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6화(346/505)
346화 콜로라도 [4]
“그래? 금광이 있는 곳을 안다고?”
“그렇다던데요?”
“아주 좋구만그래.”
리스턴은 아까 묻은 피를 씻어 내고 있었다.
우리가 끌고 있는 마차는 캠핑카가 아니지 않나.
샤워 시설 따위가 있을 턱이 만무하다, 이 말이다.
그 때문에 리스턴은 마실 물이랍시고 끌고 왔던 물을 상당량 이용해 몸에 들이붓고 있었다.
‘저게 식수인데…….’
‘물은 나중에 길어 오면 되지, 인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놈의 그래도. 몸 봐라. 저 몸을 보라고.’
‘하긴…… 찢겨 죽겠지.’
‘진짜…… 리스턴이 좀만 일찍 태어났으면 독립은 없었을 거라는 게 과장이 아니었어…….’
배에서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시기 여행객들에게 있어 식수는 아주 중요하다.
물이 없으면 죽잖아.
그래서 배에서는 저런 짓을 하면 채찍으로 때려죽이거나 몸을 묶어 놓고 화물을 굴려 죽게 한다고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에이, 거짓말’ 했겠지만…….
이젠 안다, 진짜라는 걸.
19세기는 야만 넘치는 시대거든.
모르긴 해도 이 용병들도 비슷한 규율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러니 감히 저기서 저렇게 중얼거리고 있겠지.
하지만 중얼거리고만 있을 뿐 아무도 감히 나서진 못하고 있다.
“근데 형.”
“응?”
“옷은 안 입어요?”
“말려야지. 나 옷 달랑 세 벌이야. 그나마 아까 입었던 건…… 저건 버려야 되지 않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겠네요. 근데…… 아니, 뭐…… 그래. 형은 벗는 게 나을지도.”
“자네…… 군자가 되어 가지고 남색을 밝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군자가 아니라고?”
“아니, 후자가 아니라고!”
나야 친하니까 이 몸을 보고도 그냥저냥 얘기하는 거지, 다른 놈들은 입도 벙긋하기 어려울 거다.
곰 잡는 것을 봤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냥 몸만 봐도 미쳤다, 이건.
21세기였으면 100% 로이더 얘기가 나왔을 텐데…….
지금 이 시대는 스테로이드는커녕 비슷한 약물조차 없는 시대 아닌가.
‘역시 무림 고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팬티도 안 입은 상태의…….
기실 이 시대에는 속옷이 그리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바지만 벗으면 바로 이 상태긴 하지만 누가 벗었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지 않나.
리스턴은 그냥 몸 여기저기가 공포의 군주 그 자체였다.
“히, 히힉.”
그 모습을 마주한 프랑스 갱, 아까 내게 이름을 쟝이라 밝혔던 녀석은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두었을 텐데 이젠 보기만 해도 느낌이 온다.
“어어. 숨 쉬어. 야, 숨 쉬어!”
이러다 넘어간다는 걸.
어쩌다 보니까 자꾸 내 앞에서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잖아?
이번에는 다행히 내가 빠른 조치를 한 덕에 녀석은 넘어가기 직전에 정신을 차렸다.
“으…….”
“그래, 금이 있는 데를 안다고?”
“아니…… 그게.”
“뭐야, 왜 내가 오니까 있던 금이 사라졌어.”
“아, 아니.”
“이러면 생각이 나려나.”
리스턴이 주먹을 빙빙 돌리자, 쟝이 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정확한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정확한 게 아니야? 그래도 돼. 금이잖나. 애초에 우린 여기까지 물 때문에 왔다고.”
내가 봤을 때 쟝이 지금 떠올리고 있을 생각은 이럴 거 같다.
그러니까 왜 그놈의 물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사람 헷갈리게 하냐고.
사실 내가 생각해 봐도 좀 이상하긴 하다.
금도 아니고 물 때문에 이 먼 길을…….
그것도 꽤나 많은 돈을 써 가면서 온다고?
이건 진짜 나나 리스턴 정도 되는 놈들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너 대체 누구 눈치를 보는 거야? 내가 있는데 누가 감히 엿듣는다고?”
“아, 하긴 그렇군요…… 맞습니다, 네. 맞습니다.”
뭐 별거 없다고 한 거치고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눈알을 지나치게 데구루루 굴리고 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더 신빙성이 느껴졌다.
리스턴을 보니 우리 형님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다.
‘잘했어.’
‘뭘요.’
‘주술로 홀린 건가?’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하하. 금이라고, 금.’
우리는 흉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이좋게 쟝과 어깨동무를 했다.
당연하게도 우리 곁에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는 곰 목을 날린 사내고 다른 하나는 주술로 곰을 느리게 한 사내인데 어느 누가 오겠나.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쟝도 나름 악명 높은 갱단의 수장이다 보니 우리 일행들도 먼발치에서만 지켜보고 있을 뿐, 거기서 단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못했다.
“그래서 말해 봐.”
“아…… 네. 그…… 그러니까. 덴버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인디언들 말로는 좀 다르게 불리는 곳인데…… 인디언들은 지명을 강이 흐르는 숲이니 뭐니 이런 식으로만 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아무튼, 그 덴버에서도 사금이 어느 정도 나옵니다.”
“오.”
“근데 그게…… 그 밑으로 내려가면 온천 지대가 있거든요?”
“온천!”
이 새끼, 이거.
이제 보니까 약간 황금 고블린과였던 모양이다.
온천 위치도 알고 있는 거 같아.
