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4화(344/505)
344화 콜로라도 [2]
연합군이라고 하면 되게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이러했다.
“보니까 한 열댓 명 되는 거 같군그래.”
“형님은 그게 보여요?”
“왜 안 보이나. 달이 이렇게 밝은데.”
“그, 그런가……?”
내가 손수 살펴봤다는 건 아니다.
사방에서 총성이 빗발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 마차에 총알 네댓 발이 박혔단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아마 대낮이었다 해도 상대를 파악하진 못했을 거다.
“열댓 명이면…… 우리가 그렇게 밀리는 것도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전문가들이니까요.”
사실 누구라도 그럴 거다.
이따위 말을 한다면 허풍쟁이 취급을 해도 좋다, 이거다.
그것이 심지어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온 의사 나부랭이라면 뭐…….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리스턴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심지어 갱단 출신이라고 하는 용병들조차 그랬다.
말이 좋아 ‘출신’이지, 사실 지금도 갱단일 텐데도 이렇게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탕.
“옳지.”
“뭐가 보여서 쏘시는 겁니까?”
“안 보이나, 자네는?”
“무슨…… 아니, 미쳤네.”
비단 농장에서 했던 물오리 사냥 때만이 아니다.
리스턴.
무림 고수인 이 사내는…….
총도 귀신같이 잘 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두운 상황에서 뭔가 보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언젠가 야지에서 여우 사냥했을 땐 진짜…….
‘저거지?’
그 여우 꼬리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리스턴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순순히 손 들고 나와! 그럼 목숨은 살려 주지!”
“가진 거 다 내놓고 떠나라고! 원래 같으면 말도 다 가져가겠지만, 그건 봐줄 테니까!”
사방에서 고함이, 그것도 협박이 섞인 고함이 들이치는 와중에 한가로이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면…….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된다.
실제로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능하니까.
할 수 있는 게 구경밖에 없어.
“어쩔까. 다 쏴 버려?”
“음…….”
게다가 그래도 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저놈들이 아무래도 더 유리하긴 할 거다.
암만 우리가 불을 다 꺼 놨다고 한들 저쪽은 우리 위치를 이미 알고 있잖아?
게다가 마차라는 엄폐물이 있어도 그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일제 사격이 시작되면 죽어 나갈 공산이 크다.
뭐…… 이 시기 총이라는 것이 모던 X페어 같은 게임에 나오는 총보다는 당연히 위력이 떨어지긴 한데…….
“근데 다 죽이지 못하면 추격대가 붙을 겁니다. 그때는 강도가 아니라 복수가 목적이 되겠죠.”
“그놈들도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
“그야…… 그렇긴 하지만…….”
나도 아는데 이들이 모를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긴장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
저쪽 사람들을.
“저놈들…… 이전 전쟁에서 남은 잔당들일 겁니다. 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어요.”
“무엇보다 콜로라도 쪽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업을 해야 하는데…….”
“아, 그런가. 그럼 어쩌지.”
리스턴 때문이다.
그의 신묘막측한 사격은 사람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으니까.
가히 신기에 가깝다 할 수 있는데…….
아마 이런 어둠 속에서도 백발백중일 거다.
게다가 달리기도 빠르다 보니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진짜 어지간한 영화 주인공 뺨치게 움직일 수…….
“으악!”
그때 저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뭐, 뭐야!”
“우리가 쐈나?”
“아니지, 멍청이야. 총소리도 없었잖아.”
“수 쓰는 건가?”
너무 리얼해서 우리가 쐈나 했다.
헌데 누구 말마따나 수 쓰는 것일 것 같았다.
우린 안 쐈거든.
저쪽도 안 쏜 것 같고.
“으, 으아아아!”
“으아아악!”
헌데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기 시작했다.
비명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연기가 아닐 거다.
만약 저게 연기라면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 조연 저놈들이 다 받아야 된다.
“불!”
“불 켜!”
아무튼, 꽤나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도 뭔가 싶은데 당사자가 된 저들은 어떻겠나.
우리와 대치 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둘 횃불을 켜기 시작했다.
불 켜지는 속도로 미루어 보건대 저 새끼들이 쓰고 있는 성냥…….
100% 백린 성냥 같았다.
어둠 속에서조차 선명하게 보이는 저 하얀 연기를 보아하니 더더욱 확신할 수 있다.
개새끼들이라는 욕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고, 곰이다!”
진짜 곰이다.
거대한 곰이 장난처럼 휘두른 팔에 사람이 하나씩 차곡차곡 죽어 가고 있다.
탕.
탕.
어지럽게 총을 쏴 대고 있지만 별 소용은 없다.
곰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데다가 애초에 열댓 명 중에 네댓 명은 벌써 죽은 것 같고…….
그 이상은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 시대의 총은…….
우리가 들고 있는 총도 그렇지만 총알을 총구로 넣어야 하는 총이다.
후장식 총이 아니란 얘긴데, 그렇다 보니 장전이 진짜 오래 걸린다.
한 발 쏘고 다시 한 발 쏘려면 한세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마저도 강선이 아직 일반화되지 않아서 사정거리도 짧다.
지금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대치 중이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강선이 있긴 할 텐데…….’
잘 보급이 안 되어 있는 거 같다.
물론 의학과는 달리 총기류는 19세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지만…….
아직 19세기 초이다 보니 뭐…….
남북 전쟁 당시에도 전열 보병이 주를 이룰 정도였으니 지금은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무식한 놈이 이런 건 어떻게 아냐고?
예비군 훈련인지 어디에서인지 국방 전문 기자님이 강의하는 걸 들었다.
