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3화(343/505)
343화 콜로라도 [1]
그 이후로 우리는 연달아 이틀을 더 쉬었다.
사람들이야 사실 마차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딱히 그렇게까지 쉴 이유는 없었더랬다.
하지만 그 마차를 끌고 다녔고 또 앞으로도 끌고 다녀야 할 말들은 얘기가 좀 다른 모양이었다.
나야 동물은 잘 모르지만, 밀러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이 그렇다는데 달리 할 말이 있겠나.
“앞으로는 이제 진짜…… 야생일 겁니다.”
“허어…….”
“원래 같으면 꽤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리스턴 경이 계시니 든든하군요.”
그렇게 쉬는 동안 대농장주 빌리 크래시는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해 우리를 섬겼다.
절대 과장이 아닌 것이 나랑은 마주칠 때마다 기도를 올릴 지경이었다.
한두 번은 그냥 넘겼다가 매번 그러니까 나도 불편했다.
-이제 성 패트릭께서는 다시 구름 위로 승천하셨으니 그만하시죠.
해서 이렇게 말을 했더니 그다음부터는 숫제 벌벌 떨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접신도 끝났다고 했잖아?
“하하, 그래. 조선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번에는 진짜 그랬으면 좋겠군. 곰이라도 마주치면 좋겠어.”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곰은 진짜 맹수입니다. 머리도 좋아서 야영하는데 찾아오기라도 하면 골 아파요.”
아무튼, 벌벌 떠는 대농장주가 얼마나 잘해 주겠나.
밥이야 원래도 잘 나왔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미국 음식이 영국 음식보단 훨씬 나았다.
거기에 더해 잠자리며 옷이며 목욕에 심지어 사격 등과 같은 즐길 거리까지 모조리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 일행은 물오리 사냥을 마치고 근처 경치 좋은 곳에 나와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그 덕에 우리 일행끼리도 더 끈끈해졌지만 밀러나 뱃사람, 그러니까 이제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게 된 조셉 아저씨랑도 친해졌다.
지금 주도적으로 떠들고 있는 게 밀러와 리스턴일 정도였다.
나머지는 사냥 때문에 지치기도 했거니와 미국산 맛 좋은 맥주와 담배에 노곤한 마음을 맡기고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곰은 무리 짓지 않지 않나. 기껏해야 한 마리일 텐데, 뭐.”
“그 한 마리가 인디언 부족 열 명도 당해 낸다니까요. 전 세계를 누비는 영국군이 보기에는 우리 인디언이 우스워 보이겠지만 적어도 야생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곰은 무서워요.”
“흐음…… 그래 그럼 늑대 정도로 타협할까.”
“아이고…… 늑대도 무섭죠. 떼로 덤비니까요. 게다가 집요합니다. 의리도 있고.”
“그건 좋군.”
“좋은 게 아니라…… 한 마리만 다쳐도 끈질기게 따라잡습니다.”
“아하.”
리스턴도 술, 담배 즐기는 것으로 따지면 남들 못지않다.
아니, 담배는 뭐 평범한 축에 속한다 해도 술은 진짜 어마어마하게 마시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에 열을 올리는 건, 그가 의외로 야생에 익숙지 않아서일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런던 태생의 그가 뭐 언제 제대로 된 사냥을 해 봤겠나.
지금이야 지체가 높아졌지만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일개 외과 의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런던 귀족들조차 곰 사냥이나 늑대 사냥은 즐기지 않는다.
대개 우리가 방금 잡은 물오리 정도나 잡지.
왕실에서 나서면 좀 더 큰 동물, 그러니까 사슴 정도는 잡겠지만 역시나 곰 사냥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근데 자네는 참 담배를 맛있게도 피우는구만?”
그렇게 한참을 더 떠들어 재낀 리스턴은 밀러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모두가 그러고 있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씹는 담배에 더해 대마까지 피운 탓에 제정신이 아니게 된 조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밀러의 담배 태우는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평상시의 모습만 보면 얼굴 생김새만 그럴 뿐, 영락없는 신사 그 자체인 데 반해 담배만 물면 어쩐지 인디언 전통 복색이 떠오를 정도다.
“아…… 그렇게 보입니까?”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나?”
“비법이랄 것까지는 없죠. 다만 의미가 다를 뿐입니다.”
“의미가 달라?”
“실례지만 리스턴 경께서는 담배를 왜 태우십니까?”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다.
19세기인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더랬다.
당연히 물어보긴 했는데 내가 의사라서 그런가. 대체 담배를 왜 피우느냐고 하면 다들 당황하면서 일단 담배를 껐다.
그러곤 뭔가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아마도 21세기에서는 흡연에 대한 인식이 일단 건강에 안 좋은 것으로 변화한 지 오래라 그럴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뭔가 신박한 답이 나올 것이 뻔했다.
“그야 간단하지. 일단 향이 좋지 않나.”
“그야 그렇지요. 그것뿐인가요?”
“아니, 아닐세. 담배를 피우면 기운이 나지. 자양 강장에 좋다, 이 말이야.”
“그것도 그렇죠.”
“또…… 스트레스가 말끔해지는 느낌이야. 뿌옇던 머릿속이 깨끗해진다고. 괜히 두통 치료나 기억력 저하에 담배를 쓰는 게 아니지.”
“하하,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요.”
