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7화(347/505)
347화 금광 그리고 온천 [1]
쟝은 방금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게 기회를 주십쇼. 이 사람들 다 설득해 오겠습니다.
-협박하면 되는데?
-입으로 터는 건 내가 제일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습격 이후 끌려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둘 다 의사라지 않나.
입으로 털면 된다는 칭키 놈…….
그놈이 말했을 땐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진짜인 듯했다.
그것도 미 대륙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돌팔이가 아니라 런던 최고의 명의라고 했다.
그래 봐야 프랑스 명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의사라고 하면 기대되는 모습이 있는 법 아닌가.
‘근데…… 뭐냐고, 그 새끼들.’
마을 사람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덴버에 있는 놈들 출신 성분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그 짓거리 하기 싫어서 도망 나온 놈들이다.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사냥과 나무 베기 등으로 먹고 살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종종 손 모자라고 하면 갱단 일도 돕고 하지만…….
그 정도야 다들 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대농장 놈들이나 부자 놈들 그거 다 우리같이 힘없고 불쌍한 사람 갈취해서…… 응?
‘그런 사람들을 협박해서 또 사기 쳐서 이끌겠다는 게 말이 되나.’
의사라는 사람들이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귀족이라며?
작위도 받았다며.
영국 국왕의 주치의라며.
-제발, 그전에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저런 직함만 믿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마을이 악마들의 손아귀에 빠질 것이 뻔했다.
해서 쟝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보다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면 펍도 있고 했겠지만 여기서 뭐 그런 걸 바란단 말인가.
그냥 오가는 행상인들이 묵고 가는 커다란 창고 같은 곳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주변을 흐르는 사우스플랫강의 수질이 아주 좋다는 점이었다.
그에 더해 작게나마 숲을 태워 일군 화전에서 나오는 옥수수로 담근 맥주는 맛이 아주 좋았다.
뭐 다른 지역 놈들이 대량으로 담그는 맥주에 비하면 좀 투박하지만 매력이 있다, 이 말이다.
“쟝, 그래. 어떻게 된 건가?”
그렇게 맥주와 리스턴이 잡아 온 곰 고기를 일부 제공받아 이루어진 마을 회담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을 제일의 연장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쟝을 좀 두려워하는 것도 있거니와 유교는 아니더라도 뭐가 되었건 나이 든 사람이 먼저 입을 여는 게 맞는 거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게…….”
일단 쟝은 그의 물음에 최대한 자세히 답해 주었다.
“에이…….”
“말이 되나……?”
먼저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하긴 그럴 만했다.
쟝 본인도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못했을 테니까.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그 큰 곰을 칼로 뎅강 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니, 생각이야 뭐 어지간히 미친놈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 고기가 곰 고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우리도 잡아 본 적이 있잖아, 곰은.”
“뭐, 다 늙어서 엎어져 있던 거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서 잡은 거? 그게 사냥입니까? 채집이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것도 그렇게 잡은 건지 뭔지 어떻게 아나.”
“저기 보세요.”
“뭘. 아.”
쟝은 답답한 소리 하는 노인네, 그래, 사실상 촌장을 보다가 이내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엔 리스턴이 서 있었다.
곰 가죽을 들고서였는데, 과연 머리와 양팔이 잘려 없어진 가죽이었다.
그걸 알아볼 수 있다는 건 리스턴이 보기 드문 거한이라는 뜻도 되었다.
곰 가죽도 생전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으니까.
“아무튼, 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건 이 밑에 금광과 온천이에요.”
“온천? 온천이야 찾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남쪽으로 가면 바로 있는데.”
“그렇죠. 그렇긴 한데…….”
“인디언들이 문제지. 그 새끼들은 왜 그렇게 사납나.”
촌장의 말에 쟝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이 양반도 몰라서 하는 말일 거라는 건 알고 있어서 그랬다.
처음 북아메리카 대륙에 영국인들이 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인디언들과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더랬다.
뭐 자세히 파고들자면 우여곡절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졌던 학살극에 비하면 유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담배 농사가 흥하면서 식민지들이 점점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거기 살던 인디언들을 내몰아 내거나 심지어는 학살까지 자행하면서 사이는 급격히 틀어졌다.
쟝도 그보단 나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게 쟝 같은 프랑스인들이 미국인들보다 인성적으로 나아서라기보다는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면서 오갈 데 없어진 갱들이라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저들 중에 인디언이 있어요.”
“그래? 점점 수상해지는데…… 정말 그렇게 강한가?”
“행여나 덤빌 생각은 마쇼. 진짜 다 죽어…….”
“그렇구만.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겠지. 근데?”
“저 사람하고 옆에 있는 저 노랭이. 저 둘이 영국에서 귀족이랍디다.”
“거짓말…… 아니겠나?”
촌장의 말에 쟝은 더 뭐라 하지 못했다.
왜냐면 자기가 봐도 거짓말 같아 보여서 그랬다.
리스턴.
저 사람은 어떻게 봐도 그냥 깡패다.
그 옆에 있는 그…… 피영? 그놈은 동양인이고.
저 멀리 하와이라는 곳에서 딱 저런 놈들이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다고 들었다.
‘근데…… 다 그렇게 말하고 있단 말이지.’
하지만 블런델이라고 했나?
그놈을 비롯해 콜린, 앨프리드, 조지프라고 했던 놈들은 확실히 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놈들도 저 둘이 귀족이고 실은 매우 뛰어난 의사라고 얘기했더랬다.
