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5화(345/505)
345화 콜로라도 [3]
쿵.
한 박자 쉬고 곰의 거대하고도 육중한 몸이 무너져 내렸다.
피가 분수처럼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는데 그 피가 다 어디로 가겠나.
물론 그냥 땅바닥에 고여 피 웅덩이를 이루는 것이 메인이긴 했지만…….
리스턴에게 쏟아져 내린 양도 적지만은 않았다.
“더 강한 놈은 없는 건가.”
그렇게 피를 뒤집어쓴 채로 저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진짜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
최대한 좋게 봐 주면 X윅 정도다.
안 좋게 가면…….
뭐가 있을까?
“리스턴!”
“리스턴!”
“피영시인!”
“피영시인!”
고민하는 사이 안에 숨어 있던 우리 일행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상대와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끼어들었던 변수인 곰이 제거되었다면 더 자중하거나 우리를 끌고 들어가야 합리적인 선택일 테지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않겠나.
훌륭한 19세기인들인 데다가…….
지금 우리가 직관한 이 일기토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힐 만큼 위대한 일기토일 수도 있으니까.
사기가 빡 올라갔다, 이 말이다.
“으아…….”
“시…… 신인가.”
“이건…… 이건…….”
그 말은 곧 우리와 대치하고 있던 집단의 사기는 빡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말도 된다.
애초에 곰한테 와다다 죽어 나갔을 때부터 박살이 나고 있었을 텐데, 감히 건드렸던 상대가 이런 괴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 무기 버려!”
“으아.”
그렇다 보니 내가 이렇게 외치기 전부터 이미 다 무기를 버리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버려진 무기를 용병들이 일일이 수거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항복한 인원을 한데로 몰아 묶어 두기도 했다.
지금이야 풀이 죽었는지 기가 죽었는지 하여간에 가만히 있지만 언제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야만인이라고 마냥 욕하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이놈들, 우리한테 강도질하려고 했던 놈들이잖아?
“뭘 그렇게 묶나.”
잠시 자신이 잡은 곰을 내려다보다가, 귀신같은 솜씨로 가죽만 벗겨 낸 후에야 다시 마차 뒤쪽으로 온 리스턴이 칼을 빙빙 휘두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가죽을 벗기면서는 피가 더 튀진 않았을 거다.
어찌 아냐고?
저 사람 솜씨를 보면 예상이 간다.
해부도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진짜 기깔 나게 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턴은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스턴은 얼굴을 깨끗이 씻고, 머리를 정갈하게 넘긴 상태에서조차 진짜 무섭게 생긴 사람이다.
“히익.”
“살려 주십쇼!”
“자, 잘못했습니다!”
“자네는 뭔 잘못을 했나.”
“아, 말이 헛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묶여 있던 놈들은 물론이거니와 묶고 있던 사람들까지 전원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 나조차도 무서워 죽겠으니 당연한 일이다.
원장을 제외하면 리스턴에 가장 강한 면역을 보이는 게 나이거늘…….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사람이.’
혼자 총도 아니고 창도 아니고 칼 하나 달랑 들고 곰을 잡을 때만 해도 그보다 더한 불가사의는 없을 거 같았는데, 지금 보니 이 사람 얼굴이야말로 진짜 불가사의다.
피라미드 같은 건 댈 것도 아니야.
아니, 그건 좀 너무했나.
“일단…….”
아무튼, 리스턴은 그렇게 숨 쉬듯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잡고서는 벗겨 온 곰 가죽을 밀러에게 건넸다.
“이거 뭐 어떻게 처리할 수 있나?”
“네,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밀러가 생각이 난다.
확실히 미국인이란 느낌을 주는 그런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에 더해 인디언임에도 불구하고 백인 사회에 섞여 살 정도로 억척스러운 성격도 느껴졌었고.
지금?
지금은 아마 리스턴이 개처럼 짖으라고 하면 짖을 거다.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참고로 나도 짖으라고 한다면 열심히 짖을 용의가 있다.
너무 무섭잖아, 이 사람은…….
“좋아. 그건 그렇고. 니들 중에 제일 높은 놈이 누구지?”
“아…….”
“몇 놈 더 죽고 싶나.”
“저, 접니다! 제가 제일 높습니다!”
나도 무서운데 얘들은 어떻겠나.
한 놈이 발작하듯 외치며 앞으로 기어 나왔다.
인상을 보아하니 확실히 한가락 하는 놈 같았다.
콧수염도 꽤 멋지게 길렀고, 일단 생긴 것도 빡세게 생겼다.
옷도 꽤 좋은 가죽옷을 차려입었다.
근데 그럼 뭐 하나.
오줌을 지리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 지나는 거 어떻게 알았지?”
“아.”
놈을 보면서 던진 질문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너무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확실히…… 어떻게 알았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나.
“눈알 한 번만 더 굴리면 다시는 못 굴리게 할 거야.”
“히익.”
리스턴은 리스턴칼을 휘둘러 상대의 눈알 코앞에서 딱 멈추었다.
몇 밀리만 더 들어갔어도 동공이 뚫렸을 거다.
손에 땀이 촉촉해지는데…….
상대는 아마 오줌이 더 촉촉해졌을 거다.
실제로 바닥에 뭔가 흐르고 있다.
탓할 생각은 없다.
내가 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더 쌀 테니까.
“그것이…… 뉴욕에서부터 이미 소문이…….”
“뉴욕?”
“네. 영국에서 온 부자들이 콜로라도로 간다고…… 저희만이 아닐 겁니다, 아마!”
“하. 누구한테…… 아니, 그건 의미가 없겠군.”
나는 빌리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쫄았는데 이런 짓을 하겠나?
그리고 뉴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느낌이 딱 오기도 했다.