정정해야겠다.
신박하다기보다는 열 받는 답이었다.
어떻게 의사씩이나 되어 가지고 저따위 말을 할까?
‘뭐…… 니코틴이 뭔지도 모를 테니 그럴 수 있긴 하지.’
힘이 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그 물질이 심각한 중독 물질이라는 걸 이 시기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알겠나.
그래도 기억력 저하 등에 담배를 처방하는 건 확실히 선 넘었다.
애초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기억력 저하에 더 일찍, 더 심하게 시달릴 텐데 거꾸로 가는 거잖아.
이러한 건 반드시 인과 관계를 이론적으로 증명해야 알 수 있는 사실도 아니다.
그냥 통계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물론 그 통계라는 것도 지금은 많이 미흡하지…….’
그래, 어쩔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담배 연기 토하듯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밀러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종교적입니다.”
“종교라.”
“이 연기를 통해 신과 소통했었죠, 과거의 저희들은.”
“그런 생각이 드나?”
리스턴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뒤에 있던 블런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 수 있겠군. 사실 어떻게 보면 좀 영적인 체험처럼 보이기도 하지 않나.”
아무래도 이 중에서는 제일 머리가 깨인 사람이라 그럴 터였다.
아니, 그건 리스턴도 마찬가지긴 한데…….
차이가 있다면 블런델이 좀 더 감성적이다.
사실 흑인 노예들이 처한 환경을 보고 리스턴보다도 더 분개했던 것이 블런델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내가 접신해서 혼내 주니까 제일 좋아했더랬다.
동시에 제일 오랫동안 내 곁에 오지 못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다.
왜 저 멀리 가 있냐고.
“네, 이 연기는 제 기도입니다. 금세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하늘 위로 올라가겠죠.”
“하지만 밀러 자네는 기독교인 아닌가?”
“이제는 그렇죠. 날 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오랜 습관의 영향이죠. 덕분에 멋있게 흡연하고 있으니 좋은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네. 확실히 나도 흉내 내고 싶어진다네.”
리스턴의 말에 밀러가 웃었다.
그리고 다들 따라 웃었지만, 나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은 내게만큼은 방금 밀러의 웃음에서 슬픔이 느껴졌기에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내가 대강이나마 피로 쌓아 올린 미국의 개척사를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그래 봐야 먼나라 이웃나라 수준의, 피상적인 지식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개척과 문명화란 이름하에 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학살까지 당한 이들의 아픔을 모를 수는 없다.
우리 민족도 한때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
“밀러.”
“네?”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주제넘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우스운 일일 터였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이 밀러라는 사람…….
백인들과 섞여 지내면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지 않았나.
정확한 사정도 모르면서 말을 얹는 건 어리석은 일인 것 같았다.
해서 나는 그저 그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는 잠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말 없는 위로란 말이 없어서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지 않겠나.
‘나도 뭐…… 숱하게 위로받았었지.’
대학 병원에서, 그것도 외과에서, 앞길이 불투명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웃을 날보다는 우거지 죽상을 할 날이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럴 때면 간혹 선배나 또는 동기 혹은 간호사 동료들이 내게 이러한 위로를 건네주었더랬다.
아무래도 위로받을 일도 위로할 일도 많은 집단이라 그랬던 거 같다.
“이제 내일이면 떠나겠군요.”
“네. 아마 고생길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말없이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별들이 하나씩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지상엔 빛이라고 해 봐야 몇몇 횃불 정도가 다인 시대 아닌가.
도시로 가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시골은 여전히 암흑 그 자체다 보니 별이 많기도 하고 밝기도 밝았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고생길이 과연 있을까 싶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 생각일 뿐이었다는 걸 다음 날 바로 알게 되었다.
“아이고…….”
“덜컹거리죠?”
“아이고…….”
캔자스도 덜컹거리긴 했다.
길이랄 게 없이 그냥 마차가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눌린 길을 달렸으니까.
하지만 여긴 그렇게 만들어진 길도 없다.
우리가 새로 뚫고 있다는 말이다.
아우우우.
거기에 더해 좀만 어둑해졌다 싶으면 사방에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그닥.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위협이다, 여기서는.
“인원이 많으니 습격이 있을 거 같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노리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뭔 소리예요?”
“가진 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까.”
“아…….”
해서 원래도 주의를 기울였지만 이젠 아예 야영할 때 마차 위치도 방어에 용이하게 배치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마을도 없다고 들었다.
그 말은 곧 매일 야영이라는 뜻이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저기…….”
그리고 오늘 뭔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저거 곰 아닌가?”
“무슨 곰이 저렇게 큽니까.”
“그럼 뭔데, 저게.”
“저도 모르겠군요.”
밀러가 모르겠다고 하면서 총을 쥐는 거 보니 곰인 건 맞는데 아니었으면 싶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니 모를 수가 있나.
“하하. 그렇다 이 말이지.”
리스턴은 그와 정반대되는 얼굴로 칼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신이 난 모양인데…….
그날 밤 정작 우리를 찾아온 놈들은 영 다른 놈들이었다.
“이런 망할.”
“뭐라는 건가?”
“저거 불어입니다. 프랑스 갱단이에요!”
“근데 왜…… 인디언들이랑?”
“저놈들은 친하게 지내거든요.”
“허어…….”
인디언, 프랑스 연합군이 쳐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