밀러도 대강 알고는 있지만, 가서 찾아봐야 된다고 했는데…….
‘흐흐.’
‘후후.’
나와 리스턴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더 멀어지는 느낌과 함께 쟝의 흐느낌이 더욱더 거세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기엔 눈앞에 놓인 금이 너무 컸다.
“네…… 거기 사는 인디언들 말이, 주변에 번쩍이는 돌이 많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양이…… 다른 곳하고는 다른 모양이에요.”
“오호…… 네가 그 사람들하고 연결 고리가 있나?”
“있기는 한데…… 돈독하진 않습니다. 아직 이쪽 사람들은 우리나 미국인들하고도 교류가…….”
“그건 밀러가 하면 되겠구만.”
“밀러? 아, 아까 그. 아마……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나을 거 같긴 합니다.”
“그래, 그래. 너 인마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네, 네. 그럼 저 조금만 살짝 묶어 주시면…….”
“응?”
쟝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길래 녀석이 턱으로 가리킨 부분을 봤다.
그러자 푸르뎅뎅해진 팔이 눈에 들어왔다.
“에구머니.”
썩었나 싶었다.
맨날 썩은 팔이나 다리 보는 게 직업이다 보니 자연스레 절단도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은 저도 모르게 아무것도 없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것은 칼이 아니라 곤봉 비슷한 무엇뿐이지 않나.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다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아까 곰 죽이고 그래도 좀 흥분을 했었나 보네. 약간 힘을 주었어.”
“으…… 아이고. 살…… 살겠다. 하유.”
“그래. 이대로만 하라고. 그럼 풀어 줄 수도 있어.”
“가, 감사합니다. 제가 내일부터는 확실히 길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어…… 근데 그냥 가십니까?”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데. 너네 아까 총도 쐈잖아. 일단 밤은 거기서 보내라고.”
“아…… 네…….”
우리는 그렇게 쟝을 두고 금광을 확보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러곤 아침 일찍부터 다시 서쪽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캔자스에 비하면 풍광이 점점 다채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더 서쪽에 위치한 로키산맥의 영향 같은데…….
남쪽으로 가면 애리조나나 뉴멕시코와 같은 사막이 있겠지만 여긴 높다란 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약간 미국보다는 캐나다 같은 느낌이 든달까?
뭐, 전생에 미국을 몇 번 오긴 했지만 학회 때문에 도시나 간 게 전부이다 보니 정확한 감상은 아닐 거다.
“진짜 야생이군그래.”
“그러니까요.”
뿐만 아니라,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모습과도 많이 다르다.
덴버면 사실상 콜로라도의 주도 아닌가.
서부 개척 시대, 특히 골드러시의 센터와도 같은 곳이라고 들었다.
뭐 사실 골드러시의 핵심은 캘리포니아긴 하지만…….
콜로라도면 좀만 더 가면 캘포잖아?
물론 네바다니 뭐니 하는 널찍한 땅들이 있으니 대한민국 땅끝 마을 가는 것의 수십 배는 더 가야 되긴 하겠지만.
‘아직 골드러시 이전 시대인가 보구나.’
하여간에 황무지를 지나 나름 강도 있고 산지도 있는 곳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뭐 골드러시가 19세기에 있었다는 거나 알지 정확히 몇 년부터 있었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러니까 쟝에게 듣다 보니 아직 캘리포니아가 미국 땅도 아니더라고.
멕시코 땅이래.
‘멕시코…… 진짜 억울하겠다.’
21세기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는지 아는 나로서는 금보다도 그게 더 억울할 거 같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마침내 덴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직 도시라기보다는 진짜 마을이었다.
아마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다 얼굴 트고 살 거 같다.
작은 데 비해 풍족하게 사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다들 얼굴에 고생이 뚝뚝 묻어난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되었을까?’를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아직 캘리포니아라는 날씨 좋고 사람 살기 좋은 그곳은 미국 땅도 아니다.
고로 골드러시도 시작되지 않았다.
근데 이 척박한 땅까지 와서 산다는 건…….
아닌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원래 살던 곳에서 살기 어려워진 어떤 사정이 있어서이지 않겠나.
지독한 가난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 대다수는 범죄가 원인인 듯했다.
‘형님.’
‘알고 있어. 괜찮아. 다 해 봐야 100명도 안 돼.’
‘아니…… 그래도.’
‘하하.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네. 어차피 온천수로 사업을 하건 금광을 캐건 여길 어떻게든 점거해야 해.’
눈초리가 이상해서 말을 걸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물론 나도 알아차릴 정도로 노골적인 눈빛들이었기 때문에 용병들도 하나같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우리가 마차에서 쟝을 끌어 내린 후의 일이었다.
“어?”
“저거…….”
“설마.”
쟝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다들 알아보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왜 안 돌아오나 했더니…….”
“저 무서운 사람이…….”
그냥 잡힌 게 아니라 완전 쫄았잖나, 이 친구.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덩달아 좀 쫄리는 모양이었다.
한바탕 날뛸 생각을 하고 있던 리스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한 손으로 쟝을 들어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 저게 사람인가.”
“뭐지…….”
그러곤 널브러진 쟝을 다시 한 손으로 들어다 일으켜 세웠다.
“맞게 왔네. 그럼 약속대로 풀어 주지.”
“가, 가도 됩니까?”
“밧줄만 풀어 주겠다고. 뭐, 천국 가고 싶어? 아니, 지옥인가?”
“아닙니다…… 평생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 모습을 본 이후로는 마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이상한 눈초리로 우리를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꾸 무릎을 꿇으려 해서 귀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