거기는…….
누구라도 의심스럽잖아.
내가 생각하던 21세기의 뉴욕은커녕 그냥 도시 전체가 런던 뒷골목 느낌이었으니까.
“그럼 이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텐데, 어쩐다?”
리스턴은 혼잣말을 이어 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허락 없이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나나 블런델 정도가 가능할 텐데 둘 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다 죽이는 건 귀찮은데. 찜찜하기도 하고.”
사위는 더더욱 조용해졌다.
너무 험악한 말인데 너무 현실성이 있어 보여서 그랬다.
“저…….”
아무래도 다 죽이는 대상에 자신도 들어갈 거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까 나섰던 놈이 용기를 냈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어 대는 통에 볼품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의 사내다움은 내가 보장해 주겠다.
저렇게 나서는 게 대단한 거다.
친분도 없으면서…….
심지어 리스턴이 의사인 줄도 모를 거 아닌가.
아마 인간 백정인 줄 알 거다.
“음, 말해 봐.”
“네. 그, 저희를 보내 주시면 저희가 다 말하겠습니다. 절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요.”
“하하하하.”
“하하.”
“지랄 마.”
리스턴은 그의 제안에 껄껄 웃다가 돌연 분위기를 더 험악하게 만들었다.
사실 방금 전이 최악인 줄 알았는데 바닥 밑에 바닥이 더 있었다는 말이다.
안 그래도 불도 방금 하나 다시 붙인 게 다인 데다가 밤이 되어 쌀쌀해진 마당이었는데 이제는 숫제 얼어붙는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가서 복수하려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아니……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곰 대가리를 한칼에 베는 사람에게 복수를…….”
“나도 사람이긴 하니까, 말이야. 총 몇 대 맞으면 꼼짝 못 한다고.”
보통은 한 발만 맞아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엄해서 가만히 있었다.
나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 그럼 저는 남겠습니다. 이놈들. 이놈들 시키시죠!”
“이놈들……?”
“네, 네!”
대장이 가리킨 것은 인디언들이었다.
그들 또한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자연과 벗 삼아 온 사람들이라 그럴까?
곰을 죽인 데에 있어서 더욱더 커다란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으음, 인질이 되겠다?”
“네, 네. 살려만 주십쇼.”
“그래, 뭐…… 그렇게까지 나온다면야. 하지만 일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알지?”
“네, 네. 물론입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그래도 나름 콜로라도에서 인망이 있습니다. 제 이름을 팔고 그…… 그…… 용맹도 알려지게 되면 아무도 덤비지 못할 겁니다!”
나는 봤다.
그…… 뒤에 괴물이라거나 악마라거나 하는 단어가 뒤따르려 했다는 것을.
하도 뒤에서 주술사니 뭐니 지랄을 해 대는 통해 원치 않아도 독순술을 익히게 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 리스턴은 그 누구도 그를 두고 뒷담화 따위는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잡기술은 전혀 몰랐다.
그게 놈을 살린 거 같다.
“그래, 뭐. 밑져야 본전이지. 그래, 가 봐.”
“네, 살려 주셔서 감사…… 감사합니다.”
“히, 히이…….”
인디언 둘이 그렇게 떠나갔다.
우리를 조용히 습격하기 위해 말을 저 멀리 묶어 두고 왔던 건지 뭔지 이내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점점 멀어졌다.
“저, 근데.”
상대편 대장, 그러니까 이제는 인질이 되어 버린 놈은 마차 가운데 리스턴이 꽂아 둔 아름드리나무에 묶여 있었다.
원래도 쫄아 있었지만 마치 항우를 연상케 하는 모습에 더더욱 쫄아 있었다.
그러다 리스턴이 졸리다고 가고 나서야 나를 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이놈이 좀 궁금하긴 했다.
어쩌다 프랑스 놈이 여기까지 와서 이 난리를 치나 싶었다는 말이다.
“저분은 대체 누구십니까?”
“아…… 런던 최고의 외과 의사 리스턴 경이지.”
“의, 의사요?”
“그래. 나도 의사야.”
“네에? 아까 마법 부린 거 아닙니까?”
“마법이라니. 주님의 은총이지, 그건.”
“아니…….”
녀석은 내 말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콜로라도에는 대체 왜 가시는 겁니까? 정말 거기 금광이 있는 겁니까?”
“금광? 뭔 소리야. 금이라니. 금광이 있나?”
“네? 아니…… 금도 아니면 거길 대체 왜…….”
“온천 때문에 가는 건데.”
“온천이……요? 콜로라도에 온천이 많긴 하지만…… 그게 뭐…… 돈이 됩니까?”
“모르지.”
모른다, 정말로.
근데 내가 알기로 프랑스 온천인 아벤느는 그게 아예 브랜드가 되어 아벤느로 팔리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는 온천 전문의도 있다.
뭐 충치에 효과가 있다는 말은 못 들어 봤지만, 말마따나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근데 금이 있나?”
그보다 관심이 가는 건 금이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있을 법하니까 물어보는 거 아닌가? 그렇잖아. 아니야?”
“그건…….”
“뭐, 형님 다시 불러? 왜 수다쟁이가 갑자기 과묵해졌어.”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닙니다.”
진짜 마법사는 리스턴이 아닐까?
‘부를까?’라고만 했는데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수다스러워졌다.
“거기 인디언들만 아는 지역에 빛나는 돌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문제는…… 아직 뭐, 그렇잖습니까. 여기도 그렇지만 더 서쪽으로 가면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걸 영국에서 온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저희도 신기했죠.”
“붙잡아 물어보고 싶을 만큼?”
“아, 네…… 뭐…….”
“그거 형님한테 말하면 좋아하겠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