‘막말로 아니라도 어쩔 거야.’
안 믿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도망이라도 가?
안 된다, 그건.
일단 말도 빼앗겼거니와 설령 마을에 있는 말을 훔쳐다 달아난다 해도…….
‘리스턴…… 저 괴물…….’
오는 길에 심심하다고 말 내달리는 걸 봤는데 그냥 미친놈이었다.
말과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이었더랬다.
심지어 잘 보니까 말도 엄청 컸다.
듣자니 오는 길에 야생마를 하나 붙잡아 길들였다고…….
“아뇨, 맞습니다. 제가 보장하죠. 영국 왕의 인장이 찍힌 것도 들고 있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근데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그런 놈이 귀족이라고 하면 귀족인 거다.
생각해 보면 왕이라고 안 한 게 어딘가.
해서 쟝은 그냥 보지도 못한 인장이니 뭐니를 주워 넘겼다.
촌장이야 말 그대로 시골뜨기 촌놈이다 보니 대충 넘어갔다.
게다가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었다.
쟝에게도 그랬다.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앞으로 더 갱단 짓 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갈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이 저기 온천에서 물을 캐다가 영국으로 가져다 팔 거랍니다. 우리가 거기 가서 일을 하면 돈을 꽤 주겠다고 했어요.”
“오…… 근데 그냥 물인데…… 그게 팔리나……?”
“나야 모르죠. 그거야 근데 저 사람들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하긴. 그렇네.”
“그리고…… 인디언 놈들이 저기 어디 반짝이는 돌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지. 아마 금일 텐데…… 확인을 해 볼 수도 없고.”
힘이 있었다면 확인이 아니라 그냥 다 죽이고 몇 놈만 남겨다가 금광 찾아내라고 했을 거다.
특별히 여기 촌장이나 마을 사람들이 악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시대가 그랬다.
문명의 이기를 쥐고 야생으로 뛰어든 인간은 문명인보다는 야만인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으니.
서부 개척 시대니 골드러시니 뭐니 하면서 낭만적으로 그려서 그렇지, 실상을 알고 보면 학살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같은 백인끼리도 총부림이 난무했으니 인디언을 대상으로는 뭐…….
“그것도 해 주겠답니다.”
“무슨 수로?”
“모르죠. 근데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을은 이제 노 나는 겁니다. 금이라니까요?”
“하긴, 그렇군. 허어…… 이거…… 이건 좋은 일이로군그래.”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전폭적으로 협조합시다.”
“자네 뭐 뒤로 받는 게 있어서는 아니겠지?”
그렇다 보니 이렇게 의심도 많았다.
촌장 본인도 기회만 주어지면 남의 뒤통수 칠 생각이 난당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실 쟝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아닙니다, 진짜로. 저 사람들……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으음.”
“개기면 진짜 험한 꼴 보게 될 거라니까? 이 정도면 엄청 관대한 제안 아닙니까? 우리가 뭐 어? 온천을 캘 수가 있어 아님 금광을 찾을 수가 있어.”
“왜 화를 내고 그래.”
“무서워서! 무서워서 그래! 진짜…… 진짜 무섭다고.”
“거참…… 알았네. 알았어.”
그렇게 필사의 설득을 마친 쟝은 후련해진 기분이 되어 회관 아니, 창고를 나섰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밀러 커티스였다.
평소 미국인보다는 영국인으로 보일 정도로 정장에 집착하던 그는 지금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금이래잖나. 온천도 아니고. 둘 다 캐야 하니 이 정도는 준비해야지.”
“그래도…….”
“어허! 섭섭지 않게 쥐여 줄 거라니까?”
“어어.”
“왜 그러나. 왜 쫄아.”
“안 쫄게 생겼습니까…….”
밀러는 착잡한 얼굴로 지금도 곰 가죽을 들고 서 있는 리스턴을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타고 떠났다.
“시발…….”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운 유일한 조선어를 내뱉으면서였다.
“뭐?”
“아니, 아닙니다.”
그가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리스턴의 귀가 거의 데어X블 뺨칠 만큼 좋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리스턴은 큰일을 앞둔 일꾼을 굳이 그 전에 팰 만큼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돌아오면 한 대만 때려야지. 뭐, 시발?”
“아니, 형…….”
“왜. 내가 너무 하는 거 같아?”
“실패하면 패요. 성공했는데 패면 좀 그렇잖아.”
“아, 그렇군그래. 역시 네가 생각이 깊다.”
“제가 인성 하나는 군자죠.”
“그래, 우리가 다 참군자지.”
그 덕에 간신히 멀쩡한 얼굴로 마을을 빠져나온 밀러는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여기 지리가 자기도 익숙하지 않다느니 어쩌니 했던 것에 비하면 딱히 망설임이 없었다.
어디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 타고 가는 건데도 그랬다.
그 말인즉슨…….
‘오랜만이네, 여기도.’
그가 알고 있는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긴가. 참…… 변화 없는 족속들이란 말이지.’
이게 만약 한국이나 미국이었다면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만에 찾아오는 길이 좀 바뀌긴 했을 텐데…….
아무래도 인디언은 수천 년을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럴까.
이미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 지도 100년이 훌쩍 지난 다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삶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어?”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부족에게 밀러가 몇 년 만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리스턴의 협박과 김태평의 회유를 안고서였다.