이 자리에는 그럴 만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알아보니 다행이로구나! 네 이놈, 빌리!”
“네, 네. 하, 하명하십시오…….”
“살고 싶으냐?”
“네, 네! 부디…… 살려 주십시오!”
“그럼 지금부터라도…….”
성 패트릭.
누군진 모르겠다.
근데 나름 유명한 성자인 모양이다.
다들 알아듣고 저러고 서 있는 걸 보면.
특히 조지프는 아예 눈을 감고 울고 있다.
‘그래 봐야 노예 해방하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그랬다간 성 패트릭 아니라 예수님도 총 맞아 죽을 거 같다.
신성 모독이란 생각이 들겠지만, 하는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거든.
특히 아무것도 없던 북미 대륙을 그야말로 자기 힘만으로 개척해 낸 19세기 미국인들에게는 이게 성경일 수도 있다.
“친절하게 대해라.”
“아…… 그것만으로…… 됩니까?”
“그리고 저들의 힘으로 수확한 담배. 이거 너만은 피우면 안 된다.”
“아…… 이건…….”
“안 돼.”
“그…… 네.”
이것 봐.
고작해야 금연인데도 이 지랄이잖아.
그걸로 널 살려 주겠다는데 그렇게 망설일 일이냐?
‘뭐…… 이 시기 미국에서 담배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긴 하지.’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을 텐데, 담배가 화폐 대신 쓰였던 적도 있었단다.
이렇게 그랬었대, 하고 넘어가기엔 꽤나 긴 기간 동안.
“후…….”
여기서 뭔가 더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힘들다.
무당 이거 3D 직업이었어.
내가 나 아닌 척하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
물론 흉내가 끝났다고 해서 연기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제가…… 왜 여기 있죠?”
아까 말하면서 일부러 책상 위에 올라갔었다.
평소에 스쿼트라도 해서 망정이지, 생각보다 책상이 꽤 높아서 못 올라갈 뻔했다.
아무튼,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리스턴이 다가와 물었다.
“다, 당신…… 태평이 맞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정중한 태도를 취하면서였다.
우리의 국왕이신 윌리엄 4세께서 보셨다면 아마 성을 내셨을 거다.
그 앞에서조차 저랬던 적은 없으니까.
“뭔 소리예요, 형.”
이 꼴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그랬다간 걸릴 거다.
그리고 걸리면…….
-에유, 이 녀석. 장난이 짓궂어?
이걸로 끝날까?
아마 아닐 거다.
대농장…….
그중에서도 여긴 캔자스에서 손꼽을 정도로 거대한 곳이라고 들었다.
추격대 꾸리기 시작하면 용병들이야 왜 흑인 지킴이를 위해 우리가 죽어야 하냐고 하면서 도망갈 거다.
아니, 적이나 안 되면 다행이겠지?
“허어…… 돌아왔구나.”
“돌아와요?”
“이, 일단 내려와. 이게…… 이게 접신이로군.”
“접신? 아, 아야.”
“왜, 왜. 아…… 그래, 들은 적이 있어. 접신이라는 걸 하게 되면 근육통이 생긴다던데. 이거 일단 한 모금 빨게.”
해서 나는 최대한 정신 없는 척을 했다.
여기저기 아픈 척도 했고.
그러면서도 빌리를 힐끔 살폈는데, 금연은 몰라도 흑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여, 여기. 제 것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극진하게 대할 거다.
‘잘됐군그래.’
이렇게 되면 콜로라도에서 뭔가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문제라면…….
‘이미 저렇게 진행한 이상 길어야 5년이지.’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는 게 진짜 무서운 병이라는 거다.
21세기에서도 보조적인 치료 말고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떻겠나.
그나마 공기가 더 좋다는 장점은 있겠는데, 사실 미국은 21세기에도 공기는 좋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학회 따라가 보니까 그렇더라고.
‘그 안에 뭔가 되겠지, 뭐.’
사업이라는 건 잘 되기 시작하면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법 아니겠나.
내가 비록 전생에서는 병원에서만 빌빌거리다가 죽었지만, 이번 생에는 런던에서 나름 비지니스 맨으로 통하게 되었다 보니 다 안다.
‘그래.’
나는 억지로 물려 준 담배를 툭 하고 내뱉었다.
“나는 이게 안 받아서.”
“아, 아편 있나?”
“아니, 그것도 필요 없어요.”
“그럼 대마.”
“아니…… 난 그냥 자면 돼요.”
“마음이 안 놓이는데. 성 패트릭께서 접신하셨으면 보통 일이 아닐세.”
멀리 보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틈만 나면 마약을 쓰려고 안달인 19세기 의사들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행이라면, 리스턴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내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단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