다른 건 다 틀어 놓고 딴짓하게 되는데 이건 재밌더라고.
“으아…….”
“저건 괴물인데…….”
곰은 프랑스 놈들뿐 아니라 인디언들도 도륙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본 우리 측 사람들도 다들 겁을 집어먹을 지경이었다.
용병…….
말로만 용병이라고 떠드는 게 아닌 것이 분명한 사람들조차 그랬다.
“안 돼…… 저건.”
밀러도 마찬가지였다.
인디언 얼굴을 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실감 나서 짜증이 난다.
“곰이로군!”
허나 모두가 다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었다.
프랑스-인디언 연합군들 중 남은 일부가 총까지 내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게 되었을 때, 분연히 나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건 거추장스럽지, 승부에.”
심지어 총 대신 칼 한 자루 덜렁 찬 채였다.
“혀, 형님! 미쳤어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너무 놀라워서, 시발, 나도 따라왔다.
물론 총은 든 채였다.
달달 떨린다.
총이 낯설어서는 아니다.
-아니?
-엄청 잘 쏘잖아?
내가…… 나름 군필자잖아?
군의관은 심지어 장교고 대위로 임관하다 보니 나름 훈련은 제대로 받는다.
내 성격상 뭐 하라는 거 열심히 안 하면 좀 그렇기도 했고.
해서 훈련소에서 만발 기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곰이랑 일대일로 싸울 수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말이 되냐?
“자네는 왜 왔나.”
“어떻게 혼자 둡니까! 저…… 저거…… 저거 곰 맞아요?”
“나도 모르겠네. 엄청 크구만그래.”
“미친…….”
아무것도 못 하겠다.
훅 풍겨 오는 누린내에도 정신을 못 차리겠어.
심지어 피비린내까지 섞여 있으니 더더욱 그래.
이건 나름대로 익숙한 냄새인데도…….
“자네는 뒤에 있게.”
허나 리스턴은 오히려 용기가 충천하는 건지 뭔지, 어차피 다리가 후달거려서 움직이지 못하겠는 나를 두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리스턴을 말리고 싶었기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딱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뭔가 말도 하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싹일 뿐,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저, 저주다.”
“이렇게 되면 승산이 있지.”
“역시…… 리스턴 경이 그냥 나선 것이 아니로군그래.”
“하긴 저 청나라 마저도 피영신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지…….”
말도 안 나올 만큼 쫀 건데 뒤에서는 저 지랄이다.
근데 또 그렇게 보일 거 같긴 하다.
해서 팔을 내리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된다.
진짜 너무 무서워.
오니를 처음 맞닥뜨린 젠X츠의 심정이 이랬을까.
애니 보면서 비웃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크아아아아아앙.
하여간, 리스턴이 더 가까이 다가가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곰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거의 무슨 드래곤 피어 같다.
전생에 어느 커뮤니티에서 곰 vs 사람 해 놓고 댓글에 지가 이겼다는 놈도 있고 했던 거 같은데…….
그 새끼들 일렬종대로 이 앞에 데려오고 싶다.
하나같이 쫄아서 소변 지릴걸.
나?
나는 아니다.
솔직히 지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내가 아무래도 19세기에서 많은 단련을 받긴 했나 보다.
“으, 으아.”
“으아아아.”
프랑스 놈들 그리고 인디언 놈들 모두 주저앉아서 신음만 흘리고 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놈들도 횃불을 든 채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아마 발이 안 떨어져서일 거다.
그만큼 위력적인 포효였으나.
“흐압!”
리스턴을 멈추진 못했다.
이 중세 기사인지 무림 고수인지 모를 사내는 본인의 이름을 붙인 칼, 리스턴칼을 섬광처럼 뽑은 채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크어엉.
곰도 마찬가지였다.
호적수란 느낌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말 그대로 집채만 한 거수가 리스턴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너무 빠르고 너무 커서 그랬다.
다만 무언가 하나 데굴데굴 굴러오는 것은 못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제법 커다랬는데 하필이면 딱 내 발치까지 굴러와서 멈췄더랬다.
‘팔…….’
리스턴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내가 정신이 없어도…….
곰의 팔과 리스턴의 팔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시발…… 진짜 개기지 말자.’
단칼에 곰의 팔을 잘라 냈다.
“하하!”
크어어어.
그러곤 즐겁다는 듯이 웃다가 또 붙는다.
툭.
그렇게 또 하나의 팔이 내 발이 앞으로 굴러왔다.
“저주…… 저주다…….”
“리스턴 경은? 사람이 저렇게 움직여?”
“저것도 주술이겠지. 아까부터 팔을…….”
“아. 흡사 모세가…….”
“아…… 주여. 피영신은 정녕 신의 사도입니까.”
하필 팔 두 개가 다 나한테 굴러와서 그런가?
내 뒤에서 신흥 종교가 탄생하기 시작했단 느낌을 받았다.
“곰은 이 정도인가.”
그와 동시에 리스턴은 실망했다.
두 번 정면 승부를 했는데 두 팔을 다 잘라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시시해서 그만해야겠다.”
리스턴은 중대장이나 지을 법한 표정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곰은 이미 양팔이 잘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마 움직일 수 있었어도 별반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움직임에 비해 서걱 소리가 늦게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빠른 베기였으니까.
툭.
‘아, 미치겠네?’
그리고 그렇게 베인 곰의 머리는 또다시 내 발치에 와서 멈추었다.
그제야 나는 긴장이 풀려 손을 내릴 수 있었고, 사방에서 우리를 위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